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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인도 문명의 관용 정신, 엘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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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인도 문명의 관용 정신, 엘로라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08.04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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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로라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마하라슈트라 주의 아우랑가바드(Aurangabad)에서 멀지 않은 곳에 2㎞ 넘게 펼쳐진 수도원과 사원에는 높은 현무암 절벽이 있었다. 이 절벽을 단계적으로 파서 600년~1000년까지 지속적으로 작업한 기념물로 이루어진 엘로라는 고대 인도 문명의 진수를 보여준다. 

특히 엘로라 밀집 지역에는 특유의 예술적 창조와 기술적 개발은 물론 불교·힌두교·자이나교를 신봉하는 신전들이 있으며, 고대 인도의 특징인 관용 정신을 잘 나타낸다. 엘로라의 앙상블은 인간의 창조적인 우수성을 나타내는 걸작으로 특유의 예술적 업적을 잘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아 198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세 가지의 종교를 포용한 엘로라

엘로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바위를 깎아 만든 동굴들 중 하나이며, 불교·브라만교·자이나교가 혼재한다는 증거로 존재한다. 한 장소에 각 종교의 신전과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규모가 큰 세 종교를 인정하고 보편적 가치 강화에 기여한 고대 인도의 특징인 관용 정신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엘로라는 오랜 시간 동안 고대 인도 문명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 석굴의 앙상블은 인도 중세 시대의 예술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했다는 평을 받는다. 

엘로라 /flickr

무엇보다 엘로라 석굴을 처음 만들 때부터 규모가 큰 세 종교의 의견을 석굴 작업에 반영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고대 인도의 주요한 세 종교가 섞여 나타난다는 점이 무엇보다 높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 석굴은 절벽을 따라 남쪽에서 북쪽으로 펼쳐졌으며,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불교 사원군에서는 석굴 12개가 발견되었다. 시대별로 살펴보면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순서다. 6세기 경에 불교가 등장한 것을 시작으로 50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힌두교와 자이나교가 차례차례 자리를 잡아간 셈이다.

엘로라가 만들어지면서 9-10세기에 걸쳐 승려들이 자주 이곳을 오갔다고 한다. 동시에 불교, 힌두, 자이나교의 특성이 깃든 엘로라는 특히 우상 숭배를 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다행히 기둥에 새겨진 세밀한 조각과 벽에 그려진 그림들은 그대로 남아 있다. 15-17세기 이 지역이 이슬람 군대들에 의해 파괴되었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 현상은 이슬람 교도들의 '힌두교와 불교의 잘못된 인식'에서 나온 공격이라 말한다. 실제 이슬람 역사가들은 이 지역의 광범위한 피해와 파괴에 대해 엘로라를 언급하곤 했다.  

엘로라 석굴 중 불교 석굴은 1-12번 석굴까지며, 대승불교가 번성할 때인 5-7세기에 만들어졌다. 초기 힌두 동굴들은 일반적으로 힌두교에서 숭배하는 시바 신에게 바치는 의미로 만들었으며, 7세기 중반부터 9세기 말까지 두 단계로 나뉘어 지어졌다. 13번-29석굴까지 힌두 사원이며, 처음 발굴된 9개의 동굴을 시작으로 4개의 동굴이 추가로 발견되었다.

후기 동굴인 14-16번 동굴들은 라슈트라쿠타 왕조 시대에 만들어졌고 작업은 14번, 15번 동굴에서 처음 시작했다. 이 동굴들은 크리슈나 1세가 통치하던 8세기에 작업이 완성되었다. 이후 10세기까지 지어진 30-40번 석굴은 자이나교의 사원이다. 특이하게 시대 순서대로 번호가 매겨진 것이 특징이다.  

엘로라 /flickr

엘로라 석굴과 가장 많이 비교되는 대상이 아잔타 석굴인데, 엘로라의 규모는 아잔타를 능가한다. 건축물이라고도 할 수도 없는 것이, 원래 건물을 하나하나 지은 것이 아닌 바위산 하나를 통째로 깎아 사원과 다양한 조각들을 만든 것이다. 다른 돌이나 기둥을 외부에서 가져온 것이 아닌, 원래 산에 있던 재료를 쓰고 그 위치에 그대로 지었다.

인도에서 연이은 화산 폭발로 용암이 흘러내리며 데칸용암대지라 부르는 다층 현무암 지형이 형성되었는데, 덕분에 건축가들은 보다 세밀한 작업을 위한 현무암을 골라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엘로라는 수도승들의 예배와 순례자들의 휴식처 역할도 했지만, 동시에 남아시아 교역로와 가까워 중요한 상업 중심지 노릇도 했다. 

모든 사원은 드라비다 양식의 시카라(힌두교 사원 본전 위에 있는 높은 첨탑)가 조성된 현관 뒤편에 남근상이 있는 신전과, 기둥 16개가 받치는 평평한 지붕인 만다파(힌두 사원에서 예배나 의식을 준비하는 장방형의 공간)로 구성되었다. 야외 마당으로 둘러싸인 난디 사당의 분리된 현관은 낮은 고푸라(사원 입구에 세운 피라미드형의 큰 탑)를 통해 들어간다. 온 힘을 다해 시바신의 거처였던 카일라사 산에 오르려고 하는 악마 라바나의 조각은 인도 예술의 중요한 역사적 기념물로 자리잡았다.

