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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림 취향은?] 거친 붓 터치에 숨어있는 따뜻한 작가의 일상 – 한붓시인 박혜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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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림 취향은?] 거친 붓 터치에 숨어있는 따뜻한 작가의 일상 – 한붓시인 박혜정 작가
  • 전은지 기자
  • 승인 2021.04.26 16: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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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전은지 기자] 무엇이든 매일 꾸준히 하기란 쉽지 않다. 어린 시절 쓰던 일기처럼 말이다. 노트에 한 자, 한 자 적으며 하루에 있었던 일을 되돌아보는 게 굉장히 번거로웠다. 오죽하면 선생님에게 검사받기 전에 일기를 몰아 쓰는 친구들도 있었다. 지금은 SNS에 자신의 일상을 찍어 올리는 것이 쉬워진 시대라, 그렇게 일기 쓰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그런데 매일 자신의 일상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작가가 있다. 자신의 추억과 일상을 ‘그림 시’라고 표현하며 스스로를 ‘한붓시인’이라는 닉네임으로 칭하는 박혜정 작가는 “생각과 감정을 일기를 쓰듯 그림으로 그린다. 인물의 표정과 색감, 터치를 한 붓 그림을 통해 표현한다”고 말한다. 그녀의 그림은 누군가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망원경인 동시에, 나의 일상도 이입시킬 수 있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생각하는 사람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생각하는 사람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기운 내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기운 내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follow me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follow me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박혜정 작가의 닉네임 ‘한붓시인’처럼 대표적인 표현은 한 선으로 단번에 그린 듯한 작품들이다. 간결하면서도 그 안에 표현하려는 느낌은 모두 살아있다.

‘생각하는 사람’도 손으로 머리를 괴고 무언가 고민하는 듯하며, ‘기운 내’는 좌절에 빠진 사람을 그 앞에 놓인 빨간 꽃 화분이 위로하는 것 같다. ‘follow me’는 마치 아빠와 아들이 함께 나아가는 듯, 바른길로 자녀를 이끌어가는 부모를 표현하고 있다.
 

황소 시리즈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황소 시리즈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야구선수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야구선수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택견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택견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그대와 춤을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그대와 춤을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작가의 작품은 간결하지만, 역동적이라는 것도 하나의 매력이다. ‘황소 시리즈’ 중 하나인 황소는 금방이라도 달려 나갈 듯 힘이 느껴진다. 다부진 앞발과 뿔, 꼬리까지 힘차다. ‘야구선수’도 엄청난 속도의 직구를 뿌릴 것 같은 느낌이다. 선수를 휘감은 바람과 움직임을 표현한 듯한 선도 한몫한다. ‘택견’과 ‘그대와 춤을’도 그다음 동작이 궁금해지는 작품이다. 움직이는 영상을 정지라도 해 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up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up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쉬고 싶은 월요일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쉬고 싶은 월요일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인생이란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인생이란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작가의 작품 중에는 여체 작품도 많다. 모두 건강한 여성의 신체를 표현했다. 여성의 신체적 특징을 한 선 그리기나 거친 색감과 붓 터치로 살려냈다. 흔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다고 하는 나체이지만, 선정적이지 않다.

‘up’은 운동을 열심히 해서 힙업이 되어 건강한 여성의 뒤태가 그려졌으며, ‘쉬고 싶은 월요일’은 짧은 주말을 보내고 출근한 직장여성의 아쉬움이 느껴진다. 월요병이라고 앓는 듯 기운 빠진 자세가 작품명과 어우러진다. ‘인생이란’은 일상에 지쳐 눈물을 흘리는 여성들의 모습이다. 일하다가, 아이를 돌보다가 힘들지만, 어느 곳 하나 기댈 곳 없는 여성들의 애환을 담고 있는 듯한 작품이다.
 

가을 속으로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가을 속으로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따뜻한 마무리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따뜻한 마무리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한 선으로 그린 나체 외에도 거친 질감으로 표현한 여체도 많다. 작품명 그대로 가을의 붉은 낙엽 풍경 속으로 뛰어드는 여인의 모습이다. 옷을 걸치지 않았지만, 가을이 주는 약간의 쌀쌀함에 매료되어 계절 그대로를 느끼는 여성의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따뜻한 마무리’도 살굿빛 색감에 따뜻함이 전해진다. 지친 일상 후 따뜻한 물에 씻고 나온 여성의 홀가분함, 시원함이 느껴진다.
 

못마땅하다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못마땅하다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머리가 무거워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머리가 무거워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오늘의 날씨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오늘의 날씨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자신의 일상을 일기처럼 그림으로 기록하다 보니, 인물화도 많다. 창작을 위한 작가의 고민,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 그날그날의 심리가 인물의 표정과 색감에 그대로 표현된다. 눈, 코, 입 등 심리를 표현하는 신체 부위는 세심하게 사실적으로 그리기도 하지만, 그 외적인 부분은 거칠게 그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인물들이 이국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못마땅하다’는 눈과 입부터 불만스러운 느낌을 주며, 머리 부분을 거칠게 표현해서 감정을 극대화한다. ‘머리가 무거워’도 마찬가지다. 무언가 깊게 고민하면 두통도 생기고, 열도 나면서 머리가 무거워진다. 그런 모습을 그대로 표현한 듯하다. 머리 부분을 부풀어 보이게 그렸다.

