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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의 발전과 예술에 온 힘을 쏟은 장인, 나전장 일사 김봉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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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의 발전과 예술에 온 힘을 쏟은 장인, 나전장 일사 김봉룡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07.26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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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螺鈿)으로 그린 자연, 김봉룡(金奉龍) /문화재청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은 8월 8일까지 국립무형유산원 어울마루 1층 무형문화재기념관 중앙 홀에서 2021년 작은 전시 ‘나전(螺鈿)으로 그린 자연, 김봉룡(金奉龍)’을 개최한다. 이 전시는 국립무형유산원이 국가무형문화재 작고(作故) 보유자를 기리고자 매년 개최하는 소규모 전시이다.

이번 전시는 봉황, 넝쿨문양이 빼곡히 베풀어진 화병, 원형 상(床)과 같은 나전 작품뿐 아니라, 작업상을 비롯하여 그가 남긴 나전 도구들, 가늘게 줄음질한 수많은 자개들, 줄음질한 자개를 투명종이에 올린 중간 단계의 모습, 천 장이 넘는 아름답고 섬세한 도안에서 엄선한 나전문양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작품뿐 아니라 길고 어려운 전체 제작과정, 섬세한 줄음질 과정과 다양한 도구들을 살펴볼 수 있다. 이외에도 故 김봉룡 선생의 생전의 작업 모습을 담은 사진, 가족들이 함께 출연한 다큐멘터리는 관람객에게 생생한 경험을 선사한다. 

故 일사 김봉룡 선생 /문화재청 

조선의 칠공예를 계승하며 근현대 칠공예를 이끈 나전장 김봉룡 선생의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칠공예를 우리나라의 경쟁력의 으뜸으로 손꼽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 정도로 김봉룡 선생은 한국 공예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일사 김봉룡 선생은 나전칠기의 고장 통영에서 태어나 나전칠기에 입문했으며, 우리나라 근현대 나전칠기공예의 거장으로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칠공예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10세 때 『통영갓』공방에 입사해 5년 동안 갓의 차양 부분인 양태 만드는 일을 했다. 1919년 통영군청 산하 상,하칠공방에 공원으로 입사하게 되어 나전칠기의 명인 박정수로부터 나전칠기 기초를 배우게 된다. 그는 박정수를 통해 나전 세계에 입문, 조선 전통 나전칠기의 기초를 익힌다. 

이후 통영칠기 주식회사에 입사, 여기서 나전칠기의 대가 전성규를 만나 본격적으로 나전칠기에 입문하게 된다. 그의 나전 작품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두 번째 스승인 전성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봉룡 선생은 이외에도 안중식, 지성채 등의 서화가와 문인들로부터 글과 그림을 배웠고 칠화 복원, 전통도안의 변화, 생활용품 중심의 공예를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등 점점 발전하고 있었다.  

(좌)나전공작무늬 서류함 도안, (우)나전공작무늬 서류함 완성품 /문화재청

도안은 작업을 위한 밑그림이다. 대개 도안을 할 때 사용되는 도구인 세필붓과 제도기 등을 이용해 무늬와 그림 도안을 그린다. 일사 김봉룡 선생은 실톱을 통한 줄음질 기법의 변화에 맞추어 나전 밑그림의 도안화에도 새로운 계기를 마련한다. 김봉룡 선생은 안중식, 지성채 등의 서화가, 문인들에게서 글과 그림을 배웠으며 이러한 배움이 밑거름이 되어 도안의 변화를 추구했다.

그의 나전 도안은 전통의 방식을 넘어서서 나전 문양을 작고 섬세하게 하면서 공간을 잘 활용해 한쪽에 치우치기도 하고, 또 다른 한쪽은 여백을 살리는 변화를 보여준다. 그를 대표하는 넝쿨무늬는 작품에 따라 때로는 간결하게 때로는 화려하게 표현되었다. 또한 산수무늬는 안중식 산수화의 영향을 반영한 것이고 봉황과 용은 김봉룡을 대표하는 소재로 이는 민화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처럼 김봉룡 선생의 나전 도안은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지평을 여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1920년, 일본 다까오까시의 조선나선사로 초빙되어 가는 전성규를 따라 1년간 일을 하였으며, 이후 1922년 귀국하여 서울 종로구 삼천동에 전성규가 공방을 차리며 함께 일하게 된다. 

무궁화초문서류함 /통영 옻칠미술관

20대의 김봉룡 선생은 이미 독자적인 장인이자 공예가로서의 입지를 굳혀가고 있었다. 1924년 일본 교토시 주최 세계박람회에 문고를 출품해 수상한 것을 계기로 1925년 프랑스 파리 세계장식미술품박람회에서 대화병을 출품해 은상을 수상했다. 1927년 도쿄에서 개최된 우량공예품전람회에서는 금패를 수상하는 등 오래 전부터 해외 활동을 한 유일한 나전칠기 장인이기도 했다.

