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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산수화로 떠나는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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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산수화로 떠나는 산책 
  • 윤미지 기자
  • 승인 2021.02.19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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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 ‘관념산수화’와 ‘진경산수화’

[핸드메이커 윤미지 기자] 코로나19로 인해 외부활동에 제약이 생기며 자연을 둘러보고 산책할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도시 생활이 익숙한 현대인의 경우 종종 자연에 대한 동경을 가지곤 한다. 놀라운 것은 과거 선대의 모습에서도 자연을 통해 민족의 자긍심을 가지며 아름다운 한반도 풍경에서 감명을 받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옛 조상들에게 자연은 다양한 모습으로 인식됐다. 자연을 하나의 유토피아로 생각하며 몽환적으로 표현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운치 있는 절경 그 자체를 즐기고 이를 자랑거리로 남기고자 화폭에 담는 시도도 있었다. 자연을 대하는 조상의 마음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여러 폭의 산수화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진다. 

산수화는 우리의 산천을 소재로 하여 산과 물 등 자연의 경관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동양에서 그려진 산수화의 역사는 긴 편이라고 할 수 있으나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산과 물이 그려지기 시작한 것은 고려 시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산수화에는 당대 사람들이 자연을 생각하는 태도가 반영된다. 자연이 어떤 식으로 표현되는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에 따라서 그 중요도를 짐작하게 된다. 
 

산수화, 수묵의 표현이 눈에 띈다, 국립민속박물관
산수화, 수묵의 표현이 눈에 띈다, 국립민속박물관

우리는 산수화라고 하면 흔히 웅장한 산을 소재로 한 수묵화를 많이 떠올리곤 한다. 먹의 농담을 통해 소재를 표현하는 수묵화는 동양화의 대표적 영역이지만 서양화가 중심이 된 현대 사회에서는 왜인지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산수화는 수묵화의 개념 이전에 우리 땅에 대한 조상의 애정이 담겨 있는 그림이다. 단순한 수묵의 사용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산수화를 들여다보면 그 시대 자연이 가진 또 다른 유토피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시대에 따라 달랐던 회화 속 산수의 모습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한다. 동양화에 있어서 산수 표현은 서양화와 조금 다른 관점을 가진다. 산수화는 당대 사람들이 자연에 관해서 어떤 인식과 태도를 가졌는지 보여주는 좋은 단서가 된다. 물론 모든 시대상에서 자연이 차지하고 있는 의미가 특별했던 것은 아니다. 

과거 본격적인 산수화가 그려지기 이전에는 산이나 자연의 모습이 회화 속에 한 요소로서 등장했다. 삼국시대에는 인물화가 전반적인 화폭의 흐름을 지배했다고 볼 수 있다. 인물화는 산수화와 함께 한국 전통화의 특징적인 분야이며 역사 속의 흐름과 그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본격적인 산수화의 등장 이전에는 인물을 그리는 일이 주요한 흐름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산수의 표현은 인물화의 배경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자연에 관한 관심도에 따라서 그 표현이 커지거나 작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산수화가 본격적으로 그려지기 전 시점에는 산의 표현이 인물보다 작게 그려지는 예도 있었으며 이는 삼국시대 초기에 주로 발견할 수 있는 그림의 양상이었다. 과거 중요한 요소는 더 크게 그리고 그에 비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작게 표현하는 경향이 존재했는데 삼국시대 초기에는 자연에 관한 인식이 그다지 높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산수화가 본격적으로 그려진 것은 고려 시대부터이다. 그 이전에는 인물과 삶의 모습이 주요 대상이 되어 그려졌다면 고려 시대부터는 자연 자체가 화폭에 중심적으로 다뤄졌다. 이 시기 자연에 관한 인식이 비교적 높아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며, 고려 중기 상류 계층인 사대부 문화의 확대는 회화의 발전과 함께 산수화 등 자연을 직접적으로 그리는 일 또한 활발하게 이뤄졌던 배경으로 보인다. 
 

