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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번의 수작업을 통해 최고의 옷감이 되기까지, 세모시짜기 보유자 박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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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0번의 수작업을 통해 최고의 옷감이 되기까지, 세모시짜기 보유자 박미옥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04.12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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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모시로 만든 작품들 /한산모시관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여러 모시 중에서도 한산모시는 1500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오래 전부터 선조들은 모시를 잠자리 날개로 표현했을 정도로 섬세하고 가벼우며 백옥같이 희고 부드러운 걸로 유명했다고 알려져 있다. 모시는 여러 지역에서 생산되지만 한산의 모시가 워낙 품질이 좋아 모시 앞에 한산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여러 모시 중에서도 서천군에서 생산되던 한산 모시는 품질이 우수해 궁중 진상도 했다고 한다. 

한산모시짜기는 지난 201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우리나라 국가무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되었다. 무형문화재 박미옥 장인은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1호 보유자인 어머니 故 나상덕 장인이 2016년 돌아가신 이후, 어머니의 뒤를 잇고자 노력한 끝에 2대째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1호 보유자로 인정받아 현재는 세모시짜기 장인으로 대를 잇고 있다. 


모시의 유래
 

모시옷 /한산모시관

한산모시는 오랜 기간동안 이용되어 온 직물로서 일명 저포·저치라고도 하며, 모시풀의 껍질을 벗긴 것을 재료로 한다. 통일신라 경문왕(재위 861∼875) 때 당나라에 보낸 기록으로 보아 외국과의 교역품으로 이용된 것을 알 수 있으며, 그외에도 계림유사에서 저를모(苧曰毛), 저포를모시배(苧布曰毛施背)란 기록이 있는데 이것으로 고려시대에서 '저'의 다른 이름을 모시라 불렀던 것으로 추측한다. 

한산 지방의 구전에 따르면 삼국시대 한 노인이 건지산에 약초를 캐러 올라갔다가 처음으로 모시풀을 발견, 이를 재배하여 모시를 짜기 시작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예종 때에는 한산 지역의 생저를 토산품 공물로 지정하기도 했다. 18~19세기에는 저산팔읍에서 생산된 모시가 많이 유통되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삼베가 전국적으로 생산되는 반면, 모시는 충청도와 전라도 일부 지역에서만 생산된다. 그중 한산면 일대 8개 고을, 즉 부여, 정산, 홍산, 임천, 한산, 비인, 남포, 서천 등 저산팔읍으로 불리는 고장이 가장 유명했다. 충청도 일대가 모시로 유명한 것은 모시풀의 성장 조건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모시풀은 영하 15℃면 뿌리가 얼고 서리에도 약하기 때문에 비교적 따뜻한 지역에서 잘 자라기 때문이다. 

모시풀 /flickr

모시풀은 다년생으로 뿌리쪽 줄기가 황갈색으로 변하며, 밑의 잎이 시들어 마를 때 수확한다. 보통 1년에 3번 정도 수확하는데 5월∼6월초, 8월초∼8월하순, 10월초∼10월하순이며 두 번째 수확한 모시가 품질이 제일 좋다고 알려져 있다. 한산모시는 한산에서 생산한 모시로 예로부터 다른 지역에 비해서 품질이 우수하며 섬세하고 단아해 모시의 대명사로도 불렸다. 

'이골이 났다' 란 표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입술에 피가 나고 이가 부러지고 골이 파인다고 해 '이골난다'란 말을 쓴다. 이 말은 한 가지 작업을 오래 하다 보면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는 걸 두고 하는 말이다. 모시는 약 4000번의 수작업을 통해 생산되는데, 이 과정에서 작업자의 이에 골이 생겼다고 해 '이골났다'란 말이 생겼다고.

