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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마리오, 역대 게임 경매 기록 갈아치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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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마리오, 역대 게임 경매 기록 갈아치우다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07.26 1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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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의 창시자 미야모토 시게루
'슈퍼마리오64' 카트리지 /헤리티지 옥션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일본 게임엄체 닌텐도의 비디오 게임 '슈퍼마리오 64'가 미개봉 카트리지가 미국 경매업체 헤리티지 옥션에서 156만달러(약 17억 8000만원)에 판매됐다. 이 기록은 포장을 뜯지 않은 1996년 제조된 이 게임 카트리지가 역대 최고가 게임 카트리지 경매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

이전까지의 기록은 1996년 판매자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카트리지(게임팩)'으로, 개봉도 하지 않고 책상 서랍에 보관해 둔 것으로 알려졌다. 1986년에 잠시 생산된 플라스틱 비닐 수축 밀봉 제품이라 더 높은 가격이 책정된 것으로 보인다. 66만달러(약 7억4,500만원)에 낙찰된 이 경품은 역대 비디오 경매 역사상 가장 높은 가격이었는데, 이번 '슈퍼마리오64'가 그 기록을 깬 것이다.

이번에 팔린 슈퍼마리오64 카트리지는 비디오게임 수집 전문업체인 와타(WATA)가 9.8A++ 등급을 매긴 카트리지로, 거의 완벽에 가까운 상태로 포장이 훼손되지 않아 '거의 새 것'임을 뜻한다. 헤리티지 옥션 측은 “1987년부터 닌텐도는 또 다른 추가 코드가 적힌 카트리지를 생산하기 시작해 이번에 낙찰된 물건과 동일한 조건에서 제작된 다른 카트리지를 찾는 것은 바다에서 물방울 하나를 찾는 것과 같은 수준의 일”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마리오의 창시자, 미야모토 시게루
 

슈퍼 마리오의 대표 캐릭터들 /pixabay

슈퍼 마리오는 그야말로 추억의 게임이며, 어렸을 때 할머니 댁이나 친척집에 놀러갔을 때 한번쯤은 해 봤을 게임이다. 닌텐도가 마리오를 기반으로 만든 플랫폼 게임 시리즈로 대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라 불린다. 마리오 프랜차이즈의 중심으로, 주요 닌텐도 비디오 게임에는 적어도 하나의 슈퍼 마리오 게임이 출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잘 아는 버섯 왕국에 마리오가 플레이어 캐릭터로 등장한다. 동생인 루이지가 같이 나오며 그 외에 다른 캐릭터들도 게임에 등장한다. 게임으로써는 간단한 구성이며 적을 뛰어넘거나 물리치며 길을 달리는 형식이다. 납치된 피치 공주를 구출하고 쿠파 대왕을 물리치는 단순한 내용으로, 1986년 닌텐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용으로 출시된 첫 게임인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에서 이 게임 컨셉과 요소를 구축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슈퍼 마리오 /unsplash
동키콩 게임을 하는 아이의 모습 /unsplash

원래 이 게임의 주인공 '마리오'는 슈퍼 마리오보다 먼저 탄생했다. 마리오는 미야모토 시게루가 만든 게임 '동키콩'에 처음 등장한다. 당시 미국 진출 기회를 노리던 닌텐도는 미국인에게 친숙한 뽀빠이 캐릭터 판권을 사려 했으나 실패했고, 미야모토 시게루는 직접 캐릭터를 디자인하기로 결심한다.

사실 그는 어린 시절 아톰을 그린 데츠카 오사무를 존경해 최고의 만화가가 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뽀빠이 대신 ‘마리오’를, 올리브 대신 ‘레디’를, 브루투스 대신 ‘동키콩’의 그림을 그리고, ‘동키콩이 나무통을 던진다‘, ’마리오가 점프를 해서 그 나무통을 피한다‘는 새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여기서 성난 고릴라가 던지는 장애물을 피해 악전고투하는 무명의 주인공이 바로 마리오인 것이다.

