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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자연을 사랑했던 작가, 피터 래빗을 탄생시킨 베아트릭스 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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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자연을 사랑했던 작가, 피터 래빗을 탄생시킨 베아트릭스 포터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04.06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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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너그베리스 아이스크림에서 베아트릭스 포터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만든 짚으로 만든 피터 래빗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보기만 해도 말랑말랑하고 포근한 피터 래빗을 만든 사람, 헬렌 베아트릭스 포터는 영국의 작가이며 삽화가, 자연 과학자이자 자연보호학자였다.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포터는 가정교사들에게 교육을 받고, 수많은 애완동물을 키웠으며 스코틀랜드 호수 근방에서 휴가를 보내며 풍경과 식물, 동물에 대한 애정을 키웠다.

30대가 되어 포터는 어린이들의 동화책인 '피터 래빗 이야기'를 출판했고, 아동 도서를 제작하며 삽화를 그렸다. 총 30여권의 책을 썼으며, 책의 수익과 고모에게 물려받은 유산으로 포터는 1905년 농장을 구입한다. 그는 농장과 땅을 사들이며 토지를 꾸준히 관리했고, 시력이 나빠져 글을 쓸 수 없을 때까지 계속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그는 그가 살았던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많은 땅을 보존한 공로를 인정받았으며 그의 책과 이야기는 노래, 영화, 발레, 애니메이션 등 수많은 작품으로 리메이크되었다. 그의 삶은 영화와 TV로 재현되었고 그의 글과 그림은 전세계에서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판매되고 있다.


베아트릭스 포터의 일생 
 

포터와 그의 남동생 /Peter Rabbit

베아트릭스 포터는 1866년 7월 28일 태어났다. 포터와 그의 남동생 버트램은 둘 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토끼와 쥐, 개구리, 도마뱀 같은 많은 동물들을 종종 스케치하곤 했다. 포터는 주위에서 그림을 잘 그린다는 평을 받았으며, 실제로 그는 일생 동안 자연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동물과 식물에 대한 스케치를 그리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학교에 가지 않았지만, 똑똑하고 성실한 학생이었다. 그의 부모는 포터가 평생 가까이 지냈던 미술 교사들을 포함한 많은 가정 교사들을 고용해 포터를 가르쳤다. 

가족들이 3개월 정도 휴가를 보내기 위해 스코틀랜드로 여행을 갔을 때, 아이들은 산과 들판을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었으며 이때 포터는 예술가의 눈으로 식물과 곤충을 관찰하는 법을 배웠다. 1882년, 집주인이 집세를 올려 달라고 해 포터 가족은 거주지를 영국의 레이크 디스트릭트로 옮긴다. 포터가 이곳에서 누렸던 자연과의 교감은 이후 완성된 그의 '자연주의 동화 세계'를 이루는 중요한 초석이 되었다. 

포터가 키웠던 피터는 피터 래빗이 된다 /flickr

포터의 초기 그림의 모델 중 하나는 그의 애완 토끼였다. 토끼의 이름은 피터로, 포터는 스코틀랜드 가족 여행에 피터 래빗을 데려갔다. 포터는 피터 래빗을 키우며 토끼 그림을 자연스럽게 많이 그렸고 이 그림들은 나중에 피터 래빗의 탄생의 시작이 되었다. 포터는 피터 래빗과 그 외의 동물 친구들을 두고 '상상으로 창조한 것이 나의 농장에서 그대로 옮겨온 것 뿐'이라고 전했다. 

포터는 큐 왕립식물원에서 곰팡이 연구를 위한 초대를 받았고, 수백 개의 식물 도면을 제작하고 식물의 재배 과정과 성장을 조사했다. 스코틀랜드의 동식물 연구가였던 찰스 맥킨토시는 포터에게 곰팡이 그림을 기술적으로 더 정확히 그려내도록 지도했고, 포터는 노력 끝에 공학 일러스트레이터로 이름을 날렸다.

1896년까지 그는 곰팡이 포자가 어떻게 번식하는지에 대한 이론을 개발, 논문도 발표했지만 왕립식물원의 책임자인 윌리엄 텔튼 다이어가 이를 거부하기도 했다. 그의 논문은 결국 출판되지 않았지만 포터는 굴하지 않고 연구를 계속했고, 과학자들은 오늘날 생태 연구에 대한 그의 공헌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가 잘 아는 피터 래빗 /flickr

포터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들 중 몇 개를 추려내 삽화들을 그렸고, 자연을 스케치했다. 그는 연하장용 6개 디자인을 판매해 처음 자신의 힘으로 6파운드를 벌게 된다. 이후 그는 여러 도안을 가지고 출판사들과 접촉했지만 또 거절당한다. 이 때문에 포터는 거의 10년간 책을 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가, 1901년 12월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자신이 직접 책을 제작하기로 결심한다.