이렇듯 오랜 역사가 있는 모시는 역사적 가치가 높아 제작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에서는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 14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으며 2011년 11월엔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故 나상덕 장인과 박미옥 장인

작업 중인 박미옥 장인 /충남넷

박미옥 장인은 모시짜기를 어머니인 故 나상덕 씨에게서 배웠다고 한다. 나 장인 또한 모시 일을 하던 할머니 곁에서 모시를 째고 삼는 것을 배우며 자랐는데,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모시 짜는 게 더 재미있었다고 회고한다. 나 장인은 이틀 반나절이면 모시 한 필을 짰으며, 상대적으로 좋은 값을 받는 세모시를 배워 인근에 솜씨가 좋다는 소문이 나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나 장인은 일생 동안을 모시 베틀 위에서 살았다. 살아 생전엔 한산모시가 한창 전성기에 비해 그 생산량이 크게 감소해 걱정을 많이 했단다. 모시를 짜는 틀도 많이 개량이 되어 하루 작업량도 옛날에 비해 많이 늘고 그만큼 일하기도 편해졌다고. 그럼에도 변한 흐름을 뭐라 탓하지 않고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재래식 틀로 모시를 짜면 아무리 기술이 좋은 사람이 짜도 고르지 않은 부분이 있었는데, 이제 개량된 기계로 짜면 아주 고르고 정밀하게 짤 수 있어 좋다."고 전했다.

나 장인에게도 모시를 짜는 건 고된 노동이었다. 모시를 짜다 보면 특히 어깨와 왼쪽 무릎이 아팠고, 못 견딜 정도로 아플 땐 병원에 가 주사를 맞고 와 베를 짰다고 한다. 이렇게 힘든 일을 누구에게도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나 장인이었지만 지금은 맏딸이자 전수자인 박미옥 장인에게 이어졌다. 박 장인은 2001년 전수조교로 지정되어 세모시 짜는 기술을 보유, 현재 한산 모시의 활성화를 위하여 서천 군청이 운영하는 한산모시관의 모시스쿨에서 모시짜기 기술을 가르치며 전통 공방에서 작업 과정도 시연하고 있다.

작업중인 박미옥 장인 /예소아카이브 유투브

박 장인 또한 나 장인이 그랬던 것처럼,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모시짜기를 보고 배우며 자랐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눈썰미가 워낙 좋아 어머니가 작업하는 모습을 눈으로 익혀서 어머니가 모시를 짜다가 잠시 자리를 비우면 몰래 베틀에 앉아 모시를 짜다가 줄이 끊어지면 내려오고, 그렇지 않으면 어머니가 돌아오시기 전까지 모시를 짰다고 한다.

박 장인의 터득이 빠르고 손길도 야무지다는 것을 안 어머니는 장인이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자신이 모시를 매줄 테니 한번 짜 보겠냐고 묻는다. 박 장인은 이에 응해 모시를 짜 보았는데, 6일만에 한필을 완성했다고 한다. 딸이 처음 짠 모시를 들고 시장에 가 내놓아 보자, 매우 잘 짠 모시라고 칭찬을 받았고 이에 본격적으로 박 장인은 모시를 배우게 된다.

박 장인은 모시를 처음 짜게 되면서부터 가는 모시에 도전했고 주변에서도 역시 엄마 손을 닮아 잘한다고 칭찬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둘은 함께 작업하며 모녀의 정이 더 두터워졌고, 나 장인이 나이를 먹어가며 점차 모시를 매는 일이 힘겨워 박 장인은 어머니를 대신해 모시를 날고 매며 어머니가 모시를 짜는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왔다. 어릴 적 그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장인 본인도 어머니를 도와준 것이다.

모시를 작업하는 베틀 /서천 끌림 공식블로그
모시매기 공방 /한산모시관 

그러나 어릴 때부터 모시일을 한 결과 허리에 병을 얻게 되어 허리 수술을 두 번이나 하게 된다. 날이 추우면 허리가 더 아파 모시에 집중할 수 없었던 박 장인은 이 때가 기회라는 생각으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여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된다. 이후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딸의 합격에 어머니는 상급 학교로 진학을 권했으나 박 장인은 모시 짜는 기능을 더 연마하며 발전시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었고, 모시 짜기에 더욱 매진하였다. 

어릴 때부터 모시를 가까이 했기 때문에 박 장인은 남들보다 모시를 더 쉽게 다룰 수 있었고, 각종 기능 대회에서 여러번 수상하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 이후 박 장인은 2018년 6월 11일 기능보유자 인정서를 받아 충청남도무형문화재 제1호 한산세모시짜기 기능보유자가 되었다.

