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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무덤에서 발견된 작은 인형, 타나그라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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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무덤에서 발견된 작은 인형, 타나그라 인형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08.18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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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타나그라 인형들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흔히 옛 이집트의 무덤에서 부장품으로 같이 묻은 인형이라고 하면 우샤브티를 떠올릴 것이다. 저승에서 죽은 자를 대신해 오시리스 신이 명령하는 노동에 종사해야 하는, 죽어서도 평생 일해야 하는 박복한 운명을 지닌 인형 말이다. 

그러나 타나그라 인형이라고 하면 조금 생소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거의 들어보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 고대 그리스의 테라코타 소형인물상을 통칭하는 타나그라 인형은 1815년 보이오티아의 도시 타나그라의 묘지에서 많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타나그라 인형이라 불린다. 오늘날에는 그리스 본토를 비롯하여 남이탈리아, 소아시아, 이집트 등 각지에서 출토되는 모습을 보인다.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타나그라 인형

타나그라 인형은 테라코타제의 작은 인형으로, 테라코타 자체의 유래는 매우 오래되었다. 점토로 조형한 작품을 그대로 건조해 굽는 것으로, 쉽게 만들 수 있지만 극히 작은 작품에만 한정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만 커져도 점토층이 두꺼워져 구워낼 때 갈라지기 쉬웠다. 그래서 고대인들도 머리를 써 형틀로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메소포티아의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이집트 등의 유적에서 많이 발견되었으며 테라코타 소형상의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손꼽히는 게 타나그라 인형이다. 

파란 드레스를 입은 여인 /Public Domain

타나그라 인형은 그리스 테라코타 조각상으로 타나그라 지방의 이름을 따 왔지만 대체적으로 여러 도시에서 발견되었다. 전체적으로 백색의 칠을 한 모습이지만 루브르 박물관의 유명한 '파란 드레스를 입은 여인 Dame en Bleu'처럼 자연주의적인 색채로 칠해져 있는 것들도 있다. 이 타나그라 인형들은 일상적인 옷을 입고 모자, 화환, 부채 등 우리에게도 친숙한 악세서리를 착용한 여성과 남성, 또는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 타나그라 인형을 숭배의 이미지나 봉헌의 대상으로 쓰는 전통을 이어 가거나, 종교적인 목적으로도 썼다. 그러나 요즘은 대부분의 타나그라 인형이 단순한 장식적인 의미로 쓰였다고 추측한다. 물론 그리스인들의 매장 풍습으로 봤을 때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인의 무덤에 안치된 부장품의 일종으로도 본다. 

타나그라 인형은 고인의 삶을 알 수 있는 다양한 모습으로 제작되었다. 무덤에서 발견된 작은 인형들은 무덤 주인의 소유물이자 동행인이기도 했다. 타나그라 인형들은 죽은 자들에게 위안을 가져다 주고, 평화롭게 저승으로 간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봤다.

타나그라 인형 /flickr

타나그라는 그렇게 유명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평범한 도시였다. 타나그라 인형은 1860년대 말, 그리스 보이오티아에 있는 무덤들이 수세기에 걸쳐 발견되기 전까지도 주목받지 못했다. 농민들이 땅의 흙을 갈던 중 우연히 고대 무덤을 발견했고, 또 다른 무덤들을 발견한 것이다. 이집트의 파라오처럼 호화로운 무덤이 발견된 것은 아니지만, 농민들은 땅을 파고 이 무덤들에서 작은 크기의 테라코타 인형들을 발견했다. 

그러나 무덤이 발견되면서 도난 사건도 있었는데, 우연히 발견된 이 조각상들을 찾아낸 사람들이 누구에게든지 이 조각들을 판매한 것이다. 자연히 이 일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보물 사냥꾼들의 귀에도 이 일이 들어간다. 1870년 무덤에서 타나그라 인형을 훔치기 위해 무단으로 무덤을 발굴하는 도둑들의 횡포로 무덤이 많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도둑들은 이 타나그라 인형을 찾아 팔려 했고, 이 때문에 약 8,000여개의 무덤이 파헤쳐진 것으로 추정한다. 

