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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예술이 되다, 조선 시대 나침반 ‘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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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예술이 되다, 조선 시대 나침반 ‘윤도’ 
  • 윤미지 기자
  • 승인 2021.07.29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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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의 삶의 방향이 깃든 윤도, 그 제작 과정은?

[핸드메이커 윤미지 기자] 흔히 나침반은 실용성을 위한 도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나침반은 자침을 이용해 방위를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도구다. 주로 방향 설정을 위해 사용하고 전문적인 용도는 선박, 비행기 항로 설정에, 일반적으로는 등산, 여행 시 유용하게 쓰이는 물건이다. 

이처럼 나침반은 특별한 목적에서 사용되는 물건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의외로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전통 나침반의 경우 고도의 장인정신과 예술성이 집약된 하나의 작품의 성격을 띠기도 한다. 조선 시대 문헌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이 전통 나침반을 바로 ‘윤도’라고 부른다.
 

윤도. 국립민속박물관
윤도 /국립민속박물관

윤도는 단순히 방향만을 가리키는 물건은 아니다. 남북을 가리키는 자침의 원리를 이용한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나침반과 같지만 윤도는 천문학, 풍수도참 사상과도 연관을 가진다. 과학과 철학 그리고 예술을 집약적으로 압축한 신비한 물건 전통 나침반 윤도는 현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과거 지상을 바라보는 도구였던 ‘윤도’

윤도는 단순한 나침반의 기능을 넘어 천문학, 음양오행 등 과거 조상들의 여러 가지 사상과 과학을 담고 있는 도구이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동양 사상이 담긴 이 윤도를 통해서 풍수를 알아보고 점을 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농사에 있어서 이 윤도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윤도를 이용해 이랑의 방향을 잡기도 했는데 이는 우리나라 인삼 재배에 있어서 지금까지도 전승되는 방법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윤도는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패철, 지남철, 지남판이라 부르기도 했다. 

윤도는 주로 원의 형태로 제작된다. 대추나무, 박달나무 등의 재료를 사용해서 만들어지고 현재는 전북 고창의 낙산마을에서 제작되는 대추나무를 재료로 한 윤도가 그 맥을 잇고 있다. 대추나무는 단단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윤도를 제작하기에 적합하다고 한다. 이외에도 박달나무로 만든 윤도는 무주 윤도가 있다. 
 

대추나무로 만든 윤도(輪圖), 국립민속박물관
대추나무로 만든 윤도(輪圖) /국립민속박물관

윤도를 처음 접하면 확실히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나침반의 모습과 닮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그란 원판의 중심에서 자침이 어지럽게 움직이다가 이내 방향을 가리키는 모습은 꼭 우리가 알고 있는 나침반이다. 독특한 점이라고 한다면 중심부를 기준으로 복잡한 한자가 새겨져 있는 모습이다. 윤도는 24방위를 원으로 그려 넣었으며 각각 음양과 오행, 팔괘 등 주역의 의미를 새겨 넣었다. 

한반도에서 윤도는 삼국시대부터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나 기록을 통해 구체적으로 등장한 것은 조선 시대다.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그 이전부터 주역이나 천문학에 관한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에 윤도의 사용은 조선 시대 이전부터라고 추측하고 있다. 조선 시대 여러 문헌 기록을 통해 윤도의 관한 기록이 남아 있으며 이는 천문과 지리를 모두 아우르는 도구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중국에서는 윤도의 기능을 하는 나경이 존재했다. 한나라부터 이와 비슷한 원리를 적용한 나침반이 사용되었다고 전해지며 윤도와는 외형적으로 차이가 존재해 서로 독자적인 영역으로 발전됐다고 보인다.

이 윤도는 우리 조상들의 생활 전반에 있어 깊숙한 연관을 가진다. 윤도 자체를 현대의 나침반의 개념으로 여행 시 방향을 잡기 위해서 사용하기도 했으나 인간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영역인 거주 공간을 선택할 때도 이를 사용했다. 또한 집터의 문을 내는 방향을 설정할 때 이 윤도가 사용되었으며 이외에도 묏자리를 볼 때 풍수지리적 판단을 위해 윤도를 사용했다. 
 

나침반. 픽사베이
나침반. 윤도의 모습과 유사하다 /픽사베이

윤도는 조선 시대 매우 성행하여 선비들은 이를 장식의 일종으로 소장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 시대의 사상이 결합 되어 있으면서도 생활 과학적인 면에서 매우 실용성이 높았기에 윤도는 여러모로 소장 가치를 지닌 물건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이 윤도 자체의 심도 있는 해석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고 전해진다. 

