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1-10-23 04:55 (토)
[탄생석과 명화] 4월 다이아몬드(Diamond), 단단한 속에 감춰진 영원한 사랑
상태바
[탄생석과 명화] 4월 다이아몬드(Diamond), 단단한 속에 감춰진 영원한 사랑
  • 전은지 기자
  • 승인 2021.04.15 14: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핸드메이커 전은지 기자] 결혼반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눈부시게 빛나는 다이아몬드다. 몇 캐럿이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듯, 고급스러운 보석이기 때문에 예물로 쓰이는 이유도 있겠지만, ‘영원’, ‘불멸’, ‘사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4월의 탄생석인 다이아몬드는 보석 자체의 아름다움도 뛰어나지만, 단단한 강도로 산업용으로도 쓰일 정도다. 중국의 학자 공자는 그 단단함을 ‘자신감’에 빗대어 “흠집 없는 조약돌보다는 흠집 있는 다이아몬드가 낫다”고 했을 정도다.
 

pixabay
pixabay

길들일 수 없는 무적의 보석

다이아몬드는 그리스어 ‘Adamas’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에는 ‘길들일 수 없는’, ‘정복할 수 없다’, ‘무적’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한자로는 ‘금강석(金剛石)’이라고 한다. 작고 반짝이는 이 보석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게 한다.

다이아몬드가 처음 발견된 역사를 알자면 기원전으로 가야 한다. 예멘 고고학자들에게서 발견된 다이아몬드는 보석이 아니라 장식용 구슬을 시추하는 도구였다. 하자르 라야니 유적지에서 발견된 이 다이아몬드는 기원전 1200년부터 서기 1세기까지 사용되었다.

다이아몬드가 1726년 브라질, 1896년 남아공에서 발견되기 전에 유일하게 채굴되던 곳은 인도였다. 이중 다이아몬드 드릴 기법은 기원전 600년 전 인도 서부에 존재했으며, 인도에서 시작된 다이아몬드의 본격적인 채굴이 기원전 700년~500년 사이로 추정된다고 사전에서 정의하고 있다.
 

pixabay
pixabay

여러 기록에서도 인도의 다이아몬드에 대해 언급한다. 산스크리트어 텍스트인 코틸랴의 아르타스트라에는 인도의 다이아몬드 무역을, 로마 시대 학자 플리니 더 엘더는 그의 저서 자연사에서 인도의 강가 자갈에서 씻겨 내려가는 다이아몬드를 묘사했다. 기원전 400년경 그리스의 유명한 의사 크테시아스도 인도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 ‘인디카’에서 풍부한 다이아몬드에 관해 쓰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는 아프리카의 프레미엄 광산에서 발견된 컬리넌 다이아몬드로, 현재 9개의 큰 조각과 96개의 작은 조각으로 쪼개졌다고 한다.
 

유리 커팅칼이나 공업용 톱에 다이아몬드 원석이 사용된다 / pixabay
유리 커팅칼이나 공업용 톱에 다이아몬드 원석이 사용된다 / pixabay

다이아몬드는 보석 자체 외에도 산업용으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 외관은 다듬어지기 전 원석의 형태다. 단단함을 나타내는 모스 경도로 따지면 10 정도로 매우 단단하다. 유리를 자르는 커팅칼에도, 공업용 톱 등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저주가 담긴 4대 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는 대체로 무색의 투명한 보석으로 알려졌지만, 불순물의 함유 정도 등에 따라 유색 다이아몬드도 발견된다. 또는 모양이나 크기와 무게나 컷 때문에 어마어마한 가격이 책정되기도 한다. 유명한 다이아몬드 중에서도 ‘저주의 다이아몬드’로 불리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4대 다이아몬드가 있다. 이 다이아몬드들을 소유한 이들은 목숨을 잃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 / 위키미디어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 / 위키미디어

푸른 빛이 매력적인 블루 호프(Blue Hope)는 인도에서 한 농부가 경작하다 호미에 부딪히면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45.52캐럿(9.104g)으로, 가장 큰 푸른 다이아몬드였던 프렌치 블루 다이아몬드에서 잘려 나왔다고 한다. 현재는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다.