이후 김봉룡 선생은 서울에서 고대미술 나전칠기공예소를 설립하고 제1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한 것을 비롯해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이르기까지 계속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국전 초대작가로 초빙되어 작품을 출품하였으며 서라벌 예술대학에서 나전칠기 공예를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러다 1967년,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 10호 나전칠기장이 되어 국가로부터 기예능을 인정받게 된다. 

나전 팔각병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일제강점기 양질의 옻칠을 생산하던 원주는 광복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며 옻액 생산이 미미해졌고, 뜻있는 인사들이 원주 칠의 부흥을 위해 1957년 1월 원주칠공예주식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이들은 칠기 제조, 판매를 위해 독일산 칠정제기까지 들여왔다. 칠을 자급자족하기 위해 원주시 반곡동과 관설동 소재 치악산에 옻나무를 심어 직접 관리, 생산하였고 124.4ha나 되는 넓은 면적에 옻나무를 심은지 10년이 지났을 무렵, 이미 칠을 채취해서 정제까지 하게 된 원주칠공예주식회사에서는 칠의 소비를 위해 공예품을 만들 장인이 필요하게 된다.

이때 횡성 출신의 칠장인의 소개로 김봉룡 선생을 공예 부장으로 초청하였고 천상원, 홍순태 등 당대의 거장들이 김봉룡 선생과 함께 원주칠공예주식회사에서 일했다. 그러나 1년 만에 공장에 불이 나면서 김봉룡 선생은 화재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게 된다. 이후 그는 원주칠공예소를 설립해 원주가 나전칠기의 고장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 여러 번의 화재와 자금난으로 1981년 4월에 문을 닫고 1988년 7월 치악칠공예주식회사로 양도될 때까지 공예소가 존재했다고 한다.

칠화운용문원형벽걸이 /원주역사박물관

김봉룡 선생은 칠기의 원형으로 꼽히는 중국 한나라의 낙랑칠기(칠화칠기)의 사진을 본 후 단절되었던 칠화칠기의 재현에 심혈을 기울였다. 칠화칠기는 옻칠에다가 여러 가지 색을 나타낼 수 있는 안료를 칠과 혼합해서 다양한 문양을 장식하여 완성하는 칠기이다. 통일신라 시대에 당나라에서 나전기술이 도입된 이래 고려 시대에 독창성을 띠면서 크게 발전을 본 나전칠기에 앞서 칠화칠기는 삼국 시대에 성행했다. 백제의 경우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칠화두침과 칠화금장족좌, 신라의 경우 금관총에서 출토된 칠화편과 경주98호분에서 출토된 기마인물 칠화판 등이 있다. 

1978년엔 그 결실로 신세계미술관에서 '나전칠화전'을 열어 처음으로 국내에 재현된 칠화칠기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1977년에는 국립대만역사박물관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각각 초대전을 개최했으며, 1984년 동아일보사 '도화전'과 1985년 롯데백화점 '나전칠기와 도자의 만남'전을 개최했다. 이 두 전시는 나전칠기의 영역을 넓히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 측면에서 의의를 갖는 전시였다. 

주름질 올리기(김봉룡 나전), 나전칠기 주름질 작업 중 9번째 단계 무늬 제작 단계로 밑그림 위에 투명지를 올려놓고 오린 자개를 해당 무늬에 맞추어 풀로 붙이는 작업이다. /통영시립박물관

김봉룡 선생은 통영에서 박정수, 전성규를 만나 나전칠기 기술을 배울 때까지는 순수 우리 기법인 기구와 도구로 줄음질, 끊음질을 배웠지만 1920년 일본을 다녀오면서 시계방에서 사용하는 금속판을 썰어내는 톱을 보고 이것을 자개를 오리는 데 활용하면서 간편화된 줄음질 기법 발전에 큰 영향을 준다.

즉 조선 시대 나전칠기 기법은 선이 거칠고 투박하며 문양도 사군자, 십장생, 당초문이 번부였고 거의 빈 공간을 찾아보기 힘들었던 때였다. 그러나 김봉룡 선생의 나전칠기 기법은 간결하면서도 빈 공간이 많고 당호문양의 잎새는 천하일품이라 평가받고 있다. 

그는 1994년 9월 2일 타계할 때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 나전칠기 공방에서 작업하다가 쓰러져 타계했다. 그의 후계자 이형만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나전칠기에 대한 이모저모
 

나전칠기 애기장 /통영시

나전칠기란 목기의 바탕을 소재로 나전을 가공, 부착해 칠을 한 공예품을 말한다. 나전은 우리말의 자개라는 뜻이고, 엄밀히 말해 '나'는 조개 껍질을 말하며 청패, 야광패, 진주패 등이 있다. '전'은 장식한다는 뜻으로 공구를 사용해 가공한 후 상감을 한다는 뜻이다.