불교 동굴에서 떨어지는 폭포 /flickr

불교 동굴들은 총 12개로, 11개는 기도원이 있는 수도원의 용도로 만들어졌다. 불교 동굴들은 침실, 부엌, 방 등 수도승들이 생활하는 곳으로 지어졌다. 불교 동굴 중 5번 동굴은 바위를 뚫어 만든 곳으로 수도승들이 식사를 하던 곳이며, 식당용 의자 뒤에 불상이 있는 홀 형태로 다른 엘로라 동굴 중에서도 특이한 구조를 가졌다. 6번 동굴은 여러 수도승들이 모여 경전과 행동 지침을 토대로 토론을 벌이던 광장이 있다. 기둥과 벽을 장식한 조각상들을 볼 수 있으며, 특히 5번, 10번, 11번, 12번은 건축적으로도 중요한 불교 동굴이라 알려져 있다. 

10번 동굴 내부 /flickr

신전이 있는 10번 석굴은 비스바카르마(Visvakarma)로 알려져 있으며, 회랑을 아름답게 장식한 외관과 신전에는 부처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형상화한 불탑(스투파)이 있다. 10번 동굴의 1층은 수행자들의 침실로 쓰였고 2층은 큰 홀이 있으며 3층에 14개의 불상을 모셨다. 일곱 불상은 명상에 잠겼고 다른 일곱 불상은 중생을 계도하는 모습이다.

11번, 12번 동굴은 불교 동굴 중 가장 늦게 만들어진 만큼 힌두교적인 요소가 조금씩 보이는 곳이다. 틴 탈라(Tin Tala)라 불리는 12번 굴의 역사적 가치는 공을 들인 솜씨에 있다. 바위 안에 3개 층을 직접 깎아 지었고, 바닥과 천장이 매끄럽고 평평하게 조성된 사실에서 알 수 있다. 틴 탈라 석굴은 수도실을 포함해 수도원 겸 예배당이었으며 8세기 중반 라슈트라쿠타 왕조 때에 조성한 것으로 짐작한다.

16번 굴, 카일라쉬 신전 /flickr

엘로라에서 가장 정점이라 할 수 있는 14번 굴과 16번 동굴은 힌두교 예술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14번 굴은 악마를 물리치는 두르가 여신상, 춤추는 시바상, 락슈미와 비슈누신상이 놓여 있고 16번 동굴에는 시바신이 있다. 16번 동굴을 대표하는 카일리쉬 사원은 석굴이 아닌 거대한 바위 그 자체에서 탄생했다. 다른 석굴은 돌 속에 공간을 만들었지만 카일라시 사원은 하나의 바위를 꼭대기에서부터 깎아내려 사원과 탑을 만들었다.

즉 바위 위에서 대강의 구획을 잡은 후에 정과 끌을 이용해 아래로 내려가며 조각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 구조는 완벽한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다. 착공에만 100여년이 걸렸으며 파낸 돌은 20여만톤에 이른다고 한다. 불교가 쇠퇴하고 힌두교로 바뀌면서 힌두 사원들은 화려하고 정교한 기술로 만들어졌다. 거의 힌두 사원이 엘로라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16번 동굴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 암석인 카일라쉬 사원이 있다. 카일라쉬 사원은 8세기 라슈트라쿠타 왕조, 크리슈나 1세가 통치하던 시기에 세워졌다. 7천명의 석공을 동원해 150여년에 걸쳐 깎아 만든 사원이다. 거대한 화산암 덩어리를 작업한 것으로 건축적, 예술조형적으로 뛰어난 작품에 속한다.

카일라쉬 신전 /flickr

남인도의 팔라바 사원에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이때부터 힌두교가 조금씩 인도인들에게 융화되기 시작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카일라쉬 신전은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의 두 배 크기로 엄청난 규모다. 절벽의 잔해를 파내 만든 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면 천장 없이 하늘이 보이는 넓은 방이 나온다. 방의 세 벽은 바위를 깎아 만든 30미터 높이의 절벽으로 되어 있다. 중앙에는 벽돌로 쌓아 올린 거대한 사원이 있으며, 이 곳은 절벽의 남은 부분으로 만든 것이다. 

사원은 카일라쉬 산을 형상화했는데, 카일라쉬 산은 지금도 힌두교도들이 이곳을 파괴의 신인 시바신의 고향으로 모시고 있다. 카일라쉬 산은 하늘과 땅을 잇는 신성한 곳이었고, 엘로라에 있는 사원에 묘사된 것도 그 믿음이 돈독했던 힌두교도들의 표현들이었다. 특히 힌두교에서는 시바신이 거주하는 곳이라 생각해 사람들에게 의미가 더 깊은 곳이었다. 사실 카일라쉬 산은 티베트에 있어 인도와는 거리가 멀지만 크리슈나 1세가 자신의 정치적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엘로라에 그 이름을 본뜬 사원을 지은 것이다. 

