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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을 잘 쏘는 민족 뒤에는 기술 있는 장인이 있다, 궁시장 권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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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을 잘 쏘는 민족 뒤에는 기술 있는 장인이 있다, 궁시장 권영학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06.0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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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학 궁장 /문화재청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은 어느 시대든지 대접을 받았다. 조선 시대 각종 공장의 기록, 기술자 명단을 보면 이들을 화살을 만드는 사람이란 뜻의 궁인, 시인이라 칭했기에 각별히 차등을 두어 이들을 예우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북 예천은 우리나라의 전통 활 제작으로 유명한 산지이며 전국에서 국궁과 화살을 제작하는 장인들의 80%가 예천 출신이라 한다. 예천에서 가업을 이어 약 50여년간 국궁을 만들어 온 권영학 궁장도 이 고장 출신이며 최근 문화재청으로부터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궁장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예로부터 조상들이 즐겨 했던 활쏘기
 

보물 제527호 김홍도 필 풍속도 화첩 중 활쏘기 /국립중앙박물관

국가무형문화재 제142호인 활쏘기는 고대로부터 주요 무술 중 하나였으며 사대부가를 중심으로 기품 있는 운동 내지는 놀이로써 광범위하게 즐겼다. 오늘날에도 전국체전에는 국궁 종목으로 채택될 만큼 지금도 활쏘기는 사람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궁시(弓矢)는 이미 구석기 시대 말부터 사람들에게 이용되었다고 한다.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서는 여러 수렵 민족간에 보급되면서 적을 방어하는 용도로도 썼다. 

처음 활쏘기는 먹을 것을 얻기 위한 도구로 만들어졌지만 전쟁 무기로 발전했다가, 화약의 발명으로 총이 등장하면서 위력이 약해지고 놀이의 성격으로 바뀌게 된다. 활쏘기 경기는 일반적으로 봄날에 궁사들이 편을 짜 행했는데, 겨울 기간 활발한 놀이를 하지 못해 봄이 되어 밖에 나가 심신을 단련한 것이다. 궁사들이 번갈아 활을 쏘면 기생들은 화려한 옷을 입고 활쏘는 한량들 뒤에 나란히 줄을 지어 서서 소리를 지르고 화살이 과녁을 맞히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여흥을 돋우기도 했다.

<수서>에 이르기를 '월 15일에 잔치를 베풀고 관인으로 하여금 활을 쏘게 하여 마와 포로써 상을 준다'고 하였고, <구당서>와 <신당서>에서는 '매년 8월 15일 잔치를 베풀어 술을 마시고 즐기며 군신이 그 뜰에서 활쏘기를 한다'고 하였다. 이 기록을 봐서 왕의 주재 아래 궁술 대회를 개최해 여러 신하들이 모인 가운데 활쏘기 놀이를 하였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궁중 풍속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전시되어 있는 활 /핸드메이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세조는 종친과 공신을 궁중 후원에 불러 궁술 대회를 열기도 하고, 때때로 무신들을 불러 활쏘기를 해 우수한 자에게 상을 주거나 벼슬을 올려 주었다. 활쏘기는 무과에 급제하기 위해 통달해야 하는 시험 과목이었으므로, 무관이 되고 싶었다면 궁술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45년까지 서울에는 40여 개의 활터가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청궁, 대궁, 예궁, 철퇴궁 등 여러 활들을 사용했지만 임진왜란 이후 총포류가 나오면서 점점 자취를 감추게 된다. 현재는 각궁만 남아 제조법이 전해지고 있으며, 다른 활들은 자기 방어나 무기로 사용되었지만 각궁만은 심신 단련과 운동 목적이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대중화될 수 있었다고 추정한다. 


활을 잘 만들고, 잘 쏘는 권영학 궁장 
 

권영학 궁장 /문화재청 

궁장은 활을 만드는 기술, 또는 사람을 말한다. 예천은 세계 활 축제를 매년 10월 개최하고 있으며 예로부터 전통 활 제작자인 궁시장들이 많이 배출된 곳이기도 하다. 예천에 활 만드는 기술이 전래된 시기는 불명확하지만 1920년대 초 안동 권씨의 집성촌인 왕산골에서 몇 사람들이 활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아들을 낳으면 새끼줄에 고추를 달아 놓는 것이 아닌 활을 걸어 놓을 정도로 활을 사랑했다고. 