김봉룡 선생의 작품들 /문화재청 

우리나라 칠기에 대한 역사는 삼한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나전칠기는 통일신라시대 이래 당의 나전 기술의 이입에 의해 크게 발전을 하게 된다. 물론 중국에서는 주대부터 나전칠기가 있었지만 고려시대에는 중국의 나전칠기보다 더 전성기였고 작품 역시 우수하고 아름다웠다.

서긍의 '고려도경'에는 고려의 나전칠기에 대해 '그 기법이 매우 세밀하여 귀하게 여길 만하고 나전이 장식된 말안장도 매우 정교하다'고 씌여 있다. 당시 국가 공영 공에품 제작소였던 중상서에는 화업, 소목장, 나전장 등의 나전칠기 제작과 관련된 장인들에 의해 양산된 사실이 고려사 식화지에 기록되어 있다.

일사 김봉룡 선생은 원주 정착 이후 오직 원주옻칠, 나전칠기의 원주 정착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다고 한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지평을 여는 다양한 업적을 일궈냈고, 제자 이형만을 비롯해 다수의 공예가들이 지금도 나전칠기의 발전을 위해 노력 중이다. 

소라(야광패) /우신자개공예

나전칠기 작업에 쓰이는 자개는 다양하다. 화공처리가 되지 않은 원패는 후패와 박패로 가공되는데, 이것을 다시 얇게 가공한 것이 자개이다. 원패는 산지별, 색상별, 형태별로 그 용도가 다르다. 크게 소라류, 전복류, 진주패로 분류된다. 

소라류에는 야광패가 있는데 진주광이 강하게 반사되면서 짙은 분홍이나 푸른색이 나타난다. 전복류는 색패, 청패, 호주패, 멕시코패, 신발패 등 종류가 다양하다. 색패는 전통 공예인 나전칠기에 처음으로 활용된 가공패이며 푸르고 붉은 색이 강하고 영롱해 활용 범위가 가장 많다. 청패는 무늬가 없는 단색으로 깊고 은은한 청색을 띠며, 필리핀 등지에서 생산된다. 

호주패는 호주에서 생산되는 전복류 중 가장 큰 조개이며 흰색의 바탕에 붉은 색이 어우러져 있고 넓은 면적을 이용하는 데 적합하다. 멕시코패는 멕시코 연안에서 생산되는 전복류로 청록색의 진한 색상이 어우러지면서 공작의 푸른색과 흡사한 느낌을 준다. 신발패는 필리핀 등 동남아에서 주로 생산되며 생김새가 신발이나 당나귀 귀와 비슷해 신발패 또는 당나귀 귀패로 불리며 은은한 청색을 띤다. 

진주패 /우신자개공예

마지막으로 진주패는 자개 중에서도 가장 두꺼워서 문양의 입체적 효과를 나타내기에 적절하고 부조의 표현이 가능하며 백색, 황색 등을 띤다. 


원주에 가면 느낄 수 있는 그의 위대함 
 

김봉룡 선생의 주칠 애기장 전시 모습 /원주시

원주시 역사박물관은 5월, 옛 원주칠공예주식회사의 설립자인 고 박만희 대표의 딸 박정수 씨가 일사 김봉룡 선생의 주칠 애기장 2점과 작품집 1점을 기증했다고 밝혔다. 故 박만희 대표는 1953년 강원석유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대표이사직을 지냈으며, 1957년에는 원주칠공예주식회사를 설립해 세계에서 가장 품질이 우수한 원주 옻을 채취하고 정제해 수출하는 등 원주 옻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이번에 박정수 씨가 기증한 ‘주칠 애기장’은 1976년 박만희 대표가 딸 결혼 혼수품으로 일사 김봉룡 선생에게 의뢰한 것으로 김봉룡 선생의 작품 활동이 왕성한 시기에 제작된 명작이다. 높이 110㎝,폭 68㎝로 두 개 장이 세트를 이루는 형태로 바탕은 주칠(붉은색 옻칠)로 칠하고 3단 수납장 문에는 각각 한 쌍의 용과 학,사슴을 나전으로 장식했다. 기증된 작품집은 김봉룡 선생의 작품 중 명작만을 엄선해 1976년 동아일보사에서 출판한 책으로 박정수 씨가 고종사촌 방재승 씨를 통해 기증했다.

원주역사박물관은 지난 2012년 일사 김봉룡 선생의 유족으로부터 다양한 칠공예 재료와 도구를 비롯해 1925년 파리에서 개최된 세계 장식공예품 박람회 상장 등 김봉룡 선생의 유품 3,300여 점을 기증받은 바 있다. 원주역사박물관은 주칠 애기장과 김봉룡 작품집을 더 많은 시민이 접할 수 있도록 현재 일사 김봉룡실에 전시 중이니,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 속 모든 것을 초월한 신선의 모습으로 나전칠기를 만들어낸 장인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한번쯤 이 곳에 들러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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