선비의 곧은 지조를 뜻하는 매화는 사군자 중 하나다. 사군자도(四君子圖)-매화[梅], 국립민속박물관
선비의 곧은 지조를 뜻하는 매화는 사군자 중 하나다. 사군자도(四君子圖)-매화[梅], 국립민속박물관
사군자도(四君子圖)-대나무[竹], 국립민속박물관
사군자도(四君子圖)-대나무[竹], 국립민속박물관

당시에는 직업 화가 외에도 신진 사대부라 불리는 상류 계층 그리고 왕도 그림을 그렸다. 이들이 화폭에 담은 문인화는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고 있으며 선비의 벗이라 칭하는 사군자 등 여러 가지 주제가 그림으로 표현됐다. 매화·난초·국화·대나무를 일컫는 사군자는 하나의 소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성질을 통해 시대의 선비 정신을 이야기했다. 자연이라는 소재가 회화에 있어서 점점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고려 시대 회화의 발전을 예측할 수 있다. 고려 시대에는 많은 분야에서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 회화 역시 다르지 않았다. 중국 명나라와의 회화 교섭을 통해 고려 시대의 그림도 변화하게 되는데 이때 산수화가 본격적으로 발달하게 된다. 조선 전기에 유행했던 산수화가 중국식 화풍을 담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산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관념산수화’와 ‘진경산수화’

조선 시대 산수화를 바라보는 관점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산을 상상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자연의 풍경을 몽환적으로 그려낸 ‘관념산수화’와 실제 자연의 풍경을 담은 ‘진경산수화’로 이를 분류한다. 두 가지 모두 자연의 모습을 담고 있는 풍경화지만 화폭에 표현된 산의 모습을 보면 확연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관념산수화는 조선 전기의 작품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자신의 상상 속 풍경을 직접 화폭에 옮긴 것으로 중국풍 양식으로 그려졌던 것이 일반적이다. 크고 웅장한 산의 모습을 신비하게 담았다는 것이 특징인데 상상 속의 유토피아를 산이라는 소재에 투영한 느낌을 받게 된다. 
 

조선 초기 관념산수화의 특징이 잘 보여진다, 보물 제 1864호 소상팔경도 중 하나, 진주박물관
조선 초기 관념산수화의 특징이 잘 보여진다, 보물 제 1864호 소상팔경도 중 하나, 진주박물관

조선 전기의 화가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가 대표적으로 관념산수화의 특징을 담고 있다. 안견은 조선 초기부터 중기까지 화단에 많은 영향을 미친 화가다. 도화서 화원으로 활동했으며 주로 산수화에 특기를 가졌다고 알려졌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안견의 그림으로는 여러 점이 존재하지만, 몽유도원도는 그가 그린 것으로 확실히 평가받는 작품으로서 유일하다. 세종의 아들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무릉도원을 이야기하고 여기에 안견의 상상이 담기면서 화폭으로 완성된 그림이다. 신선이 노니는 듯한 도원경의 모습으로 그림의 양식에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몽유도원도, 안견, 공유마당,CC BY
몽유도원도, 안견, 공유마당,CC BY
조선회화 전 안견필 산수도, 사시팔경도 중 만동, 국립중앙박물관
조선회화 전 안견필 산수도, 사시팔경도 중 만동, 국립중앙박물관
사계절 산수, 안견, 국립중앙박물관
사계절 산수, 안견, 국립중앙박물관

몽유도원도의 배경이 된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에서 그는 복숭아 향이 나는 아름다운 동산을 봤다고 한다. 이 역시 중국의 시인 도연명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진다. 몽유도원도는 관념적인 성격을 가진 중국풍의 산수화 특성을 여러모로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 산수화에 큰 영향을 미친 몽유도원도는 현재 국내에서 소장하지 않고 있으며 일본의 덴리 대학 중앙도서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다소 중국풍경의 느낌이 담겨 있어 이국적인 모습을 가진 관념산수화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산수를 표현했기 때문에 민족적인 자긍심을 담기에는 부족했다. 동양의 산수화가 일반적인 풍경 그림과 다른 점은 여기에 존재한다. 

산수화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기보단 그 안에 내재 되어 있는 정신을 표현한다. 하지만 관념 산수화는 중국의 사상을 담고 있어 조선의 색을 표현하기에 부족했다. 그래서 등장하게 된 화풍이 진경산수화라고 할 수 있다. 