미야모토 시게루 /flickr

닌텐도에 고용된 미야모토는 닌텐도의 1980년 작품 '레이더 스코프'를 대체할 새로운 아케이드 게임을 만들어야 하는 임무를 맡았다. 처음에는 뽀빠이를 바탕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캐릭터에 대한 판권을 구입하지 못해 새 아이디어를 만들어야 했고, 선원 대신 미야모토는 다른 블루칼라의 캐릭터를 선택했다.

이 캐릭터는 콧수염과 마리오의 트레이드 마크인 멜빵, 모자를 쓴 캐릭터였다. 원래는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했기 때문에 '점프맨'이라 불렀다고 한다. 마리오가 모자를 쓴 이유는 캐릭터가 달리는 동안 날리는 머리카락을 그려야 하는데 그러면 너무 복잡할 것 같아 그림 그리는 쉽고 사실적으로도 보일 수 있는 모자를 씌웠다고. 

닌텐도가 미국에서 '동키콩'을 발매했을 때 경영진은 점프맨이 아닌 더 나은 이름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개명을 주문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마리오 캐릭터의 모델이 실존 인물이라는 것이다. 마리오란 이름은 다름아닌 닌텐도 미국 지사가 있던 빌딩의 이탈리아계 주인, 마리오 시갈(Mario Segale)에서 나온 것이다.

어느날 마리오가 임대료를 받기 위해 사무실로 들어왔을 때 직원들은 '동키콩'을 플레이를 하고 있었고, 사무실로 들어온 통통한 체형의 마리오를 본 직원들은 이거다 싶어 캐릭터에 마리오라는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다. 이탈리아인의 이미지를 참고한 게임의 캐릭터를 생각한 미야모토 시게루도 그 이름이 잘 어울린다고 동의했단다.

마리오와 루이지 /flickr

미야모토는 마리오를 독보적인 캐릭터로 만들기 위해 후속편 개발을 계속했고 마리오의 형제 루이지를 만들었다. 이들은 일본에 보급된 1983년 아케이드 게임 '마리오 브라더스'로 데뷔한다. 이후 닌텐도가 콘솔의 중심작인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를 출시하며 마리오의 인기는 말 그대로 전세계에 퍼진다. 성공 후 닌텐도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를 콘솔과 함께 서비스하기 시작했고 게임기의 판매와 함께 게임의 판매량도 늘었다. 닌텐도NES는 6천만대 이상이 팔리며 가장 많이 팔린 비디오 게임 중 하나가 되었다.

마리오의 직업이 배관공으로 설정된 것에 대한 미야모토의 설명은 이렇다. 건설 현장을 배경으로 한 게임 '동키콩'에 처음 등장할 때 마리오의 직업은 배경과 어울리는 목수였다고 한다. 그러다 슈퍼 마리오의 전신인 '마리오 브라더스'의 배경이 지하 세계로 정해지면서 배관공으로 재설정된 것이다. 지하 세계와 배관의 모티브가 등장하게 된 배경에 대해 미야모토는 회고한다.

“어릴 적 교토의 아파트에서 살았다. 근처의 한 건물 담장에 특이하게 생긴 작은 맨홀 뚜껑이 있었다. 나는 매일 그곳을 지나다녔기 때문에 그 맨홀 뚜껑을 자주 보았다. 어느날 그 맨홀을 보다가 문득 맨홀을 열고 들어가면 어디로 통할지 궁금해졌다.”라고 그는 회상한다. 그의 마리오에 대한 비전은 마리오가 모든 사람을 대표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마리오가 일종의 블루칼라 영웅이며, 그래서 목수나 배관공 같은 역할 중에서 정해진 것이라 전했다. 

아이폰7 공개행사에 깜짝 등장한 미야모토 시게루 /애플

미야모토는 어렸을 적 텔레비전도, 장난감도 없어 혼자 장난감을 만들면서 놀았다. 꼭두각시 인형이나, 페이지를 빠르게 넘기면 일종의 애니메이션이 되는 책 등이 그의 친구였다. 텔레비전이 없던 덕분에 그는 시골 마을을 뛰어다니며 여러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논에서 놀고, 언덕을 탐험하며 커다란 호수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는 '젤다의 전설'을 작업할 때 이 호수에 영감을 얻었다고 하며, 어렸을 때 했던 경험들을 게임 개발 과정에 도입할 수 있었다. 수영을 시작하고 열중한 경험으로 슈퍼마리오 64를 만들었고, 이 게임에서 그는 마리오와 함께 수중 수영 장면을 만들었다.

