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1-10-23 03:55 (토)
아프리카가 표현하는 세상, 팅가팅가 미술
상태바
아프리카가 표현하는 세상, 팅가팅가 미술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08.05 18: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술아프리카의 문화와 영혼을 그린 '에드워드 사이디 팅가팅가'

 

코리아아트페어 /한국예술가협회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오늘(8월 5일)부터 8일까지 코엑스에서 코리아아트페어가 개최된다. 코리아아트페어는 한국예술가협회(금보성 이사장)가 주관을 맡고 부산 갤러리 마레(사윤주 대표), 인천 잇다스페이스(정창이 대표), 거제 유경미술관(유천엽 관장), 화가협동조합 쿱(황의록 이사장) 등이 공동 기획을 맡았다. 

이번 코리아아트페어는 국내 작가들과 해외 작가들이 한 공간에서 전시되는 전시로 해외 참여 국가로는 포르투갈의 Jullio Antao 회장의 PAS가 함께 참가하였으며, 네덜란드 에드한센과 프레드 반웨일이 만든 GAPI 협회, 독일의 ArtNations e.V 협회가 참여한다고 전했다.

팅가팅가 미술계열 작가 두츠의 작품 /인사1길 컬셔스페이스

특히 아프리카 젊은 작가 압두나부터 팅가팅가, 음파두, 헨드릭 릴랑가, 케베, 두츠 등 우리나라에서 자주 소개되는 작가들도 전시를 한다고 밝혔다. 그중에서도 팅가팅가는 탄자니아 출신의 예술가 '에드워드 사이디 팅가팅가'의 이름을 따 '팅가팅가'라 부르며, 탄자니아를 넘어 아프리카 전체에 영향을 준 예술이다. 헨드릭 릴랑가도 팅가팅가 예술에 영향을 받은 아프리카 작가로 꼽힌다. 


아프리카의 문화와 영혼을 담은 팅가팅가 

팅가팅가 미술 /flickr

‘팅가팅가’는 국내에서는 아직 낯선 단어일지도 모른다. 파블로 피카소와 키스 해링을 비롯해 서양 현대 미술에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졌으며 유럽과 미국, 일본 등 해외에선 이미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아프리카 현대미술이다. 오이스터 베이에서 발전한 화풍으로 이후 동아프리카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탄자니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씩은 봤을 그림이며, 단순하면서도 추상적인 모양과 대담한 터치는 아프리카의 전통 예술을 연상시킨다. 

팅가팅가는 탄자니아, 케냐 및 주변 국가에서 대표되는 그림의 형태 중 하나다. 전통적으로 메이소나이트란 목재나 캔버스에 여러 겹의 페인트를 칠해 완성하며, 대부분의 그림이 화려하고 빽빽한 느낌을 준다. 팅가팅가 미술은 관광객들과도 관련이 있는데, 예를 들어 그림들은 크지 않아 일반 사람들이 쉽게 가져가거나 운반할 수 있었고 주제는 유럽과 미국에서 온 관광객들에게 어필하기 위한 요소들이 더러 존재한다.

팅가팅가 그림 자체는 단순하고, 마치 캐리커처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림 속 숨어 있는 유머와 풍자 또한 드러내고 있다. 요즘은 많은 예술가들이 관광객 대상으로 판매량을 높이기 위해 작은 캔버스에 빨리 마르는 에나멜 페인트를 사용해 그림을 그린다. 팅가팅가 예술가들의 대부분은 판매를 위해 대중적인 예술을 먼저 생산한 후에 자신만의 개인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편이다. 

팅가팅가 미술 /flickr

즉 자신만의 창조적인 활동을 위해 낮에는 일을 해 돈을 벌어야 하는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많다. 가난한 예술가란 고정관념은 서양에만 있는 것이 아닌 아프리카에도 존재하는 셈이다. 어떻게 보면 한 사람의 예술적 표현으로 시작된 것이 시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관광 유산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림들은 각기 부족 문화의 전설과도 관련이 있으며, 소재는 농촌의 삶을 했지만 점점 돈을 버는 수단으로 진화해 일종의 도시 예술 형태로 나아갔다. 어쩌면 팅가팅가 예술은 관광객들의 아프리카 생활에 대한 막연한 낭만을 어필하기 위했는지도 모른다. 현재 탄자니아에는 약 700여명의 팅가팅가 예술가들이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에드워드 사이디 팅가팅가 /tanzanianfineart

팅가팅가의 시초, 에드워드 사이디 팅가팅가는 1937년 탄자니아 남부의 농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공식적으로 미술 교육을 받은 적도, 학원을 다닌 적도 없었다. 그저 학교에 다니며 교육을 받고, 대부분이 그랬듯 부모님의 일을 돕거나 가장 중요한 생계 수단인 농사를 짓는 일을 도우며 시간을 보냈다. 1953년, 그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탄자니아의 수도인 다르에스살람으로 가 1961년까지 한 공무원의 집에서 가정부 일을 했다. 

