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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회화의 거장, 후지시로 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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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회화의 거장, 후지시로 세이지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08.13 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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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시로 세이지 '빛과 그림자의 판타지展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전시 기획사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은 후지시로 세이지의 '빛과 그림자의 판타지'전을 10월 12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카게에는 밑그림을 그리고 잘라 셀로판지를 붙이고, 조명을 스크린에 비춰 색감과 그림자로 표현하는 독특한 장르의 작품이다. 라이팅 간판 광고의 효시로 알려져 있으며, 버스 정류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라이팅 광고 매체의 모티브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런 작가의 혼이 깃든 초기의 흑백 작품인 서유기 시리즈부터,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 철도의 밤’을 소재로 한 작품을 비롯해 일본 상업연극 역사에 큰 업적을 남긴 극단 모쿠바자 시절의 오리지널 캐릭터 캐로용 인형까지 관람할 수 있다. 


끊임없는 열정의 현신, 후지시로 세이지
 

후지시로 세이지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일본의 대표적인 카게에 작가 후지시로 세이지의 작품은 극도로 세밀한 구성력과 묘사를 자랑한다. 카게에는 ‘그림자놀이’ 또는 ‘그림자’를 가리키는 말로, 후지시로는 종이와 셀로판지 등을 오려서 형태를 만드는 ‘키리에’ 기법과 ‘카게에’를 접목하여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드로잉한 그림을 면도칼로 하나하나 오려 낸 다음 투명 테이프나 조명용 컬러 필름을 붙이고 물감 대신 빛을 투사하면 정교하고 세밀한 그림자 그림이 완성된다. 일본 사람이라면 광고나 교과서에 한번쯤은 봤을 그의 작품이지만 막상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크게 알려져 있는 건 아니다.

1924년 도쿄에서 출생한 후지시로는 게이오 보통부에 입학해 수채화, 유화 등의 교육을 받았다. 이후 독립미술전, 국화회전, 춘양회전, 신제작파전에 입선하기도 했다. 1949년 요미우리신문사가 주최한 '일본 앙데팡당전'첫 회부터 몇 차례 출품을 하기도 한 그는 게이오 아동문화 연구회 유화 및 인형극 작품 활동을 했으며 게이오 기주쿠대 경제학부를 졸업해 도쿄흥행(현 도쿄테아토르)선전부에 입사했다.

영화사 도쿄흥행은 미국 영화를 수입하는 회사로, 이후 도쿄 테아토르로 이름을 바꿨다. 외부 전람회에서 계속된 입선으로 신문 기사에 오르내리던 후지시로는 꽤 유명했고, 영화사를 방문해 취직을 문의하자마자 바로 채용되어 선전부에 배치되었다. 당시 학생으로 긴자에서도 개인전을 열었는데 반응이 꽤 좋았다고 한다. 인형과 카게에 전용극장인 쥬느판토르도 이때 결성했다. 

후지시로 세이지에게 큰 영향을 준 하나모리 야스지 /Public Domain

후지시로가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한 도쿄흥행이 있던 긴자의 빌딩 거리에는 잡지 '삶의 수첩'을 창간한 하나모리 야스지의 사무소인 "의상연구소"가 있었다. 당시 하나모리는 여성향 잡지인 '스타일북'을 간행하고 있었고, 후지시로는 하나모리가 쓰는 풍자적인 문장을 좋아해 언젠가 만나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은 영화 팜플렛의 원고를 의뢰하기 위해 하나모리를 찾아간다.

독일의 카게에 영화를 본 적이 있던 하나모리는 후지시로의 작품을 매우 호평하면서 1948년에 창간된 '삶의 수첩' 잡지의 카게에 연재를 의뢰하게 된다. 후지시로는 곧 잡지의 표지 일러스트 연재를 시작했다. 삶의 수첩은 대표적인 생활정보잡지였고, 이 연재는 많은 인기를 끌었다. 표지 일러스트들은 80년대에 들어서는 밝고 세련된 느낌의 감각을 보여주어 인기가 많았다. 