이 다이아몬드를 소유한 이들은 모두 다양한 방법으로 목숨을 잃었다. 기원전 5세기 호프 다이아몬드를 처음 발견한 인도 농부는 페르시아군에게 살해당했다. 이후 이를 소유한 페르시아 총독이 왕에게 바쳤는데, 총독은 도둑에게 살해되었으며, 페르시아 왕 역시 반란으로 암살됐다.

17세기 프랑스 보석상인 장 바티스트 타베르니로부터 이 보석을 받게 된 루이 14세도 천연두로 사망했다. ‘짐이 곧 국가다’라며 프랑스의 부흥을 꿈꿨던 태양왕도 보석의 저주에 휩싸인 것이다. 이후 루이 16세와 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도 프랑스 대혁명으로 단두대의 이슬이 된 것을 보면, 다이아몬드가 프랑스 브루봉 왕가의 일부를 망쳐놓은 셈이다.

유일하게 저주를 피했다고 전해지는 미국 뉴욕의 보석상 해리 윈스턴이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소포를 보내 기증하면서 호프 다이아몬드의 저주는 끝이 났다.
 

상시 다이아몬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다 / 위키미디어
상시 다이아몬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다 / 위키미디어

옅은 노란색이 나는 55.23캐럿(11.046g)의 상시(Sancy) 다이아몬드는 방패 모양의 독특한 모양으로 1570년 인도에서 발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는 ‘발레 드 플랑드르’라고 불리는 100캐럿 이상의 다이아몬드였지만, 1398년 루이 1세와 결혼했던 발렌티나 비코스티의 손에서 75년간 소유주가 바뀌고, 전쟁을 거치면서 현재의 모양을 갖추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1477년 프랑스에서 포르투갈로 넘어간 이 다이아몬드는 포르투갈의 왕 마누엘 1세가 스페인의 지배를 피하고 왕좌를 찾기 위해 애쓰다 상시의 영주였던 니콜라스 드 할레이에게 팔았다고 전해진다.

상시 다이아몬드는 대머리로 고통받던 프랑스 헨리 3세의 고민을 해결해주기에 이른다. 대머리를 가리기 위해 모자를 쓰고 다녔던 헨리 3세는 당시 다이아몬드가 유행하자, 모자 장식으로 상시 다이아몬드를 사용했다고 한다.

또 다른 설에서는 데 상시라는 보석 감식가가 재정적 어려움을 겪다가 1605년 영국 스튜어트 왕조 제임스 6세에게 다이아몬드를 팔면서 ‘상시’라는 이름을 얻었다고도 전해진다. 이후 그의 아들 찰스 1세, 제임스 2세로 소유권이 넘어갔는데 상시 다이아몬드의 비극은 이때 시작된다.

찰스 1세는 깊은 신앙심을 기반으로 한 왕권 신수 사상으로 통치하다 의회와 마찰을 일으켰고,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 그의 아들인 제임스 2세는 명예혁명으로 폐위당했다가 생을 마감했다.
 

리젠트 다이아몬드 / 위키미디어
리젠트 다이아몬드 / 위키미디어

리젠트(Regent) 다이아몬드는 140.64캐럿(28.128g)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다이아몬드라고 전해진다. 이 역시 상시 다이아몬드처럼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인도 콜루트 광산에서 410캐럿의 러프 다이아몬드로 발견된 리젠트는 포트 세인트 조지의 주지사였던 토마스 피트가 소유했다고 해서 ‘피트 다이아몬드’라고도 불린다. 아들 로버트를 런던으로 보내 원석으로 다듬어지면서 141캐럿이 되었다고 한다. 2년에 걸쳐 5천 파운드의 비용이 들었고, 다듬어진 원석의 당시 가격은 영국 돈 2만400파운드, 현재 환율로 한국 돈 약 3,148만 원에 달한다.

