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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를 그린 화가 ‘에드가 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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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를 그린 화가 ‘에드가 드가’ 
  • 윤미지 기자
  • 승인 2021.08.24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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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의 화가 에드가 드가, 19세기 사회의 모습을 담다

[핸드메이커 윤미지 기자] 에드가 드가(Edgar Degas)는 19세기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다. 초상화를 비롯해 여러 형태의 작품을 남겼으나 대중에게 가장 각인된 드가의 특징은 ‘무희의 화가’라는 점이다. 그만큼 드가는 발레리나를 소재로 한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우아함 속에 느껴지는 역동적인 포인트들을 다채롭게 그려냈다.
 

Dancer with a Fan, ca.1880
데생 화가로도 뛰어난 재능이 있던 에드가 드가. Dancer with a Fan, ca.1880, Edgar Degas/ THE MET

드가는 데생 화가로도 뛰어난 재능을 갖췄다고 알려진다. 그의 인상주의적 화풍을 생각해볼 때 채색의 효과가 거의 없는 데생 작업에도 능했다는 점이 더욱 호기심을 가지게 한다. 하지만 무용이란 본래 아름다운 선을 표현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가 부드러우면서도 역동성 있는 발레의 모습을 얼마나 풍부하게 표현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19세기 후반의 모습을 화폭에 담다, 에드가 드가의 작품 세계 

에드가 드가는 여러모로 독특한 점이 많았던 예술가다. 그는 프랑스 파리의 귀족으로 태어났으며 파리 대학 법학부에 들어갔지만 화가가 되기 위해서 국립미술학교인 에꼴 데 보자르에 재입학했다고 알려진다. 

그는 처음에는 역사화가가 되기를 희망했다고 한다. 무희의 화가라는 별명과는 통 어울리지 않는 첫 시작이지만 그가 초기에 역사화를 그렸던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가 처음 법학도에서 미술학도로 진로를 바꾼 것은 프랑스의 화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영향이 있었다. 앵그르는 프랑스 신고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로서 누드화로 잘 알려져 있으며, 그 이상의 천재적인 화가적 재능을 가진 거장이다. 앵그르 역시 역사화 작업을 했으며 드가가 여기에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Self-Portrait, ca. 1855–56, THE MET
Self-Portrait, ca. 1855–56, Edgar Degas/ THE MET

그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르네상스 작품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미술 여행은 그에게 작가적으로 많은 영감과 영향을 얻는 기회가 됐는데 당시 고모 집에 초대를 받아 그곳에서 지내며 가족의 모습을 그림으로 담기도 했다. 

그 작품이 바로 ‘벨렐리 가족’이다. 드가의 초기작으로 유명한 벨렐리 가족은 그의 고모 부부와 어린 두 명의 딸의 모습을 그린 가족 초상화다. 가족의 단란한 모습을 그렸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어두운 분위기가 감돌며 그림에 등장하는 가족들의 표정 역시 밝지 않다. 고모의 남편은 반 측면으로 앉아 있어 가족과 단절되어있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림 속 고모와 두 딸이 어두운색의 상복을 입고 있는 이유는 벨렐리 부인의 아버지 장례식을 치르고 난 뒤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The Bellelli Family,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The Bellelli Family, Edgar Degas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그림 벨렐리 가족을 보면 알 수 있듯 드가는 어떤 현상을 바라보고 이를 부자연스럽게 긍정의 이미지로 표현하려고 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현실을 담았으며 가족 간의 긴장 관계 역시 미화하지 않고 그대로 화폭에 그렸다.

그의 작품이 처음 전시된 것은 1865년이다. 드가는 파리 살롱전에 작품을 출품했으며 당시 당선된 그림이 ‘뉴올리언스의 수난’ (혹은 ‘오를레앙시의 불행’)이다. 무희의 화가로 잘 알려져 있으나 드가는 자신의 생애 중 생각보다 더 다양한 주제를 화폭 위에 담았다. 고전주의 화풍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으며 1872년 어머니의 고향인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에는 ‘뉴올리언스의 목화 공장’을 그리며 당시 미국의 근대적인 모습을 작품의 소재로 사용하기도 했다. 
 

