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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컬렉션 기부로 보는 미술품 기부 인식과 제도의 현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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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컬렉션 기부로 보는 미술품 기부 인식과 제도의 현 주소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04.28 1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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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자산 보존 및 복지로 나아가는 발걸음
정선 '인왕제색도' /문화재청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그동안 수집한 미술품 2만3천여점이 사회에 환원된다. 故 이건희 회장의 유족들은 28일 삼성전자를 통해 공개한 보도자료를 통해 “고 이건희 회장 소유의 고미술품과 세계적 서양화 작품, 국내 유명 작가의 근대미술 작품 등 총 1만1000여 건, 2만3000여 점의 미술품을 국립기관 등에 기증한다”고 발표했다.

'이건희 컬렉션'은 국보 14건, 보물 46건 등 지정문화재 60여건에 김환기·박수근·이중섭·장욱진 등 근대 대표 작가들의 작품들도 포함된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보물 1393호), 고려 불화 ‘천수관음보살도’(보물 2015호) 등 지정문화재 60건(국보 14건, 보물 46건) 등 고미술품 2만1600여 점은 국립박물관에 기증된다.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이중섭의 ‘황소’ 등 한국 근대 대표 작가 작품 1600여 점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보내진다. 국립현대미술관에는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호안 미로의 ‘구성’, 살바도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 등 세계적인 작품이 기증될 예정이다. 

이 외에도 한국 근대 미술에 큰 족적을 남긴 작가들의 작품 중 일부는 광주시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대구미술관 등 작가 연고지의 지자체 미술관과 이중섭미술관, 박수근미술관 등 작가 미술관에 기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미술품 기부 문화, 아직 갈길이 멀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백남학술정보관으로부터 기증받은 1955년 1월 '현대문학' 창간호 표지 /국립현대미술관

우리나라 미술품의 기증 리스트는 해외에 비해 적은 편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7022점 중 기증품 수는 3115점(44.3%)으로 대부분이 작가나 유족이 기증한 것이고, 개인·기업의 순수 기증품은 397점(5.6%)이다. 미술시장연구소장 서진수 강남대 교수는 "국내 미술품 기증은 미술관에서 작품을 구입해 주는 대신 작가로부터 받거나 유족이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기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수준높은 컬렉션을 구성하기 힘들다"고 전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영국의 테이트 모던(TATE), 미국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 등과 견주기에는 아직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미술관 같은 경우는 자체 예산으로 운영되지만 해외의 미술관들은 대부분 기부와 후원으로 운영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애초에 기부 유치에 대한 시스템이 해외에서는 이미 활성화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예를 들어 영국은 미술품을 기부하면 개인에게는 소득공제가 한도 없이 적용되고 법인은 손금산입 적용에 한도가 없으며, 프랑스의 미술품 기부에 대해 개인은 66% 세액 공제, 법인은 60% 세액 공제를 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국은 상속세를 미술품으로 물납할 수 있도록 하고, 물납을 하는 경우에는 상속세에서 25% 감면 혜택까지 받는다. 

영국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 /flickr

영국이 물납제를 시행하는 이유는 자국 내 문화재와 미술품이 국외로 반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영국 정부는 존 에버렛 밀레이의 그림 `추방당한 왕당파`, 미켈란젤로의 드로잉 `꿈`, 현대미술을 이끈 yBA(영 브리티시 아티스트) 작가들의 작품을 세금 대신 받아 런던 내셔널 갤러리와 코톨드 갤러리 등 국공립 미술관에 분배했다. 

프랑스는 상속세뿐만 아니라 증여세, 부유세도 미술품으로 물납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 중이다. 1973년 피카소가 사망한 후 유족이 상속세 대신 미술품 200여점을 기증한 덕분에 1985년 파리 피카소미술관이 개관할 수 있었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중인 얀 베르메르 작품 `천문학자c`와 `레이스 짜는 여인`도 1983년 금융재벌로 알려진 로스차일드 가문이 상속세로 납부했다. 

