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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실이 사랑한 세계 4대 도자기, 헤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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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실이 사랑한 세계 4대 도자기, 헤렌드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05.06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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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렌드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왕실이 사랑하는 도자기로 유명한 헤렌드는 사실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갔을 때, 단지 옆에 호수 하나를 끼고 있는 한적한 마을이었다. 오스만 터키가 헝가리를 통치한 이후 마을은 대부분의 인구가 떠나고 텅 빈 도시였지만 지금은 아름다운 도자기 제조 공장이 들어서 있는, 헝가리의 전통적인 패턴을 가진 도자기를 생산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1826년 설립된 헤렌드 도자기 공장은 세계에서 가장 큰 도자기 공장들 중 하나로 수제 도자기 및 그릇, 장식품 전문 공장이다. 헝가리에서 공산주의가 몰락한 이후 이 공장은 사유화되었고 현재 세계 60개국 이상에 헤렌드 도자기가 수출되고 있다. 헤렌드가 구현하는 건 헝가리 도자기의 유산과 장인 정신이다.


헤렌드의 탄생 

모르 피셔 /Public Domain

헤렌드는 독일의 마이센, 영국의 웨지우드, 덴마크의 로얄코펜하겐과 더불어 세계 4대 도자기 중 하나다. 1826년 빈스 스팅글이 헝가리에 도자기 제조 공장을 설립했지만 자금이 부족해 파산했고, 채권자 모르 피셔가 이 공장을 인수한다. 그는 여러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던 야심가로, 같은 해 예술적인 디자인의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1849년, 피셔는 합스부르크 왕조와 유럽 전역의 귀족들을 고객으로 두고 도자기를 판매했다. 

고객들의 이름을 딴, 지금도 잘 알려져 있는 패턴들이 이때 만들어졌다. 우리가 잘 아는 빅토리아 여왕, 에스터하지, 바티아니, 로스차일드, 아포니 등의 유명 이름들이 도자기 라인에 명명되었다. 1865년, 프란시스 요셉 1세는 도자기 예술에 대한 피셔의 업적을 높이 평가해 그에게 귀족 작위를 내리기도 했다. 피셔는 이후 황제의 이름에서 유래한 'farkashazi'라는 이름을 썼다.

1940년대 헤렌드는 말 그대로 전성기였다. 비엔나 전시회, 런던만국박람회, 뉴욕세계산업박람회, 1855년 파리박람회 등에서 헤렌드의 상품들이 소개되었고 헤렌드의 독특하고 특별한 패턴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귀족들과 여러 궁정에서 주문이 날아들었고 그 중에는 빅토리아 여왕, 오스트리아의 프란치스코 요셉 1세 등도 포함이었다. 19세기 헝가리의 혁명 지도자인 코슈트 러요시는 헤렌드 도자기 공장의 성공을 두고 "홈메이드 산업, 그 긍정적인 발전의 신호탄"이라 불렀다.

화려하고 예술적인 면을 가진 헤렌드 /Herend

1876년까지 피셔는 계속 일했고, 작은 도자기 공장을 경영하는 쪽으로 은퇴했다. 대신 그의 아들들이 도자기 제조업의 경영을 맡았다. 그러나 이들은 아버지의 예술적 발자취를 따르지 않았고 오히려 도자기에 대한 경제적인 이득을 추구했다. 즉 회사의 경영을 예술적인 부분보다 중요시했고, 때문에 도자기 패턴의 경향은 예술적 측면에서도 서서히 질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자연히 도자기 공장의 매출도 감소하기 시작했다. 주인이 여럿이었던 이 공장은 8년 동안 고군분투하다 하마터면 파산할 뻔했고, 피셔의 손자인 제노 파르카샤지가 공장의 주인이 되며 다시 상황은 나아졌다. 그는 숙련된 도예가였고, 런던과 베를린 등 외국 공장에서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이미 도자기 제조 분야에서는 권위자였다. 그는 경력을 되살렸고, 그가 주인으로 있는 동안 도자기는 다시 예술적인 방향으로 바뀌었다. 

파르카샤지는 할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의 행보는 헤렌드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는 헤렌드의 전통적인 방식을 살린 제품과 새 패턴을 추가한 신상품들을 선보였다. 헝가리 특유의 민족적인 모티브, 숲과 들판, 헝가리 특유의 꽃 이미지가 도자기와 그릇에 등장했다. 파르카샤지의 예술적인 기질과 공장에서 일하는 수많은 화가들의 타고난 재능이 더해져 헤렌드는 승승장구했다. 

이후 제 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이 연달아 일어나며 생산량은 최소 기준까지 떨어졌다. 노동자들은 군대에 불려갔고 공장은 걸핏하면 가동을 멈췄다. 심각한 경영난에 허덕이던 도자기 공장에서는 가끔 헝가리 조각가들의 작품을 복제한 헝가리 도자기 인형이 제작되었다. 1930년대 이후 제조업은 다시 활발해졌고 전통적인 헤렌드 그릇, 디너세트 외에도 헤렌드는 부잣집들의 인기 있는 장식품들을 만들었다. 당시 유명한 헝가리 장인들이라면 거의 다 헤렌드와 접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헤렌드의 로얄 가든 /Herend

1948년 국유화된 헤렌드 공장은 헝가리에서 공산주의가 후퇴하며 다시 민영화되었다가 2015년 지분의 약 75%가 경영진과 근로자의 소유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헤렌드의 도자기는 주로 귀족들과 왕실, 유명인들이 즐겨 쓰며 특히 영국 왕실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결혼 선물, 헝가리 대통령 레 슈미트의 결혼 선물로도 알려진 헤렌트 퀸 빅토리아 라인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로얄 가든'이 유명하다. 


