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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노블, 예술 영역으로 확장... 그 무한한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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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노블, 예술 영역으로 확장... 그 무한한 가능성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03.30 1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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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래픽노블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그림의 'graphic'과 소설 'novel'의 합성어인 그래픽 노블은 만화와 소설의 중간 형식으로, 오늘날 우리에게도 꽤 익숙한 단어이다. 일반적으로 만화 정기 간행물에 쓰이는 코믹북(만화책)과는 엄연히 다른 장르이다. 만화보다는 철학적이고 진지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복잡한 이야기 구조와 작가만의 독특한 화풍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그래픽 노블이라는 단어는 윌 아이즈너의 '신과의 계약' 출판과 DC코믹스, 마블의 그래픽 노블들의 등장 이후 만화계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후 1986년 아트 슈피겔만의 '쥐' 1권의 상업적인 성공 이후 1980년대 후반 대중들과 친숙해졌다. 복잡한 줄거리의 독립적인 이야기로 꾸려지는 그래픽 노블에는 기존 개별 만화로 출판된 단편 소설집 또한 포함한다. 

그래픽 노블을 분류하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그래픽 노블도 있고, 저자의 개인적 이야기나 경험, 의견 등을 바탕으로 씌어진 자전적 이야기도 해당된다. 커다란 사회적 이슈를 다루기 위해 자신의 경험을 인용하는 논픽션 소설 또한 그래픽 노블의 하위 장르 중 하나다. 


그래픽 노블의 선구자, 윌 아이즈너 

윌 아이즈너 /flickr

그래픽 노블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한 것은 윌 아이즈너(Will Eisner)의 초기작 ‘신과의 계약 A Contract with God’의 표지에 이 용어를 쓰면서부터이다. 아이즈너의 아버지는 예술가가 꿈이었고, 10대였을 때 가톨릭 교회의 벽화를 그렸다고 한다. 부전자전인지, 어린 아이즈너는 전위적인 영화를 포함한 펄프 매거진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아이즈너는 아버지의 예술가적 기질에 관심을 가졌고 그의 아버지는 아이즈너에게 미술 용품을 사주며 독려했다고 전해진다. 

1929년 월가의 뉴욕주식거래소에서 주가가 대폭락하는 대공황 이후 아이즈너의 가정은 더 궁핍해졌고, 1903년 아이즈너는 열세살의 나이에 거리 모퉁이에서 신문을 파는 일을 시작했다. 이 일은 힘이 센 아이들이 최적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싸워야 하는 경쟁 그 자체였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뉴욕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서 1년 동안 캐나다의 예술가인 조지 브란트 밑에서 공부했다. 이 시기 아이즈너는 펄프 잡지의 한 페이지당 10달러짜리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WOW, What A Magazine! /flickr

1936년, 고등학교 친구이자 지금의 배트맨을 만든 동료 만화가 밥 케인은 19살의 아이즈너에게 'WOW, What A Magazine!'에 자신과 같이 만화를 팔아 보자며 제안한다. 이 잡지는 4회만에 폐간했지만 아이즈너와 잡지 편집자 제리 아이거는 계속 협력을 이어나가게 된다. 단순한 인쇄물은 곧 고갈이 될 것이라 추측, 만화를 제작하고 판매하기 위해 서로의 이름을 딴 만화 스튜디오 회사인 '아이즈너 앤 아이거'를 설립한다. 이들은 신문이나 잡지사, 만화 제작자들에게 만화를 공급하며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더 스피릿 /flickr
게르하르트 슈노블 中 한 장면 /flickr

그러던 아이즈너는 어느날 제안을 하나 받게 된다. 일요일 아침 신문 'Des Moines Register'의 영업부장인 헨리 마틴이 신문에 만화를 넣을 계획이 있다며, 그 작업에 같이 동참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이 거래에 대해 잠시의 토론 후, 신문에 실리는 만화를 제작하기로 동의한다. 아이스너는 한 사람의 작가로 다시 돌아와 자신 몫의 회사 지분을 정리하고, 더 스피릿(The Spirit)이란 제목의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얼굴을 감춘 유령 형사가 등장해 도시 범죄를 다룬 이 시리즈는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인생을 그렸으며, 초기에는 8페이지 정도에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16페이지까지 늘었고 20여개 신문에 배포되어 5만부 넘게 팔렸다. 아이즈너는 '더 스피릿'의 '게르하르트 슈노블'이 그의 개인적인 관점을 만화 시리즈에 담은 첫 시도 중 하나였기 때문에 마음에 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신과의 계약 /flickr

1978년 아이즈너가 조금 더 긴 스토리텔링으로 그린 '신과의 계약'은 미국 그래픽 노블의 초기 예로써, 그가 제목에 같이 붙였던 '그래픽 노블'이란 용어는 대중과 일반 출판사들이 이해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사실 이 당시 '만화'라는 단어는 애들 장난이나 그림, 예술이 아닌 낙서에 불과하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이에 아이즈너는 만화란 단어를 아예 바꾸는 것보다 만화의 본질을 탐구해, 편견이나 왜곡 없이 사람들이 친숙하게 느낄 수 있게끔 연구를 꾸준히 계속했다.

아무리 진지하고 긴 이야기를 담아내도 단순히 '코믹스'라고 불리며 다른 예술 장르들에 비해 하위로 취급되던 상황, 아이즈너가 '신과의 계약'에 그래픽 노블이라는 단어를 붙인 것은 실력있는 자신의 작품에 그 단어를 표기를 한 행위는 만화에 대한 편견을 끊어내고 또 하나의 예술이 탄생했음을 나타낸 것이다. 

