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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져 있던 비밀의 도시, 페르세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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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져 있던 비밀의 도시, 페르세폴리스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03.04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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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상징이자 페르시아 제국의 국력이었던 왕궁
페르세폴리스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이란의 고대 왕조인 아케메네스 제국의 수도였던 페르세폴리스는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이란 고원을 중심으로 발달한 페르시아는 동쪽으로 인더스 강, 서쪽으로 터키 아나톨리아, 북쪽으로 중앙아시아, 남쪽으로 에티오피아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다스린 나라였다.

페르시아 제국은 여러 식민지의 문화를 인정하고 융합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고, 그 안에는 수많은 도시가 존재했다. 페르세폴리스는 수많은 도시 중 하나로 많은 사람들이 생활했던 도시가 아닌 국가의 주요한 행사를 치르는 곳이자, 보물을 보관하고 왕들의 안식처로 사용한 곳이었다. 

페르세폴리스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상징 그 자체였다. 오늘날 도시를 만들고 있는 이 유적은 산을 배경으로 반은 인공, 반은 천연의 거대한 석조 기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크기는 가로 455m, 세로 330m이다.


페르세폴리스의 탄생 

다리우스 1세 /국립이란박물관

페르시아 제국은 3대 왕 다리우스 1세에 의해 크게 발전했다. 인도와 그리스, 북부 아프리카, 지금의 러시아 남부 지역에 이르는 거대한 영토를 다스렸다. 1930년대 초 페르세폴리스 유적지를 발굴한 프랑스의 고고학자인 앙드레 고다르는 페르세폴리스의 터를 선택한 사람은 키루스 대왕이지만 테라스와 거대한 궁전을 태어나게 만든 건 다리우스 1세였다고 말했다.

페르세폴리스는 페르시아 제국의 새로운 시작을 원했던 다리우스 1세 치하에 페르시아의 수도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외딴 산간 지방에 위치한 이 도시는 제국의 통치자들에게 통행이 불편한 곳이 됐고 페르시아의 진짜 수도는 수산, 바빌론, 하마단이 주로 사용됐다. 페르세폴리스는 봄과 여름 기간 동안 왕실 귀족들의 거주지가 되었으며 다른 나라의 사신들이 왕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오던 곳이 되었다.

워낙 외진 곳에 위치한지라 페르세폴리스는 외부 세계와는 단절되어 비밀처럼 유지되었고, 미술품이나 공예품, 기록의 보관 등을 위한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 학자들은 아마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세폴리스를 약탈하기 전까지는 그리스인들도 이 도시를 몰랐을 거라 추측한다. 이 유적지는 페르세폴리스로 확인될 때까지 묻혀 있었다가 1931년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발굴이 시작되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페르세폴리스의 '왕좌 홀' /flickr

다리우스 1세는 페르세폴리스를 주로 아케메네스 왕가와 제국의 알현식과 연회를 위한 연회장, 연극 무대로 사용할 계획이었다. 그는 아파다나 궁전과 트리플 문(의회 회관)을 건설할 것을 명령했고, 이것은 그의 아들인 크세르크세스 1세 때 완성되었다. 페르세폴리스의 건물들은 아케메네스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굳건히 세워져 있었다. 

길이 455m, 폭 300m에 달하는 직사각형의 기단 위에 건설된 페르세폴리스는 대규모의 입구, 공식적인 홀, 개인의 방들이 안뜰을 통해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오늘날 볼 수 있는 페르세폴리스는 주로 크세르크세스 1세의 작품으로 기단의 북쪽 부분은 주로 접견실, 알현실, 크세르크세스의 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페르세폴리스는 복합 단지의 공간으로써 제한된 사람들에게만 접근이 허락되었다. 다른 쪽에는 다리우스 1세와 크세르크세스 대왕 및 후궁들의 왕궁, 의사당 등이 있다.

페르세폴리스의 기단은 다리우스 1세가 정상의 자리를 계속 누린 곳이기도 했다. 훗날 다리우스 1세와 다름없는 많은 왕들이 끊임없이 나타나 적을 정복하고 왕위를 지켜 나간 이곳에는, 조각되어 있는 사람들의 모습처럼 전사, 호위병, 고관, 그리고 공물을 가져온 여러 국가들의 사신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공물을 운반하는 사람 /Aryamahasattva, CC BY-SA 3.0

이후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파괴된 페르세폴리스에는 큰 불이 나 나머지 도시까지 덮쳤다. 많은 역사가들은 이 화재가 페르시아의 저항이자 페르시아 왕정의 상징적인 매개체였던 페르세폴리스를 파괴하려고 했던 정치적 목적으로 일어난 것인지도 모른다고 추측한다. 과거 아테네를 침입했던 페르시아 군대가 파르테논 신전을 파괴한 것에 대한 복수라는 것이다. 

주변 나라의 기록이 많았던 그리스조차 페르세폴리스에 대해 기록을 남겨두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페르세폴리스에 대한 의문은 많지만, 많은 학자들은 페르세폴리스 그 자체가 그 시대를 대표했던 유적지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페르세폴리스의 여러 유적지 

아파다나 /flickr

다리우스 1세는 페르세폴리스에 가장 위대한 궁전을 지었다. '아파다나'라고 불린 이 궁전은 크세르크세스 1세가 완공했다. 궁전에는 72개의 기둥이 있었으며, 그 중 13개는 아직도 거대한 위엄을 자랑하며 땅 위에 서 있다. 홀 안에는 무려 1만 명의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었으며 기둥들은 넓고 무거운 천장의 무게를 지탱했다. 

