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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을 위해 만들어진 도자기가 270년의 예술이 되기까지, 임페리얼포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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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을 위해 만들어진 도자기가 270년의 예술이 되기까지, 임페리얼포슬린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04.07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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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얼 포슬린 /theroamingchai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1744년 러시아 황실에 의해 세워진 임페리얼 포슬린 공장은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공장이며, 유럽에서는 세 번째로 오래된 곳이다. 초기엔 황실을 위한 특별한 도자기를 만들었으며, 임페리얼 포슬린은 세계에서 권위 있는 박물관들의 소장품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최근엔 '펜트하우스2' 나 '빈센조' 등등 인기 유명 드라마에도 종종 모습을 보여 화제인 임페리얼 포슬린의 잘 알려진 제품으로는 '코발트 넷' 패턴의 티 세트와 디너 세트, 동물 조각상과 러시아의 전통 풍습들을 담은 그림 패턴 등 다양하다. 

18세기 초 유럽의 도자기는 희귀한 사치품으로 여겨졌다. 많은 통치차들은 높은 수입원이었던 유명한 도자기 공장의 주인이 되려 애썼다. 일상적으로도 쓸 수 있는 도자기 제품을 해외에서 주문하기도 했던 피터 황제는 1718년 작센을 방문했을 때 드레스덴 궁정에서 마이센 도자기를 보게 된다. 그는 도자기를 만드는 단단한 반죽의 비밀을 알고 싶어했고, 러시아에도 도자기 공장을 설립하기 위해 해외 장인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엘리자베타 페트로브나 여제 /flickr

궁중 도자기 공장을 세우겠다는 그의 생각은 20년 후 그의 딸 엘리자베타 여왕 하에 실현된다. 재능 있었던 화학자 비노그라도프는 엘리자베타 여제의 지시로 러시아 최초의 도자기 제조 공식을 발명,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공장을 설립한다. 비노그라도프가 순수한 러시아 원료로만 생산한 러시아산 도자기는 마이센 도자기와 비슷한 성질을 갖고 있었으며 구성은 중국 도자기 스타일과 비슷했다. 

1750년대 초까지 도자기는 컵, 파이프, 나이프, 포크 등 작은 모양으로 생산되었다. 크기가 커지기 시작한 건 1756년 비노그라도프가 대형 가마를 만들고 그 안에서 첫 도자기 생산을 성공했을 때였다. 러시아의 예술 도자기 생산은 캐서린 2세 시기 때 절정을 맞이했다. 통치 초기부터 캐서린은 도자기 생산에 대해 적극적이었고, 1756년 이 공장은 임페리얼 포슬린 공장으로 이름이 바뀐다. 

공장의 규모는 점점 확장되었고 유럽 장인들이 초청되어 일하기 시작하면서 생산량, 판매량 또한 증가했다. 이 시기 도자기의 품질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공장의 최고 지도자이자 조각가였던 장 도미니크 라체트의 작품에서 알 수 있다. 라체트는 1779년 수석 조각가로 공장에 초청되어 1804년까지 조각 부문을 책임졌으며, 약 150여개의 조각을 만들었다. 

임페리얼 포슬린의 '늑대' 조각 /imperialporcelain
사람들의 생활상이 담겨 있는 임페리얼 포슬린 /bestwonderstore

오랜 기간 동안 이 공장은 러시아 제국 궁정만을 위해, 또는 그들의 정치적이거나 외교적인 선물을 위해 도자기를 독점적으로 생산했다. 도자기의 그림들에서 보이는 러시아 농민들의 생활 모습, 소수 민족들의 모습은 책 삽화에서 따 오기도 했다. 이후 신고전주의 양식이 도래하며 공장에서는 크고 화려한 모습의 도자기들이 만들어졌다. 무엇보다 황실이 필요로 했던 도자기의 수요도 컸고, 궁정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임페리얼 포슬린 공장은 최고의 품질을 유지하며 도자기를 생산할 수 있었다. 

1806년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으로 러시아의 도자기 수출이 금지되면서, 개인 도자기 공장들간의 경쟁이 일어났다. 흐름에 맞춰 임페리얼 포슬린 공장은 고가의 왕실 전용 선물을 생산하는 부서와, 러시아의 귀족 소비자들을 위한 일반 도자기를 생산하는 부서로 나눠져 조금 더 전문적으로 바뀌었다. 

거의 100년간 황실의 도자기 공장은 엘리자베타 여왕에 의해 '러시아산 원료'로 도자기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던 원칙을 지켰지만, 니콜라스 1세에 의해 수입된 고령토가 도자기 반죽에 첨가되면서 이 원칙은 깨지게 된다. 그의 수하 아래 작품들은 부드러운 광택과 윤기, 강인한 느낌의 금박으로 장식된 완성도 높은 도자기로 탄생했다.  

임페리얼 포슬린 식기 세트 /임페리얼 포슬린 도자기 공장 박물관
임페리얼 포슬린의 꽃 그림 /flickr

1830-40년대엔 유능한 화가들이 공장에서 일했다. 다양한 모습을 도자기에 아름답게 기록하기 위해 예술가들은 핀란드, 시베리아 등 다른 나라로 출장을 다녀가기도 했다. 이 외에도 화병이나 도자기에 그려진 꽃들은 대개 식물원이나, 자신의 집 정원에서 볼 수 있었던 꽃을 모델로 했다. 오랜 세월 동안 예술가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 램브랜트의 갤러리에 걸려 있는 그림들을 베꼈다.