탑을 받치고 있는 코끼리들의 모습 /flickr
우측에 네 마리의 사자 형상이 보인다 /flickr

꼭대기에는 막 피어나는 커다란 연꽃이 있고 거대한 사자 네 마리가 동서남북에 있는 네 개의 신성한 문을 지키고 있다. 사원의 위층은 신들의 거주지인 하늘을 묘사하며, 밑에는 힌두교도들이 천사라 믿는 데바테가 날아다닌다. 인간들이 사는 땅은 이곳보다 더 아래에 있고, 신들은 가끔 땅에 나타나 모습을 보인다고 믿었다. 

땅과 하늘, 천상의 세계를 차곡차곡 쌓아올린 이 구조는 코끼리들의 등에 실려 있었으며, 코끼리의 발은 지하세계의 물을 밟고 코는 연꽃을 감아 올린 모습이었다. 지금은 크게 손상된 부분이 많아 자세하게 알 수는 없지만, 원래의 모습이 어떤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음이 틀림없다. 특이한 건 엘로라의 다른 사원은 입장료가 없는 데 반해 카일라쉬 사원만 입장료를 받는다는 것이다. 

21번 동굴, 갠지스강 여신의 석상 /flickr

'라메슈와르 레나'라 불리는 21번 동굴은 칼라츄리 왕조에 만들어진 것으로, 라슈트라쿠타 왕조가 엘로라 동굴을 확장하기 전에 완성했다고 한다. 이 동굴은 다른 엘로라 동굴과 비슷하지만, 파르바티 여신이 시바 신을 쫓는 이야기를 묘사한 작품 등이 눈에 띈다. 참고로 파르바티는 시바 신의 아내이며 시바와의 결혼식 등의 모습을 조각으로 볼 수 있다. 동굴 입구에는 갠지스강을 상징하는 강가 여신과 야무나 여신의 대형 조각상을 눈에 띈다. 동굴은 대체적으로 대칭으로 만들어졌으며 기하학적 무늬가 많다. 

자이나 동굴의 석상 /Wikimedia Commons

자이나교 사원군은 규모가 상당히 크고 균형이 잘 잡혔으며 훌륭하게 장식되어 있다. 또 활기 넘치는 엘로라의 막바지 모습을 보여준다. 자이나 동굴은 30-34번으로, 엘로라의 북쪽 끝에는 자이나교의 양대 종파 중 하나인 공의파에 속하는 5개의 자이나 동굴이 있다. 불교나 힌두교보다는 작은 규모지만 매우 세밀한 조각들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시바신을 모시는 힌두 사원과는 달리 무한한 부활의 순환에서 해방된 명상불을 상징하는 24명의 지나(Jinas)의 묘사에 중점들 두고 있다. 자이나 사원에는 자이나 신화에 등장하는 신, 여신, 신앙 등이 묘사되어 있다. 

자이나 동굴 대부분은 평신도 등의 인간 숭배자들도 조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들은 대개 지나의 발에 경의를 표하는 몸짓으로 표현되며 때로는 조각이 만들어질 수 있게 한 후원자들도 포함되어 있다. 대부분 9-10세기에 조각되었지만 어쩌면 자이나 동굴 작업이 원래보다 훨씬 더 일찍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는 추측도 있다.

33번 동굴, 상부의 연꽃 모양의 모티브가 보인다 /Wikimedia Commons

33번 동굴에 있는 기둥들은 초기 불교 동굴에 조각된 기둥들과 흡사하다. 또 33번 동굴 근처에 조각된 세 개의 지나상을 받치고 있는 왕좌는 천을 이용해 중앙 부분을 덮고 있으며, 천 위에는 지나를 지탱하는 연꽃 표현이 새겨져 있다. 이 모티브는 불상을 받치고 있는 왕좌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자이나교 활동이 7세기에도 있을 수 있었으며, 예술가들이 불교, 힌두, 자이나 동굴에서 동시에 작업했을 수도 있다는 추측을 낳는다. 


인도 문명에 존재한 종교의 관용과 포용의 상징, 엘로라
 

시바 신과 그의 부인인 파르바티의 조각상 /flickr

엘로라는 인도의 세 가지 종교가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의 각각 특징이 깃들어 있는 동굴은 고대 인도에서는 신성하게 여기는 특정한 산과도 연결되어 있는 것과 동시에 수도승들에게는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예배를 드리고 경전을 공부하기에 충분했다. 또 거주자와 방문객들에게는 성스러운 환경을 조성하며 휴식의 공간이 되기도 했다.

당시의 예술가들은 개인적인 감정이나 믿는 종교에 따라 작업을 한 것도 아니었고, 하나의 동굴만을 위한 전문가로 일하지도 않았다. 예술가들은 자유롭게 여러 동굴을 드나들며 작업했으며, 여기서 예술가들이 일반적인 종교적인 경계를 넘어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 또한 특별한 일이다. 오랜 시간 동안 엘로라는 고대 인도의 예술가들이 만들어낸 독특한 창작물이며, 세 종교를 포용한 관용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일방적인 신념 하나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닌 고대 인도에 차례차례 정착했던 3대 종교의 소중한 산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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