피터 래빗의 이야기는 이때 탄생한 것이다. 포터는 초기 250여부를 인쇄해 피터 래빗의 이야기를 출판했다. 책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이미 7년 전에 나와 있었던 것으로, 스코틀랜드 여름 휴가지에서 포터가 자신의 가정교사였던 무어 부인의 다섯 살짜리 아들 노엘에게 병문안을 대신해 보낸 편지에 네 마리의 아기 토끼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피터 래빗 이야기는 이 편지의 그림 내용을 다시 다듬어 엮어낸 것으로, 이후 이 피터 래빗의 반응은 엄청나게 뜨거워 후에 200부를 추가 제작을 할 정도로 인기가 커졌다. 1902년 10월 2일, 워언 출판사가 나서서 이 피터 래빗을 정식으로 출판, 포터는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 수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독립할 수 있었다. 

피터 래빗 피규어 /Peter Rabbit
피터 래빗을 토대로 한 보드 게임 /flickr

출판 이외에도 포터는 그의 창작물이 이곳저곳에 다양하게 쓰이길 원했다. 이것은 출판사도 아닌 그가 직접 낸 아이디어였다. 1903년, 포터는 피터래빗 인형을 직접 디자인해 만들어 특허청에 등록하고, 피터 래빗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학 캐릭터로 만들었다. 포터는 티포트 세트와 슬리퍼 등을 포함한 다른 상품 개발에 대해서도 직접 연구하고 제품 개발에도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또한 1904년, 플레이어들을 위한 피터 래빗 보드 게임도 발명했다. 포터는 모든 상품들의 이미지가 그의 책 삽화에 충실해야 하고, 소품의 품질 또한 최고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1905년, 포터는 레이크 디스트릭트에 거주지를 옮기고 그동안 책을 팔아 모은 돈과 자신의 유산으로 그곳의 땅과 농장들을 구입한다. 땅을 산 이유는 개발 위기에 놓였던 레이크 디스트릭트가 파괴되지 않길 바래서였다. 포터는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사랑했고, 그 지역에 투자를 계속하며 자신의 재산 관리를 도왔던 변호사 윌리엄과의 관계를 지속했다 윌리엄은 1912년 포터에게 청혼했고, 이듬해 둘은 런던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그들은 1943년, 포터가 죽을 때까지 그들이 사랑하는 레이크 디스트릭트에서 함께 살았다. 

포터와 그의 반려견, 켑과 함께 /Peter Rabbit

포터는 환경 단체인 내셔널 트러스트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16살 때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처음 방문한 이후 단체의 설립자인 하드윅 론즐리를 만나고 나서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이 계기였다. 포터는 지역의 문화에 따라 건물과 농장을 보존하는 원칙을 따랐고, 많은 농장들을 구할 수 있었다.

포터는 일생 동안 농장 14곳, 집 20채, 땅 500만평을 구매해 보존하는 데 노력했다. 나막신을 신고 숄을 걸친 채 낡은 트위드 스커트를 입은 그는 건초를 만드는 것을 도왔고, 진흙을 헤치며 배수구를 뚫었다.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 폭포 주위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포터는 자신의 농장에서 양을 사육했고, 농장의 동물들과 있을 때 제일 행복하다고 말했다. 

힐탑에 있는 포터의 농장 /flickr

힐탑에서 살았던 그는 집 가구들을 다시 배치하는 것을 즐겼다. 힐탑 농장은 포터가 처음 사들인 농장 건물로, 윌리엄과는 캐슬 코티지에서 살다가 포터가 죽은 이후 가구들을 모두 힐탑 농장으로 옮겼다. 지금은 포터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 수 있는 전시관으로 되어 있다. 집을 관리하는 관리자들은 방문객의 관광 흐름 개선을 위해 가구를 재배치하고, 집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개구지고 사랑스러운 토끼, 피터 래빗
 