A Cotton Office in New Orleans,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A Cotton Office in New Orleans, Edgar Degas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다양한 모티브들이 드가의 여러 작품 속에 등장하지만 역시 그의 작업 중 가장 두드러지는 주제는 ‘여성의 모습’이다. 여성의 신체, 여성의 평범한 생활, 발레리나 등이 그의 작업에 의해 그려졌다. 독특한 점은 드가가 여성이라는 소재를 그렇게나 몰두해서 그렸음에도 그의 본성은 여성 혐오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드가는 인간혐오를 의미하는 미장 트로프(misanthrope)로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그의 본성은 그의 주 소재가 됐던 발레리나를 바라보는 방식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는 1870년대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발레리나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 후 발레리나를 소재로 한 수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그에게 있어서 발레리나는 아름다운 옷과 움직임 등을 구체화하는 한낱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The Dance Class, 1874, THE MET
The Dance Class, 1874, Edgar Degas / THE MET
Dancers Practicing at the Barre, 1877
Dancers Practicing at the Barre, 1877, Edgar Degas/ THE MET

 

드가의 이런 인간 혐오적 습성은 일정 부분, 그가 인간이라는 모티브를 아름답게 미화해서 그린 것이 아니라 사실주의적으로 표현했던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특히 드가는 여성의 신체를 그릴 때 지나치게 예술적인 표현을 하지 않았다. 구도 역시 전통적인 누드화의 모습을 따르고 있지 않았으며 외형을 아름답게 그리려는 노력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있는 그대로 여성의 모습을 그렸으며 그런 이유로 당시 대중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Woman Having Her Hair Combed, ca. 1886–88, THE MET
Woman Having Her Hair Combed, ca. 1886–88, Edgar Degas/ THE MET
Woman Combing Her Hair, ca. 1888–90, THE MET
Woman Combing Her Hair, ca. 1888–90, Edgar Degas/ THE MET

당시 발레리나의 세계 또한 우리가 그림을 통해서 접하는 것만큼 로맨틱하거나 아름답지 못했다. 당시에는 발레리나가 단순히 오페라에서 무용을 표현하는 댄서로만 활동하지 않았다. 과거에는 가난한 가정의 어린 소녀들이 발레를 배웠고 부유한 고객이 이를 스폰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오페라 하우스에서 발레리나가 공연에 오르면 그 전, 후로 따로 고객이 접근할 수 있었으며 부유한 남성의 스폰은 매춘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발레리나의 현실이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드가의 그림 속에서도 이러한 풍경을 발견할 수 있다. 주로 그림에서는 검은 옷을 입은 남성을 스폰서로 묘사했다. 이들은 커튼의 뒤편에서, 무대의 한쪽에서 발레리나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당시 부유한 고객층은 무대의 리허설 준비 중 한쪽 편에서 앉아 직접 발레리나의 무용을 감상했다고도 한다. 때로는 무대의 막이 내리고 그 뒤에서 발레리나를 만나는 남성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도 발견할 수 있다. 
 

The Rehearsal Onstage, ca. 1874, THE MET
그림의 오른쪽 검은 정장을 입은 두 남성이 의자에 앉아 오페라 리허설을 관람하고 있다. The Rehearsal Onstage, ca. 1874, Edgar Degas/ THE MET

드가는 아름다운 무용수의 모습을 외형적으로 묘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림 속에 사회의 모습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19세기 후반은 물론 그의 여성 묘사에 있어서는 분명 독특한 시선이 존재한다. 그의 여성 혐오적 특성 때문에 여성을 긍정적으로 묘사했다고 볼 수는 없으나 당시 하류층 여성의 삶을 작품 속에 담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주목할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여성의 모습을 지나치게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담았다는 점에서 시대화로의 기능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역동적인 움직임을 묘사한 화가 

여성 세탁부나 여성 재봉사 등 에드가 드가가 다양한 하류층 여성의 모습을 담았던 것은 분명하나, 그의 소재는 그 안에서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는 초상화 작업을 하기도 했으며, 신사들이 말을 타고 경주하는 모습을 그림 속에 그리기도 했다. 주로 당시 프랑스인들의 문화적인 오락거리에 많은 관심사를 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A Woman Ironing, 1873, THE MET
A Woman Ironing, 1873, Edgar Degas/ THE MET
The Singer in Green, ca. 1884, THE MET
The Singer in Green, ca. 1884, Edgar Degas/ THE MET

무용의 화가, 말이라는 모티브의 활용 등을 떠올려보면 역동적인 움직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정적인 화면을 소재로 삼는 것이 아니라 동적인 움직임을 화폭 안에 표현한다는 점이 에드가 드가의 큰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를 순간포착에 큰 재능을 가진 화가라고 일컫기도 하는데 움직이는 여러 장의 프레임 안에서 한순간을 포착하여 그림에 표현한다는 점이 매우 색다르다. 
 