진경산수화는 18세기 조선 후기에 유행했던 화풍의 하나다. 우리나라의 산천을 주제로 그린 그림이라 할 수 있으며 실제 자연 풍경을 보고 그렸기 때문에 매우 사실적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중국의 것이 아닌 진짜 우리의 모습을 담자는 관점에서 탄생했다고 볼 수 있는 이 진경산수화는 조선 시대 사대부들을 중심으로 그려졌다. 당시 왜란을 겪었던 민족의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한반도의 자랑거리인 아름다운 산천을 그리는 것을 통해 우리 것에 관한 자긍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진경산수화는 직접 우리나라 곳곳을 돌아보고 그 시대의 참모습을 담고자 했던 뜻이 담겨 있으며 민족의 얼을 표현한다. 조선 후기의 화가 겸재 정선 역시 우리나라를 직접 여행하며 그 산천의 풍경을 화폭에 담고자 했다. 
 

인곡유거 by 정선, 공유마당, CC BY
인곡유거, 정선, 공유마당, CC BY
단발령에서 바라본 금강산, 겸재 정선, 국립중앙박물관
단발령에서 바라본 금강산, 겸재 정선, 국립중앙박물관

겸재 정선은 진경시대의 대표적 화가로 그 시기 최대 전성기에 활동했다. 진경시대는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조선만의 고유한 문화를 갖도록 이념의 변화가 발생한 시기이다. 전반적으로 관념적인 그림에서 벗어나 서민들의 삶, 희로애락을 담은 풍속화 등 극사실주의 그림 등이 크게 유행했다. 겸재 정선의 그림에서도 이와 관련된 양상을 찾아볼 수 있다. 겸재 정선은 실제 조선의 산수를 사실적으로 그려냈으며 진짜 우리의 정서와 민족성이 담긴 화폭을 남긴 화가라고 볼 수 있다. 

금강전도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산인 금강산 일만이천 봉의 모습을 담은 정선의 대표작이다. 봉우리들의 모습을 한데 모아 하나의 화폭에 담았으며 음양의 정신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정선은 금강산을 주제로 한 산수화를 여러 차례 그렸으며 완전히 우리 민족의 땅, 그리고 이전에 없던 새로운 기법을 통해 진경산수화를 완성했다. 
 

금강전도,정선,공유마당,CC BY
금강전도, 정선, 공유마당, CC BY

정선이 그린 인왕제색도 역시 그가 남긴 걸작으로 평가된다. 인왕제색도는 비가 오고 나서 갠 후, 인왕산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비가 오고 나서의 청량감 가득한 조선의 산천을 감상할 수 있다. 정선은 물 먹은 돌산을 어둡게 그려 사실적 표현을 담았으며 이와 대비되는 형태로 자욱한 물안개를 밝게 그렸다. 

그는 고령에 이 인왕제색도를 그리게 되는데 역시 우리 산천의 모습을 자신만의 화법으로 화폭에 담아 고유성이 느껴지는 진경산수화를 그려냈다.

산수화는 여러 시대를 거치며 다양하게 변화해왔다. 자연은 인간의 상상 속에서 한 번쯤 살아보고자 하는 유토피아 같은 존재이기도 했으며 그 이상은 그림을 통해서 실현되곤 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몽환적으로 그려냈던 것은 어찌 보면 이국적인 풍경에서 얻는 상상의 즐거움, 자연에 가진 이상이 잘 표현되었던 사례라는 생각이 든다.

산수화는 자연스럽게 실경의 아름다움을 담는 화풍으로 변모하게 된다. 상상 속에 존재하는 산수의 모습이 아닌 실질적 존재에서 영감을 얻고 이를 화폭에 담아 우리 문화만의 독창성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산수화를 그린 관점은 다르더라도 모두 자연에 가진 이상향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을 동경하는 방법은 각기 다르다. 실존하지 않은 경치를 표현했다는 것과 존재하는 산천의 아름다움을 그렸다는 차이점은 가지고 있으나, 두 가지 모두 자연을 낙원으로 삼고 높은 가치를 투영했다는 부분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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