그는 '신과의 계약' 서문에 이런 글을 남겼는데, '작가는 악당들의 지구 파괴를 막는 슈퍼 히어로들의 이야기보다 더 많은 것을 다룰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 대부분 어린이용으로 제작되던 만화책이 팔리던 당시 아이즈너는 그래픽 노블이 진지한 이야기와 철학을 담아 누구나 뭔가를 생각할 수 있는 하나의 작품으로 생각되길 바랬다.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그의 길을 따라 그래픽 노블이라 불리는 작품들이 나왔고, 이제는 코믹스나 양장본으로 된 만화 전체를 그래픽 노블이라 부르고 있다. 만화를 하나의 예술로 인정받고 싶었던 그의 노력이 지금에서야 빛을 본 셈이다.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아트 슈피겔만의 '쥐'

쥐 /flickr

작가 아트 슈피겔만의 '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다 살아남은 작가 아트 슈피겔만의 아버지, 블라덱의 경험담을 기록한 작품이다. 유대인인 그의 아버지가 전체주의 정권인 독일 나치의 폭력들 중 하나인 유대인 학살에서 살아나는 과정을 그렸다. 이 책은 그와 그의 아버지의 관계 문제와 전쟁, 유대인 학살이라는 폭력이 그의 가족에 가져다준 영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쥐'는 1992년에 퓰리처 특별상을 받았으며, 그래픽 노블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퓰리처상 수상작이다. 타임지가 선정한 1923년 이후 최고의 논픽션 100선에 포함된 유일한 그래픽노블 작품이며,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예스24 그래픽 노블 분야 베스트셀러 톱10 중 1위를 차지한 작품이기도 하다. 참고로 슈피겔만이 '쥐'를 탈고하기까지는 무려 1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슈피겔만은 아버지의 삶을 만화로 그리기 위해 수 차례에 걸쳐 그와 녹취 인터뷰를 진행해 만화를 그렸다. 

아트 슈피겔만 /flickr

아트 슈피겔만은 1948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세 살 되던 해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열두 살 되던 해 우연히 만화작법 책을 접한 이후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열 다섯살 되던 해 지역 신문에 만화를 발표했고, 대학생이 된 후 전위만화가로 활동하며 로버트 크럼, 킴 데이치 등 대표적인 언더그라운드 만화가들과 교류했다. 이후 <플레이보이>, <뉴욕 타임즈> 등 여러 매체에 작품을 선보였고, 1980년대 초에는 전위만화잡지 <RAW>를 창간에 참여하기도 했다.

슈피겔만은 '쥐'에서 서로 다른 민족을 서로 다른 동물로 그렸다. 유대인은 쥐로, 프랑스인은 개구리로, 독일인은 고양이로, 폴란드인은 돼지로, 미국인은 개로, 영국인은 물고기 등등으로 묘사했다. 유대인과 폴란드인을 쥐와 돼지로 그린 부분은 나치의 선전물과도 일치해 2차세계대전 피해 국가였던 폴란드에서는 책의 출판이 지연되기도 했다. 슈피겔만은 나중에 인터뷰에서 일부러 그렇게 표현했다고 전했다. 

'쥐'에 실린 한 장면 /flickr

만화의 이야기는 두 가지 갈래로 진행된다. 세계 2차대전 전부터 홀로코스트를 겪으며 몸과 마음 모두 망가져 가는 아버지의 과거, 만화를 그리는 슈피겔의 관점에서 바라본 현재가 교차되며 이야기는 입체적이고 현실적이다. 슈피겔만의 아버지가 겪은 아우슈비츠 생활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와 중간중간 나오는 자신과 부모의 대립각, 그 당시의 상황을 겪지 않은 작가 자신의 입장에서 참상을 묘사하며 느끼는 고뇌와 성찰 등이 내용의 리얼리티를 더했다. 

'쥐'에서는 주인공을 동물로 설정해 아우슈비츠의 현장에 대해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사람이 사람을 거리낌없이 죽이는, 인간이 같은 인간을 말살하려는 계획과 잔인한 묘사는 동물들의 모습을 통해 형상화됨으로써 그때 일어났던 참상을 경험하지 않은 독자들에게 아무래도 충격을 덜 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림에서 보이는 독일인을 표현한 고양이와 유대인을 의미하는 쥐를 통한 억압 구조는 아무리 동물이어도 그 시대를 실감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하나의 엄연한 예술인 그래픽노블 

그래픽 노블 시장은 최근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인터넷 서점 예스24는 3월 16일 2010년부터 2020년까지 그래픽 노블 출간 종수 및 판매 증가율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이 결과 그래픽 노블은 2010년 37종의 출간된 이래 꾸준히 늘어 2020년 140종이 나왔다.

김유리 예스24 만화·라이트노벨 MD는 "그래픽 노블은 좋은 스토리를 그림과 함께 감상할 수 있어 재미와 감동을 배로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의 관심을 사로잡고 있다"며, "독특한 도서 형태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만큼 관련 분야의 출간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닉 드로나소의 사브리나 /flickr

그래픽 노블의 탄생은 그저 하찮은 취급을 받아왔던 '만화'를 하나의 예술적 장르로 끌어올린 사람들의 노력의 결실이다.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은 슈피겔만의 '쥐'외에도 닉 드르나소의 '사브리나'는 그래픽 노블로는 최초로 맨부커상 후보작에 올라 주목을 받았다. 하위 취급을 받았던 만화가 이제는 권위있는 상을 받고, 권위있는 상 후보에 오른다. 그래픽 노블로 이어진 만화는 수많은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만화를 사랑했던 사람들, 그들의 노력이 지금의 커다란 그래픽 노블 시장을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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