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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알고 소중히 지키는, 각국 도시의 대표적인 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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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알고 소중히 지키는, 각국 도시의 대표적인 종이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02.03 1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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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로 만든 종이접기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한지는 '우리나라 종이'란 뜻으로 닥나무를 주재료로 해 '한지발'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손으로 떠낸 종이다. 어원에 대해서도 다양한 설이 있지만, 우리나라 종이라는 의미도 있고 추운 겨울날 종이의 품질이 좋고 찰지다고 해 한지라고도 한다. 한지는 백지(白紙)라고도 불렀는데, '백의민족'이란 말처럼 한지가 하얗고 백번 손이 간다고 해서이다. 

'한지'는 예부터 주변 국가에까지 널리 알려졌으며, '닥'을 주원료로 하여 만들어져 순우리말로 '닥종이'라고도 불렸다. 인류 역사에서 문화의 발달은 종이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한지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구체적인 증거는 없지만,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까워 고대부터 문물 교류를 통해 중국의 제지 기술이 유입되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이후 창조적인 기술 개량을 통해 종이 생산에 힘썼고, 신라 시대에 이미 중국에 희고 곱게 다듬은 종이를 수출했다. 고려 시대에 들어서는 수공업의 전문화와 인쇄술과 제지술이 발달하면서 질 좋은 종이를 수출하게 되었다. 특히 중국의 걸러뜨는 방식과 달리 우리는 외발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뜨는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희고 광택이 있으며 질긴 종이를 생산, 수출해 중국뿐을 비롯한 인접 지역에까지 널리 알리게 된다.

원주에서는 22년째 원주한지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지난 2020년 9월 3일부터 3일간 진행된 원주한지문화제는 코로나19로 인해 처음으로 비대면 축제로 열렸지만 온라인 전시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해, 홈페이지와 유투브 등을 통해 총 37만여명이 방문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밖에도 종이로 유명한 도시를 찾아보자면 프랑스 앙베르의 리샤르드바, 일본 미노의 미노 와시, 이탈리아의 파브리아노 등이 있다. 각자 종이라면 자신있다 할 정도로 종이로 유명한 이 도시들은 각각 어떤 특징이 있을까. 


원주의 한지 

한지 /한지테마파크

원주는 좋은 닥나무밭이 많아 옛날부터 '한지의 본고장'으로 불렸다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닥나무가 원주의 특산물로 기록되어 있으며, 원주에 닥나무(楮 : 닥나무 저)밭이 많다고 하여 '저전동면'이라는 지명도 남아 있다. 원주는 토양이 좋고 햇빛이 많아 닥나무가 잘 자라는 환경을 갖고 있다. 조선왕조 500년의 강원감영이 있던 곳으로 행정관청 및 기관에 종이를 공급하기 위해 강원감영 일대에 자연스럽게 한지 마을과 인쇄 골목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故 김영언(한지 장인)한지가 일본으로 수출되었고, 1985년에는 우리 전통 한지 7~8종류를 영담스님이 재현하여 문화공보부의 추천으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직지심경과 왕오천축국전의 영인용 한지를 원주에서 납품하기도 했지만 1970년대부터 펄프를 원료로 대량 생산체계를 갖춘 ‘양지’가 들어오면서 한지는 모든 쓰임새에서 입지가 약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제종이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지속되었다.

1991년만 해도 원주시 단구동 주변을 중심으로 한지 공장이 15개나 있었으나, 이마저도 90년대 후반 급격히 감소하여 현재는 우산동 부근 두 곳의 한지 공장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지를 만드는 과정 /한지테마파크

원주 한지의 특징은 오색 한지로, 전지공예 작품 제작에 많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한지의 질이 좋은 이유는 원주가 닥나무 재배의 최적지이며 깨끗한 물이 흐르는 곳이기 때문이다. 원주의 닥나무는 중부 내륙지방의 알맞은 기후와 환경에서 육성되어 품질의 우수성을 갖췄다. 특히 한지의 주 원료인 닥나무는 원주의 산과 들, 논둑과 밭에서 자생하고 있으며 원료를 거둬들여 물에서 세척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깨끗한 수질은 강하고 질긴 원주 한지의 특성을 나타낸다.

