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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무구 ‘설위설경’에 담긴 예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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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무구 ‘설위설경’에 담긴 예술성
  • 윤미지 기자
  • 승인 2021.03.22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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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무구, 공예의 관점으로 다시 바라보다

[핸드메이커 윤미지 기자] 현대 사회에서 무당이 굿을 벌이는 풍경은 다소 생경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랜 시간이 흐르며 과학이 발전하고 사람들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무속문화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가장 보편적으로 치러지던 ‘씻김굿’ 역시 현대 사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문화가 됐다. 

무당을 중심으로 전해지는 여러 가지 풍속은 현대에 그 의미를 점차 잃었으나 우리는 이에 사용됐던 ‘무구’를 통해 그 예술성을 확인할 수 있다. 예로부터 전해져 온 무속문화를 단순히 과거에 행해 온 미신으로 치부하기보다, 그 안에서 하나의 예술성을 바라본다면 전통문화라는 관점에서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 1월 한국민속극박물관은 ‘설위설경(設位說經), 무(巫)와 예술’ 책을 발간했다. 본 서적은 예술신서 시리즈로 그 첫 번째를 장식했으며 명인들에게 직접 설위설경을 접한 종이공예가 도영미의 글과 풍부한 사진 자료를 담아 완성했다.
 

'설위설경(設位說經), 무(巫)와 예술' 책 표지
'설위설경(設位說經), 무(巫)와 예술' 책 표지

설위설경은 충청도 지방 무속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흔히 무당이 무속 경전을 읽는 행위 자체를 설경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나, 여기서 말하는 설위설경이란 경청을 장식하는 여러 장식의 종이 부적 설치를 뜻한다. 

결과적으로 설위설경은 무속에 쓰이는 도구, 즉 무구의 일종인데 이를 종이로 만들어 법사가 경전을 읽는 장소에 설치하는 것을 가리킨다. 남자 무속인인 법사가 ‘앉은굿’을 할 때 주로 이 설경을 설치하고, 굿의 목적이나 규모에 따라서 다르게 준비한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법사(法師). 독경을 하는 사제자 , 국립민속박물관
법사(法師). 독경을 하는 사제자 /국립민속박물관

‘설위설경(設位說經), 무(巫)와 예술’ 책은 전통 무속에서 시작된 설위설경의 자생적 생명력을 선보이며 설치 미술이나 무대 미술, 공예 등의 시선에서 현대 예술의 가능성을 선보인다. 또한 전문가 우종선의 논문 ‘법사와 행술-설위설경’, 설경 예술가 이재선·강창미의 설경 작품 58점과 그 제작 과정까지 모두 담았다. 

특히 우리나라 무속의 대가며 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들의 무가 1인극, 전위예술, 춤, 마임 등과 다양한 현대 예술 분야의 대가들의 현장감 있는 화보까지 담겨있어 가치를 더했다. 

한국민속극박물관 예술신서는 본 박물관이 보유한 콘텐츠를 바탕으로 제작되며 전통문화가 현대 예술로서 확장되어 나가는 과정을 기록하고 그 가치를 재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의미 있는 시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무구에 예술을 담다, 종이공예의 모습을 한 ‘설경’

처음 설경을 보면 어렸을 적 접했던 색종이 공예를 떠오르게 한다. 종이를 다양한 방법으로 접고 오려서 펼치면 화려한 문양이 나오는데 설경을 봤을 때도 비슷한 감상을 느끼게 된다. 흰색의 종이가 여러 가지 형상을 담고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엄숙하면서도 전통문화가 가진 유구성을 체감하게 된다. 

이 설경의 의미와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흔히 중요도와 크기에 따라 이 설경을 홑설경, 대설경으로 나눈다. 홑설경은 비교적 단시간 내에 끝낼 수 있는 독경에 적합하며 대설경은 3일 이상 걸리는 독경에 대비하여 제작한다. 
 