마리오가 '슈퍼 마리오'가 된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원래 마리오 브라더스에서 마리오와 루이지의 몸집이 작은 편이라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데,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작은 캐릭터지만 버섯을 먹으면 커지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이들의 큰 버전을 '슈퍼 마리오'와 '슈퍼 루이지'라 부르는 것이다. 왜 몸집을 키우는 데 버섯이냐고 하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의 동화를 생각했을 때 버섯은 항상 신비한 힘을 갖고 있는 것 같았기에 버섯이 게임에서 그런 상징으로 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미야모토는 어렸을 때부터 만화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다른 만화 작가들이 너무 많아 경쟁할 수 없을 것 같아 포기했으며, 대학에 산업디자인 전공으로 입학했지만 역시나 산업디자인 쪽에서도 자신이 경쟁할 수 없을 정도로 재능 있는 디자이너들이 많다고 느껴 이후 장난감 같은 것을 만드는 것으로 노선을 틀었다.

그는 꾸준히 좋아했던 만화부터 산업디자인까지 두 가지 모두 비디오 게임과 유사한 접근 방식을 느꼈고, 음악 등 좋아했던 것들이 계속 생각나 흥미로움을 느꼈다. 마치 3D 비디오 게임 공간에서 인형극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그는 비디오 게임 디자이너로서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사랑했던 모든 것들을 계속 접할 수 있었고, 그런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어 행운이라며 감사했다고 한다. 

마리오 게임 화면 /flickr

그가 만든 마리오 게임은 매우 특별했다. 사람들은 마치 카메라 앵글이 주인공을 따라가는 것 같은 이 비디오 게임을 신기해했다. 마리오라는 캐릭터, 그리고 따라가는 카메라 구도에 대해 그는 만화를 그렸던 경험과 산업디자인을 공부했던 경험 덕분이라고 말한다. 처음 게임을 2차원으로 만들 땐 그림을 그리는 것과 유사하지만 3D 모델링이 등장하는 게임을 만들 때는 이 주인공이 더이상 평면적인 그림이 아닌 누군가에게 보이며 존재하는 객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3차원의 게임을 보여주기 위해 카메라가 어디에 배치되고 물체 주위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그는 계속 고민해야 했다. 미야모토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닌, 게임 속 장면과 스토리의 흐름에 주목했다. 그는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게임에 주인공이 있지만, 카메라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마리오라는 주인공이 있다면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캐릭터가 있고, 함께 모험을 떠난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이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에서 구름 위를 날고 있는 거북이는 마리오를 따라다니며 카메라를 들고 있기에 완벽한 캐릭터라는 것을 안 순간 그는 엄청난 아이디어라며 흥분했고, 그것을 게임으로 구현할 수 있었다.

닌텐도의 휴대용 게임기인 게임보이의 슈퍼 마리오 월드 /unsplash

닌텐도의 첫 미국 가정용 비디오 게임 콘솔인 닌텐도NES는 1985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와 함께 출시되었고, 이 전설적인 타이틀은 전세계에 5천만대 이상이 팔렸다. 게임 매니아들은 열광했고, 1991년 슈퍼NES가 출시된다. 큰 규모를 가진 이 게임은 마리오의 공룡 친구인 요시의 첫 등장을 특징으로, 게임을 만드는 데만 3년 이상이 걸렸다고 한다. 1993년 말까지 마리오를 타이틀로 한 게임은 전세계에 1억 개 이상 판매되었고, 역대 최고의 비디오 게임이라 불리는 슈퍼마리오64가 출시되며 닌텐도의 성공을 이끌었다.

한번도 게임 캐릭터를 디자인해본 적이 없었던 한 그래픽 아티스트, 미야모토 시게루는 동키콩의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수석 엔지니어인 요코이 군페이와 게임을 디자인했다. 미야모토는 그래픽을 캐릭터화의 수단으로 삼아 이 업계 전체를 변화시켰고 동키콩은 스토리가 있는 게임의 첫번째 예시가 되었다. 