원주에서 사라져가는 문화인 전통 한지 제작에 시민들이 점차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1999년 시민 문화 운동의 결실인 ‘원주한지문화제’가 처음으로 개최되어 현재도 유치되고 있다. 그 이후 한지에 대한 체계적인 아카이브 작업 및 국내는 물론 세계 속의 한지 문화를 알리기 위해 2001년 사단법인 한지개발원이 설립되었고, 민관 협동 하에 2010년 9월에는 한지문화예술 플랫폼 “원주한지테마파크‘를 조성했다.
 

원주 한지로 만든 등 /한지테마파크

2011년부터 한지개발원이 위탁 운영을 맡아 한지 관련 문화예술교육 실행과 한지 전문인력 양성, 해외문화예술교류, ‘원주한지문화제’라는 축제를 통해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축제는 시민과 함께 하는 한지가 현대와 어우러져 시민의 문화예술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 앙베르의 리샤르드바 

리샤르드바 /1300k

690년 전통이 그대로 남아 있는 종이 방앗간 Richard de bas(리샤르드바)는 물과 나무가 풍부하여 종이 제조에 안성맞춤인 프랑스의 작은 도시 앙베르에 위치해 있다. 앙베르 지역은 물이 풍부해서 종이 제작 공정의 주요 동력원인 물레방아를 사용하기 좋은 환경이며, 약산성의 물이 종이를 부드럽고 탄력 있게 만들어 고품질의 종이를 생산하기 적합하다. 

종이 방앗간이 앙베르에 자리잡게 된 건 과거 십자군 전쟁시 이슬람에 포로로 잡혔던 3명의 십자군이 다마스쿠스에서 종이 제조의 비법을 갖고 돌아온 것이 시작이다. 이 곳 출신이었던 세 명의 십자군은 앙베르에 정착했고, 특히 물이 많이 흐르는 이 골짜기를 선택하며 앙베르에는 종이 제조의 부흥기가 찾아왔다.

한때는 종이를 제작하는 가게만 약 300여개에 이를 정도로 번성했으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수요가 줄어들면서 이제는 리샤르드바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리샤르드바는 페도로 가문에서 3대째 이어가고 있으며 장소, 장비, 기술 모두 690년 전 그대로를 고수하고 있다. 전통의 방식으로 면과 마로 된 헝겊만을 재료로 고집하며 전통 그대로 종이를 제작한다.
 

리샤르드바를 만들고 있는 살바도르 달리(왼쪽) /discoverfranceandspain

리샤르드바의 종이는 인쇄 상태가 변하지 않고, 종이의 변화가 없어 주요 공문서, 백과사전을 만드는데 쓰이거나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용도로 쓰였다.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사용해 왔으며 1958년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의 유일한 사본인 디드로와 달랑베르 백과사전, 노벨상 졸업장 등은 모두 리샤르드바 종이에 쓰여져 있다. 현재 리샤르드바는 1908년 프랑스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종이 반죽을 만드는 과정 /entrepriseetdecouverte

리샤르드바는 전통적이면서도 꽤 정교한 제작 과정을 거친다. 종이 재료의 준비를 마치면 뾰족한 못이 박힌 방아로 헝겊을 하룻동안 찧은 후 다시 부드러운 나뭇방아로 12시간 동안 찧으면 반죽이 완성된다. 반죽에는 물과 풀을 섞는데 이때 물과 풀의 비율은 690년간의 노하우로 장인에게만 전승되는 비밀이다. 완성된 헝겊종이 한 장의 무게는 180g으로 a4용지보다 36배나 더 무겁다.

종이에 물기를 제거하는 압축 작업 또한 옛날 방식 그대로 한다. 직원들 전원이 동원되어 압축 작업을 하는데 이때 종이의 수분이 80% 이상 제거된다. 현대적으로 할 수도 있지만, 직원들은 그렇게 한다면 그건 리샤르드바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곳의 목적은 기술과 작업 방식, 여기 있는 장비들을 보전해 아름다운 종이들을 계속해서 만들고 잘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종이를 말리는 과정 /entrepriseetdecouverte

압축이 끝나면 종이를 건조실로 옮긴다. 건조실은 통풍이 잘 되도록 나무로 지어 놓았다. 종이의 무게는 대략 15kg으로 종이에 남아 있는 20%의 수분을 제거하려면 여름엔 이틀, 겨울은 일주일 이상 말려야 한다. 종이의 품질 검사도 일일이 사람의 손을 거쳐 확인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리샤르드바 종이는 엄청나게 질겨 다른 방향으로 당겨도 찢어지지 않는 탄력성을 자랑한다. 리샤르드바는 하루에 약 200개 정도의 종이를 만든다. 

