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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장' 보유자로 김삼식, 신현세, 안치용 씨 3명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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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장' 보유자로 김삼식, 신현세, 안치용 씨 3명 인정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08.03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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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식 한지장 /문화재청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문화재청은 국가무형문화재 ‘한지장’ 보유자로 김삼식(金三植, 남, 1946년생, 경상북도 문경시), 신현세(申鉉世, 남, 1947년생, 경상남도 의령군), 안치용(安致聳, 남, 1959년생, 충청북도 괴산군) 3명을 인정하였다.

이번에 ‘한지장’ 보유자로 인정된 김삼식 씨는 현재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문경한지장’ 보유자로서, 1955년에 입문하여 지금까지 약 67년간 한지 제작에 몰두해 온 장인이다. 닥나무, 황촉규 등 한지 생산을 위한 모든 재료를 직접 재배하여 안정적인 재료 수급환경을 갖추고 있으며 도구와 설비 등을 현대화, 정량화하면서도 전통성을 고수하려는 노력과 전통한지 제조에만 전념해온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신현세 씨는 현재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한지장’ 보유자로서, 1961년에 입문하여 약 61년간 한지 제작에 몸 담아 온 장인이다. 오랜 기간 보수·복원용 한지만을 특화해 생산하고 있으며, 전통연장과 설비 등의 단점을 보완하면서도 전통성을 유지하려는 노력과 각종 고문헌의 보수, 복원과 사경용 전통한지를 특화해 생산하고 있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안치용 씨는 현재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한지장’ 보유자로서, 1981년에 입문하여 지금까지 약 41년간 한지 제조에 종사해 온 장인이다. 국가무형문화재 한지장 보유자였던 고(故) 류행영 씨에게 전통 한지 제조 기술을 전수받아 숙련도가 높으며, 연장과 설비도 전통성을 유지하고 있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한지 /문화재청 

국가무형문화재 ‘한지장’은 우리나라 전통 종이의 제조 기술을 보유한 장인을 말한다. 한지는 닥나무 채취, 닥나무 찌기(닥무지), 닥나무 껍질 벗기기, 백피 만들기, 잿물 만들기, 닥섬유 삶기, 닥섬유 두드리기, 닥풀 만들기, 지료와 닥풀 섞기, 물질하기, 탈수하기, 건조하기, 도침하기 등 수많은 공정을 거쳐 완성된다. 물과 불, 잿물, 황촉규액(닥풀) 등 자연에서 얻어진 재료를 조화롭게 활용하면서 질긴 속성을 가진 닥나무의 섬유를 손상시키지 않고 만들기 때문에 두께가 얇아도 질겨 강도가 높고 보존성이 좋은 종이가 탄생한다.

우리나라의 한지는 고려시대부터 그 명성이 높아 중국인들도 제일 좋은 종이를 '고려지'라 불렀다. 송나라의 손목은 『계림유사』에서 고려의 닥종이는 빛이 희고 윤이 나서 사랑스러울 정도라고 극찬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태종대부터 '조지서'를 설치해 원료 조달과 종이의 규격화, 품질 개량을 위해 국가에서 관심을 갖고 관리해 오다가 근·현대를 지나오면서 건축양식과 주거환경의 변화, 서양지의 수입으로 전통적인 한지의 명맥은 거의 단절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에도 한지 제작은 생산원가와 제작 공정의 편의로 닥나무 껍질 대신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수입한 펄프를 사용하기도 하고, 황촉규 대신 화학약품인 팜을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문화재청에서는 전통한지의 올바른 보존과 전승을 위해 한지장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다.

 껍질을 벗긴 닥나무 /광주MBC 유투브

한지의 원료는 닥나무이다. 닥나무의 종류에는 우리 재래종인 참닥(조선닥), 일제시대 일본 사람이 심은 닥나무인 '외닥', 머구쟁이(머구닥)등이 있는데, 외닥과 머구닥은 껍질이 얇아 한지를 만들면 쉽게 찢어진다. 외닥은 갈색, 참닥은 진한 회색, 머구닥은 검은빛을 낸다. 닥나무가 주 원료라면 닥풀은(황촉규)부원료라 할 수 있다. 섬유가 길기 때문에 서로 엉키기 쉬운데 닥풀을 넣으면 서로 분산되며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닥풀의 점성이 없어지므로 순수한 종이만 남게 된다. 