알렉산더 2세가 통치할 당시 임페리얼 포슬린 공장에서는 베를린, 파리, 런던 등에서 수입된 원료를 주로 사용하고 있었다. 유명한 그림들을 베끼는 것은 곧 중단되었고, 화려한 장식 위주의 모양이 주를 이뤘다.

이후 알렉산더 3세 황제는 황실 도자기 공장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졌고, '국가에게 있어 중요한 건 예술의 전파'라고 믿었던 황제는 기술과 예술이란 것을 모두 고려해 이 공장이 이 분야의 모든 제조업자들에게 본보기가 되도록 하라는 명을 내렸다고 한다.

1880년대 프랑스 리모쥬에서 가져온 새로운 기계들, 도구들이 새 디자인을 갖춘 가마와 함께 공장에 들어오게 된다. 생산 기술을 더욱 향상시키기 위해 공장의 장인들은 각각 유럽 최고의 도자기 공장과 유리 공장으로 가 기술을 습득했다. 

바티칸 로지아의 프레스코 양식 /flickr
임페리얼 포슬린의 라파엘 /bada

19세기 후반, 공장에서 생산했던 물품 중 가장 크고 비싼 건 라파엘이었다. 이 디자인은 알렉산더 3세가 직접 관여했으며 그가 승인한 디자인이다. 화려한 장식은 바티칸 로지아에서 디자인을 따 온 것이다. 유려한 장식과 깔끔하게 그려진 그림, 세심한 작업의 조합으로 이루어졌다. 라파엘은 제작 과정에만 20년이 걸렸고 1903년에야 완성되었다.  

임페리얼 포슬린에 아르누보 양식 /worthpoint

19~20세기 초에 유럽 및 미국에서 유행한 장식 양식인 아르누보 양식은 임페리얼 포슬린에도 영향을 미쳤다. 도자기는 멋스러운 곡선과 식물, 아르누보 모티브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서 도자기 수입이 끊어지면서 핸드 페인팅이 아닌 기계로 찍어내는 도자기가 성행한다. 양질의 고급 도자기 생산은 급감했고, 그나마 고급으로 생산된 도자기들은 자선 경매로 왕립병원에 팔려 나간다.

1917년 러시아 군주제가 폐지되면서 볼셰비키 정권에 의해 임페리얼 포슬린 공장은 인민 교육 위원회의 통제에 들어가며 국영화되었다. 러시아 예술 자기의 전통을 보존하는 것과 동시에 옛 궁정의 공장 스타일을 완전히 바꾸겠다는 의미였다. 

임페리얼 포슬린 커피 세트 /bestwonderstore

소비에트 연방 초기, 임페리얼 포슬린 공장은 소련 엘리트들의 인물들을 대상으로 한 소위 선전품을 만들게 된다. 선전을 목적으로 한 대중 예술은 도자기에도 적용되었다. 오래된 상표는 지워지고, 새 상표가 나란히 붙었다. 1925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박람회에서 300여점의 임페리얼 포슬린 제품들이 선보였고, 서유럽 수집가들의 요청에 따라 전시회는 두 번을 추가로 열었다. 이러한 성공은 밀라노에서 열린 산업 전시회와 파리 국제 박람회로 이어졌다.

임페리얼 포슬린의 대표 디자인인 '코발트 넷' /inyourpocket

임페리얼 포슬린에서 가장 잘 알려진 패턴인 '코발트 넷'는 1949년 처음 등장했다. 이 디자인은 예카테리나 여제만을 위한 만찬에서 만들어진 ‘핑크 그물’ 패턴에서 착안한 것이다. 이 패턴은 화가인 안나 야츠케비치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그는 22K 금색의 별로 장식된 푸른 선이 교차된 이 기하학적인 패턴을 완성하기 위해 끊임없는 변형을 시도한다. 

찻잔을 만드는 과정 /theroamingchair
생산되어 나오는 찻잔들 /holarussia

유광 코발트에 금 도금이 결합한 이 디자인은 독특하고 우아한 스타일을 자랑하며, 임페리얼 포슬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주요 디자인이 되었다. 찻잔 하나를 만드는 데엔 80개 이상의 작업 과정이 필요하다. 코발트 블루 장식은 광택이 없는 찻잔의 표면에 칠해지며, 그물 무늬를 그리는 작업에는 가는 붓을 쓴다.

임페리얼 포슬린 공장은 최근 회사 설립 이후 만들었던 제품들을 다시 선별하여 수작업으로 다시 제품들을 생산하고 있다. 모든 제품들은 전부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며, 같은 모델이어도 작업자에 따라 패턴이나 페인트의 터치감이 제품마다 다를 수 있다. 제품 바닥에 있는 디자이너의 서명과 마크, 점이 표시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다. 

임페리얼 포슬린 /lot-art

임페리얼 포슬린은 러시아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수많은 예술 작품으로도 소장되면서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지금은 황실과 정부의 관리를 통해 높은 품질과 기술력을 갖추고 있는 것과 동시에 270여년이 넘는 전통과 기술로 현재 3,000여종의 제품이 팔리고 있다. 코발트 넷 티 세트는 차 수집가들이 시크한 애프터눈 티나 우아한 저녁 식사를 위해 구매한다. 

엘리자베스 여제에 의해 시작되어 캐서린 황제의 후원 아래 번영했던 임페리얼 포슬린은 공장에서 궁중 사람들의 요구를 위해, 황제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외국의 고위층과 애호가들의 선물을 위해 독특한 도자기들을 만들었다. 지금도 예술가들과 장인들이 힘을 합쳐 만드는 임페리얼 포슬린은 러시아의 역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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