타나그라 인형 /flickr

안타깝게도 많은 무덤들에는 꽃병 등의 그 시대를 알 수 있는 유물도 많았지만 대부분 깨진 채로 발견되었다. 타나그라 무덤의 불법 도굴은 공공연한 이야기로 널리 퍼져나갔고 결국 그리스 정부가 이에 개입하게 된다. 1874년 고고학자 파나요티스 스타마타키스를 필두로 첫 번째 공식 발굴을 감독하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무덤 훼손 사건으로 인해 역사가들이 왜 이 조각상들이 무덤에서 발견되었는지, 그리고 이 인형들은 고인들과 어떤 관계고 무엇을 상징했는지에 대한 사실을 알 수 있게 만들었다. 당시 타나그라 인형은 대부분 시신과 함께 묻힌 채 발견되었다.

특히 기원전 3-4세기의 주요 유물들은 1874년 즈음에 확보할 수 있었다. 무덤 밖과 안에는 작고 수많은 테라코타 인형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어찌나 인기가 많았는지 정부 관계자들이 무덤을 지키고 섰어도 불법 도굴은 계속되었고 수집가들의 요구에 눌려 가짜 타나그라 인형들이 만들어지고 팔려나갔다고. 

타나그라 인형은 대체로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flickr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타나그라 인형의 모조품들은 점점 골동품 시장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조각품들은 골동품 시장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며 판매량이 증가했다. 특히 그리스 상인들은 수집가들에게 조각상을 공급하는 중요한 업자 노릇을 했고, 미술 시장에서나 볼 수 있었던 많은 양의 모조품들이 개인 수집가들에게도 접근하기 쉬워지면서 이 조각상은 점점 대중적인 영역으로 들어왔다. 

모조품들 중 일부는 어설픈 복제품이었지만 다른 것들은 너무나도 숙련된 솜씨의 위조품들이라 구분하기가 더 어려웠다. 지역 주민들은 이 조각상을 구매하는 사람들에게 점점 더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전문가들도 속을 정도였다. 이 모조품 중 몇몇은 유명 박물관 소장품에도 들어가기도 했다. 독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중 타나그라 인형들을 분석한 결과 20%가 가짜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장 레옹 제롬 '피그말리온과 갈라티아' /flickr

어쨌든 수천 점의 타나그라 인형들은 개인 소장품들과 대영박물관, 베를린국립박물관, 루브르박물관 등 주요 박물관으로 팔려나갔다. 타나그라 인형의 인기는 현대 프랑스 미술, 문학, 패션 등에도 영향을 끼쳤다. 장 레옹 제롬의 작품 '피그말리온과 갈라티아 Pygmalion et Galatée' 는 조각상에 키스를 하는 순간 차가운 대리석 조각상이 따뜻한 온기가 있는 신체로 바뀌어 가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왼쪽을 보면 타나그라 인형이 눈에 띈다. 부장품으로도 알려진 인형인 만큼 이 작품에서 조각상 또한 이미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외에도 프랑스의 고고학자 테오도르 라이나흐는 타나그라 인형을 현대 파리의 세련된 여성들과 동일시하면서 '고대의 파리인'이라 불렀다고 한다. 

고대에는 타나그라 인형이 소인상을 만드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다양한 몸짓과 디테일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상당히 복잡했던 제조 방식 덕분이었다. 최초의 테라코타 틀에는 청동, 나무 등이 종종 쓰이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점토를 빚고 가마에서 굽는 식이었지만 이 방식으로는 작은 크기밖에 만들 수 없어 이후 장인들은 금형틀을 썼다. 금형 뒷면에 있는 작은 구멍은 연소 과정에서 가스를 빼내는 데 쓰였다. 장인들은 금형을 사용하는 것 이외에도 팔, 날개, 모자 등의 디테일을 수작업으로 모델링했다. 

타나그라 인형 /Public Domain
모자를 쓴 타나그라 인형 /flickr

기원전 4세기 중반까지는 인물의 앞면만 성형하고 뒷모습은 간단하게 처리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후 속이 빈 테라코타 인형들은 불에 태워지곤 했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타나그라 인형들은 전면과 후면, 두 부분의 금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종종 머리 부분과 팔은 별도의 금형으로 만들어 굽기 전 조각상에 붙여졌다. 