헤렌드 라인에 숨겨진 이야기들 
 

헤렌드 퀸 빅토리아 /Herend

1851년, 런던만국박람회에 선보이면서 수상과 동시에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눈에 띈 이 도자기는 여왕의 이름을 따 '헤렌드 퀸 빅토리아' 라인으로 불린다. 빅토리아 여왕의 윈저성에서 사용할 디너 세트를 주문하며 제품 이름이 정해졌다. 이 라인으로 인해 헤렌드는 독일의 마이센 등 유럽 명가의 도자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된다. 헤렌드에서 가장 사랑받는 라인이기도 하며, 수집가들과 전세계 귀족층에서도 인기있는 제품으로 각광받는다. 

여왕의 명성을 딴 라인답게 '헤렌드 퀸 빅토리아'는 총천연색의 꽃과 나비, 새싹이 트는 나뭇가지, 초원을 연상시키는 금빛 테두리가 특징이다. 초창기 독일의 마이센을 카피하면서 시작했던 헤렌드였지만 점점 독자적이고 창의적인 패턴을 연구해 가며 탄생한 라인이다. 100% 핸드메이드이며 곳곳에 24k 골드 처리를 해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로스차일드 /Herend

세계의 엄청난 부자들 하면 꼭 언급되는 로스차일드 가문과 헤렌드가 인연을 맺어 탄생한 '로스차일드' 라인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유대계 혈통의 로스차일드 패밀리는 유대계 혈통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게 되었지만 단 한 가지, 사교계에선 외면을 당했다고. 이유는 다름아닌 귀족 작위가 없었기 때문이란다. 후에 로스차일드 패밀리는 오스트리아의 빅토리아 여왕에게 남작이라는 지위를 얻게 되고, 유태인으로써는 최초로 유럽 황실에서 인정받는 사람들이 된다.

로스차일드, 프랑스 발음으로는 로쉴드라고도 불리는 이 라인은 헤렌드가 1860년 로스차일드 가문을 위해 제작한 패턴이다. 새와 곤충을 주요 소재로 썼으며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나무에 걸려 있는 진주 목걸이가 '로스차일드' 라인의 시그니처로, 로스차일드 남작 부인이 하고 있던 진주 목걸이에 관련된 일화가 유명해 차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작 부인이 어느날 아끼던 목걸이를 잃어버렸는데, 며칠 후에 정원사가 정원의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목걸이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연스레 목걸이를 새가 물어간 것으로 생각했다는 이 이야기는 구전되며 다른 버전으로도 파생된다. 빅토리아 여왕이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연 파티에 참석했다가 목걸이를 잃어버리고 나중에 나뭇가지에서 찾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로스차일드 패밀리의 이야기를 토대로 한 이 패턴은 섬세함으로도 유명하며, 1981년 찰스 왕세자와 결혼한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이 패턴에 관심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아포니 /Herend

헤렌드는 예전 개인 주문 방식으로 도자기를 생산하고, 패턴을 처음 주문한 주문자의 이름을 따 라인을 만들곤 했다. '헤렌드 퀸 빅토리아'나 '로스차일드'처럼 아포니도 그 예시 중의 하나다. 19세기 후반 헝가리의 아포니 백작이 귀빈 접대를 위해 새 디너 세트를 급하게 주문했는데, 막상 핸드메이드로 모든 공정을 처리하는 헤렌드로써는 기한을 제때 맞추지 못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래서 헤렌드 측이 생각해낸 것이 인디언의 부케 패턴을 단순화한 '아포니' 디자인이다. 아포니 백작은 이 꽃무늬에 말 그대로 한눈에 반했고, 그는 푸른색의 단일 컬러인 꽃 무늬 모티브와 '아포니' 패턴을 개발하는 데에 일조했다. 납기 기한에 쫓겨 즉흥적으로 만들어졌던 '아포니'라인은 이후 헤렌드의 베스트셀러 라인 중 하나가 되었다. 
 

작은 마을 헤렌드에서 탄생한 헝가리의 전통 도자기 

헤렌드 도자기 박물관 /flickr
장인이 만드는 도자기를 관람하는 관람객들 /flickr

유럽에 들어왔던 중국 도자기들, 독일의 마이센 등 다양한 제품을 카피하며 시작했던 헤렌드는 이제 자신들만의 패턴을 개발하고 독자적인 길을 걸어간다. 헤렌드의 도자기, 티포트, 그릇 등 오늘날 일반 사람들에게도, 유명 인사들과 귀족들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다. 지금도 헤렌드 도자기 공장은 작업자들이 세심한 손놀림으로 모든 작업을 진행한다. 

헤렌드의 도자기 박물관은 1896년부터 헤렌드에서 운영 중이며, 새롭고 독특한 헤렌드의 작품들이 만들어질 때마다 이 박물관에 전시된다. 방문객들은 근 2세기에 걸친 도자기 컬렉션을 관람할 수 있다. 또한 박물관은 방문객들이 다양한 워크샵에 참가해 도자기 제조의 비밀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상설 전시회, 임시 전시 등 다양한 전시를 제공한다. 약 3천여명이 사는 이 작은 마을에 가게 된다면, 영국 왕실이 사랑하는 헝가리의 전통적인 도자기가 어떻게 탄생하는지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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