얀 베르메르 '레이스 짜는 여인' /flickr

우리나라도 물납제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세금을 현금이 아닌 물건으로 낼 수 있는 물납제는 현행법상 상속세와 재산세에서 통용되는데, 대상이 부동산과 유기증권 등으로 한정되어 미술품 같은 경우는 시장에서 다시 팔아 현금화해야 한다. 지난해 간송문화재단이 운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고려 불상 2점을 경매에 올린 일 이후로 미술계는 물론 문화계 전반에서 미술품 물납제에 대한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한국화랑협회는 "물납제는 미술시장 활성화를 통해 미술인 복지에 도움이 되며, 세금 대신 받은 작품을 국가가 관리함으로써 예술품 해외 반출을 막을 수 있다"며, "여기에 작품 가격이 오를 경우 예술성에 투자하는 국가 수익사업이 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프랑스의 국립피카소미술관을 비롯해 서구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이러한 물납제를 통해 소장품을 확충해 왔다.


해외의 미술품 기부 사례 
 

애비 알드리크 록펠러 /flickr

미국 현대미술관 모마(MoMA)는 애비 알드리크 록펠러와 그의 며느리인 애비 앨드리치가 친구인 릴리 블리스, 메리 퀸 설리반과 함께 미술관을 설립한 뒤 자신들의 자택 터까지 기증한 케이스다. 초기에는 자금 조달을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녔고 잦은 이전도 겪었는데, 이것은 남편인 존 D.록펠러 주니어가 박물관이란 것에 부정적이었고 자금지원 또한 거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시간이 지나며 현재 박물관 부지를 비롯한 후원을 포함해 박물관의 최고 기부자 중 한 명이 되었다.  

MoMA 같은 경우는 전체 수입의 71%가 기부, 기증, 후원 등의 지원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정부 보조 수입은 전체의 1% 정도다. 우리나라 미술관의 정부 예산에 대한 의존도가 평균 45.9%인 것을 보면 대단히 낮은 수준이다. 

애비 앨드리치의 아들이자 록펠러 가문 3세인 데이비드 록펠러는 지난 2017년 작고하면서 자신과 동갑내기 아내 페기가 함께 모은 소장품 1550점을 크리스티 경매를 통해 판매했다. 전체 8455만달러(952억원)에 낙찰되며 뉴욕 언론들이 '세기의 경매'라 불렀던 '페기·데이비드 컬렉션'은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단일 소장자의 컬렉션으로는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다. 

파블로 피카소 (1881-1973), Fillette à la corbeille fleurie , 1905 . 154.8 x 66.1cm (60⅞ x 26 인치)/christies.com
파블로 피카소 (1881-1973), Fillette à la corbeille fleurie , 1905 . 154.8 x 66.1cm (60⅞ x 26 인치)/christies.com

경매의 수익금은 유산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사회에 기부하겠다는 록펠러 부부의 뜻에 따라 전액 기부되고, 기부금을 받을 12개의 단체도 이미 20년에 걸쳐 골라 두었다. 록펠러 컬렉션 가운데 최고가는 파블로 피카소의 1905년 작품인 ‘꽃바구니를 든 소녀’로 1억1500만 달러(약 1240억원)에 낙찰됐다. 피카소 작품 가운데 2015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당시 경매가 1억7937만 달러(약 2025억원)에 낙찰된 ‘알제의 여인들’에 이어 두 번째로 비싼 작품으로 이름을 올렸다. 

크리스 오필리의 '성모 마리아' /Chris Ofili

미국의 억만장자이자 아트 컬렉터인 스티브 코헨은 영국 작가 크리스 오필리의 화제작을 2018년 4월 MoMA에 기증했다. 스티브 코헨과 부인 알렉산드라는 ‘알렉산드라-스티브 코헨 재단’을 통해 크리스 오필리의 대표작이자 가장 논쟁적인 작품인 ‘The Holy Virgin Mary(성모 마리아)’를 MoMA에 넘기기로 했다고 전했다. 

코헨은 오필리의 그림인 ‘The Holy Virgin Mary’를 지난 2015년 6월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460만달러(약 50억원)에 낙찰받았다. 그는 이 그림을 3년간 가지고 있다가 이번 MoMA에 기증했다. 사람들이 궁금해했던 오필리의 이 '성모 마리아'는 앞으로 뉴욕 MoMA에서 볼 수 있게 되어 미술계에서도 이 기부를 반겼다.

