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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리는 인생과 죽음, 한스 발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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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리는 인생과 죽음, 한스 발둥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04.13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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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어린 소녀와 죽음 1484-1485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르네상스 시기 미술가인 알브레히트 뒤러의 가장 유능한 제자였던 한스 발둥은 '한스 발둥 그리엔'으로 알려져 있다. 16세기 가장 독창적인 미술가 중 한 명이며, 전통적인 주제에 대해 매우 개인적인 해석을 담아 그림을 그렸으며 관능적인 누드, 에로틱한 우화, 마녀의 초상화들을 예술적으로 그려냈다. 

전 생애에 걸쳐 그의 독특한 스타일과 다채로운 색, 풍부한 상상력의 표현들은 그의 그림과 초상화, 목판화와 태피스트리, 스테인드글라스 도안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발둥은 기독교적 신앙과 인간의 욕망, 삶과 죽음 등을 주제로 한 복잡한 구성과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한스 발둥 그리엔의 인생 
 

한스 발둥 그리엔 /flickr

1484년경 독일 슈베비슈 그뮌트에서 태어난 발둥은 정확한 생년월일이 알려지진 않았다. 대학에 가진 않았지만 스트라스부르로 이주해 그곳에서 미술 교육을 받았다. 본격적인 예술가로서 그의 미술 훈련은 1500년경 스트라스부르 출신의 한 예술가에 의해 시작된다. 1503년 발둥은 뉘른베르크에서 알브레히트 뒤러를 알게 된 후, 그의 제자가 되어 1507년까지 뒤러의 작업실에서 목각화와 판화 기법을 배웠다. 

이때 그의 '그리엔'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사람들은 추측하는데, 이것은 녹색의 그린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고 독일어로 마녀를 뜻하는 'grienhals'에서 유래한 것일 수도 있지만 확실한 건 없다. 그는 뒤러 밑에서 그의 스타일과 영향력을 알게 되고 곧 친한 친구가 된다. 뒤러는 자신이 장기간 공방을 비울 때면 발둥에게 작업실을 맡길 만큼 그를 신뢰했다. 

발둥은 뒤러가 베네치아에 체류하는 동안 그의 작업장을 관리하기도 했고, 네덜란드 여행 중 뒤러는 발둥이 만든 목판화 일부를 팔기도 했다. 그 정도로 둘은 우정과 존경의 신뢰를 쌓았고, 이는 뒤러가 죽을 때까지 지속되었다. 뉘른베르크 시대 말기, 발둥은 스테인드글라스화 판화 등의 제작 감독을 맡았고 자연스럽게 그는 이런 매체들에 친근감을 갖게 된다. 

두 마녀, 1523 /wikipedia common
마녀의 안식일, 1510 /The Met

1509년 뉘른베르크 시대가 끝나고 그는 스트라스부르로 돌아와 마을의 유명 인사가 되어 여러 작업물을 의뢰받게 된다. 발둥은 마녀와 마법 등의 소재를 그의 예술 작품에 접목시킨 최초의 예술가였다. 그의 멘토였던 알브레히트 뒤러도 그의 작품에 이 소재들을 포함하긴 했지만 발둥만큼은 두드러지게 하진 않았다. 

발둥의 일생 동안 마녀 재판 같은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발둥의 마법이나 마녀 묘사가 그의 시대나 문화적인 것보다는 민속적인 어떤 개인의 믿음에 근거한다고 추정한다. 16세기 초에 걸쳐 휴머니즘(인간주의)이 유행하며 시와 문학에서는 마녀에 대한 소재를 많이 다루었고, 발둥은 많은 작품들에 마녀에 대한 풍자적 묘사를 보여주며 이 흐름에 참가한다. 

전문가들은 '발둥은 그의 마녀들을 유머러스하게 대하며, 이것은 이 당시 스트라스부르에서 마법을 '익살맞은 것'으로 보았던 인본주의자들의 지배적인 관점을 반영하는 것으로 심각한 것보다 재미있는 것'이라 전했다. 발둥은 또한 정기적으로 그의 작품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논란이 있어 왔던, 마녀들이 날아다니는 장면들 또한 그림에 포함시켰다. 그의 '마녀의 안식일'과 같은 작품에서 묘사한 마녀들의 비행 장면은 단편적인 신화를 믿는 사람들에 의해 확고한 이미지로 굳혀졌다. 