기둥의 꼭대기는 사자, 독수리, 소 같은 동물 모양의 조각으로 만들어졌다. 궁의 벽은 사자, 소, 꽃 그림으로 장식되었다. 다리우스 1세는 그의 이름과 더불어 나라의 주요 사항들을 접시에 새기도록 했고, 이것은 돌로 만든 상자에 보관되었다. 계단에서 보이는 조각은 왕에 대한 영원한 충성의 증표로 은제품, 무기, 보석, 각 도시의 특산품을 바치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당시 다리우스 1세의 권력의 힘을 알 수 있다.
 

아파다나 벽면에 있는, 공물을 바치러 온 사신들의 모습 /flickr

특히 이 계단에 조각된 모습들은 20여개국의 대표들이 왕에게 바치는 귀중한 선물을 가져오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이 조각들은 사신들의 행렬을 그리고 있으며 수행원들을 이끄는 사신들이 조공을 바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파다나는 정치적인 의미에서도 페르시아 왕의 권위를 보여주었다는 점, 거대한 아케메네스 제국을 상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만국의 문 /flickr

만국의 문은 크세르크세스 1세가 세운 것으로, 문 양쪽에는 돌로 만든 황소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한 반인반수상 라마수가 지키고 있다. 이 문의 기능은 방문객의 출입 허용뿐만이 아닌, 사회적 위치가 높은 사람만이 드나들게 해 놓았다. 실제로 이 문을 통해 왕궁으로 들어가는 건 높은 위치의 귀족과 왕자들 뿐이었다.

만국의 문은 다른 건축물에 비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전설의 길조였던 호마상도 기둥 위 늠름한 모습을 뽐내고 있다. 상상의 새인 호마상은 그 아래로 지나가면 행운이 온다고 사람들이 믿었던 길조였으며 왕을 상징하기도 한 새이다. 
 

라마수 /flickr

입구에 있는 반인반수인 라마수는 바빌로니아에서 악마를 몰아내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 황소의 몸에 독수리의 날개, 수염을 기른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페르시아 제국은 강력한 군사력으로 주변 나라들을 정복했지만 피정복민들을 관용으로 다스렸다고 한다. 많은 나라의 사신들이 페르시아의 왕을 알현하기 위해 이 문을 통과했으며, 이 문을 건설한 크세르크세스 1세의 이름을 따 '크세르크세스의 문'이라고도 부른다. 
 

낙쉐 로스탐 /flickr

페르세폴리스에서 북서쪽으로 약 4.8km 떨어진 곳에는 낙쉐 로스탐이란 장소가 있다. 이곳은 다리우스 대왕과 그의 후계자들이 절벽에 그들의 기념비적인 무덤을 조각한 곳이다. 다리우스 1세는 이곳을 자신의 무덤으로 선택했으며, 그의 후계자들은 절벽에 있는 다리우스 1세의 무덤과 배치 자체를 똑같이 따라해 그들의 무덤을 조각했다.
 

무덤의 모습 /flickr

무덤의 정면은 마치 십자가처럼 구성되어 있으며, 무덤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바위 깊숙한 곳에 있다. 무덤들 아래에는 어떤 이들이 신을 만나고, 또 다른 이들은 전투 중인 모습이 바위에 새겨졌다. 

다리우스 1세의 무덤은 비문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그의 정복 일대기와 다양한 업적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만들어진 날짜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의 통치기간이 끝나기 1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라 추정한다. 아케메네스 제국은 고대에서 곧 가장 큰 제국이었으며, 그의 끝없는 영토 확장은 유럽의 마케도니아와 트라키아, 북아프리카의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의 바빌론과 아시리아 등의 지역을 모두 포함했다. 
 

다리우스 1세의 비문 /CC BY-SA 4.0

'...(생략)....나는 다리우스 왕이다. 왕의 왕이요. 모든 사람들이 있는 나라의 왕이요. 이 넓은 땅에 있는 왕이요. 페르시아 왕이요.
다리우스 왕은 이렇게 말한다. 전지전능한 신 아후라마즈다의 권능으로 내가 페르시아 밖에서 점령한 나라들아. 내가 그들을 다스리고, 그들은 나에게 공물을 바치며, 그들은 나의 법을 굳게 지킨다. 
다리우스 왕은 이렇게 말한다. 아후라마즈다, 그는 이 땅이 소란스러운 것을 보고 그 뒤에 나에게 이 땅을 내려 주시고 나를 왕으로 삼으셨다. 
아후라마즈여, 내가 죽지 않도록 지켜 주시고, 나의 왕실과 이 땅을 지켜 주십시오....(후략)'


다른 세 개의 무덤은 그의 직계 후계자인 크세르크세스 1세,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다리우스 2세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이후 이 무덤들은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아케메네스 제국 정복 후 약탈당해 사라졌다. 


페르시아 제국이 스러져 간 자리에 남은 페르세폴리스 

페르세폴리스 /flickr

패망한 제국의 수도로 남아 잊혀져 있었던 유적지는 폐허와 잔해 사이에 남았던 기둥들 때문에 한때 이 지역 주민들에게는 '40개의 기둥이 있는 장소'로만 알려져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예전의 영광은 사라지고 없지만 주요 건물에 존재했던 현관, 바닥을 만드는 데 쓰였던 마름돌 등은 세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모습으로 남았다. 

페르세폴리스가 발견된 이후 발굴은 계속되었고, 한때 위대한 도시였던 제국의 경이로움을 지금이나마 경험하기 위해 온 세계의 관광객들은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 하지만 페르세폴리스에는 여타 유적지와 같이 아직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가 많고, 지금도 수많은 학자들이 의문을 풀기 위해 연구와 발굴을 지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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