2년 후 포도주병의 일생을 더듬으며 인생의 즐거움과 슬픔, 덧없음을 그린 후지시로의 최초 카게에 화집 '포도주병과 이상한 여행'을 '삶의 수첩'사에서 발행한다. 당시 약 60여장의 모노크롬 카게에로 제작된 이 그림책을 60년이 지난 2010년에 컬러 작품으로 새롭게 제작, 재편집해 출판했다. 이처럼 '삶의 수첩'과 관련해 일어났던 모든 일들은 후지시로의 작업이 널리 알려지는 최초의 계기가 되었다. 

성녀 클라라의 빛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무명의 청년 후지시로와 유능한 편집자이자 예술가였던 하나모리 야스지. 두 사람의 만남은 역사적인 첫 카게에 작가를 탄생시킨 셈이다. 여담이지만 하나모리는 후지시로보다 13살이나 나이가 많았지만 마치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후지시로를 대해주었고, 후지시로는 하나모리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고 회고한다. 사람을 대하는 통찰력, 날카로운 판단력,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면서도 거침없이 행동하는 자세, 세상을 바꿔 나가려는 기개 등 모든 것이 후지시로에게 있어서 자극적으로 다가온 셈이다. 

혼자 유화를 그리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으며 작품을 세상에 발표하고 싶있던 후지시로에게 있어서 하나모리는 하나의 목표이자 이상이었다. 예를 들자면 하나모리는 러시아의 민족 의상인 루바시카를 자주 입고 있었는데 후지시로도 그를 따라 루바시카를 입곤 했다고. 

1952년 인형, 카게에 전용 극장 쥬느판토르가 '모쿠바자'로 개명, NHK개국 시험방송 개시로 NHK전속이 된다. 20여작의 인형극과 뮤지컬을 제작했으며 당시 일본을 대표하는 작곡가, 안무, 의상디자이너 등이 협업했다. 동화 원작인 '울어버린 빨간 도깨비'는 1000회 이상 상연되었으며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카게에극'이다. 후지시로의 대표작이이며 도쿄도 아동연극콩쿠르 장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서유기 - 손오공의 얼굴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이후 중앙공론에 '서유기'를 카게에 삽화로 5년간 연재했다. 매월 6장, 총 380장을 제작했으며 연재 중에는 모노크롬 제작을 했지만 단행본 묶음 표지의 여덟 개 구도를 컬러작품으로 리메이크했다. 예리하게 자른 선, 심플하고 세련된 등장인물로 성인 카게에로서 큰 명성을 얻었다. 

뿔피리와 소년 /flickr

흑백 카게에서 컬러 카게에로 바뀌기 전의 초기 작품인 '뿔피리와 소년'은 2005년 컬러로 복원되었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필름 뿐이지만 소실된 원화를 거의 비슷하게, 충실하게 복원했다. 지금처럼 그림이 세밀해지기 이전의 작품이지만 심플함 속에서 후지시로만의 세련된 스타일이 보이는 50대 전반의 대표작이다. 판화 작품이 된 카게에 중에서도 인기 있는 것이 이 작품이라 한다. 양쪽으로 우뚝 솟은 절벽 위쪽으로 커다란 달이 놓여 있고, 골짜기에서 올려다본 달의 구도와 함께 조용한 밤의 골짜기를 표현했다. 

1967-1970년까지는 극단 목마좌로 일본 국립극장에서 아동인형극을 최초 상연했으며 요미우리홀 뮤지컬 '작은 아씨들'외 다수를 공연했다. 후지시로는 '작은 아씨들'을 작업하면서 "현재 부모-자식 같의 절연의 시대라 불리는 지금, 부모와 자식 사이의 마음의 끈이 사라져 가기 쉬운 시기다. 따뜻한 가정 생활을 그린 이 불후의 명작을 다시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당시 후지시로가 제작한 뮤지컬 '작은 아씨들'외에도 다수 작품에 일본 영화음악의 대가 '이후쿠베 아키라', 세계적인 디자이너 '모리 하나에'등이 협업했다. 