이후 유럽 왕족들에게 리젠트 다이아몬드의 구매 권유가 이어졌는데, 1717년 프랑스 오를레앙공작이 13만 5천 파운드에 사들여 프랑스 왕실 소유가 되었다. 리젠트 다이아몬드는 루이 15세와 16세의 대관식 왕관 장식으로,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자를 장식하는데도 쓰였다.

1792년 프랑스 혁명 당시 어지러운 상황을 틈타 도난당했던 보석들은 파리의 한 다락방 지붕에서 발견되었고, 1801년 나폴레옹의 소유가 되었다. 나폴레옹은 이 보석으로 칼자루를 장식하거나 왕관의 보석으로 썼다고 한다. 나폴레옹 역시 귀양을 갔으니 리젠트 다이아몬드의 저주는 들어맞은 셈이다.
 

피렌체 다이아몬드의 복제품 / 위키미디어(Chris 73)
피렌체 다이아몬드의 복제품 / 위키미디어(Chris 73)

피렌체(Fiorentine) 다이아몬드도 상시 다이아몬드처럼 노란빛이 나는 다이아몬드다. 인도에서 발견되었으나 현재는 사라져서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다. 첫 소유자가 이탈리아 토스카나 대공이기 때문에 ‘토스카나 대공의 다이아몬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처럼 소유한 사람이 모두 죽은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유명한 인물들이 목숨을 잃었다.

오스트리아 황제의 왕관에 장식되었던 피렌체 다이아몬드는 황후 마리아 테레지아의 소유가 되었는데, 그의 딸이 바로 프랑스 대혁명 때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마리 앙투아네트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딸이 시집갈 때 혼수품으로 주었기 때문이다.

그 후 17년 뒤에는 나폴레옹의 부인인 마리 루이즈가 갖게 되었는데, 나폴레옹은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귀양 가서 사망하게 되었다. 이후 오스트리아 황후 엘리자베스의 목걸이에 장식이 되었으나, 왕후 역시 1898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살해되었고, 1922년 오스트리아 제국은 멸망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저주의 다이아몬드라고 불리는 블루호프, 상시, 리젠트, 피렌체 4가지 다이아몬드는 모두 프랑스 왕실과 연관되어 있다. 특히 마리 앙투아네트가 한 번씩 소유했다는 점(상시 다이아몬드 역시 물려받았다는 사실이 있다)에서 놀랍다. 고귀하고 반짝이는 이 보석들도 그녀의 운명을 알았던 것은 아닐까 미스테리하다.


설화 속 다이아몬드의 초인적인 힘

다이아몬드가 강하다는 특징 때문인지, 상징적인 의미나 설화 속 이미지가 모두 힘을 가진 보석으로 통한다.

몇 가지 속설을 보면, ▲다이아몬드를 왼팔에 묶고 운반하면 적이 많아도 승리한다거나 ▲자석보다 철을 더 많이 끌어당긴다거나 ▲신선한 염소의 피로 얼룩지면 깨진다는 등의 이야기가 있다. 로마 학자 플리니 더 엘더는 다이아몬드가 독을 물리치고 광기를 막아주며, 헛된 두려움을 없애준다고 믿었다.
 

힌두교에 등장하는 신 인드라 / 위키미디어
힌두교에 등장하는 신 인드라 / 위키미디어

또한, 다이아몬드가 처음 발견된 곳이 인도라는 점에서 힌두교 속에도 다이아몬드가 등장한다. 힌두교 속에 ‘인드라(Indra)’라는 신이 등장하는데, 이 신이 주로 사용하는 무기가 바즈라유담(Vajrayudham)과 천둥·번개(Thunderbolt)다. ‘바즈라유담’에서 ‘바즈라’는 다이아몬드를, ‘아유담’은 산스크리트어로 무기를 의미한다. 이 외에도 힌두교에서 다이아몬드를 뜻하는 이름은 14가지나 된다고 한다.


