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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안녕과 염원을 담은 문화, 솟대와 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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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안녕과 염원을 담은 문화, 솟대와 장승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06.25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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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된 솟대 /산청군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향토목각으로는 솟대와 장승이 있다. 둘 다 민간신앙과 관련이 있으며, 향토조각 명인 목영봉 선생은 "솟대와 장승은 한민족의 고대 문화이다. 높게 만든 형상이나 탑 등 건축물은 조형이 달라도 신을 향한 의미는 같다고 볼 수 있다"며 우리나라의 솟대에 대해 설명했다. 예로부터 솟대와 장승은 서낭당과 같이 마을을 지키는 보편적인 신으로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믿음 그 자체였다. 

최근 경남 산청군 삼장면은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전통 솟대를 세웠는데, 신촌마을과 소공원 등 3곳에 40여개가 설치되어 주변 환경과 어우러진다는 주민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최무선 신촌마을 이장은 “솟대와 꽃길조성으로 마을 주민들이 매일 마을 어귀를 기분 좋게 지나고 있다”며 “공동묘지가 있어 불편해 하는 주민들도 있었는데 솟대의 좋은 기운으로 앞으로 삼장면 주민들에게도 좋은 일만 가득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소도에서 비롯된 솟대 
 

솟대 /crowdpic

솟대는 좋은 일이 일어나길 바랄 때, 악귀나 질병을 쫓을 때 마을 입구에 수호신의 상징처럼 세우는 나무 장대를 뜻한다. 이것은 삼한 시대의 소도와도 관련이 있는데, '삼국지' 위서 동이전 등의 문헌에 따르면 삼한의 여러 나라에서는 천군이라는 제사장을 두고 천신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각 나라마다 소도라 불리는 별읍이 있었는데, 이곳은 제사를 지냈던 장소였다. 소도에는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아 성역임을 나타냈으며, '소도'라는 이름은 마을 입구에 세우는 나무 장대인 '솟대'에서 유래된 말로 보고 있다.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은 큰 나무가 솟대이고, 이 솟대를 중심으로 제사를 지냈을 거라 추정한다. 요즘의 솟대는 주로 긴 장대 끝에 나무로 만든 새 조각이 있다. 지방에 따라 '소줏대', ‘솔대’, ‘별신대’ 등으로 불리며 ‘진또베기’는 강원도 지방에서 솟대를 부르는 방언이다.

솟대는 세우는 목적에 따라 세 가지의 종류가 있다. 마을의 액막이와 풍농, 풍어 등을 기원하며 세우는 일반적인 솟대, 풍수지리로 인해 배 모양의 모양을 한 지형인 행주형 마을에 조화와 균형을 위해 세우는 비보(裨補)의 의미로 세우는 솟대, 과거 시험 합격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솟대이다. 마지막 경우를 빼고는 두 경우 다 마을의 신앙과 연결되어 있으며 솟대를 세울 때는 대개 마을 어귀에 세워진다. 

솟대는 혼자 서 있기도 하고 장승과 같이 세워지기도 한다. 새 모양은 대개 Y자형 나뭇가지로 만들거나 기역자형 나뭇가지를 머리와 목으로 생각해 Y자형 나뭇가지나 나무판에 연결해 만든다. 아니면 실제로 새 모양을 만들어 세우기도 한다. 보통 솟대에 올라와 있는 새들은 1-3마리 정도이며 높이는 마을에 따라 다르다. 

여러 길이의 솟대 /crowdpic

기둥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다. 곧게 뻗은 소나무를 다듬어서 만들며 마을에 따라 돌기둥이나 쇠파이프, 콘크리트로 만드는 곳도 있다. 솟대를 만들 장대는 벌목 때 일정한 의식을 거친다. 솟대로 쓸 장대는 가능하면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았고, 말과 소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 깊은 산 속에서 고요하게 자란 나무로 만들어야 하며 나무 자체도 깨끗하고 반듯하게 자란 것을 선택했다.