현재도 종이를 만드는 데 여건은 이것저것 어려운 상태지만, 전통을 지키겠다는 페로도가의 의지와 다양한 제품의 개발을 통해 종이 제작을 계속하고 있다. 리샤르드바에는 연간 약 3만명의 방문객이 방문하고 있으며, 방앗간의 안내 투어와 어린이들을 위한 종이 만들기 체험 수업 등 관광지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리샤르드바의 사장 실뱅 페로도는 '종이는 전 인류의 역사에서 시간을 뛰어넘는 진정한 매개체라고 생각한다, 이 제조 기술과 노하우를 다른 세대로 전하는 것이 목표다' 고 전했다.


일본 미노의 와시

미노와시 /flickr

일본 미노의 종이, 미노와시의 기원은 나라 시대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무로마치 시대에 이르러 종이 시장이 열렸고, 미노와시는 교토, 오사카, 이세 등으로 운송되며 그 당시 가장 유명한 종이 중 하나가 되었다. 미노와시는 1300년 이상 미노시에서 생산되어 온 일본의 전통 종이로 견고하며 내구성이 뛰어나고, 깨끗한 흰색과 아름다운 빛 투과성으로 유명하다. 

미노와시는 전통적으로 교토 신사의 사원의 미닫이 문을 제작할 때 쓰였으며, 우치와(종이 부채)와 와가사(종이 우산) 및 눈을 사로잡는 종이 초롱 등 기후 지역의 다양한 공예 산업의 재료가 되었다. 오늘날 미노와시는 대영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및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 동남아시아 예술품을 복원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미노와시 /visitgifu
미노와시 만들기 과정 /flickr

다른 일본 수공예 종이와 마찬가지로 미노 와시는 '흘려 거리기' 란 방법으로 제작한다. 미노 와시를 만드는 공예는 시마네현 하마다 시의 미스미초, 기후 현의 미노 시, 사이타마현의 오가와 마치/히가시-치치부 촌, 이상 세 공동체에서 전해지고 있다. 종이는 닥나무의 섬유질을 깨끗한 강물에 담근 후, 불려서 대나무 발로 걸러 만든다. 와시는 글자를 쓰고 책을 만드는 용도로만 쓰이는 게 아닌 종이 칸막이, 방과 방 사이를 막는 문인 ‘후스마’, 미닫이문인 ‘쇼지’ 등과 같은 가정용 실내 장식물에도 사용된다. 

닥나무 재배에서부터 기술을 훈련하는 과정이나 와시를 국내외에 널리 알리기 위해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 등 제지술을 지속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이 세 공동체의 주민 대다수가 참여, 각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와시 제지 기술은 와시 장인의 가족, 보존 협회, 그리고 지역 당국에 의해 전승되고 있으며 와시 장인의 가족과 직원들은 부모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은 장인의 지도 아래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기술을 습득하고 있다. 
 

장미꽃 접기로 유명한 작가 토시카즈 카와사키의 장미, 미노와시 /flickr

와시 제조를 하는 가족들이나 3개 지역의 주민들 모두가 와시 제조의 전통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으며, 지역 주민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와시 제조 강좌를 개최하는 등 와시 제지술의 발전과 이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3개 지역 모두 박물관이나 공예 센터를 통해서 와시를 직접 제작할 수 있는 체험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파브리아노 

파브리아노 /Fabriano

750여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미술 용지 전문 회사인 '파브리아노'는 1264년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인 파브리아노에서 시작됐다.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르네상스 시절 최고의 화가들이 즐겨 사용하기도 했다. 이 작은 마을이 어떻게 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종이를 만들게 되었을까.

13세기 중국에서 발명된 종이를, 아랍인들은 그대로 판매하는 것이 아닌 품질을 개선해 새로 유럽에 판매를 시작했다. 아랍과 유럽 사이 무역 관문이었던 항구 도시 앙코나의 근처에 있었던 파브리아노는 종이 무역을 하기에 아주 좋은 위치에 있었고, 이때부터 파브리아노의 종이 역사는 시작되었다. 
 

