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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모직 카펫 모담, 조선철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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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모직 카펫 모담, 조선철을 아시나요?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08.09 1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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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구박물관 10월 10일(일)까지 ‘실로 짠 그림-조선의 카펫, 모담(毛毯)’ 개최
실로 짠 그림-조선의 카펫, 모담(毛毯) 포스터 /국립대구박물관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국립대구박물관은 오는 10월 10일(일)까지 특별전 ‘실로 짠 그림-조선의 카펫, 모담(毛毯)’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조선시대의 카펫, ‘모담’을 소개하는 전시이다. 또 새로 구입한 모담을 처음 공개하고, 일본에 전래된 ‘조선철’을 조망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모담’은 털실과 면실을 엮어서 짠 조선의 카펫이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탑등, 구유, 계담, 모전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모직 카펫을 만들어 왔다. 하지만 현재 조선시대의 모담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모담’이란 단어가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현재 조선시대의 모담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찾아보기 어려워 이번 전시가 더욱 특별해 진다.

사자와 꽃무늬 모담 /국립대구박물관 

이번 전시는 그림과 사진을 통해 조선시대 모담의 특징과 역사적 흐름을 살펴보고, 모담 무늬의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전시는 1부 ‘한국의 전통카펫, 길잡이’ , 2부 ‘모담, 조선의 카펫’, 3부 영상존 ‘새와 꽃, 방안으로 들어오다’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모담의 명칭과 개념을 이해할 수 있도록 옛 문헌에 나타난 기록과 제작기법, 재료와 관련된 일반적인 정보를 다룬다. 2부에서는 17~18세기의 초상화에 표현된 모담에서부터 20세기 초 서양에서 수입된 양탄자까지 그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18~19세기에 일본에 전래된 조선의 모담, ‘조선철(朝鮮綴)’이 집중적으로 소개되며 최근 사들인 대구박물관의 조선철 11점이 처음 공개될 예정이다.

마지막 3부에서는 모담에 나타난 다양한 무늬들을 주제로 한 영상을 선보인다. 모담의 무늬는 한국적인 소재이면서도 간결한 선과 색감, 면의 분할과 비례감 등이 현대의 디자인 감각과도 통한다는 평을 받는다. 

나비와 박쥐 무늬 모담 /국립대구박물관 

모담은 모직물로 만든 우리나라의 전통 융단이다. 깔개, 방장, 자리, 요 등으로 사용하였으며, 탑등, 모담, 융담이라고도 부른다. 일본에서는 조선철, 또는 조선모철이라고 부르며 날실을 팽팽하게 건 곳에 색이 있는 씨실을 무늬의 색에 따라 꿰매 가듯이 짜 넣는 평직의 변화 조직으로 태피스트리(tapestry)기법을 사용했다. 세로 방향에 면으로 된 실을 놓은 후 가로로 산양, 염소의 털을 엇걸어가며 찔러 넣는다. 가로 방향의 씨실을 무늬, 색깔에 따라 바꿔 짜는 형식으로 된 모담은 보온성이 탁월했다고 전해진다. 

모담은 이전까지 국내에서는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었다. 조선시대에 어떤 양탄자를 썼는지, 왜 일본으로 건너갔는지 등에 관한 국내 연구 자료가 없었던 탓이다. 직조에 썼을 직조기도 전혀 남아 있지 않고, 갯수나 문헌도 거의 없었다. 국내에서 조선철 연구를 처음 시작했던 민길자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에도 시대에 일본과의 교류를 회복한 후 본격적으로 직물의 수출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때 조선 통신사를 통해 일본에 보내는 물품 중에는 화석·채화석·만화석 등이 있어, 모담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조선철은 주로 양반이 깔개나 칸막이, 바람막이 등에 사용했으며 몇백년이 지난 지금도 벌레 먹은 곳이 없다고 한다. 조선철의 재료인 산양, 염소의 털은 다른 직물에 비해 빳빳한 감촉과 질김을 자랑해 짜임새가 꽉 차 있어 병충해에도 강했다.