솟대의 새는 주로 오리라 부르지만 지역에 따라 기러기, 갈매기, 따오기, 왜가리, 까치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목영봉 선생은 오리만큼 활동 영역에서 자유로운 생명체가 없으며, 땅과 하늘을 날고 낮과 밤 모두 활동하며 물 속과 물 위를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게 오리라고 한다. 새의 크기는 마을마다 또 다르며 똑같은 마을에 지어도 각각 크기가 달라지기도 한다. 제작 시기 또한 다르다. 제사를 지낼 즈음 제작하는 곳도 있고, 솟대가 부러졌을 때 다시 만들거나 윤년이 들 때마다 만드는 곳도 있다. 물론 대와 새가 모두 쇠로 되어 있어 오랫동안 솟대 제작을 잊고 사는 곳도 존재한다. 

새 모양의 솟대 /crowdpic

솟대는 장대 끝에 새 모양을 깎아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전령사 역할을 하며 화재나 가뭄, 질병 등 재앙을 막아준다는 수호신으로 사람들이 모셨다. 그러다 풍수지리, 과거급제에 의한 입신양명의 풍조가 퍼지면서 행주형 마을에 돛대로 세우는 대, 과거 급제를 기념하기 위한 대로 나뉘어 발전했을 가능성이 크다. 오리는 물새가 갖는 다양한 종교적 상징성으로 농사에 필요한 물을 가져다 주고, 화재로부터 지켜주며 홍수도 막아주는 등 마을의 다양한 염원에 부응하는 수호신으로 존재했다.

예로부터 아시아의 북방 민족들은 기러기, 오리, 백조 등 물새들이 가을에 남쪽으로 떠났다가 봄에 다시 돌아오는 걸 매우 신성시했다. 시베리아 오브강 동쪽의 네넷족은 기러기가 남쪽에서 돌아오는 날을 새해의 시작으로 여기며, 이들은 기러기가 가을에 은하수를 따라 천상계로 날아갔다가 봄에 다시 지상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한다. 서시베리아 카잔 타타르족도 봄에 남쪽으로 돌아오는 기러기 떼를 하늘의 축복으로 생각했다. 이렇듯 예로부터 사람들에게 솟대 위의 새는 삶과 죽음을 연결한 매개체였다. 

구체적인 새의 모양을 한 솟대 /crowdpic

오리는 농경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물'을 의미했으며, 가뭄이 들지 않고 때에 맞게 비를 내려달라는 기원의 의미다. 오리가 제일 흔하게 쓰였던 건 오리 자체에 담고 있는 의미가 많았기 때문이다. 오리는 풍요로움과 다산을 상징했고, 물새로 하늘과 땅, 물이라는 세 가지의 세상을 넘나드는 동물로서 하늘과 땅만을 활동 영역으로 삼는 다른 새보다 종교적은 상징성이 컸다고 한다.

기러기는 일편단심 불변의 대상으로, 인간과 친숙한 이미지를 뜻하며 서열과 위계질서를 뜻했다. 까마귀는 영물로 여겨져, 하늘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고리의 역할로 봤다. 남해안 일부 지방과 제주도에서는 까마귀가 길조의 대상이라고 한다. 솟대의 새는 한 기둥에 세 마리를 얹었을 시 새의 머리 방향이 모두 북쪽을 향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 각각 동쪽, 남쪽, 북쪽을 향하고 있기도 하다. 새가 두 마리라면 서로 마주보거나, 아니면 같은 곳을 쳐다보고 있는 경우도 있다. 새의 모양이나 머리 방향, 머릿수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부여했다. 

2019년 열린 개천안솟대문화제 /충주시

개천안 솟대거리는 고대로부터 중원 문화의 꽃을 피웠던 장소로 본래 열두 개천안(開天安, 하늘이 열리는 편안한 곳)이라 불리며 지난 1850년대까지만 해도 솟대가 있었던 자리였다. 개천안솟대문화제는 매년 불교적 역사·문화와 민속신앙의 중심인 충주시 동량면 개천안마을 솟대거리에서 개최되었다.