결혼을 약속하는 증표

다이아몬드를 반지에 사용하고, 약혼이나 결혼예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로마 시대와 중세시대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초자연적인 힘도 있었지만, 중세 사람들은 다이아몬드가 부부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부르고뉴의 메리 초상화 / 위키미디어
부르고뉴의 메리 초상화 / 위키미디어

처음 다이아몬드 약혼반지를 받은 사람이라고 알려진 이는 부르고뉴의 메리, 부르고뉴 공작부인이다. 전투에서 사망한 아버지로부터 부르고뉴 공국의 영지를 물려받고 여 공작이 된 그녀는 오스트리아의 막시밀리안 대공과 결혼하면서 공국의 평화를 이뤘다. 그때가 1477년이며, 이때 다이아몬드 반지를 약혼반지로 받았다고 전해진다.
 

가장 인기 있는 다이아몬드 반지의 형태인 라운드 브릴리언트 컷 / pixabay
가장 인기 있는 다이아몬드 반지의 형태인 라운드 브릴리언트 컷 / pixabay
프로포즈 반지로 많이 쓰이는 보석이 다이아몬드다 / pixabay
프로포즈 반지로 많이 쓰이는 보석이 다이아몬드다 / pixabay

이후, 다이아몬드 반지가 대중적인 약혼반지로 이름이 높아진 것은 1938년이다. 남아프리카에서 큰 다이아몬드가 발견되고, 많은 양의 다이아몬드를 판매해야 했던 주얼리 브랜드 드비어스(De Beers). 20세기 초, 당시 드비어스 회장은 “남성이 어리석고, 여성이 허영심이 있는 한 다이아몬드 무역이 번성할 것”이라고 예측했다고 한다. 이런 마케팅으로 약혼반지의 이미지가 굳어진 다이아몬드 중 가장 인기 있는 디자인은 동그란 라운드 브릴리언트 컷이 되었다.


남녀를 가리지 않은 다이아몬드 사랑

지금까지 살펴본 탄생석은 대부분 귀족이나 왕족 여성들의 초상화 속에 등장했다. 왕관이나 반지, 팔찌 등의 장신구가 많았는데, 다이아몬드는 남성에게서도 발견되었다. 앞서 살펴봤을 때도 프랑스 헨리 3세가 대머리를 가리기 위한 모자 장식으로 쓰기도 했으며, 나폴레옹도 자신의 칼자루를 화려하게 꾸미기 위해 다이아몬드를 사용한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가 그린 나폴레옹 초상화(1803~1804) / 위키미디어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가 그린 나폴레옹 초상화(1803~1804) / 위키미디어
초상화를 확대한 모습. 칼자루가 다이아몬드로 장식되어 있으며, 가장 큰 것이 리젠트 다이아몬드다 / 위키미디어
초상화를 확대한 모습. 칼자루가 다이아몬드로 장식되어 있으며, 가장 큰 것이 리젠트 다이아몬드다 / 위키미디어
나폴레옹의 다른 초상화. 칼자루 끝에 리젠트 다이아몬드를 발견할 수 있다 / 위키미디어
나폴레옹의 다른 초상화. 칼자루 끝에 리젠트 다이아몬드를 발견할 수 있다 / 위키미디어

앞서 저주의 다이아몬드를 모두 소유했던 나라인 프랑스. 그중에서도 보나파르트 왕조의 시초가 된 나폴레옹. 통치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은 만큼 자신의 왕조를 굳건히 하고 싶었을 그의 욕심이 장신구에서 드러난다.

프랑스의 초상화가인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가 그린 초상화를 보면, 전체적인 화려함이 느껴진다. 그중에서 칼자루를 보면 반짝이는 네모난 모양이 보이는데, 이것이 저주의 다이아몬드 중 하나인 ‘리젠트 다이아몬드’다. 프랑스 혁명을 틈타 명성을 얻고, 다이아몬드도 얻은 그가 전유물처럼 아꼈을 것이란 추측을 해본다.
 