Before the Race, 1882-84,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Before the Race, 1882-84, Edgar Degas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Race Horses, ca. 1885–88, THE MET
Race Horses, ca. 1885–88, Edgar Degas/ THE MET

그는 외형적으로 운동성을 가진 모티브의 한 모습을 담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고 당시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도 인상적인 장면을 포착하는 힘을 가진 화가였다. 에드가 드가는 인상주의 화가의 대표적인 인물로 거론되기도 하지만 그는 사실주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고 볼 수도 있다. 

강한 색채나 부드러운 표현도 돋보이나 그의 작품은 한편으로 인상주의 화풍과는 크게 관련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대부분의 인상주의 화가들이 야외에 나가 그림을 그렸다면 드가는 외부에서 그림을 그리지 않았으며, 당시 정물화를 그리는 화가들과 달리 움직이는 것을 그림의 소재로 삼았다. 오히려 사실주의의 사상을 가지고 현실적인 면을 그림 속에 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The Dancing Class, ca. 1870, THE MET
The Dancing Class, ca. 1870, Edgar Degas/ THE MET
Dancers, Pink and Green, ca. 1890, THE MET
Dancers, Pink and Green, ca. 1890, Edgar Degas/ THE MET

드가는 색다른 시선을 통해 전형적이지 않은 화면을 그림 속에 표현했으며 역동적인 움직임 속에서 섬세한 선을 포착해 사실에 가까운 그림을 그렸다. 어찌 보면 그가 무용의 화가로 널리 알려진 것은 그의 이러한 특성이 기인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에드가 드가의 작업은 단순히 한 장면을 화폭 안에 담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36세에 접어들며 급격하게 시력을 상실했다. 화가에게 있어서 시력 상실이란 치명적인 문제였으나 그는 그럴수록 더욱 예술에 파고들었으며 한평생 결혼하지 않고 그림을 그렸던 것처럼, 자신의 인생 전반을 예술 안에 녹이기 위해 노력했다.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그림 작업에 몰두했으며 말년에 더는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을 때는 조각에 집중했다. 
 

Horse Trotting, the Feet Not Touching the Ground, modeled after 1878, cast 1920
Horse Trotting, the Feet Not Touching the Ground, modeled after 1878, cast 1920, Edgar Degas/ THE MET

그는 조각가로서도 두각을 드러냈다. 여러 가지 조각 작품을 남겼으나 가장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은 작품 ‘14세의 어린 무용수’였다. 청동으로 조각했으며 높이만 해도 1m가 되는 크기로 발레복을 입은 한 소녀의 모습을 조각으로 남겼다. 

당시 이 조각 작품에 대한 여론은 다양했으나 대체적으로는 실망스러운 관점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발레리나를 아름답게 표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수의 사람이 이를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도 했다. 대부분 예술은 현실을 미화하고 여성의 모습은 아름답게 묘사되는 경우가 흔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획기적인 시도와도 같은 작품이다. 
 

The Little Fourteen-Year-Old Dancer, 1922 (cast), 2018 (tutu), THE MET
The Little Fourteen-Year-Old Dancer, 1922 (cast), 2018 (tutu), Edgar Degas/ THE MET

드가가 조각한 14세의 어린 무용수는 외형적으로 아름답게 묘사되지는 않았으나 오히려 그 표현에서 독창성을 발견할 수 있다. 높은 사실주의적 조각 표현을 넘어서 그는 작품에 실제 직물로 짠 발레복 튤을 입힌다. 조각에 직물을 혼합하여 작업하였으며 사실주의에 기반한 독창적인 시도는 이 작품을 관객의 뇌리에 깊게 박히도록 한다. 

새로운 시도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후에 드가는 자신의 작업에 사진이라는 도구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포착하는 기술은 실제 사진 작업과도 어느 정도 닮아있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 그가 실제로 사진술이 보급되는 과정에도 새로운 매체를 받아들이고 이를 예술에 접목했다는 것은 굉장히 놀라운 점이다. 

당시 대부분 화가가 사진술의 보급으로 화가의 자리를 보장받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드가는 오히려 이를 자신의 예술적 활동에 접목했다. 흔히 화가의 화폭에는 정형화된 구도의 그림이 담겼다면 사진술의 보급을 통해 보다 다양성 있는 구도가 시도됐다. 드가는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화가였다. 

사실 드가의 예술은 온통 트라우마로 점철된 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성에 대한 트라우마에 가까운 혐오적 증상이 작품에 그대로 발현되어 표현됐으며 그 동기는 좋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예술 세계를 확립하는 것에는 큰 영향이 미쳤다고 볼 수 있다. 후에 그의 사실적인 표현과 예술에 관한 진지하고 독창적인 시도는 많은 이들의 관심을 집중시켰으며 과거와 근대의 예술을 잇는 하나의 발자취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한 의미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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