이 문화제는 매년 민속신앙인 솟대를 계승하고 마을의 안녕과 풍요,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솟대기원제를 비롯해 소망솟대세우기, 소망풍선날리기 등 다채로운 행사로 진행되었다. 부대행사로는 서예가 100인이 함께하는 합작휘호와 시민노래자랑, 초청가수 공연, 경품추첨 등 학생들에게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솟대를 주제로 한 그리기와 글짓기대회도 개최했다. 

솟대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겨 마을 주민들이 지내는 공동 제의도 열린다. 제의는 기러기의 발을 교체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사람들이 사다리를 이용해 지난해 달아 놓았던 줄을 교체하고 새로 교체한 새끼 끝에 화선지를 묶는다. 상차림은 간소하게 시루떡 위에 통북어 두 마리를 올려놓고 막걸리를 따른다. 축문은 따로 없고, 소지는 화주가 참여한 각 가구의 소원을 축원해 올린다. 소지 올리는 것이 끝나면 상 위에 놓인 북어 두 마리의 머리를 자른 후 입가에 떡을 물려 하늘로 향하도록 하고 솟대에 묶는다. 묶을 땐 화선지를 꼬아 만든 줄을 이용해 동물들이 쪼아먹지 못하게 높이 달았다. 


마을의 수호신, 장승 
 

장승 /문화재청 

솟대와 장승은 서로 기능을 분담하는 역할을 했다. 솟대는 장승이 가진 제액초복(액을 제하고 복을 초대한다는 뜻)의 역할을 보강하는 의미도 있었다. 장승 또한 솟대처럼 마을의 수호신 기능을 했으며, 지역간의 경계표나 이정표 등의 구실 또한 했다. 나무 기둥이나 돌기둥 상부에 사람 또는 신장의 얼굴 형태를 그리거나 조각하고 아래에는 천하대장군, 지하대장군 등의 글씨를 새겼다. 보통 암수가 쌍이 되어 마주 보고 서 있는 형태다. 

장승에 대한 명확한 기록을 남긴 사람은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러 들어왔던 오페르트였다. 그는 1892년 라이프치히에서 펴낸 '조선기행'에서 다음과 같이 ‘우상’에 대해 적었다.“사람이 수백 명이나 살고 있는 꽤 큰 마을에서 나는 벌써 여러 번이나 키가 서로 틀리지만 나무로 만든 막대기가 여러 개 길가에 서 있는 것을 본 일이 있는데, 이것이 특별한 관심을 끌었다. (중략) 자세히 보니 이것은 바로 동리의 우상신으로 사원 또는 기도소를 대신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이것을 보호할 특별한 조치 없이 땅 속에 그냥 박아 놓았다. (중략) 키가 대강 두 자에서 네 자 가량의 통나무로 만든 이 물건의 장식은 다음과 같다. 나무껍질을 벗기고 그 위에다 가장 원시적인 기술로 기분 나쁘게 찡그린 얼굴을 새긴 것이다.”

오페르트 다음 들어온 선교사 게일도 장승에 대해 적었다. “당시 조선의 큰길이나 작은 길에서 마주치는 장승들, 그들의 얼굴에 드러난 이빨과 이글거리는 눈을 보면 무의식중에 이스라엘인들이 숭배하는 다곤, 몰록, 그모스, 발과 같은 신이나 우상들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미국인들은 우상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고 박물관이나 성경책을 통해 그런 것들을 보았지만 우상을 실제 자기 눈으로 볼 수 있으리라고는 거의 생각하지 못했다.”

장승은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경기 충청 지역에서는 ‘장승’, 호남 지역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 영남 지역에서는 ‘벅수’, 제주도에서는 ‘하르방’으로 불린다. 장승의 기원은 고대의 남근 숭배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솟대나 서낭당에서 유래했다는 고유민속 기원설, 퉁구스 기원설이나 환태평양 기원설 같은 비교민속 기원설 등이 있다. 확실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고유민속 기원설과 비교민속 기원설이 제일 유력하다. 

