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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침을 경계하는 잔 ‘계영배’, 삶의 지혜가 투영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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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침을 경계하는 잔 ‘계영배’, 삶의 지혜가 투영되다
  • 윤미지 기자
  • 승인 2021.02.17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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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는 지혜를 담고 있는 물건들

[핸드메이커 윤미지 기자] 우리는 때론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보고 삶의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바쁜 현대 사회를 살아가며 삶의 중심을 잃을 때도 있지만 항상 기억해야 할 신조가 있다면 이를 잊지 않기 위한 방편으로 마음의 거울처럼 사물을 곁에 둘 때가 있다. 

흔히 과유불급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을 갖는 고사성어이다. 이 과유불급의 진리는 살면서 항상 마주치게 된다. 너무 모자라도 안되지만 지나친 것을 경계해야 함은 꼭 현대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닌, 과거에도 통용되었던 말이다. 
 

계영배 /윤미지 기자

조선 시대에는 이 과유불급을 관통하는 진리가 반영된 잔이 존재했다. 바로 ‘계영배’라고 불리는 잔이다. 놀라운 것은 이 계영배와 동일한 의미, 비슷한 원리를 적용한 컵이 해외에도 있다는 것이다. 역사 속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의미가 투영된 잔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속죄의 마음을 담아 만든 잔, 계영배 

계영배의 외관을 처음 접하면 일반적인 잔의 모양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언뜻 겉모습을 보아서는 다른 점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독특한 부분이 발견된다. 잔의 가운데 기다란 형태의 기둥이 존재한다는 것과 잔을 뒤집어 보면 밑바닥에 아주 작은 구멍 하나를 찾을 수 있다. 

계영배는 술을 잔에 따를 때 일정한 기준을 넘어서면 그대로 빠져나가도록 제작한 잔이다. 자연스럽게 과음을 막게 되는 잔이며 때로는 ‘절주배’라고 부르기도 한다.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뜻을 가진 계영배는 관형으로 제작된 것과 종형으로 제작된 것이 있다. 두 가지 모두 원리는 비슷하며 앞서 언급한 잔의 가운데 기둥이 존재하는 것이 종형으로 제작된 계영배이다. 
 

잔의 가운데 기둥이 존재하는 종형 계영배 /윤미지 기자 
잔의 가운데 기둥이 존재하는 종형 계영배 /윤미지 기자
계영배의 아래 부분에는 작은 구멍이 존재한다 /윤미지 기자
계영배의 아랫 부분에는 작은 구멍이 있다 /윤미지 기자

계영배는 특정 원리가 적용되어 절대 술잔을 가득 채울 수 없는 잔이다. 보통 절주를 권할 때 이 계영배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하기도 하며 술을 가득 따르는 순간 잔에서 물이 새어나가는 현상을 눈으로 직접 보면 우리는 과한 것은 모자란 것과 같다는 이치를 금방 깨닫게 된다. 

2007년 중국 베이징에서 있었던 북핵 6자회담에서도 이 계영배에 대한 일화가 있었다. 북한의 과다한 요구에 아·태 차관보를 지낸 크리스토퍼 힐이 이 계영배를 언급하며 북한 설득에 나섰던 일이다. 그는 주한 미국대사 때 선물로 받았던 계영배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고 너무 욕심이 과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내용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그렇다면 과함을 경계하는 이 계영배는 언제 처음 만들어진 것일까. 고대 중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의기’라는 잔의 존재를 찾아볼 수 있으며 한국에서는 도공 우명옥이 이 계영배를 만들어냈다고 전해진다.

도공 우명옥은 왕실의 진상품을 만들던 광주분요에서 당시 스승도 만들지 못했던 설백자기를 만들며 명성을 얻게 됐다. 그는 본래 이름이 없는 도공으로, 그저 우삼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자였다. 과거 강원도 산골에 살며 질그릇을 만들어 팔던 그가 왕실의 진상품을 만들고 인정을 받아 명예를 갖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그는 술과 여자에 빠져 전 재산을 탕진했다고 전해진다. 모든 것을 잃고 다시 그릇을 만들기 위해 스승을 찾아가게 되는데, 이때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그릇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다시 그릇을 만들게 되며 두 번 사는 삶을 얻은 그는 방탕했던 지난날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이 계영배를 제작했다. 그렇게 계영배는 과유불급을 가르치는 잔으로서 후대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조선 시대 실학자 하백원 또한 이 계영배를 제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기도 하다. 
 

속죄의 마음을 담아 만든 잔, 계영배. 술을 잔의 7할이 넘는 부분까지 채우면 아래로 모두 빠져버린다. /윤미지 기자

이 계영배에 관한 일화는 다양하다. 조선 시대 후기의 최고 거상 임상옥은 이 계영배를 항상 곁에 두고 과욕을 다스리며 자신을 절제했다고 한다. 임상옥의 이야기는 최인호 작가가 지은 소설 ‘상도’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그는 평안도 의주 출신으로 최초의 인삼 교역권을 가졌던 상인이다. 그는 자신의 문집 ‘가포집’을 통해 ‘자신을 낳은 것은 부모님이지만, 자신을 이루게 한 것은 하나의 잔’이라며 계영배를 언급했다. 

그는 조선의 무역가, 상인으로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며 입신공명을 이루지만 그뿐만이 아니라 재산을 독점하지 않으며 자신을 제어하는 삶을 살아, 현대까지도 그의 이야기가 교훈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계영배의 원리는 독특하다. 기압차와 중력을 이용하여 액체를 이동시키는 사이펀의 원리가 적용되어 있는데 술이 적당히 차면 그대로 머물지만, 잔의 7할의 양을 넘어버리면 압력차로 인해 관을 통해서 술이 빠져나가는 것이다. 