또 닥풀은 종이의 뻣뻣한 기운을 주고 강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닥풀을 적게 넣으면 종이가 부드럽고 부피가 크지만 닥풀을 많이 넣으면 강도가 좋은 종이가 된다. 그 외에도 닥풀은 뜬 종이가 상하층이 붙지 않고 한장 한장 잘 떼어지게 하는 역할을 하며 종이를 뜨는 통 속에 있는 닥섬유가 아랫부분으로 가라앉는 것을 막아준다. 

종이의 색은 조금 누렇거나 일광표백을 했을 경우 여러 장을 포개 두면 진주색을 띠게 된다. 종이를 조금 찢어봤을 때 실(섬유)이 많은 것이 좋은 한지이다. 색지일 경우 색이 너무 진하지 않고 은은한 빛을 내는 게 좋다. 윤기가 많은 한지가 좋으며, 윤기가 많을수록 화학약품을 덜 사용했다는 증거다. 

한지에 먹, 이정웅의 '붓(Brush)' /소울아트스페이스

먹물을 이용한 좋은 한지를 찾을 수도 있다. 일단 먹을 갈아 한지에 한 방울 떨어뜨리면 이때 전통한지는 흡수가 빠르며 먹의 번짐이 원형을 이룬다. 질이 좋지 못한 한지는 흡수가 느리고 먹의 번짐이 불규칙히다. 먹을 아주 연하게 갈아 붓을 스케치하듯이 잡고 종이에 반 정도 겹치게 그어 봤을 때, 전통한지 제작 방법으로 만든 종이는 얼룩이 지지 않으며 겹쳐진 부분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질이 좋지 못한 한지는 화학약품을 이용해 한지를 만들었기 때문에 얼룩이 지고 천연잿물을 사용하지 않아 겹쳐지는 부분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옛날에는 전통 한지를 백지라고도 불렀다. 한지를 만들 때, 닥나무를 베고, 찌고, 삶고, 말리고, 벗기고, 삶고, 두들기고, 고르게 섞고, 뜨고 마무리 하는 데까지 백 번이라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지가 만들어진다고 해 백지라고 한 것이다. 우리 전통한지 제작의 시작은 추수가 끝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1월에서 2월까지 닥나무를 베는 작업부터 시작된다. 닥나무는 1년생 햇닥을 사용하는데, 햇닥은 섬유가 여리고 부드러워 종이뜨기에 좋기 때문이다. 

닥나무 베는 작업이 끝나면 닥나무에서 종이의 원료가 되는 껍질을 벗기기 위해 닥솥에 닥나무를 채우고 증기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밀폐한 후 불을 지펴 끓이는 닥무지라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훈증과 열기가 가득한 닥솥에서 푹 쪄낸 닥나무는 껍질을 벗겨낸다. 벗겨낸 닥나무 껍질은 흑피 또는 피닥 이라고 하는데, 피닥을 다시 찬물에 담가 불린 후 닥칼을 이용해 겉껍질을 벗겨 백피를 만든다. 이렇게 얻은 백피를 햇볕에 널어 잘 말리면 전통한지의 기본 원료가 된다. 

백닥 삶기 /문화재청

백피를 섬유로 만들기 위해서는 잿물에 삶아야 한다. 잿물은 짚, 메밀대, 콩대 등을 태운 재에 80도 정도의 따뜻한 물을 내려서 만든다. 이때 잿물은 변색을 일으키고 내구성을 떨어뜨리는 껍질 속의 불순물을 제거해 준다. 잿물에 네다섯 시간을 삶으면 백피보다 순수한 상태의 원료가 된다. 그 다음 잿물을 씻어내고 물속에서 햇볕을 쪼이는 과정을 거쳐 껍질에 있는 티(이물질)를 골라내는 작업을 한다. 티가 적을수록 종이의 품질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백피가 곤죽이 될 때까지 두드려 짧은 섬유질로 만드는 고해 작업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이 끝나면 비로소 종이를 뜰 수 있는 원료가 완성된다. 그 다음 고해 과정을 마친 닥 원료를 물에 넣고 힘차게 저어 섬유가 골고루 퍼지게 한 후, 황촉규 뿌리를 치대어 얻어낸 끈끈한 점액 닥풀을 첨가한다. 닥풀은 물이 흐르는 속도를 조절해 종이두께에 영향을 준다.