안동 하회마을의 장승 /문화재청

장승은 얼굴, 몸통, 땅에 묻히는 부분인 체근으로 되어 있다. 눈이 크고 코는 우뚝 솟았으며, 이빨이 드러나는 입으로 만들어졌으며 목의 구분 없이 바로 몸통으로 연결된다. 팔과 다리의 표현이 없으며 일직선으로 곧게 서 있다. 장승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굴의 표현인데, 무서워 보이면서도 어딘가 웃음이 나는 얼굴을 하고 있다. 

장승을 만드는 재료는 기본적으로 나무와 돌을 쓴다. 재료에 따라 목장승과 석장승, 복합장승으로 구분된다. 목장승은 소나무와 밤나무를 주로 썼고 석장승은 화강암을 많이 썼다. 매년 또는 2-3년마다 장승과 솟대를 새로 만들어 새운다. 장승은 하나만 서 있는 경우도 있고 암수 한 쌍을 세우기도 하며, 형태는 나무 장대에 새를 올려놓은 솟대형과 사람 얼굴을 그리고 나무에 묶은 목주형, 신장을 조각한 신장조상형 등이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천하대장군과 지하대장군류 말고도 도교적 장군류인 상원주장군과 하원당장군, 방위신장류를 뜻하는 동방청제장군, 서방백제장군, 북방흑제장군, 남방적제장군 등이 있다. 불교의 영향을 받은 호법선신, 수조대장 등의 호법신장류, 풍수와 관련된 진서장군과 방어대장군 등이 있다. 물론 천하대장군과 지하대장군이 제일 많으며 소재나 소속에 따라 마을 입구나 사찰 입구, 지역간의 경계에 세워진다. 

장승 /청양군

마을장승은 마을을 지키고, 사찰장승은 절의 경계를 표시하거나 사찰을 수호하는 기능을 지녔다. 공공장승은 이정표 및 길과 바닷길의 안전을 지킨다. 이처럼 세운 목적이나 위치에 따라 여러 기능을 지니고 있는 장승은 단순히 경계를 표시하고 이정표의 역할을 하는 것 말고도 솟대처럼 사람들에게서 질병과 역귀가 닿지 않게 보호해 주는 수호신으로, 소원 성취를 기원하는 대상으로의 신앙의 의미가 있었다. 솟대처럼 사람들이 섬겼기 때문에 장승 또한 신성시되었으며 함부로 건드리거나 손대는 것은 금지되었다. 

장승을 만들기 위해 산에 가서 나무를 벨 때 그냥 베는 것이 아니라 깍듯이 예를 갖추어야 한다. 적당한 나무가 정해지면 그 앞에 술을 한 잔 붓고 정중히 절을 한 뒤에 도끼질을 한다. 장승을 깎을 때에는 대개 솟대도 함께 깎는다. 작업은 대부분 정월 열나흗날에 하고, 정월대보름날 저녁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장승제를 지낸다. 푸짐하게 제수를 차리고 술도 올린 다음 절을 하고, 축문을 읽고 소지도 올린다. 장승제를 지내기 전부터 풍물패는 동네를 몇 바퀴나 돌면서 축제의 시간이 다가옴을 알리며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이윽고 달이 뜨면 달집을 태우고 마을 사람들은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조상들의 염원을 담아 만들어진 향토목각, 솟대와 장승
 

솟대와 장승 /crowdpic

사람들은 마을의 풍요를 위해, 개인의 행복을 기념하기 위해 솟대를 세웠으며 마을에 악귀나 질병이 들어오지 않기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서도 솟대를 세웠다. 솟대가 모든 나쁜 것을 막아주길 기원하는 원시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장승 또한 신석기, 청동기 시대의 원시 신앙으로써 사람들의 공통적인 염원을 담아 세워졌다. 지금은 옛날만큼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분위기긴 하지만, 혹시 마을을 지나가다 솟대나 장승을 본다면 당시 조상들이 솟대와 장승을 세우면서 빌었던 간절한 염원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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