종이 부적의 형태를 지닌 설경도 존재했다. 설경(設經). 국립민속박물관
종이 부적의 형태를 지닌 설경도 존재했다. 설경(設經). 국립민속박물관

설경을 만드는 궁극적인 이유는 잡귀를 위협하고 잡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무구는 보편적으로 주술적인 목적을 가진 경우가 많다. 흔히 무당집이나 굿 현장을 직접 목격하면 형형색색의 종이들이 나부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생경한 광경에 위세가 느껴지고 이에 인간은 흔히 두렵다는 인상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이 설경의 경우엔 백색의 종이를 주로 사용하며 어지럽다는 느낌보다 깔끔한 위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설경의 존재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하자면 굿이 이뤄지는 장소인 굿청을 화려하게 꾸미는 기능과 함께 귀신을 잡아 가두기 위한 목적이 크다. 설경이 하나의 테두리가 되면서 그 안에 귀신을 잡아 가두려는 셈이다. 
 

설경 ⓒ 2019. Wooran Foundation All right reserved. 사진 홍철기 Photo by Cheolki Hong
설경 ⓒ 2019. Wooran Foundation All right reserved. 사진 홍철기 Photo by Cheolki Hong

설위설경은 과거에는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무속 문화였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는 설위설경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충청도 일원에서만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설경은 앉은굿의 가장 첫 번째 되는 도구이며 독경의 내용에 따라서 표현되는 문양도 여러 가지였다. 

하얀 한지 위에 표현된 설경의 문양을 수문이라 부른다. 이 수문을 종이에 칼로 파내거나 하여 제작하는데, 여기에 쓰이는 칼, 가위 등의 도구를 따로 제식에 따라서 보관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무속과 인간을 잇는 무구 제작 자체를 신성하게 여겼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앉은굿은 수복축원이나 부정을 없애며, 조상천도 등의 뜻을 담아 여러 가지 목적을 두고 이뤄진다. 그만큼 한지를 여러 모양으로 접어서 오리고 칼로 파내거나 하여 다양한 형태의 문양을 설경에 담을 수 있다. 
 

우란문화재단에서 열린 전시 ‘신물지神物紙’ 내부 전경 속 설경의 모습 ⓒ 2019. Wooran Foundation All right reserved. 사진 홍철기 Photo by Cheolki Hong
우란문화재단에서 열린 전시 ‘신물지神物紙’ 내부 전경 속 설경의 모습 ⓒ 2019. Wooran Foundation All right reserved. 사진 홍철기 Photo by Cheolki Hong

꽃 등 자연물을 문양으로 넣기도 하며 보살, 자물쇠, 철망 등의 의미를 담은 문양을 표현하기도 한다. 독경의 내용이나 목적에 따라서 그 무늬가 달라졌다고 하니 표현에 있어서는 비교적 다양성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어떤 특정한 형상을 담고 있는 경우나 기하학적 문양과 상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무늬도 찾을 수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활용되는 수문은 삼국지에 나오는 진법으로 팔문금쇄진이라고 한다. 

특히 그 크기가 크고 방대한 설경은 다소 복잡한 무늬를 담고 있는 것도 있으며, 본래의 목적은 귀신을 위협하고 가두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현대에는 하나의 종이공예로서의 가치를 느끼는 것 또한 가능하다. 