타나그라 인형의 조각상의 섬세함이란 그리스인들이 점토 모델링에 얼마나 능숙했는지를 알려준다. 몸체는 두 부분으로 나눠진 금형으로 만들어지고 머리와 팔을 붙였다. 다양한 포즈와 왕관, 화환 등 장식의 요소를 가미해 맞춤 제작도 가능했다. 인형들은 머리의 방향, 팔의 방향을 조금씩 다르게 해 똑같은 인형이라도 조금씩 다른 자세로 보이게끔 했다.

가마에 구워진 조각상들은 자연주의 색으로 칠해졌고 특히 빨간색은 머리, 입술, 신발, 액세서리 등 기타 디테일에 쓰였다. 피부의 색은 옅은 오렌지색, 분홍색으로 칠해졌다. 장인들은 점토를 구운 후 신선한 석회 석고 위에 색소를 발라 작업했다. 인물들은 자연스러운 색조, 부드러운 색으로 표현되었다. 당시 파란색과 금색은 재료를 구하기가 어렵고 비싸서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화려한 색의 타나그라 인형 /flickr

타나그라 인형은 그리스 조각의 예술 범위가 얼마나 넓었는지를 알려준다. 차분한 모습의 여성성, 베일에 싸인 무용수, 아이까지 수백 가지의 다양한 모습을 연출했다. 이 조각상들은 누군가를 존경하고 치켜세우는 의미보다는 일상적인 삶을 살았던 여성들과 그 아이들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었다. 이들의 옷차림과 몸짓 또한 당시 그 사회에서의 여성의 역할이 어땠는지를 추정할 수 있는 소중한 유물이다. 

두상만 남은 타나그라 인형 /flickr
천을 두른 여성의 모습 /flickr

또한 타나그라 조각상의 기원이 4세기 후반이라는 것도 확실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있다. 오히려 모델링으로 봤을 때 훨씬 더 늦은 시기에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는 설도 있다. 몇몇 작은 타나그라 인형들은 원뿔 모양의 모자를 쓰고 선풍기를 들고 있는데, 알다시피 그리스에서는 이 두 가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타나그라 인형으로 표현된 여성들은 대부분 익명으로, 몸 위에 천을 두른 모습으로 표현된다.  

고고학자들은 이 조각상들의 태도, 표정, 장식, 의상, 손에 들고 있는 물건에 딱히 무언가를 나타내는 상징성은 없다고 말한다. 신화적, 내세적인 의미가 있을 수도 있지만 단지 타나그라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나타낸 것이 주라는 것이다. 타나그라 인형에서 보이는 인간적인 면들은 당시 사람들의 일상 생활, 특히 여성성에 대한 묘사와도 관련이 있었다. 타나그라 인형에서 보이는 소박한 모습은 과거 사람들의 일상을 알게 해 주고 그 때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 타나그라 인형 
 

그리스에 살던 누군가였을 타나그라 인형 /flickr

예로부터 인형은 사람들에게 있어 일종의 수호신 역할을 했다. 질병이나 재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인형을 만들어 불에 태우든지, 무덤에 묻든지 하는 것도 인형이 가진 역할 중 하나였다. 고대 로마에서도 조상을 본뜬 인형을 신성한 장소에 안치해 집을 지키는 신으로 모셨고 이 풍습은 지금까지도 유럽 각지에서 지켜지고 있다. 고대의 인형들은 이처럼 신으로 숭배되거나, 사람들의 소망을 담은 부장품으로 같이 묻히는 중요한 존재들이었다. 

타나그라 인형은 공동체 속 사람들이 살았던 일상을 보여주었고, 그리스 역사와 문화에 있어서 중요한 보물로 남아 있다. 일부 타나그라 인형은 종교적인 목적을 지니고 있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저 일상복을 입은 여성, 남성, 소년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었다. 점토를 빚는 것은 손으로 작업하기에 쉬운 물체였기 때문에 사람의 모습을 묘사하기에도 가장 원초적인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시선으로야 타나그라 인형을 본다면 조잡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까마득한 그 시대의 사람들 직접 점토를 빚어가며 표현한 것이라 생각하면 그저 경이롭기만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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