발둥의 초기 작품에는 독일 르네상스 최고의 천재이며 그의 멘토였던 뒤러의 영향이 뚜렷이 보인다. 명확한 세부 묘사와 미묘한 균형감, 이탈리아 인문주의에서 태동한 절제된 분위기가 전반기 그의 작품에서 엿볼 수 있는 특징이다. 그러나 그는 점차 밝고 대담한 색채와 강렬한 표현력, 뒤틀리고 왜곡된 형태를 취하면서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와 루카스 크라나흐 엘더의 화풍에 더 가까워졌다. 1510년경부터 발둥은 기괴하면서도 관능적인 마녀에서부터 알레고리 인물상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신체 이미지와 연결되는 주제를 표현하는 데 몰두했다.

세바스찬 제단화, 1507 /flickr

1512년 발둥은 프라이부르크 임 브라이스가우로 활동 무대를 옮겨 프라이부르크 대성당 내 높은 제단을 장식할 다폭 제단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양쪽 날개가 달린 이 거대한 제단화의 중앙 패널에는 《성모의 대관식》이 자리를 잡고, 그 양쪽으로 《사도들》을 배치했다. 바깥쪽 패널에는 《성모의 일생과 관련한 네 가지 에피소드》, 뒷면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아래에는 《성모를 숭배하는 네 주문자의 초상》을 그렸다. 

1516년까지 이어진 이 작업은 그의 생애에 가장 중요한 업적이며, 오늘날에도 온전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이 그림은 그의 걸작으로도 꼽힌다. 1520년대부터 발둥은 개인 후원자들을 위한 종교적인 주제로 작품을 만들어내다가, 헤라클레스나 안타이오스 등 고대 전설의 역사나 신화의 한 장면을 그렸다. 이 작품들은 르네상스 미술에서 바로크 미술로 이행하는 사이 이탈리아에서 나타났던 과도기적인 미술 양식인 매너리즘으로의 전환을 뜻한다.

이러한 매너리즘 정신은 스트라스부르에서 그의 생에 마지막 20년 동안 제작되었던 작품들에서 강조된다. 인물들은 복잡한 태도를 갖고 있으며, 발둥은 뒤러에게서 배웠던 고전적인 인체의 비율을 과감히 버렸다. 그의 작품 중 일부는 루카스 크라나흐 엘더의 작품과도 닮아 있다. 

수염 기른 남자의 초상, 1484-1545 /flickr

발둥은 초상화 화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뒤러는 모델을 엄격하고 상세하게 표현했지만 발둥은 추상적인 개념인 '모델의 개성'에 초점을 맞췄다. 그의 작품 중 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막시밀리언 1세를 그린 초상화를 비롯해, 여러 초상화를 그린 것을 볼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승으로서의 루터, 1521 /wikiart

뮌헨의 한 화랑에 있는 발둥은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지지자였으며 스트라스부르 시의회의 일원이기도 했다. 그는 개신교 개혁을 지지했으며 아우크스부르크 평화 조약에도 참석했다. 그의 멘토인 뒤러 또한 루터의 초상화를 동판에 그리고 싶어했고, 이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대신 발둥이 그 꿈을 이뤘다. 발둥은 루터의 초상화에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나 후광을 그려 그를 감싸는 모습으로, 즉 루터를 성인으로 묘사했다.

개신교 개혁과 농민 반란 등 급진적인 격변의 시대에 살았던 그는 종종 새롭고 특이한 작품들을 만들었다. 그는 항상 독창적인 양식을 찾았고 한편으로는 스테인드글라스로 빛나는 신성한 예술, 또는 거침없는 누드로 표현된 불경스러운 예술의 두 축을 따라 작품을 창작했다. 일생 동안 그는 약 250여점의 그림을 제작했으며 현재 살아남은 그림은 89점 정도다. 약 550여점의 목판을 제작했으며 그 중 400여점의 목판화는 책의 삽화로 쓰였다. 