캐로용과 모구짱의 데이트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그가 만든 오리지널 캐릭터 '캐로용'은 오사카만국박람회에서 '캐로용쇼'로 참가했으며 1966년 극단 모쿠바자에서 제1회 캐로용쇼가 열렸다. 장난기 많은 커다란 눈의 캐릭터, 일본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개구리 '캐로용'은 후지시로가 만든 오리지널 캐릭터이다. 후지시로가 이끄는 모쿠바자는 일본 상업연극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전국의 유치원생들이 관람객으로 총동원되는 순회공연과 무도 대회를 개최하는 일본 부도칸의 사용 역할을 크게 변화시켰다.

후지시로는 원래 콘서트나 공연의 목적으로 설계되지 않은 일본 부도칸에 음향 장비 설치와 원형무대를 만들어 10대의 스포츠카를 달리게 하는 연출을 시도했다. 모든 것이 새로운 시도였지만 그가 고안한 등신형(봉제)인형극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그 후 부도칸에서 4년간 11차례나 캐로용쇼가 성황리에 개최됐다. 일본 무도관에서 개최되는 공연 양식과 대형 극장에서의 어린이용 공연의 뿌리라 할 수 있는 후지시로의 공적은 연극 흥행에도 큰 역할을 했다. 

검정 옷을 입은 소녀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2차 세계대전 직후 도쿄에서 당시 청년이었던, 후지시로 세이지는 잿더미가 된 들판 어디에서라도 구할 수 있는 골판지와 전구를 사용해 카게에를 만들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일본은 여전히 정전이 잦았고, 그런 속에서 후지시로 세이지는 카게에를 만나 한 줄기 빛을 찾고 아름다움을 찾으며 평화를 찾았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피해 지역을 돌며 수없이 스케치를 했다. 그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이전까지는 산과 꽃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면서 그림을 그렸지만 재해가 발생한 이후로는 그렇게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지진이 일어나고 쓰나미가 와 모든 게 떠내려가버렸다. 수백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대자연의 힘을 보며 비참함과 참혹함은 물론,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생각이 휘몰아쳤다. 곧 사진을 찍는 것보다, 긴 시간을 들여 그림을 그리는 쪽이 쉽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풍경을 보면서 그리는 쪽이 느낄 수 있는 것도 많을 것이고, 눈앞에 일어난 일의 본질을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은하 철도의 밤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1983년 후지시로는 '은하 철도의 밤'으로 독창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아 브라티슬라바 국제원화전시회(BIB)에서 황금사과상을 수상한다. 원작 '은하 철도의 밤은' 만화영화 '은하 철도 999'에 큰 영향을 미친 작품으로, 미야자와 겐지(1896~1933)가 여러 차례 고쳐 쓴 미완의 장편 동화다. 그림책 '은하 철도의 밤'은 후지시로 세이지가 글을 고쳐 쓰고 그림을 그린 작품이다. 원작에서 빠진 에피소드도 있고 등장 인물이 달라진 것도 있으며, 원작에 없는 부분을 후지시로가 보충해서 넣은 부분도 있다.

후지시로는 은하 축제로 들썩이는 마을의 풍경, 별이 촘촘히 박힌 황홀한 밤하늘, 조반니가 현실 세계에서 느끼는 슬픔, 상상의 세계에서 경험하는 놀라운 기차 여행을 마치 꿈속을 거닐듯 아름답고 환상적인 그림으로 표현했다. 원작 '은하 철도의 밤'의 이면에는 깊은 슬픔과 그리움이 담겨 있는데, 후지시로는 이 요소들을 놓치지 않고 빛과 그림자를 재료로 삼아 완벽히 표현했다는 평을 받는다. 