피터 래빗 /flickr

피터 래빗은 베아트릭스 포터의 어린이 소설에 등장하는 가상의 토끼 캐릭터이다. 포터의 이야기에 나오는 토끼들은 모두 의인형으로, 사람의 옷을 입고 있다. 피터는 놋쇠 단추가 달린 파란색 자켓을 입고 신발을 신었다. 피터와 그의 홀어머니 조세핀 래빗 부인, 그리고 그의 여동생들인 플롭시, 몹시, 코톤테일은 조세핀이 운영하는 다양한 물건을 파는 가게를 왔다갔다하며, 인간의 부엌과 가구들을 볼 수 있는 토끼 구멍에 살고 있다. 피터의 친척은 사촌인 벤자민 버니와 벤자민의 아버지인 바운서 버니다.

피터 래빗은 처음 포터가 키웠던 애완 토끼의 이름을 따 만들어졌고, 최초의 피터 래빗 이야기는 포터의 전 가정교사였던 무어 부인의 아들 노엘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만들어졌다. 그때 노엘은 아픈 상태였고, 포터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노엘을 위로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 편지를 썼다. 편지에는 피터 래빗의 이야기의 토대였던 밑그림이 포함되어 있었다. 

못말리는 피터 래빗이 실재했다면 이런 모습이었을까 /flickr
피터 래빗 월드 가든에 장식된 피터 래빗의 파란 자켓 /flickr

책의 이야기는 장난꾸러기 피터 래빗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주인공인 피터 래빗은 형제들보다 훨씬 모험심이 강했다. 어머니 조세핀은 아이들에게 항상 맥그리거 씨의 정원을 가지 말라고 경고했는데 왜냐하면, 아이들의 아버지가 그 정원에 들어갔다가 사고를 당했고 결국 파이가 되었다는 꽤 섬뜩한 결말로 끝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가 그 말을 하고 가버린 후 장난꾸러기 피터 래빗은 바로 맥그리거 씨의 정원에 들어가 야채를 캐내기 위해 정원의 문 밑을 비집고 들어간다. 

그러나 피터를 발견한 맥그리거 씨는 곧 겁에 질린 어린 토끼를 여기저기 쫓아다녔고, 도망다니던 피터는 도중에 신발과 파란 재킷을 잃어버린다. 마침내 나가는 문을 찾은 피터는 얼른 집으로 돌아온다. 매 이야기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뀌며, 이 이야기는 유머와 모험 이야기를 결합한 동시에 도덕적인 교훈도 담고 있다. 이야기 중간중간에는 아름다운 수채화도 곁들였다.

소니 픽처스 '피터 래빗' 애니메이션 트레일러 /flickr
피터 래빗 주화 /flickr

피터 래빗은 책 말고도 귀여운 토끼의 이미지가 캐릭터화되어 수많은 굿즈로 제작되어 팔려나갔다. 이후 1936년 월트 디즈니 쪽에서 피터 래빗에 관한 장편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포터에게 자신의 생각을 타진했지만, 포터는 거절한다. 이후 피터 래빗은 1971년 발레 영화에 출연, 두 편의 교육용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다. 2016년 피터 래빗과 다른 포터의 캐릭터들은 영국에서 2016년, 베아트릭스 포터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50펜스 동전 기념 주화로 발행되기도 했다. 이후 2018년 소니 픽처스에서 피터 래빗 애니메이션이 출시되었다. 


동물과 자연을 사랑한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 
 

포터의 생전 마지막 모습 /Peter Rabbit

1943년 포터가 세상을 떠날 때, 그는 환경 단체인 내셔널 트러스트에 그동안 보존한 농장과 땅을 기증하며, 땅을 그대로 잘 보존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포터의 소원에 따라 농장들은 나라의 보호를 받으며 그가 살았을 때와 똑같이 운영되고 있고, 1946년 힐탑에 있는 그의 집이 대중에 공개된 이후 매년 수천 명의 방문객이 그곳을 방문한다.

힐탑에 있는 동안 땅을 구매해 모으던 그를 당시 이웃 사람들은 한심하게 봤지만, 지금을 생각하면 그가 어느 정도까지 앞을 내다본 건지 신기할 정도다. 오늘날 포터의 책은 1분마다 4권씩 전세계에서 팔리고 있다. 그의 동화 같은 세계에서 살고 있는 토끼들의 이야기는 아동문학 작가이자 일러스트 작가, 자연과학자면서 자연을 아꼈던 한 사람의 손에서 탄생해 아이들에게,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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