파브리아노의 워터마크 /whimsie

종이 역사에서 파브리아노가 중요한 이유는 종이 제작 기술에 혁신을 일으킨 세 가지의 발명 때문이다. 첫번째는 워터마크다. 이탈리아에서는 Filigrana라고 불리는 이 기술은 종이에 고유 마크를 넣어 제지사의 브랜드를 사용자에게 노출할 수 있는 기술을 말한다. 젖은 종이를 거르는 그물망에 글씨를 새겨 그 위에 종이를 얇게 올려 놓고, 해당 부분을 반투명하게 표현한다.

이것은 제지 산업이 막 들어와 발전하던 13세기 말, 망가진 그물망을 고치던 장인이 우연히 발견해 낸 기술이다. 당시 파브리아노의 제지 공장들은 워터마크 기술을 통해 종이에 이름, 형태, 품질 등의 정보를 넣어 파브리아노를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으며 현대에 들어서 이 기술은 지폐에까지 적용되고 있다.
 

파브리아노의 해머 분쇄기 재현 /Museo Della Carta 이탈리아 종이 박물관

둘째는 유압식 다중 해머 분쇄기다. 이 분쇄기는 펄프의 섬유를 빻기 위해 사용하던 돌절구나 손방아보다 훨씬 고운 섬유질을 얻게 해 사람들은 이전보다 훨씬 높은 퀄리티의 종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동물성 젤라틴인데, 아랍인들은 펄프섬유를 결합시키는 데 밀전분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밀전분을 사용하면 종이가 쉽게 변질되었기 때문에 당시 공문서에서는 밀전분을 사용한 종이를 금지할 정도였다고. 그러나 이 동물성 젤라틴은 문서의 변질을 막아 문서 작성과 보존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다 주게 되었다. 

파브리아노는 자연 환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원료를 사용해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한다. 청정 수력 발전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현저히 줄이고, FSC인증품과 재활섬유로 종이를 제작하며 2004년, 이탈리아 환경관리당국으로부터 통합환경 관리 인증을 취득하기도 했다. 
 

파브리아노에 꾸민 그림 /flickr

특히 파브리아노의 종이는 지난 8세기간 전승된 종이 제작의 노하우가 들어 있다. 파브리아노는 핸드메이드 페이퍼(수제 종이), 원통형 초지기(두루마리 종이), 판지, 섬유지를 모두 만드는 전세계 유일의 공장을 갖고 있다. 각종 섬유(코튼, 셀룰로오스)를 사용한 아트지, 지폐용지, 여권용지, 복사지, 인쇄지 등 다양한 최고 품질의 종이를 생산하고 있다.
 

리샤르드바로 만드는 꽃종이 /entrepriseetdecouverte

원주시는 최근 원주 지역의 옻과 한지의 우수성을 알리고 공예품의 유통 활성화를 위해 간현관광지 내 옻·한지 전시판매장을 설치한다고 밝혔다. 김태석 옻한지산업담당은 “10여년간 옻·한지 관련 시설이 새롭게 구축되지 않아 그동안 관련 산업이 다소 정체됐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원주 대표 브랜드를 살리면서 전통을 계승하고 지역작가들을 지원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마지막 남은 방앗간을 운영중인 실뱅 페로도는 "세상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우리의 방앗간은 독특하다, 이것은 진정한 가치가 있고, 우리는 이것을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미노 와시를 제작하는 세 곳의 주민들의 삶은 미노 와시를 중심으로 돌아가며, 와시는 이들의 사회적 결속과 정체성, 자긍심을 확인하는 데 촉매제 역할을 한다. 유산의 유네스코 등재 과정을 거치면서 세 공동체는 상호 연대의 과정을 거쳤고, 서로 협력한다는 목표와 함께 지금도 정보 및 경험을 상호 교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파브리아노 종이박물관의 조르지오 펠레그리니 관장은 "수제나 기계식에 따라 종이의 질이 차이가 나지만 대개 그림이나 판화 작업을 하는 이들은 수제작 종이를 선호하는 편"이라며, "전통적인 제지 방식을 유지하며 새로운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렇게 각자의 나라마다 전통을 보존하는 방식도, 종이의 종류와 특징도 다르지만 분명한 건 다들 자신들의 종이에 자부심을 가지고 전통의 명맥을 이어가려 노력한다는 점이다. 인류의 문화 생활에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한 종이는 각 나라의 도시에서 종이 장인들이 오늘도 열심히 그들만의 특색있는 종이를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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