사이펀이란 본래 액체를 기압차와 중력을 활용해서 쉽게 다른 곳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연통형의 관이다. 관의 내부에 가해지는 압력이 핵심적인 요소인데 안쪽의 물이 완전히 채워지지 않아 공기가 남아 있는 경우에는 균형이 유지되어 물이 이동하지 않는다. 이때 관에 인위적으로 물이 채워지게 되면 압력 차이가 생기게 되고 물이 빠져나가는 현상을 겪게 된다. 

계영배의 내부 모습을 보면 이 사이판의 원리가 적용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빛의 과학, 문화재의 비밀을 밝히다’ 전시에서 이 계영배의 내부 모습과 어떤 원리에 따라 제작됐는지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본 전시는 가시광선 이외에 X선과 적외선 등의 빛을 통해 문화재를 들여다보고 문화재의 제작 시기, 사용 방법 그리고 문화재에 숨겨져 있는 비밀 등을 상세히 알아보는 공간이다. 과학을 통해서 여러 가지 문화재들이 가진 비밀스러운 부분을 발견하는데, 빛을 사용해 계영배의 내부 모습 또한 볼 수 있다. 

과거 중국의 사상가 공자 역시 유좌지기를 거울삼아 자신의 마음을 돌아본 역사가 있다. 유좌지기란 인간의 욕심을 경계하기 위해서 항상 곁에 두고 바라봤던 그릇을 말한다. 중국 주나라 제환공은 비었을 때는 기울어져 있다가 술을 반쯤 채우면 똑바로 서고, 그 이상을 부어버리면 넘어가 버리는 그릇을 가지고 있었다. 후에 제환공이 죽고 나서 공자가 그의 사당을 찾았을 때 이 그릇을 발견하는데 사당 지기에게 이 그릇의 용도를 묻는다. 
 

공자 동상 픽사베이
중국의 사상가 '공자' 동상 /픽사베이

항상 곁에 두고 보는 그릇으로 속이 비면 기울고, 물이 적당히 차면 바로 서고, 가득 채우면 엎질러지는 그릇이란 이야기를 들은 공자는 여기서 깊은 감명을 받고 이를 마음에 새겼다고 한다.

삶의 깨우침을 담은 여러 가지 물건은 이렇게 한국과 중국의 역사에서 모두 찾아볼 수 있다. 두 가지 모두 넘치는 것은 좋지 않으며 적당한 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놀라운 것은 고대 그리스에도 이에 관한 교훈을 담고 있는 물건이 존재했다고 한다. 지나침에 대한 경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르침이었다고 볼 수 있다. 


탐욕을 피하라, 피타고라스의 컵

사모스섬은 기원전 6세기 그리스 철학자 피타고라스의 고향이다. 우리에게 피타고라스의 정리, 황금비 등으로 유명한 그는 수학가이면서 고대 서양 철학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다.

계영배의 뜻을 비슷하게 담고 있는 잔이 서양에도 존재했는데 이를 피타고라스의 컵이라 부른다. 이 컵 역시 일정 분량 이상 잔을 채우면 내용물이 밑으로 모두 새어 나와 버려 이를 탐욕의 잔이라 일컫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계영배와 상당 부분 유사성을 보이는 것은 물론 이 컵 역시 사이펀의 원리가 비슷하게 적용되어 있다.

피타고라스가 고안해 제작했다고 전해지는 이 피타고라스의 컵은, 그의 고향이었던 사모스섬의 물이 부족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사모스섬의 포도주는 고대부터 고급 포도주로서 인정받았으며 그 가치는 아직까지 전해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컵에 일정 분량 이상 물이나 와인을 채우지 못하도록 하여 물을 아끼기 위해 이 컵을 만들었다고 알려진다. 
 

피타고라스의 초상 /픽사베이
사모스섬에 위치한 '피타고라스' 동상 /픽사베이
사모스섬에 위치한 '피타고라스' 동상 /픽사베이

피타고라스의 컵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 있다. 바로 탄탈로스의 컵이다. 탄탈로스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제우스의 아들이며 프리기아의 왕이었다. 그는 신들의 애정을 받으며 그들이 모이는 연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스스로 신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 과신했고, 신들의 음식을 지상의 친구들에게 나눠주며 자랑하기에 이른다. 결국 그는 제우스에게 벌을 받게 되며 지옥에 떨어져 끝없는 굶주림과 목마름을 겪게 된다. 탄탈로스가 물을 먹기 위해 몸을 숙이면 물이 빠져 버리고 과일을 먹기 위해 손을 뻗으면 그만큼 과일이 멀어져서 이를 맛보지 못했다. 다른 추측으로는 탄탈로스가 신들을 시험하려 들어 지옥에서 이와 같은 벌을 받게 됐다는 이야기도 존재한다.
 

De kwelling van Tantalus-Bernard Picart(버나드 피카르)/Rijksmuseum(네덜란드)
De kwelling van Tantalus-Bernard Picart(버나드 피카르)/Rijksmuseum(네덜란드)

현대에 존재하는 화학 실험 기구인 탄탈로스의 접시는 여기서 유래됐다. 물이나 액체가 부풀어 오르다가 정해진 수치를 넘어가면 모두 쏟아져 버리는 화학실험 기구다. 

때론 어떤 사물을 통해 삶의 지혜를 얻는 일도 있다. 일상을 살아가며 과욕이 드는 순간을 겪는 것 역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탐욕을 항상 경계해야 하며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는 말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통용되는 진리이다. 계영배부터 피타고라스의 컵까지 모두 절제의 미덕에 관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바쁜 일상 속에 과욕이 올라오는 순간이 있다면 공자도 항상 곁에 두고 바라보며 스스로 정제하려 했던 유좌지기를 교훈 삼아 절제를 행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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