기온 재단의 고문인 요시다 고지로 /경운박물관

2016년 경운박물관에서 요시다 고지로 기온 재단 고문이 소장한 조선철 36점이 전시되면서 모담은 비로소 사람들에게 주목받을 수 있었다. 이 중 상당수는 조선통신사를 통해서 일본에 전달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이 당시에 공개된 조선철은 국내에 남아 있는 두 점과 제직 기법이 매우 유사했으며, 섬유 분석 결과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던 양털과 염소털이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요시다 고지로는 조선의 모담이 일본에 전래하게 된 이유로 부산 근교에 있었던 '쓰시마번'의 왜관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측한다고 밝혔다. 2016년 경운박물관에서 전시되었던 조선철은 일본 요시다 고지로 기온 재단 고문의 소장품이며, 당시 내한했던 고지로 고문은 “45년 전 조선철의 아름다움에 빠져 수집을 시작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요시다 고지로 씨와 모담 /경운박물관

교토 기온 마쓰리를 주관해 온 기온재단의 요시다 고지로 고문은 수십 년에 걸쳐 모아온 컬렉션 중 18~19세기에 제작한 36점을 당시 경운박물관 전시를 위해 내주었다고 한다. 전시된 컬렉션은 양 끝에 기하학 패턴이 그려져 있고 중앙에 학과 봉황, 모란, 까치, 사자, 호랑이 등 복을 불러오는 길 상문이 그려져 있다. 

조선철은 16세기 조선 통신사를 통해 일본에 전래되었는데, 일본의 귀족들은 이 아름다운 카펫을 집에서 사용하거나 해마다 열리는 교토의 기온 마쓰리에서 수레의 외관을 장식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조선 통신사의 공식적인 파견 기록은 열두 번이고 그때마다 스무 점씩 가져갔으니 총 2백40점이 건너간 셈이다.

조선철이 일본에 전해지면서 교토의 마치슈, 즉 부유한 상공업자들은 조선철을 자택의 실내 장식으로 사용하기도 했으며 제사에 사용하는 가마를 덮는 용도로 쓰기도 했다. 또 무사들은 조선철로 옷을 지어 입거나 벽에 걸어 그림으로 감상하기도 했다고. 장경수 경운박물관장은 조선철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일본인이 다량 구매했기 때문에 부산에서 기술자들이 제작한 분량까지 고려하면 상당히 많은 수의 조선철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오학도 모담 /한국고미술협회 종로지회
조선철 기물·보문도 앞면 /한국고미술협회 종로지회

조선철은 문양에 따라 사자도와 호접도, 오학도와 기물·보문도, 풍속·산수도, 줄문도 등 총 여섯 가지 문양으로 분류한다. 호접도는 호접을 단독으로 사용하거나 호접과 함께 18세기 특징인 창에 그려진 풍경이 초화와 함께 표현되며 나비 모양 또한 정형화되는 모습이다. 오학도는 18세기 조선철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다섯 마리의 학 문양이다. 기물은 사대부가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금기서화(음악, 바둑, 글, 그림)에 필요한 물건이나 일상에 필요한 물건을 주제로 하며 보문은 길상스러운 기물을 형상화한 것이다. 

또한 풍속·산수도는 산과 누각, 꽃과 나무 등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풍경을 바탕으로 하며 줄문도는 직조나 그림 문양을 넣지 않고 씨실의 색을 바꿔가며 제직해 가로 줄무늬를 표현한 것이다.

원래 우리나라에는 청동기 시대 때부터 모직물로 만든 깔개가 있었다고 한다. 청동기 시대 유적지로 알려진 평안북도 강계시 공귀리 유적에서 흙으로 빚어 만든 수직식 직기의 추가 발견도 주목할 만하다. 『삼국사기』에는 당나라 태종에게 ‘오색구유(五色氍毹)’를 보냈다고 하였는데, 『광운』에 구유는 모석 또는 요, 즉 털방석 또는 담요를 의미한다고 한다. '삼국유사'에는 신라의 구유, 백제의 탑등을 깔개로 썼다는 기록이 있기도 했다. 