꽃과 소녀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예수 탄생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후지시로는 인간은 수족, 머리, 몸, 목, 전신을 사용해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의 작업은 손으로 만들고, 그리고, 눈으로 보고, 머리로 생각하고, 즉 모든 것이 함께 협력해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능력은 어떤 시대,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그는 화필을 쥘 때, 판화를 만들 때 조각칼을 쥐는 때도 의식을 손끝에 집중하며 작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높은 집중력으로 때로는 극도로 세밀한 그림을 그리고 때로는 전신을 사용해 대담한 선을 그려내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 손으로 그리고 전신을 사용하는, 즉 모든 신체를 사용해 그리고 있다는 감각이 자신에게는 살아가는 기쁨 그 자체라 후지시로는 말한다. 한편으로 후지시로는 놀이의 연장으로 작업을 계속해 온 측면이 있다고도 했는데, 그저 놀고 싶은 기분이 키워낸 감성과 숙련된 고도의 기술이 쌍벽을 이루어 그의 예술 세계가 태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코타츠와 고양이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그의 창작의 원천은 무엇일까. 작업 중에는 항상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후지시로는 와중에도 놀이 환경, 노는 습관 만들기 등을 잊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의 아뜰리에에는 많은 동물들이 그와 함께 살고 있다. 작업하는 후지시로의 발밑에는 고양이가 돌아다니고 있으며 피라루쿠(세계 최대의 담수어로 아마존강 등에 서식함)등의 열대어와 올빼미, 물총새, 거북이 등 여러 동물을 키우고 있다. 그는 동물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들이 말을 하지 못하는 대신 동물들의 표정과 행동에서 많은 것을 느낀다고 한다. 

그는 동물들이 옆에 있으면 사람은 이들과 함께 살아 있다고 느낄 수 있으며,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사는 곳이 여기 지구라 말한다. 매일 아침 고양이가 이마를 혀로 핥아 일어나게 된다는 후지시로는 "지금도 건강하게, 즐겁게 있을 수 있는 건 피라루쿠가 조금 커졌다든지, 금붕어를 덥석 먹어치웠다든지 등을 바로 옆에서 매일 보고 느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코스모스, 노래하다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그의 일상적인 통찰력은 창작의 의욕으로도 이어진다. 동물의 아름다움, 강함, 그들의 마음을 항상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살아 있는 듯한 동물을 그릴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또한 그는 동물에게서 단순히 아름다움만을 보진 않는다. 동물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문득 인간의 어리석음 또한 통감한다고 한다. 그는 "전쟁, 환경 문제, 원전사고 등 인간이 지구를 망치고 있는 면도 있다. 인간만 좋다면 뭐든지 좋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현실에서 동떨어져 아름다운 것뿐만이 아닌 모든 것을 그리고 싶다"고 밝혔다. 


평화와 공존을 사랑한 작가, 후지시로 세이지
 

잠자는 숲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이 작품의 제목은 '잠자는 숲'이다. 후지시로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내 생애 마지막 작품이라 여기며 혼신을 다해 작업하고 있다. 수많은 작품 가운데 ‘잠자는 숲’은 한국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했다. 나는 한국을 잘 알고 싶고, 한국을 더 가까이 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특히 작가는 이번 한국 전시를 위해 고령임에도 하루 7시간 이상 작품 제작에 열정을 쏟았다.

창작에 열중하는 후지시로에게 있어서 60세를 넘은 때부터 계속되어 온 아침과 밤에 하는 산책은 그에게도 있어 소중한 시간이다. 그는 "나이와 함께 몸은 쇠약해져 가지만 지금도 매일 1만보를 걷고 있다. 걷고 있으면 피도 흐르고 뼈도 튼튼해지고, 팔다리도 움직이고 머리도 일을 하겠지~라는 생각을 한다. 일종의 실험인 셈이다"라며 웃었다. 

석양, 사랑의 기적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2차세계대전 이후 도쿄에서 청년 후지시로 세이지는 골판지와 전구를 사용해 카게에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유화, 인형극을 시작으로 카게에 제작, 뮤지컬, 그림자극 제작과 연출을 겸하는 작가로써 활동은 80여년에 이른다. 그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고, 기쁘게 하고 싶은 일념으로 지금까지도 그림을 그리고 창작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그의 표현과 창작 활동의 역사를 더듬어 빛과 그림자의 세계를 즐겁게 만끽해 준다면 기쁠 것이라 밝혔다. 

전시 관계자는 "판타지, 기쁨, 슬픔, 황홀함이 모두 있는 전시”라며, “어릴 때 간직했던 꿈 속 동화 세계에 온 듯한 기분일 것”이라 전했다. “카게에 특성상 홍보물 이미지로는 작품의 재료나 특수한 기법이 전달되지 않으므로 직접 방문해 감상하고, 감동과 진가를 경험해 보시길 바라며 98세 작가 후지시로의 동심이 가득한 빛과 그림자의 판타지 세계에서 즐거움과 희망을 얻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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