그 시간 동안 팅가팅가는 자신이 머물렀던 집에 페인트칠을 하러 온 화가들의 작품을 볼 기회가 생겼다. 그때마다 그는 밝은 색채, 화가의 우아한 붓놀림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해 보고 싶었지만, 매일매일 쌓여 있던 집안일 때문에 도무지 짬이 나지 않아 그림을 그릴 시간이 없었다. 1961년, 가정부 일이 끝나고 그는 다시 일자리를 찾아 전전했지만 쉽지 않았고 그는 점점 더 살길이 어려워졌다. 

그러다 1961년에 일어난 탄자니아의 독립 이후 탄자니아에는 자이르 출신 화가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 일은 팅가팅가의 내면에 있던 예술에 대한 욕구를 자극했다. 주요 도로를 따라 있는 자이르 예술가들이 그린 서양화가 관광객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는 것을 보고 용기를 얻은 그는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한다. 취업에만 매달려 왔던 그의 예술에 대한 열정이 깨어난 것이다. 그는 1968년부터 탄자니아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팅가팅가가 바라본 기린의 모습 /trueafricanart

그러나 비싼 미술 재료를 구입할 여력이 없어 그는 목재나 페인트 같은 저가 재료로 그림을 그렸다. 그는 친구에게 가정용 페인트, 낡은 페인트 붓을 빌렸고 버려진 판대기에 그림을 그렸다. 생에 첫 번째 그림을 그리고 나서 모로고로주의 한 상점 앞에 전시했고, 그는 처음으로 그림을 판매해 돈을 벌었다. 이것이 그의 새로운 경력의 시작이었다.

그는 네모난 판에 동물과 여러 모티브를 그림으로 그리면서 그림 활동에 집중했다. 다른 미술가들이 그에게 미술 재료에 대해 조언을 해 주기도 했고, 덕분에 그는 가정용 페인트에서 더 좋은 미술 재료를 얻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이후 그는 탄자니아 무힘빌리 메디컬 센터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그래도 그는 그림을 그리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의 그림은 점점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아졌고, 심지어 잘 팔렸다. 초기의 팅가팅가 그림은 단순하며 대상인 동물을 2차원적으로 담백하게 묘사했다. 팅가팅가는 동물을 자신의 나라를 대표적인 요소로 생각했다. 아무래도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은 다른 나라보다 동물들과 더 많이 접하는 것이 가능했다는 해석이 있다. 

에드워드 사이디 팅가팅가, 'Lion' /인사1길 컬쳐스페이스
에드워드 사이디 팅가팅가, '레오파드' /청주시립미술관

그는 평소 “나는 내 땅 아프리카를 보여주기 위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오랫동안 내 가슴 속에 지녀온 것이다.”라고 말하며 아프리카를 그려냈다. 어린 시절 팅가팅가는 나칸판야 마을 주변에서 가끔 아프리카에 사는 야생 동물들을 보았다고 한다. 어느날 그는 “나는 우연히 버팔로 한 녀석을 보았다. 그것은 땅딸막하고 건장한 몸을 가졌지만, 그의 뿔 속에 헤아릴 수 없는 강인함이 보였다.”라고 회상한다. 팅가팅가가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버팔로라는 동물에게서 느껴지는 강인함을 생각하며 그렸다고.

시작은 볼품없었을지 몰라도, 그는 자신만의 새롭고 독특한 예술 스타일을 빠르게 확립해 갔다. 그는 화려하면서도 초현실적인 스타일로 관광객들의 관심을 끌었다. 동물과 새들, 춤추는 부족 사람들과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묘사했다. 그림의 주제는 그가 주변에서 본 모든 것이 됐다. 새, 동물, 풍경 등을 그는 원근법 없이 형식과 패턴을 과장해 주제의 특징을 강조했다. 누구에게도 특별히 배우지도, 타고나지도 않았던 그의 능력은 주제에 대해 단순하고 직접적이며 순수한 접근으로 이어졌다. 

그의 그림은 비록 디테일은 부족했을지언정 사람들의 활발한 삶을 즐거운 색채로 묘사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가 그린 사람들의 몸은 마치 막대처럼 구부러져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며, 춤을 추거나 물을 나르거나 요리를 하는 평범한 모습이다. 동물들은 인간들보다 훨씬 과장된 모습이며 일반적인 묘사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이 세련된 예술가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예술적으로는 조잡해 보였을지는 몰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래도 좋은 작품이다. 사람들이 그림을 사는 이유엔 분명히 뭔가 의미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에드워드 사이디 팅가팅가, 'Gold pig' /울산시

어느날 그의 팅가팅가 예술 그림 하나를 구입한 관광객이 그를 내셔널 아트 컴퍼니에 소개를 해 주는 일이 생긴다. 회사는 팅가팅가의 그림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그의 작품 공급에 합의했다. 이것은 그가 경제적인 안정을 되찾고, 팅가팅가 미술을 계속 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다.