고양이와 함께 있는 여인, 1517 /flickr
죽음과 소녀, 1517 /flickr

그가 죽기 전 제작한 판화와 그림에는 점점 더 기괴한 모습들과 사신, 죽음에 대한 표현이 적나라해졌다. 그의 일련의 작품들은 괴상한 모습을 한 악마에 의해 위협받는 나체 여성의 모티브를 포함한다. 많은 르네상스 예술가들처럼 발둥은 종교적 이미지를 다루면서도 어둡고 종종 에로틱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여성들을 오컬트와 죽음, 마법 같은 우화적인 주제와 결합시켰다.

생의 마지막을 스트라스부르에서 보낸 그의 작품에는 '죽음'이란 주제가 빈번하게 등장했다. 인체의 균형이나 조화를 벗어난 독특한 형태로 신체를 표현하며 작품을 만들어냈던 그는 1545년 스트라스부르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한스 발둥이 보는 삶과 죽음 
 

인생의 세 시기와 죽음, 1509-1511 /flickr

발둥의 '인생의 세 시기와 죽음'에는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가운데의 한 젊은 여성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다. 여성의 다리 아래에는 어린 아기가 있으며, 이 아기는 천 자락을 붙든 채 장난을 치고 있다.

그러나 오른쪽의 인물은 사람 같지만 너무나도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다. 움푹 들어간 눈과 허물어진 콧대의 이는 죽음의 사신이며, 한 손으로 쥐고 있는 건 모래시계다. 아기와 거울 속 자신을 보는 여성은 가까이 온 사신을 알아채지 못하고, 늙은 여성만 모래시계를 든 사신의 팔을 저지하고 있다. 이 여성은 사신의 팔을 막으며 다른 손으로는 젊은 여성이 들고 있는 거울의 뒷면에 손을 대고 있다.

발둥은 죽음을 묘사할 때 주로 음산한 분위기와 해골을 소재로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기 다른 세 연령대의 사람들은 일생의 과정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며, 어린 시절을 지나 젊음의 시기를 거쳐 곧 노인이 되고 죽을 날을 기다리는 것을 뜻한다. 죽음이란 것은 항상 가까이 와 있으나 정작 젊은 이 여성은 눈치채지 못한다. 노인이 되어서야 곧 다가올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그림에는 인생의 생로병사, 희로애락, 기승전결 모두를 한 컷에 담아냈다는 평을 받는다. 

죽음과 소녀, 1518-20 /flickr

중세 말기부터 수많은 전쟁가 페스트라는 전염병이 유럽 대륙을 휩쓸게 되며,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죽음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와 호기심 등이 여러 방면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발둥의 그림에서는 죽음이 대개 해골로 표현되는데, 그런 죽음 앞에서 공포에 떨고 있는 소녀의 모습을 대비시켜 표현했다.

갑자기 찾아온 죽음 앞에 소녀는 그저 무력하다. 죽음을 맞이할 때엔 두렵지만 결국엔 그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는 진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죽음 앞에 대면한 여성은 거의 나체로 표현되어 있는데, 죽음과 나체의 여성이란 너무나도 대립되는 모습으로 표현해 죽음의 폭력성과 그로 인한 두려움을 극대화하는 느낌을 준다. 또한 젊은 여성에게서 보여지는 인체의 아름다움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 곧 서서히 죽게 된다는 끔찍한 깨달음을 보여준다. 


인생의 덧없음을 독특하게 표현한 한스 발둥 
 

아담과 이브, 1525 /flickr

뒤러의 가장 창의적이면서 재능있는 제자였던 한스 발둥 그리엔은 자신의 멘토의 길과는 다른 독특한 스타일을 추구했다. 발둥은 다재다능한 예술가였으며 그의 많은 작품들은 신화적이며 은유적이다. 무엇보다 에로틱함을 담은 나체의 여성들이 죽음의 개념과 관련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당장 느끼지 못할 죽음의 공포를 발둥은 한 컷에 연속적으로 그려내어 삶과 죽음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보여준다. 죽음이란 건 언제 떠올려도 무섭지만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인생의 덧없음을 한층 실감할 수 있다. 어쩌면 나중에라도 덜 후회할 수 있도록 지금을 더 소중히 여기라고 발둥은 말하고 싶었던 걸까. 그의 작품은 삶과 죽음이라는 소재에 있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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