아버지 권오련 씨에게 조궁술을 1935년부터 익혔던 권우갑 궁장이 나중에 아들 권영학 씨에게 가업으로 전수했다. 권영학 궁장의 활 쏘는 실력은 전국 대회에서도 알아줄 정도였으며 명궁과 명무의 칭호를 갖고 있다. 명궁과 명무는 '최고의 활솜씨를 가진 무인'이란 뜻으로 권영학 궁장은 우리나라 유일의 세 가지 기능 보유자이기도 하다. 

권영학 궁장은 선대로부터 가업을 물려받아 4대째 예천 활의 전통을 이어 가고 있다. 매달 달력을 넘길 때 31일까지 있으면 활을 만들 수 있는 날이 하루 더 생겨 기분이 좋다는 그다. 그는 항상 '활 쏘는 사람은 군자의 길을 걷는 사람'이란 마음가짐으로 활을 만든다고 한다. 

권영학 궁장 /예천군

처음 아버지는 그가 이 길을 걷는 것을 극렬히 반대했다고 한다. 권영학 궁장이 활에 처음 관심을 보인 건 중학생 때였다. 그러나 재미로 몇 번 하는 건 수련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직업은 될 수 없다는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쳤다. 그러나 그는 활에 대한 묘한 매력을 느껴 심부름을 핑계삼아 아버지를 찾아가 활을 구경하기도 했고 나중에는 크게 혼나기도 했다.

그냥 평범하게, 대학을 가고 취직을 하면 좋겠다는 아버지의 말에 따라 권 궁장은 상경해 대학에 다니던 중 총무처 4급 공채에 합격한다. 그러나 활에 대한 애정 때문에 1년 만에 일을 그만두게 된다. 이후 군대에 갔다 온 그는 무작정 고향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궁장의 길로 들어섰다. 그가 고향에 돌아왔을 때 활 분야는 그의 아버지의 기술이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까지 갔다고 한다. 

막상 고향에 돌아온 제 자식을 보는 아버지의 눈은 서글펐다고 한다. 당시에만 해도 장인에 대한 대우나 사회적 편견이 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영학 궁장은 아버지를 설득해 같이 활 제작에 나섰다. 그는 전통 기법을 고수한 아버지의 기술을 기본으로 하고, 약간의 변화를 시도했다. 넓고 투박했던 활을 날렵하게 만들어 미적 감각과 성능은 높이고 고장률은 낮췄다. 어린 시절부터 활을 쏴 보면서 고쳐야 할 것들을 생각하고 시도한 것이다. 

아버지는 결국 그를 인정했고 '너대로 만들어 보라'라며 허락했다고 한다. 그가 1967년 선보인 첫 작품들은 전국의 유명한 궁사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곧 주문이 쇄도하면서 정말 바빴을 때엔 아버지와 함께 1년에 약 470장의 활을 만들기도 했다. 활 쏘는 사람들도 늘어났고, 좋은 활을 알아보는 수요자들 덕분에 활의 값도 올랐고 소장하려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활 제작에 쓰이는 재료 /문화재청 
부레풀 /핸드메이커 

활의 제작은 기온이나 기후에 따라 단계별로 작업이 진행되며 계절에 따라 작업이 이루어져 활 한 장을 완성하는 데 약 1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6-9월까지는 재료를 준비하고 처리하며 본격적인 제작은 10월에서 이듬해 5월까지 진행된다. 활의 주재료는 물소뿔과 소의 등에서 나오는 소의 힘줄, 접착제로 쓰이는 민어 부레 등이다.

나무 종류로는 대나무, 산에서 나오는 산 뽕나무, 도토리나무 등 동. 식물로 구성되어 있다. 동물 재료는 물소뿔, 소 힘줄, 민어 부레이고 식물 재료는 대나무, 참나무, 뽕나무 등으로 이 여섯 가지가 주재료인데 이 중에 한 가지만 없어도 우리 전통 활을 만들 수가 없다고 그는 전한다. 

권영학 궁장은 활 제작뿐만 아니라 활을 잘 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979년 전주대사습놀이에 참가하여 당당히 장원을 차지했고, 이 대회를 통해 권 궁장은 명무 칭호를 받고 대한궁도협회로부터 명궁 칭호도 얻게 된다. 그는 “과녁에 활을 쏘는데 서서 쏴도, 누워서 쏴도, 앉아서 쏴도, 심지어 걸어가면서 쏴도 명중하는 거다. 내 자신이 생각해도 신들린 느낌이었다"고 회고한다.