모시를 짜는 일은 주위 환경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모시를 짜는 데엔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을 틀 수 없다고 한다. 에어컨을 켜거나 처서가 지나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실이 끊어져 짤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 장인은 날씨가 찌는 듯한 삼복 더위라도 부득이 문을 닫고 가습기를 틀어 놓은 채 모시를 짜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전했다. 더위에도 통풍이 안 되는 움집에서 모시를 짜야 했고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는 날엔 일을 할 수 없다고 한다.  

모시를 짜는 과정 /충남넷 

1필의 모시가 탄생하기까지는 태모시, 굿모시, 필모시 등 3모시 8공정을 거쳐야 한다. 8과정은 ‘모시재배-태모시 만들기-모시째기-모시삼기-모시날기-모시매기-모시꾸리기-모시짜기’의 여러 공정을 거치며 분업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우선 재배하여 수확한 모시를 훑고 겉껍질을 벗겨 태모시를 만든 다음 하루쯤 물에 담가 말린 후 이를 다시 물에 적셔 실의 올을 하나하나 쪼갠다. 이것을 모시째기라고 한다. 

이후 쪼갠 모시올을 이어 실을 만드는데, 이 과정을 모시삼기라 한다. 이 모시삼기의 과정은 실의 균일도가 가름되는 과정으로 한산의 모시삼기기술은 우수하여 균일도가 일정하다.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실을 체에 일정한 크기로 서려 담아 노끈으로 열 십(十)자로 담아 모시굿을 만든다. 모시날기는 실의 굵기에 의해 한 폭에 몇 올이 들어갈지 결정하는 것이다. 모시매기인 풀먹이기 과정을 거친 후 베틀을 이용해 모시를 짠다. 마지막으로 물에 적셔 햇빛에 여러 번 말려 백저포, 곧 흰 모시가 된다. 


전통의 맥을 잇는 박미옥 장인 

작업중인 박미옥 기능보유자 /예소아카이브 유투브

모시는 습도가 모자라면 끊어지기 쉬워 더위에도 통풍이 안 되는 움집에서 짜야 하고, 바람이 불거나 비 오는 날에는 일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까다로운 작업이다. 근래에는 염소표백을 하여 흰 모시를 만들기도 하며, 섬유 공업의 발달과 함께 수요가 줄어들어서 한산 지방의 모시짜기도 점차 감소하고 있다. 현재 서천군의 경우 한산모시짜기 맥을 잇기 위해 모시 학교를 개설해 학생들을 선발해 양성 중에 있지만 한산모시 전문 인력 양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직 부족함이 많다는 평을 받는다.

박미옥 기능보유자는 “한필의 모시가 탄생하기까지는 3모시 8과정을 능수능란하게 해야 가능하다”면서, “특히 모시 째기와 모시삼기는 모시째기와 함께 모시의 품질을 결정하는 중요 과정인 만큼 철저한 교육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오랜 시간을 거쳐야 좋은 모시를 생산할 수 있는 만큼 교육생들에게 한산 모시의 맥을 잇기 위해서는 긴 호흡을 가지고 충분한 지원과 함께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거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장인 몇 명이서만 노력하는 것이 아닌 나라 자체의 지원이 무엇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박미옥 시연 공방 /한산모시관

박미옥 장인을 포함한 전통직조기능 보유자들이 1993년 개관한 한산모시관은 전통의 맥을 잇고 있는 한편 관광객들이 한산 모시를 바로 알고 체험할 수 있도록 전시와 체험장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박 장인이 상주하며 한산모시 짜기를 시연하는 박미옥 시연 공방도 있다.

이 공방은 앞면 4칸 옆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지어진 전통한옥으로 되어 있다. 관람객들이 모시를 짜는 모습을 밖에서 관람할 수 있도록 공방 앞면 1칸의 벽을 유리로 마감해 놓고 직접 안으로 들어가서 모시 짜기 시연을 관람할 수 있다. 서천에 가 본다면 장인이 직접 모시를 짜는 모습을 한번쯤은 구경해 보는 게 어떨까. 쉽게 볼 수 없는 귀한 광경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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