종이 뜨기(물질하기) /문화재청 

이렇게 초지통에 닥섬유와 닥풀을 푼 후, 종이 뜨는 작업이 시작된다. 종이 뜨는 작업은 뜨는 방법에 따라 나뉘는데, 공중에 매단 줄 하나에 의지해 발을 앞뒤 좌우로 흔들어 종이를 뜨는 것을 발틀이 하나밖에 없다고 해서 외발뜨기, 두 개의 틀 사이에 발을 넣고 종이를 뜬다고 해서 쌍발뜨기라고 부른다. 이렇게 뜬 종이가 쌓이게 되면 지승판 위에 바탕지를 깔고, 그 위에 나무판을 얹어 무거운 돌을 올려놓거나 압착용 지렛대로 눌러 하룻밤 물기를 뺀 후 건조에 들어간다.

과거에는 흙벽이나 나무판에 붙이고 햇볕에 말리는 방법뿐이었지만 요즘은 스테인리스 판을 가열해 종이를 건조시키기도 한다. 건조된 종이는 두드리는 도침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도침은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종이 표면 가공기술로 한지의 표면을 다듬는 마무리 작업이다.

보통 종이를 수십 장씩 포개놓고 홍두깨나 디딜방아 모양으로 생긴 도침기로 여러 번 두들기는데, 도침 처리를 하면 종이의 치밀성과 표면의 평활성이 향상되어 품질이 좋은 한지가 만들어진다. 세계 최고 목판 인쇄본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 쓰인 종이 표면 가공기술이 바로 도침인데, 도침을 하면 종이 품위가 향상되며 성질 또한 변화시킬 수가 있다.


한지장 김삼식 
 

한지장 김삼식 선생 /문화재청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23호 김삼식 한지장은 9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당시 친척인 유영운 씨가 운영하던 닥공장에 들어가 한지와의 인연을 맺었다. 일제의 강제 노역에 시달리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나서 그는 마을 갈골로 시집 간 누이의 시아주버니였던 유영운 선생의 닥 공장에 나가게 됐다. 평생 몸무게가 50kg을 넘어본 적이 없던 김선생은 닥나무를 등짐 져 옮기고 껍질을 벗기고 찬물에 손을 담그는 종이 일을 했다. 공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한지 만드는 일을 거들었고, 이때 배운 기술이 평생 하는 일이 되었다. 1963년 지금도 살고 있는 농암면 내서리에 정착하면서 한지 제조장을 만들어 본격적인 한지 제조를 시작하게 된다. 

유영운 선생은 일제 강점기 종이 장인들이 일본으로 끌려갈 당시에도 도망다닌 끝에 고국에 남아 있을 수 있었고, 우리나라 정통의 종이 제조 기법을 지켜낼 수 있었다고 한다. 김 선생이 지금껏 일본의 쌍발뜨기 기술을 일체 사용하지 않는 것도 그 영향이 크다.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유 선생이 일본의 기술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히 김 선생에게도 전해지지 않고, 우리나라 고유의 외발뜨기 한지 생산 방식을 이어나가고 있다. 

우리 종이는 뜰 때 발 하나로 물질하는 외발뜨기로, 물을 전후좌우로 흘려보내(흘림뜨기) 섬유소가 우물 정(井)자 형으로 얽혀 조직이 매우 튼튼하다. 그런데 두 장을 한꺼번에 뜰 수 있도록 된 넓은 쌍발뜨기는 발에 테두리가 있어서 섬유소 섞인 물을 가두어 아래로만 흘려보내는 식이다. 외발뜨기처럼 발을 방향 바꿔가며 아홉 번씩 물에 담갔다 뺐다 하지도 않으니 종이를 빠르게 많이 뜰 수 있다.