권영학 궁장이 만드는 활 /문화재청 

1994년 신라문화재에서 우승한 것을 끝으로 그는 은퇴를 선언한다. 후배들에게 기회를 양보하고 후진 양성을 하기 위해서였다. 1968년부터 1993년까지 경북도 궁도대표 겸 코치 활동을 하며 전국 72개 지구에 궁도 팀을 만들었다. 그는 국궁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닌 서양의 활쏘기인 양궁에도 관심이 있었다. 사비를 털어 예천여자중·고에 양궁부를 만들고, 1979년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첫 5관왕을 차지한 김진호 같은 대대적인 스타를 양성하기도 했다.

현재 권영학 궁장은 전수생 3명과 함께 활을 만들고 있다. “자기 혼자 뛰어난 기능만 갖고 있다고 다가 아니다. 후대에 잘 전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기능보유자라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그는 전한다. 궁도인들에게는 지켜야 할 9개의 교훈이 있는데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하며, 사랑과 덕행으로 본을 보이고, 겸손하고 성실하게 행하며, 행실을 신중히 하고 절조를 굳게 지키고, 곧고 청렴하며 용감하고 결단성을 지니며, 예의범절을 엄격히 지키며, 활 쏠 때는 말하지 말 것이며, 나를 이긴 사람을 원망하지 말며, 남의 활을 당기지 말 것’을 뜻한다. 그는 이 교훈이 주는 가르침대로 삶을 살고자 했다. 

활을 만드는 권영학 궁장 /문화재청 

예천 각궁(국궁)은 재료부터 순수한 천연 재료를 써야 한다. 기계가 아닌 순수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는 국궁은 제조하는 방법과 재료에 따라 완벽하게 성공을 하거나, 아니면 실패하거나 둘 중 하나의 결과물을 낳는다. 국궁은 대나무와 뽕나무를 연결해 활의 몸체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한다. 대나무를 잘라 구워 평면이 되도록 펴 주고, 몸통인 대나무의 양 끝에 뽕나무를 연결하고 손잡이 부분인 참나무를 가운데에 붙인다. 이 과정에서 활의 전반적인 모양이 생긴다. 

이후 유연성과 탄력성을 만들기 위해 몸체 안쪽에 물소의 뿔을 부착한다. 그리고 소 힘줄에 민어 부레로 만든 풀을 발라 바깥쪽에 붙이는 '심놓이'작업을 한다. 즉 대나무와 물소 뿔, 소 힘줄이 활의 강약과 유연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건조 과정을 약 1개월간 거친 후에 활 사용자에 맞춰 강약을 조절한다. 간단해 보이지만 불에 달군 대나무나 풀을 수십번 칠하고 말리는 작업을 해야 하고, 활의 균형과 대칭을 맞추기 위해 활을 잡아당기고 구부리는 작업을 수십 번 되풀이한다. 


그저 활을 사랑하는 사람, 권영학 궁장
 

권영학 궁장 /프리즘랩 유투브

권영학 궁장은 5월 27일 문화재청으로부터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 궁장(활 제작)의 보유자로 인정됐다. 예천군은 2008년 국가지정문화재 '궁시장' 시장(화살)보유자로 지정된 김종국 씨에 이어 이번에 '궁시장' 궁장(활)권영학 씨가 임명됨으로써 활과 화살의 최고 장인을 보유한 우리나라의 유일한 지역이 되었다.

예천군 관계자는 “이번 문화재 인정을 통해 국내 유일한 ‘활의 고장’으로서 전통 기반을 마련하게 됐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활 축제’, ‘국립양궁원 유치’ 등 활의 고장으로서 가치를 확산시킬 예정”이라고 전했다. 

권영학 궁장은 중요무형문화재로써 현장에 있는 전수 능력을 활성화하고, 국가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국민들의 활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져야 한다고 당부한다. 그는 이번 문화재 지정 소감으로 "도 지정 문화재로 국궁 보급과 저변확대를 위해 평생을 매진해 왔으나 활의 고장 예천의 명성을 잇고 전통성을 되찾기 위해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 신청했다"며, "전통 활 계승'보존 및 국궁 발전에 앞장서겠다"고 전하며 활에 대한 사랑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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