스티브 코헨은 2017년에도 약 5000만달러를 MoMA에 기부했다. 부부는 자신들이 만든 재단 ‘Steven Alexandra Cohen Foundation’을 통해 뉴욕 MoMA의 미술관 증개축 공사에 써 달라고 했고, 이 기부금은 건축그룹 딜러 스코피디오(Diller Scofidio)+렌프로(Renfro)가 맡은 뉴욕 MoMA의 전시실 확장공사에 투입됐다.

미국 금융계 일각에서는 내부자 거래 문제로 물의를 빚었던 사람이, 이를 무마하기 위해 거액을 내놓았다며 비판했고 일부 미술 비평가들 또한 투자를 겨냥한 컬렉션을 하고 있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지만 미국 미술계는 “돈이 많다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전반적으로 호의적인 반응을 냈다. 스티브 코헨이 수집한 예술품들의 재화적 가치는 10억달러가 넘을 것이라 추정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flickr

19세기 미국의 뜻있는 기업가들이 소비자와 사회를 위해 무엇으로 보답할지를 고민하다, 철도사업가인 존 테일러 존스턴은 자신이 오랫동안 수집한 미술품 컬렉션을 발판으로 삼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을 건립한다. 하워드 포터 등 기업가, 화가,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컬렉션을 기부했고 지원 또한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세계 4대 박물관 중 하나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탄생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보유한 330만점의 소장품 중 80% 이상을 기증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렘브란트 등 거장의 드로잉과 판화 컬렉션은 1880년 철도 사업가인 코넬리우스 밴더빌트 2세가 기증했고 1969년 은행가 로버트 레만이 2600점의 이탈리아 르네상스 명품을 기증했다. 

화장품 업체인 에스티로더의 레너드 로더 명예회장은 미술품 수집가로도 유명하며, 그는 2013년 10억 달러 이상으로 평가되는 입체주의 작품 78점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기증했다. 기증한 작품 78점은 파블로 피카소 33점, 조르주 브라크 17점, 페르낭 레제 14점, 후안 그리스 14점 등이다. 이들 작품은 수집에만 37년이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레너드 로더 회장 /THE MET

로더 회장은 "일찍부터 입체주의 작품들이 세계적인 미술관에 전시되고 연구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며 기증 이유를 밝혔다. 그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모더니즘 컬렉션은 구겐하임미술관, 휘트니미술관과 더불어 20세기 미술 중심지로서 뉴욕의 위상을 높이고 세계적인 미술 도시 역할을 해 나가는 데 동력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토머스 캠벨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장은 "미술관과 뉴욕에 엄청난 선물"이라며, "이 선물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20세기 미술 컬렉션의 선두주자로 이끌어 주었다"고 밝혔다. 로더 회장이 기증한 작품들은 2014년 가을부터 전시되어 지금도 관람객들에게 공개되어 있다. 


미술품 기부, 인식과 제도 개선이 함께해야 

추사 김정희 '세한도' /국립중앙박물관
2018년 열린 ‘손세기 손창근 컬렉션’ 기증식, 기증자 손창근씨(왼쪽)와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 /국립중앙박물관

2020년 8월, 미술품 소장가 손창근씨는 심사숙고 끝에 국립중앙박물관에 추사 김정희의 최고 걸작인 국보 제180호 '세한도' 기증 의사를 밝혔다. 손씨의 기증은 선친인 손세기 선생에서부터 이어졌다. 손세기 선생은 1974년 서강대에 '양사언필 초서(보물 제1624호)'등 고서화 200점을 기증했고, 아들 손씨 역시 국립중앙박물관회에 연구기금으로 1억을 기부했다. 세한도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4월 4일까지 특별 전시를 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미술품 기부에 대해 소위 부자들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그에 따라 미술품 기부에 대한 세제 혜택도 부자 감세나 세금 면제 등의 비난을 듣는 것도 사실이다. 예술분야 법조인으로 활동 중인 박주희 변호사는 "미술 시장의 건전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의 확보, 공익 추구라는 뚜렷한 방향성이 바탕이 되어야 미술품 기부 세제 개편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제도 개선도 손쉽게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미술계의 보다 영리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세금 때문이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위해서든 미술품들이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되고 더 나아가 해외의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처럼 '문화 복지'를 실천하는 것이 시급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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