윤도의 구성은 목적에 따라서 동심원의 층수가 달라진다. 24방위를 기본으로 하며 5층, 7층, 9층, 15층 윤도로 나뉜다고 한다. 동심원 층에 따라서 집터 등을 찾을 때 필요한 8요수는 기본으로 포함되는 경우가 많고 이외에 앞 방향을 찾는 기능, 물의 방향을 찾는 기능 등이 포함된다. 가장 높은 층수는 36층까지 제작 가능하며 모든 용도로 사용할 수 있으나 층수가 많아질수록 복잡하고 심도 있는 의미를 담고 있어 해석하는 것 또한 어렵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높은 층의 윤도는 한운장이 제작한 24층 윤도라고 알려져 있다. 
 

9층의 동심원으로 나눠진 윤도(輪圖), 국립민속박물관
9층의 동심원으로 나눠진 윤도(輪圖) /국립민속박물관
30층의 동심원으로 나눠진 윤도(輪圖). 국립민속박물관
30층의 동심원으로 나눠진 윤도(輪圖) /국립민속박물관

윤도는 동그란 원판의 모형을 기본으로 하지만 그 종류가 다양하다. 기본 모양을 ‘평철’이라 불렀으며 이는 가장 일반적인 윤도다. 당시 선비들이 휴대용 윤도를 다양한 방식으로 몸에 지니고 다녔는데 동그랗게 생겨서 부채 끝에 매달아 사용했던 것은 ‘선추’라 부른다. 이는 실용적인 물건이기도 하였으나 장식적 요소로 분류되기도 했다. 
 

선추(扇墜), 국립민속박물관 2
선추(扇墜) /국립민속박물관 
선추(扇墜), 국립민속박물관
선추(扇墜). 국립민속박물관

또한 한 면에는 윤도, 한 면에는 거울을 합쳐 놓은 윤도도 존재했는데 이는 ‘면경철’이라고 불렀고 역시 선비가 이를 휴대하고 다녔다. 윤도를 선비의 장식이라 부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패철(佩鐵), 면경철(面鏡鐵). 한쪽 면은 윤도로 이뤄져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패철(佩鐵), 면경철(面鏡鐵). 한쪽 면은 윤도로 이뤄져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패철(佩鐵), 면경철(面鏡鐵). 한쪽 면이 거울로 되어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패철(佩鐵), 면경철(面鏡鐵). 한쪽 면이 거울로 되어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이외에도 거북이 등으로 많은 윤도를 ‘거북 패철’이라 했고 현재 윤도의 명맥을 잇는 고창에서 만들어진 윤도를 과거에 ‘흥덕 패철’이라 부르기도 했다. 지금의 고창이 조선 시대에 흥덕현에 속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이 흥덕 패철은 워낙 정확하게 방향을 가리키며 잘 만든 윤도로 통해 이를 최고로 쳤다고 한다. 

윤도를 제작하는 과정을 보면 이를 종합 예술이라고 일컫는 이유를 알 수 있으나 특히 선추는 그중에서도 예술적 특성이 돋보이는 도구이다. 선추에는 윤도를 제작할 때 쓰이는 기술 외에도 외형을 조각하여 꾸미는 과정이 필요하며 이는 높은 예술성이 담겨 있다. 주로 단층 윤도로 제작하며 24방위를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다. 
 

선추(扇墜). 24방위가 새겨져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선추(扇墜). 24방위가 새겨져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선추(扇錘). 광복 이후 제작된 선추. 국립민속박물관
선추(扇錘). 광복 이후 제작된 선추. 장식적 요소가 돋보인다 /국립민속박물관

윤도에 새겨진 섬세한 한자의 모습과 그 외형을 따져볼 때 이를 제작하는 일 또한 고도의 장인정신을 요구하는 과정임을 예측하게 된다. 윤도를 제작하는 장인을 일컬어 윤도장이라고 부르는데 현대에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해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천문학을 담당하는 관상감에서 윤도를 제작했다고 한다. 

현대 사회에서 실제 윤도를 사용하는 일이 많지는 않다. 과거에는 풍수가, 지관이나 뱃사람들이 주로 이 윤도를 사용했으며 조선 시대 사대부들의 장식품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스마트폰의 발달로 인해 현대에는 이를 직접 사용할 일이 매우 한정적이라고 볼 수 있으며 주로 선물용이나 기념적인 의미로 윤도를 사용하는 일이 많다. 