팅가팅가는 그의 어린 친척 몇 명을 견습생으로 데려갔는데, 처음에는 그의 작업을 도와주는 식이었지만 나중에는 직접 그림을 그리도록 하기도 했다. 1971년 국립 예술 위원회는 국제무역박람회에서 그의 작품을 전시했다. 병원에서 일하면서도, 그는 끊임없이 예술가로 활동했다. 탄자니아 국립미술평의회는 그의 작품을 여러 전시회에 전시했고 다양한 자료를 공급하면서 그의 작품 판매 또한 도왔다. 

1972년, 예술가 경력을 차근차근 쌓아가던 팅가팅가는 자신을 도망자로 오인한 경찰의 실수로 총에 맞아 40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비극적인 죽음 후 동료 화가들은 그의 뜻을 따라 회화 예술을 이어갈 목적으로 그의 이름을 따 팅가팅가 예술협동조합(TACS)을 결성한다. 이곳은 곧 다르와 잔지바르 출신의 화가들을 위한 회화 학교가 된다. 오늘날 다르와 잔지바르에서 활동하는 100여명의 화가들은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 

탄자니아에 있는 예술협동조합 /flickr
예술협동조합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flickr

잔지바르 예술가들은 생선, 원숭이, 코코넛 나무, 악기 등을 주제로 그리며 전통적인 팅가팅가 미술의 주제와도 관련성을 잃지 않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을 팅가팅가의 후계자로 생각하며, 새로운 형태와 주제를 실험해 그림을 그린다. 예술협동조합은 팅가팅가 스타일의 미술을 위한 회화 학교이면서, 회원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미술품 판매 또한 하고 있다.

1955년 스위스에서 설립된 국제협동기구 헬베타스는 스위스의 여러 도시를 순회하는 전시회를 열었고 그 수익으로 예술협동조합의 건축비를 지원했으며 화가들에게는 쉼터를 제공하기도 했다. 2007년 이후 자립한 예술협동조합의 목표는 외부 재정 및 행정적 도움으로부터 독립해 탄자니아 문화의 활기를 찾는 것이라 한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 /flickr

1세대 작가인 에드워드 사이디 팅가팅가의 직속 제자 6명과 잘 알려진 작가들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참고로 1세대 예술가들은 스스로 예술가라 생각하지 않아 스스로 '컬러 장인'이라는 이름으로 지칭했다고 한다. 에드워드 사이디 팅가팅가의 아들인 다우디 팅가팅가는 아버지의 유산을 이어받아 팅가팅가 그림의 전통을 반영하고 있으며, 그의 작품은 때로 아버지의 화풍을 연상시킨다. 현재의 팅가팅가 예술가들은 모직물인 모슬린과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며, 많은 사람들은 자전거에 칠하는 에나멜 페인트로 그림을 그리는 전통을 추구한다. 이 그림들은 미국, 일본, 스웨덴, 덴마크 등 여러 나라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현대 미술 그 곳곳에, 팅가팅가 

헨드릭 릴랑가, ‘해피 패밀리’ /청주시립미술관

1세대 예술가들 중에서는 팅가팅가 장르에 영향을 받은 릴랑가 아트도 존재한다. 에드워드 사이디 팅가팅가는 마쿠아 민족이지만, 릴랑가는 마콘데 민족으로 출신이 달라 릴랑가 아트로 따로 구분한다. 그중에서도 조지 릴랑가의 작품은 1세대 작가들의 성향과는 다른 면이 있다. 조지 릴랑가는 어린 시절 조각을 배우고 니에레레 문화 센터에서 일하며 본격적으로 예술을 공부했다. 1978년 워싱턴DC에서 전시회를 열며 유명해졌고, 키스 해링도 직접 조지 릴랑가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마콘데 민족의 조각과 팅가팅가에 영향을 받았지만,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었으며 이것은 아프리카 현대 미술계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는 전통에 딱히 목을 맨 것도 아니고, 정치성을 따지지도 않았다. 단지 그는 개인의 욕구와 현실을 중히 여겼으며, 자유로운 삶과 영혼을 표현하길 원했다. 조지 릴랑가를 외할아버지로 둔 헨드릭 릴랑가는 현재 외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 릴랑가 스타일을 이어받고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팅가팅가와 조지 릴랑가의 계보를 잇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헨드릭 릴링가, '페스티벌' /울산시

“나의 첫 스승은 외할아버지셨다. 그 이후는 다 할아버지가 지명하신 분들이 나를 가르치셨다. 내가 할 일은, 즉 뉴 릴랑가가 해야 할 일은 기존의 것을 모던하게 바꾸는 것이었다" 그는 지금도 릴랑가 스타일을 전세계에 소개하며, 이것이 외할아버지가 자신에게 주신 일이라 믿고 있다. 

헨드릭 릴랑가는 팅가팅가와 조지 릴랑가가 자신의 시간에 여전히 살아 있다고 말한다. 에드워드 사이디 팅가팅가는 세상에 없지만 그가 활발히 했던 활동, 그가 남긴 유산은 그의 뜻을 이은 예술협동조합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을 포함해 아직도 사람들에게 생생하게 남아 있다. 팅가팅가는 이미 사람들에겐 예술 그 이상으로, 아프리카란 곳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수단으로써 존재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