그러나 김 선생은 “우리 종이라면 우리 땅에서 자란 닥나무라야 한다”라는 신념으로 우리나라의 자연에서 얻은 닥나무, 닥풀로 질 좋은 전통 한지만을 만들어 공급하고 있다. 

김삼식 한지장의 한지 /문경시청 

현재 문경에는 김삼식 한지장이 운영하는 곳이 유일한데, 최근 전통한지의 입지가 많이 줄어든 경향이 컸다. 그렇지만 그는 1999년부터 ‘전통, 양심, 진심, 이 3가지를 마음속 깊이 새겨야 제대로 된 전통한지가 만들어진다’는 뜻을 담은 이름의 ‘삼식지소(三植紙所)’라는 작업장을 마련하고 전통 한지의 홍보·전수에도 힘을 쏟고 있다. 아들 김춘호 전수조교도 아버지의 한지 제조와 전통한지 기술 전수를 돕고 있다.

김 선생의 능력은 해외에서도 인정받아 2008년 조선왕조 실록 밀랍본 복원용 한지로 선정되어 한지를 납품하였으며, 2010년에는 고려대장경 초조본 복원용 한지에도 선정되었다. 또한 2019년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도 문경 한지의 우수성을 인정하여 박물관 소장품을 보존처리하는데 문경 한지를 사용하기도 했다. 


한지장 신현세
 

한지로 복원된 카르툴라 /도서병리학연구소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46호인 신현세 한지장은 지난 1961년 한지 제작에 입문, 지금까지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지 제작에 전념해 왔다. 카르툴라(Chartula)’라는 명칭의 프란체스코 기도문은 이탈리아 국보급 유물로, 800여 년 전 성 프란체스코의 친필 기도문이 한지로 복원되었다. 복원에 사용된 종이는 의령한지. 신현세 장인이 만든 한지였다. 이 일을 계기로 ‘신현세전통한지’는 이탈리아 문화부 산하 도서병리학연구소(ICRCPAL)로부터 한지로는 최초로 ‘지류문화재 복원 인증서’를 받았다. 

카르툴라를 포함, 이탈리아 중요 유물 5점을 복원하는 데 사용된 ‘신현세전통한지’는 2017년 교황 요한 23세 지구본 복원에 사용되기도 했다. 제작연도가 1960년이라고 알려진 교황의 지구본은 지름 1.2m, 높이 1.8m, 둘레 4m의 거대한 크기이다. 이탈리아는 곡면에서도 깨끗하게 붙는 신현세전통한지와 주름이 잡히는 다른 종이를 지구본에 배접해 비교, 발표까지 하면서 한지의 우수성을 인정했다. 

한지장 신현세 선생 /문화재청 

전통 한지의 본고장인 의령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한지와 관련된 설화가 전해지는 곳이다.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영남읍지, 경상남도지리지에도 기록이 있을 만큼 한지생산지로 역사가 깊다. 그중에서도 “신현세전통한지”의 신현세 선생은 1961년부터 현재까지 전통한지 제조에 종사하면서 박물관, 도서관, 복원처리 그룹 등 전통역사와 관련된 기관에 꾸준히 납품을 하고 있어 제작 기능과 품질의 우수성을 가지고 있다.

산업 구조의 변화와 함께 한지의 생산도 기계화, 기업화되면서 전통 수공업에 의한 닥종이 생산은 그 명맥을 잇기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한지 제작 전통 방식을 60년째 고수해온 신 선생은 지금도 전통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의령의 ‘신현세전통한지’는 100% 국산닥, 천연잿물 및 황촉규, 촉새발 등 도구를 사용해 전통 방식의 수작업으로 생산한다. 제조방식 또한, 백닥을 흐르는 물 속에 넣어 일광 표백과 닥 방망이를 이용한 두드림 등 화학물질을 전혀 첨가하지 않은 식물성 분산제 사용으로 전통적인 외발뜨기 방식이다.

전수자가 없어 대가 끊길 위기도 있었지만, 다행히 2018년 3월부터 문화재보존학을 전공한 박재균(33)씨가 전수자로 선정되어 뒤를 잇고 있다. “신현세 장인의 한지가 최고”라는 지도교수의 말을 들었던 게 계기였다고 한다. 