실제 지난 2020년 4월 경남 거제에서 열린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알헤시라스호’ 명명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알헤시라스호 선장에게 이 윤도를 선물하기도 했다. 이 윤도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10호 김종대 윤도장이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도 제작, 장인의 기술과 예술성이 집약 되다 

많은 지역 문화재들이 장인의 손끝에서 화려한 기술로 인해 제작되곤 한다. 윤도 역시 만드는데 수많은 과정이 필요한 것은 물론, 그 제작기를 보고 있으면 고도의 장인정신에 감탄하게 된다. 현재 윤도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전북 고창 낙산마을의 김종대 윤도장이 명맥을 잇고 있다. 전 씨, 한 씨, 서 씨로부터 차례대로 윤도 제작의 맥이 이어지고 있으며 한운장이 기술을 전수받아 지금의 윤도장 보유자의 조부 김권삼 선생이 이 기술을 습득했다고 알려진다. 지금은 윤도장 보유자 김종대 선생의 아들 김희수 선생이 전수교육조교로 지내며 이를 이수하고 있다. 

윤도 제작은 시작부터 까다롭다. 질 좋은 대추나무를 사용해야 하는데 무려 200년 이상 된 고목이 윤도 재료로 쓰인다. 또 이 대추나무를 그냥 쓰는 것이 아닌 그늘에서 말린 뒤 사용해야 하는데 생목을 쓰면 말리는 과정만 해도 2년 이상이 걸린다. 이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대추나무를 삶아 1년의 건조 기간을 통해 기본 재료를 확보한다. 
 

대추나무,crowdpic
대추나무. 단단한 특성을 가지고 있어 윤도를 제작하기에 적합하다. /crowdpic

윤도는 목적에 따라서 제작 층수가 달라진다. 주로 많이 제작하여 쓰는 층수는 일반적으로 정해져 있는 편이긴 하지만 과거엔 의뢰자의 주문에 따라서 칸을 추가하고 줄이기도 했다. 풍수가들이 사용하는 윤도와 천문학에 쓰이는 윤도의 구성이 다르기도 했으며 사용하는 분야에 따라서 윤도의 구성 요소가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윤도의 사용 목적을 고려해 층수를 정하는데 이를 고려해서 동심원을 그려준다. 김종대 윤도장은 ‘관상감 윤도 판본’에 의해서 이를 연구하고 윤도를 제작한다고 한다. 이는 대대로 물려받은 귀한 물건으로 1848년 관상감에서 제작한 윤도 판본이다. 

윤도를 보면 복잡하게 새겨진 한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는 손으로 하나하나 각자하여 제작한다는 점에서 들이는 시간이 얼마나 많을지 예상하게 된다. 대부분 지역 문화재들이 많은 노력과 공을 들이는 작업에 의해 제작되지만, 윤도를 만드는 것이 특히 까다롭게 여겨지는 이유는 각자 하나의 획을 잘못 새기면 전부 밀고 다시 새기는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한자의 획은 물론 하나하나의 위치를 신중하게 집중하여 작업해야 한다. 
 

복잡한 한자가 새겨져 있다. 국립광주박물관
복잡한 윤도의 구성을 확인할 수 있다 /국립광주박물관

이외에도 윤도판에 먹을 칠하고 옥돌을 갈아서 발라 닦아내는 과정을 거쳐 분금을 더 선명하게 만들어준다. 자침을 제작하는 과정 역시 손이 많이 간다. 철을 두드려 납작하게 펴주고 깎아 숯불로 이를 단련한다. 자침에 자성을 입히는 것은 300년 동안 가보로 전해 내려오는 천연 자석의 몫이다. 만주에서 구해 온 천연 자석 위에 자침을 올려두면 강한 자성을 띠게 된다. 

가운데 들어가는 유리판을 고정하는 것에는 대나무가 쓰인다. 제작 과정의 디테일을 하나하나 짚어보면 손이 적당히 가는 부분이 없다. 재료의 준비부터 신중하고 이를 제작에 적용하는 것 또한 높은 수준의 공이 요구된다. 

나침반은 길을 잃었을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도구다. 실제 스마트기기의 발전으로 인해 우리는 더이상 나침반을 필수 물건으로 소지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여행객들도 나침반보다는 스마트폰을 통해서 얻는 정보에 의존하며 애플리케이션의 활용을 통해 나침반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하지만 윤도는 과거 나침반 이상의 역할을 했다. 윤도는 과거 생활과학의 필수품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도구이며 현대에는 이 윤도의 수요가 크게 줄어들어 이제는 지역 문화재로서의 특성을 가지지만 조상의 사상과 문화가 깃든 도구의 맥을 잇기 위한 국가의 노력과 대중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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