다양한 전통 종이 무구

설위설경은 대표적인 종이로 제작한 무구다. 앉은굿의 요소 중 일 순위로 여겨진다고도 볼 수 있으며 설경의 제작에 따라서 굿의 완성도를 예측한다는 관점도 있다. 그만큼 전통 무속문화에서 무구가 차지하는 부분이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종이로 제작한 전통 무구는 또 있다. ‘기메’는 제주도 지역에서 무속 의례 시에 쓰이는 무구 중의 하나로 그 역할은 인간 세상과 신의 영역을 구분하는 경계로서, 이와 동시에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공간을 마련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영혼기. 기메. /국립민속박물관
발전지, 기메. 국립민속박물관
발전지, 기메. 국립민속박물관

기메의 ‘기’는 다양한 형태의 깃발을 의미한다. 역시 의례의 성격에 따라서 용도를 구분할 수 있고 그 모양도 다르다. 대부분 종이를 접거나 오려서 여러 가지 모양을 표현한다. 과거엔 거의 백색의 종이로 만들었으나 현대에는 색이 들어간 종이로 이 기메를 제작하기도 한다. 기메는 구체적으로 신의 형상을 만들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제작된다. 

종이로 만든 꽃인 ‘지화’ 역시 무구로 사용되는 소재 중 하나다. 종이꽃을 의미하는 지화는 흰색의 종이나 오색 종이로 제작이 된다. 무당들은 이 지화를 제작하는 작업을 일컬어 ‘꽃을 피운다’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왼쪽부터 차례로 바라무, 법고무, 부채난등(불두화),경기도 무형문화재 제63호 지화장, /국가문화유산포털
왼쪽부터 차례로 바라무, 법고무, 부채난등(불두화),경기도 무형문화재 제63호 지화장, /국가문화유산포털

무속화의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해달꽃부터 수팔연, 애기씨 동자꽃, 서리화, 도산꽃 등 총 18가지로 여러 종의 지화가 존재한다. 이 의례용으로 사용되는 종이꽃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장인을 ‘지화장’이라고 부른다. 

지화는 일반적으로 무속에 쓰이는 종이꽃이라고 많이 알려져 있으나 가정의 복을 비는 가화, 제단을 꾸미는 등 무속에 쓰이는 무화 등으로 나뉜다. 또한 왕실의 잔치에서도 이 지화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를 궁중상화라고 부른다. 
 

'지화'를 디지털프린팅한 작품 /국립민속박물관
'지화'를 디지털프린팅한 작품 /국립민속박물관

일반적으로 이 지화를 만들 때는 생각보다 더 긴 시간을 소요한다고 알려진다. 염료를 만들기 위해서 잿물을 내려야 하며 창호지에 하나하나 천연 염색하는 과정을 거친다. 염색 후엔 한지에 망치를 사용해 꽃잎을 찍어 내는데 꽃받침을 먼저 만들기 위해 당겨가며 묶어준다. 

전주한지를 가지고 지화를 만든 전시도 눈길을 끈다. 이달 3월 17일부터 26일까지 총 10일간 전라북도청 1층 기획전시실에서는 전라북도무형문화재 제 18호 지화장 도홍 스님의 ‘전주 한지가 지화꽃을 만나다’ 전시가 진행된다. 본 전시에서는 침향 원목에 전주 한지로 꽃 피운 지화 49종 4900송이로 제작된 꽃길을 감상할 수 있다. 


전통문화는 종종 현대인에게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쓸쓸히 잊혀 가는 경향이 존재한다. 특히 무속의 특성상 세대가 지날수록 점점 관심을 받지 못하는 영역이 되어 가고 있어 그 문화를 이어가는 것이 어렵다. 

무구는 과거 무속 문화에서 여러 가지 목적에 의해 사용되어 왔다. 때로는 복을 기원하는 형상으로 쓰이기도 했으며 조상의 넋을 기리거나 부정을 없애기 위한 목적 등을 위해서 존재했다. 무구를 만들고 또 굿이 끝나면 이를 태워 버리는 과정을 통해서 사람들은 그 안에 염원을 담고 부정에서 벗어나길 빌었다. 

현대에 들어 무구의 의미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단순히 무속 신앙을 의미하는 도구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전통 공예의 한 갈래로 우리 주변에 자리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무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여러 현대 작가들의 활동이 눈에 띈다. 전통문화를 그대로 잊히도록 두는 것이 아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 또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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