동키콩은 1980년대의 팩맨처럼 줄거리를 보여주기 위해 컷과 컷으로 나뉘는 형태를 취했다. 그가 창조한 캐릭터는 포스트 박스, TV만화 등 여러 곳에 등장했으며 그가 만든 마리오와 루이지는 게임 업계에서 일종의 혁명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닌텐도의 경영진을 포함한 누구도 이 게임이 엄청나게 커질지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슈퍼 마리오 게임 화면 /pixabay

그가 발명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가장 큰 특징은 마리오와 루이지가 벽돌, 파이프, 바다와 바리케이드를 걷고 건너며 달리는 모습이다. 미야모토의 좌우명은 유저가 게임을 배우는 것은 쉬워야 하지만, 마스터하는 것은 어려워야 한다는 것이다. 레벨이 올라갈수록 성의 난도는 더 높아지며, 마리오와 루이지를 더 쉽게 이동하게 할 수 있는 워프존도 존재하지만 반대로 플레이어가 잘못된 경로를 택하면 다시 처음 단계로 돌아가는 형식도 존재한다. 귀퉁이에서 깜박거리는 시계는 사람들의 긴장을 유발하며, 적을 포함한 시간과의 경주는 게임의 큰 흥미 요소가 되었다. 

마리오 게임만큼 유명한 것을 말하라면 게임 바탕에 깔려 있는 사운드트랙일 것이다. 게임을 한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게임 시작과 함께 익숙한 멜로디를 흥얼거릴 것이다. 대학 시절 밴드에 가입해 기타를 쳐면서 열정적인 생활을 보냈던 미야모토 시게루는 비디오 게임도 시각적인 재미뿐만 아니라 듣는 재미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콘도 코지라는 전문 작곡가에게 배경음악을 맡겼다. 

작곡가 콘도 코지는 1984년 닌텐도에 입사한 뒤 슈퍼 마리오 시리즈와 젤다의 전설 시리즈의 음악을 담당하며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리게 된다. 특히 마리오 게임을 시작할 때 나오는 지상 테마곡은 그가 만든 곡 중 가장 유명한 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리오 형제가 점프를 할 때마다 나오는 소리와 경쾌한 배경음악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인기였다. 

급기야 닌텐도는 슈퍼 마리오의 배경음악을 음반으로 내게 된다. 뿐만 아니라 도쿄 음악단이 연주하고, 자메이카의 레게 가수 샤인 헤드가 랩으로 부를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2000년대 이후로는 자신이 직접 작곡하는 곡의 비중을 줄이고 후배들이 작곡한 음악이 게임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지를 검수하는 역할을 맡아 게임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개발자들의 열정으로 만들어져 오래오래 사랑받는 캐릭터의 힘

 

게임 화면을 실제로 구현된 모습 /flickr

미야모토 시게루는 상호작용을 하는 비디오 게임에서 중요한 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인가'라고 생각하는 것이라 말한다. 제작자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피드백을 얻는다. 유저가 플레이를 하는 도중 나오는 모든 반응은 제작자와의 상호작용을 이끌어 내며, 게임을 더 재미있게 만드는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그는 게임을 만드는 데 있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도 만들지 않았던 유니크한 게임을 만드는 것이라 말한다. 뽀빠이의 저작권을 얻지 못해 모든 것을 갈아엎고 새 캐릭터를 만들어야 했던 그는 마리오라는 캐릭터를 창조해 냈다. 단순히 캐릭터에 대한 창조뿐만이 아닌 게임 전반에 걸쳐 어떻게 하면 소비자가 게임을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지도 연구했다.

지금도 닌텐도가 슈퍼 마리오 시리즈를 최신작으로 계속 내놓을 수 있는 것도, 1996년 발매되어 단돈 60달러에 판매되었던 '슈퍼마리오64'가 17여억원에 낙찰되는 기염을 토할 수 있었던 것도 창작자들의 열정이 만들어낸 귀중한 산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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