한지장 안치용 
 

한지장 안치용 선생 /문화재청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17호 안치용 한지장은 최고의 종이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3대째 가업을 이어 한지를 만들고 있다. 충청북도 제천과 강원도 원주에서 한지 공장을 운영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 덕에 안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일찌감치 한지를 접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학교에 다녀온 뒤 심부름 삼아 조금씩 일을 도와주던 것이 시간이 지나 평생의 업으로 이어졌다. 그는 단순히 가업을 이어받는 것이 아닌 좋은 한지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했다고 한다. 

"한지의 품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주재료인 닥나무의 질이기 때문에 제천, 단양, 원주 등 닥나무 산지라면 가리지 않고 찾아다녔다.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연구하다 보니 다른 한지 제작자들과 교류가 생겼고, 폭넓은 시야와 안목을 얻을 수 있었다"며, 그 과정에서 중요무형문화재 한지장 1호인 유행영 선생을 만나 그의 제자가 되었다. 당시 익히고 배운 것들은 추후 한지 장인으로서의 길을 걷는 데 큰 자양분이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괴산이 지리적 기후적 특성상 예로부터 참닥나무가 잘 자라 한지를 만들기에는 최적의 지역이라고 판단했다. 이후 30여 년간 이 지역을 거점으로 한지제작업체와 한지연구회를 설립하는 등 끊임없이 한지 개발에 몰두했다. 물론 이 과정이 마냥 순탄한 건 아니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옥이 점차 사라졌고, 한지를 대체할 수 있는 값싼 수입종이가 들어오면서 한지의 쓰임이 줄어든 것이다. 안 선생은 돌파구를 찾았고, 현대에도 한지가 널리 쓰이기 위해서는 고급화와 상품화, 기능화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안치용 한지장의 '이충농' /충북도산림환경연구소

그는 연구를 거듭해 황토와 식물로 한지를 천연 염색하는 방법을 개발해 벽지와 장판, 공예용 한지와 포장용 한지를 만들었다. 표면에 물방울 모양 등의 입체 무늬를 입힌 한지는 큰 반향을 일으켰고, 그는 요즘 시대에 맞는 한지 연구를 위해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통한 제품을 개발해냈고 이와 관련된 특허도 12개나 출원했다. 신기술뿐만 아니라 전통 뿌리의 중요성을 느껴 한지에 관한 다양한 유물을 수집하기도 했다. 시기별 전통 한지의 질을 파악하고 제작법을 익히는 것이 목적이었다. 

안 선생은 고문서부터 생활용품까지 한지로 만든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전국을 돌며 한지를 모았다. 한지 관련 유물만 1,500여 점이 있고 각종 민속품까지 합치면 3000여 점에 달한다. 이를 활용해 지난 2012년 전시와 체험, 교육 모두가 가능한 괴산한지체험박물관을 개관했다. 2013년부터 괴산 한지체험박물관을 위탁운영하고 있으며 전통을 지키는 일과 한지의 우수성을 전세계에 알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완성된 한지 /문화재청

이번에 선정된 장인들은 모두 한지를 세계화시키는 것도 좋지만, 우리네 한지를 잊지 말고 사랑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안치용 한지장은 "질 좋은 전통한지를 만들기 위해 전국을 다니며 지역 곳곳의 한지에 대해 공부하고 자료를 모아 괴산한지체험박물관을 만들어 전시했다.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에게 한지의 종류와 제조과정을 알려주고 직접 한지를 뜨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지가 얼마나 우수하고 값진 것인지를 알려주기 위해서다"며, "현재 해외에서도 우리네 한지를 문화재 복원에 사용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전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떨어지지 않는 한지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살길 진정으로 바라며, 이를 위해 전통을 잊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현재 홍춘수(洪春洙, 남, 1942년생, 전라북도 임실군) 씨가 유일한 국가무형문화재 ‘한지장’의 보유자로 한지 제조 기술을 전승하고 있는데, 이번에 3명의 ‘한지장’ 보유자가 추가로 인정되면서 전승 현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앞으로도 우리의 다양한 무형문화유산이 세대를 거쳐 지속적으로 전승, 보호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전통을 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한지가 과거의 문화만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닌, 이전보다 더 발전할 수 있는 전통 문화로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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