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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관, 이달의 큐레이터 추천 유물로 '왕세자입학도첩'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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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관, 이달의 큐레이터 추천 유물로 '왕세자입학도첩' 소개
  • 최미리 기자
  • 승인 2021.04.02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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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입학도첩 /문화재청 

[핸드메이커 최미리 기자]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은 왕세자의 유일한 성균관 입학례 그림인 『왕세자입학도첩』을 4월의 ’큐레이터 추천 왕실 유물‘로 정해 소개하고, 1일부터 온라인(유튜브)으로도 공개한다. 

왕세자입학도첩은 효명세자가 아홉 살 때 성균관에 입학한 행사를 그린 화첩으로 입학 절차를 적은 글, 여섯 장면의 그림, 참여자들의 축하 시, 스승인 박사 남공철이 쓴 글이 실려 있다. 효명세자는 조선 제 23대 왕인 순조와 순원왕후 사이에 태어난 맏아들로 남다른 기대를 받으며 자랐다고 한다. 

왕위계승자로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효명세자는 1827년부터 순조 대신 정사를 돌보게 된다. 1830년 스물두살의 이른 나이에 죽었지만 짧은 기간 동안에도 백성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 문화적으로도 다양한 업적을 남겨 뛰어난 군주로서의 역량을 보인 인물이다. 왕세자의 입학을 그린 그림은 총 여섯 본 전해지는 왕세자입학도첩이 유일하다고 알려져 있다. 

왕세자입학도첩 /문화재청 유투브

첫번째 그림은 <출궁도>로 효명세자가 창경궁을 나와 가마를 타고 성균관으로 향하는 모습이고, 두 번째 그림은 <작헌도>로 세자가 학생복을 입고 입학식 전 성균관 대성전에 있는 공자와 네 성인에 술잔을 올리고 예를 표하는 모습이다.

세 번째는 <왕복도>로 세자가 스승에게 배움을 청하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으로 어느 사대부 학생과 다르지 않게 겸손한 모습이었음을 알 수 있고, 네 번째는 <수폐도>로 스승에게 배움을 청하면서 최소한의 예물을 바치며 예를 갖추는 모습이다. 마지막 <수하도>에서는 입학절차를 마친 왕세자가 궁으로 돌아와 축하를 받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왕세자가 통과의례를 치러 유학의 원리인 '예'를 실천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밑바탕인 학문을 연마하는 것은 계승자로서의 권위를 높이는 가장 정당한 길이었기 때문에 순조의 측근들은 효명세자가 이를 올바로 수행할 수 있도록 애썼다. 더 나아가 이를 다양한 그림으로 남겨 왕실의 위엄을 널리 드러내고자 했다. 효명세자의 입학이 유일하게 그림으로 남은 건 왕실의 지위를 회복하고자 했던 순조의 간절함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왕세자입학도첩 /문화재청 유투브

그 당시 왕세자가 성균관에 입학하는 의례를 굳이 치른 이유는, 원래 왕세자는 세자만을 위한 교육 기관인 세자시강원에서 따로 교육받았지만 성균관에 입학하는 의례를 필수적으로 치뤘기 때문이다. 입학 의례는 스승과 제자 간의 도리 등 유학의 기본 원리를 담고 있으며 왕세자는 입학 의례 속에 담긴 유학적 이상을 실천해 백성들에게 모범이 되고 왕실의 권위를 높일 수 있었다. 

왕세자입학도첩 /문화재청 유투브
왕세자입학도첩 /문화재청 유투브

입학 의례를 치를 때 왕세자는 스승에게 세 번 배움을 청한 뒤에야 수락을 받았고 예물을 바쳐 스승에 대한 존경과 예를 표현했다. 배움에 임할 때 스승은 책상을 두고 앉지만 세자는 바닥에 엎드려 왕위계승자 역시 스승 앞에 조아려야 함을 드러낸다.

스승과 왕세자가 선 위치에서도 사제 간의 예우가 보이는데, 왕세자입학도첩은 노란색 사각형과 길로 세자의 위치와 움직임을 표시했고 이를 보면 스승은 동쪽에, 세자는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해가 뜨는 동쪽이 양의 기운을 가져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 동양의 질서에 따라 스승이 상석에 자리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유물 감상 시 현대의 입학 모습과 조선 시대 왕세자의 입학 모습을 비교하면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 또한, 전시실을 방문하지 않아도 국립고궁박물관 누리집과 문화재청·국립고궁박물관 유튜브에서도 영문 자막과 함께 '왕세자입학도첩'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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