장 바티스트 폴린 게린이 그린 마리 루이즈 / 위키미디어
장 바티스트 폴린 게린이 그린 마리 루이즈 / 위키미디어

또한, 나폴레옹은 그의 아내에게도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선물했는데, 그 주인공은 두 번째 부인인 마리 루이즈다. 아들 낳기를 바랐던 나폴레옹은 첫 번째 부인인 조세핀이 아들을 낳지 못하자, 두 번째 부인을 들였고 그녀가 마리 루이즈다. 그런 그녀가 아들을 낳자,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선물했다고 한다. 핑크 토파즈를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던 그녀지만, 남편 나폴레옹에게 많은 다이아몬드를 선물받은 만큼, 다이아몬드도 자주 착용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현대미술가가 만든 화려하고 괴상한 해골

과거 초상화와 왕관에서 다이아몬드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현대 미술 작품 중에서는 다이아몬드를 사용한 작품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니, 포름알데히드에 동물 사체를 넣어 죽음을 표현한 작품으로 알려진 괴짜 미술가 데미안 허스트다.
 

For the Love of God, 2007, 171×127×190 mm, 6.7×5×7.5 in, Platinum, diamonds and human teeth / 데미안 허스트 공식 홈페이지(https://damienhirst.com/)
For the Love of God, 2007, 171×127×190 mm, 6.7×5×7.5 in, Platinum, diamonds and human teeth / 데미안 허스트 공식 홈페이지(https://damienhirst.com/)

그의 작품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인 ‘For the Love of God’에는 플래티넘 다이아몬드가 쓰였다. 죽음이라는 의미를 담은 해골이 다이아몬드를 만나 화려해졌다. 실제 사람의 치아를 사용했다는 점도 놀랍지만, 역발상으로 본래의 이미지를 덮었다는 점에서 놀라움은 탄성으로 바뀐다. 이 해골이 실제다, 아니다 라는 말도 많지만, 그보다는 이마에 화려하게 박힌 50캐럿짜리 다이아몬드와 8천여 개의 다이아몬드가 해골을 계속 쳐다보게 한다.
 

For Heaven’s Sake, 2008, 85×85×100 mm, 3.4×3.4×3.9 in, Platinum, pink and white diamonds / 데미안 허스트 공식 홈페이지(https://damienhirst.com/)
For Heaven’s Sake, 2008, 85×85×100 mm, 3.4×3.4×3.9 in, Platinum, pink and white diamonds / 데미안 허스트 공식 홈페이지(https://damienhirst.com/)

‘For Heaven’s Sake’는 아이의 해골 같다. 앞서 선보인 작품과 다르다면 크기도 작고, 핑크 다이아몬드가 쓰였다는 점이다. 치아가 없어도 웃는 듯한 모습이 다이아몬드와 어우러진다. 정수리와 이마 부분에는 투명한 다이아몬드를 써서 핑크 다이아몬드가 더욱 돋보이는 느낌이다. ‘For the Love of God’과 마찬가지로 해골의 원래 이미지를 화려함으로 반전시켰다.

그는 이 작품들을 통해 존재의 무상을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영국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죽음을 사치, 욕망, 타락으로 포장하려 했고, 그 도구로 다이아몬드를 선택한 것이다. 이런 작품의 의미를 보면, 소유자를 죽음으로 몰고 가며 화려함을 탐한 이들에게 경고한 ‘저주의 다이아몬드’와 다를 것이 없는 듯하다.
 

pixabay
pixabay

다이아몬드는 가장 비싼 보석이라는 인식이 많지만, 역사 속의 다이아몬드는 많은 이들의 비극을 담은, 초인적인 힘을 가진 돌이었다. 아름다움만을 느끼며 감상하기엔 그 의미가 어마어마하게 큰 보석이지만, 영원과 사랑이라는 의미만큼은 깊게 새겨야겠다. 보석의 아름다움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