‘오늘의 날씨’는 마치 비 오는 날, 꿉꿉한 기운에 불쾌 지수가 높아진 듯한 느낌이다. 발랄한 단발머리에 화장을 곱게 한 여성의 얼굴이지만, 휘황찬란한 색감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지배하면서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안겨준다. 여성의 몽롱하면서도 멍한 표정이 ‘건드리면 안 되겠다’는 경고를 하는 듯하다.
 

봄 냄새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봄 냄새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깊은 잠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깊은 잠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반면, 똑같이 화려한 컬러가 쓰였지만, 확연히 다른 느낌을 주는 작품도 있다. ‘봄 냄새’는 봄의 따스함과 피어있는 향기에 싱숭생숭해지는 심리를 표현하고 있다. 수줍은 듯 눈을 감고 봄바람을 느끼는 듯한 여성의 얼굴이 매력적이다. 머리에는 꽃 모자를 쓴 듯해 우아함을 더한다.

‘깊은 잠’은 춘곤증이나 피곤함에 사로잡힌 느낌이다. 약간 일그러진 듯한 여성의 얼굴에는 피곤함에 지쳤다가 겨우 잠자리에 들었음이 그대로 보인다. 수채화 같은 컬러와 꽃무늬가 몽롱한 꿈에 빠져들어 감을 표현한 듯하다.
 

18년의 그리움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18년의 그리움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박혜정 작가의 작품은 이름과 그 작품의 스토리를 함께 보아야 한다. 보통은 자화상인듯한 여성, 특정 인물이 아닌 사람들을 그리지만, 이 작품은 어머니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게 다가왔다. 이미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어머니이지만, 그 그리움은 세월이 더해도 같다는 것이 색감으로 전달하고 있다.

배경은 어딘지 모를 정도로 흐릿하지만, 그리운 어머니의 얼굴만큼은 선명하다. 작품의 이야기를 보지 않았다면, 한 젊은 여성의 인물화라고만 생각될 정도로 고운 얼굴이다. 다른 인물화는 인물의 얼굴 색감이 분명하지 않은데, 이 작품만은 발그레한 볼과 도톰하고 붉은 입술, 예쁘게 그린 듯한 눈썹 등이 확실하게 표현됐다.
 

식겁(食怯)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식겁(食怯)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고릴라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고릴라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함께하니 아름답다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함께하니 아름답다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가을 연주회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가을 연주회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부서진 향기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부서진 향기 / 박혜정 작가 인스타그램 @phj.hantouch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도 많지만,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도 박혜정 작가의 매력이다. ‘식겁(食怯)’은 무언가에 놀란 듯한 고양이의 모습을 담았다. 털이 쭈뼛쭈뼛 서 있을 정도로 놀란 고양이를 통해 이날 작가도 일상 속에서 매우 놀랐음을 표현한 듯하다. 마치 동양화에서 화선지에 자연스럽게 퍼진 수묵의 느낌처럼 고양이 털을 그렸다.

‘고릴라’는 유화로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작가는 대체로 디지털 드로잉을 하는데, 이 작품은 실제 캔버스에 채색해서 그런지 질감이 살아있다. 성난 고릴라의 모습이 그대로 표현됐다. 고릴라의 표정처럼 작가도 무언가에 분노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함께하니 아름답다’는 두 발레리나의 조화로운 모습을 그렸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속담처럼, 혼자보다는 둘이서 무언가를 함께할 때 조화롭고 아름답다는 것을 표현한 듯하다. 두 발레리나의 신체는 선으로 분명하지만, 의상은 투박한 붓 터치로 그려진 점이 매력적이다.

‘가을 연주회’와 ‘부서진 향기’도 여러 가지 색을 혼합한 거친 붓 터치가 특징인 작품이다. ‘가을 연주회’는 코로나바이러스로 빼앗긴 일상을 표현했다. 평소 연주회를 즐기지만, 코로나로 인해 연주회가 열리지 못해 갈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말이다. 여러 가지 색의 선이 모여 첼로를 연주하는 연주자의 모습이 되었다.

‘부서진 향기’도 여러 가지 색이 사용되었지만, 스펀지로 찍어 표현한 듯하다. 슬픔에 잠긴 여성의 모습 위로 찍힌 컬러가 작품명처럼 무언가 깨져서 부서진 느낌을 준다. 아마도 여인의 마음이 혼란스럽게 망가졌으리라. 선이 아닌 것으로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작품의 특징이자 매력으로 다가온다.

요즘은 개인의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낯설지 않다. 하루 무슨 일을 했는지 영상으로 촬영하는 브이로그(V-log)처럼 말이다. 대부분 평범한 하루나 자랑할만한 일을 공개한다. 안 좋은 일을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박혜정 작가는 자신의 고민이나 고민하는 것 자체를 그림으로 그려내고 있다. 어두운 색감이나 거친 질감이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자신의 일상을 숨김없이 표현하는 작가의 작품활동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 붓으로 말하는 시인의 일상이 쭉 이어지길 바란다.
 

[나의 그림 취향은?] 시리즈는 독자들이 자신의 그림 취향을 알아가는 것을 돕기 위해 기획됐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의 색채가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어찌 보면 많이 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본 시리즈는 색채가 뚜렷한 작가들의 작품 위주로 소개가 될 예정이며 작가들의 개인적인 삶보다는 작품에 집중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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