조선 18세기 보배와 꽃무늬 모담 /국립대구박물관

고려 시대 최자의 『삼도부』에는 신분이 높은 관리들의 집에 채담을 깔았다고 전한다. 조선시대에도 채담은 계속 쓰였으며 전, 계, 담, 화채담 등의 이름으로 깔개나 장막으로 사용했다. 안타깝게도 이 직물들의 특성을 알 수 있는 실물 자료는 거의 없다. 중국 명나라 홍무년(1368~1398) 때 기록인 『정운』과 청나라의 『고금통운』에는 담이 모직물로 만든 깔개이며, 오색실로 짠다는 설명이 나온다.

이러한 기록을 보면 각 모직물의 특성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모담이 털실로 짠 모직 카펫을 가리키는 용어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화려하게 만든 깔개, 담요는 조선 시대에도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계담은 사치 품목으로 규정되어 여러 차례 금지하는 명이 내려졌다고. 

장경수 경운박물관장은 조선을 개국하면서 사치와 향락을 금하고 청빈한 삶을 지향했기 때문에 모담 또한 국가적 용도 외에는 사용하는 것을 엄격히 규제했다고 전했다. 다만 왕실이나 일부 재력가 집에서는 조금씩 사용했는데, 피혁이나 전을 만들기 위해 공조에 영조사를 두었던 점에서 이를 알 수 있다.

1472년(성종 3)사치를 금하는 전지에 따라 예조에서 올린 『속육전』의 혼인 조목에서 혼석의 배석에 계담을 사용할 수 없으며, 단지 한 겹 돗자리만을 쓸 수 있게 하였다(『성종실록』 3년 1월 22일). 또 1541년(중종 36)에는 당하관 이하에서는 혼인 때 화려하고 값비싼 비단과 계담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였으며, 이를 어길 때에는 장 80대에 처한다(『중종실록』36년 12월 29일)고 한 것으로 보아 모담을 사치 품목으로 보고 강력하게 규제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섯 마리의 학과 꽃 무늬 모담 /국립대구박물관

20세기 초 서양 문물이 들어오며 신문에도 유럽의 카펫이 본격적으로 소개되었다. 당시 신문에는 미국에서 가져온 양탄자, 국내에서 제작한 모담을 판매하는 내용의 광고가 있었다고 한다. 왕실에서는 수입품인 양탄자를 사용했고 일반 시민들은 국내산 모담을 쓴 것으로 추정된다. 온돌이 대중적으로 보급된 시기는 17세기 이후인데, 학자들은 온돌의 보급으로 인해 주거 환경과 취사 도구 등 조선의 전반적인 생활 문화가 크게 바뀐 것으로 추측한다. 그도 그럴 것이 18세기 이후부터 모담은 자취를 감추었는데, 쉽게 짜서 사용하고 해지면 곧장 내다 버렸기에 남아 있는 게 없는 것이다. 

모담이 깔린 초상 /국립대구박물관

‘실로 짠 그림-조선의 카펫, 모담(毛毯)’ 전시를 두고 국립대구박물관 관계자는 "국립박물관이 모담을 본격적으로 다룬 첫 전시라고 할 수 있다"며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다양한 모직 카펫을 만들었는데, 조선시대 모담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온돌에서 생활하는 풍습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모담을 상류층만 쓴 것 같고, 일본에는 17세기 조선통신사들이 전한 듯하다"며 "간결한 선과 색감, 면의 분할과 비례감 등 현대 디자인 감각과도 통하는 모담을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낯설지만 일본에서는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모담, 자료도 없어 연구도 어려웠던 그 모담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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