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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가득한 달빛 야경의 달인, 존 앳킨슨 그림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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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가득한 달빛 야경의 달인, 존 앳킨슨 그림쇼
  • 전은지 기자
  • 승인 2021.02.0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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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전은지 기자] 달은 사람들이 바라보며 소원을 빌기도 하고, 여러 가지 전설이나 고전 속 이야기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가로등만큼이나 밝게 빛나는 보름달부터 감성을 자극하는 초승달까지 모양도 다양하다. 어떻게 보면 신비한 존재인 달은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소재로 노래나 그림 속에서도 많이 등장한다.

그림 속에서도 ‘달’은 심심찮게 등장한다. 조선시대 풍속화가인 신윤복도 달빛 아래 은밀히 만나는 연인의 모습을 담은 ‘월하정인’을 그렸고, 서양화가 이중섭도 ‘달과 까마귀’, ‘달밤’ 등 캔버스 속에 달을 그리기도 했다.

저 멀리 영국, 18~19세기 산업화가 활발하던 그곳에도 달을 사랑했던 화가가 있었다. ‘달빛 화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존 앳킨슨 그림쇼(John Atkinson Grimshaw). 그는 다양한 풍경 중에서도 달빛이 담긴 야경을 주로 그렸다. 어둑한 거리에 빛이라곤 달빛만 남아있는 어수룩한 풍경은 사진을 보는 듯함 세밀한 표현이 더해져 지금 보아도 멋지다.


20대에 붓을 들어야 했던 남자

1836년 영국의 리즈에서 태어난 존 앳킨슨 그림쇼는 여느 화가가 그랬듯, 어릴 적부터 그림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의 반대 때문에 화가 밑에서 그림을 배우는 등의 엘리트 코스는 밟지 못했다. 그가 성인이 되어 선택한 직업은 철도회사의 서기직이었다.

아무래도 그가 태어난 리즈 지역이 당시 양모가 생산되던 산업혁명의 중심지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예술보다는 상업에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존 앳킨슨 그림쇼 / 위키미디어
존 앳킨슨 그림쇼 / 위키미디어

그랬던 그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한 것은 24살인 1861년이다. 서기직을 버리고, 리즈지역 철학‧문학회의 후원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했다. 불과 1년만인 1862에는 첫 전시를 했는데, 이런 그를 보고 그림쇼의 부모는 경악했다고 한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부모의 반대도 무릅쓴 그의 용기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화가로서 급속도로 성장한 그림쇼는 1870년에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영국 노스요크셔 해안마을인 스카버러에 있는 대저택을 임대했는데, 이는 그를 설명하는 유명한 일화가 되기도 한다.
 

그가 리즈 지역에서 살았던 저택. 유명인이 살았던 증거인 블루 플라크가 있다 / 위키미디어
그가 리즈 지역에서 살았던 저택. 유명인이 살았던 증거인 블루 플라크가 있다 / 위키미디어
그림쇼가 살았던 저택에 있는 블루 플라크 / 위키미디어
그림쇼가 살았던 저택에 있는 블루 플라크 / 위키미디어

유명인이 살았던 생가가 유명한 것처럼, 그가 1866년에 아내와 함께 살았던 리즈지역 별장에는 블루 플라크가 부착되어 있다. 블루 플라크는 유명한 인물이 살았거나 역사적 사건이 있었던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영국적으로 부착하는 파란색 마크다. 이 마크만 봐도 그가 영국 내에서 얼마나 유명한 화가로 존경받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림쇼의 아들인 아서 에드먼드 그림쇼가 그린 ‘The Strand(1899)’ / 위키미디어
그림쇼의 아들인 아서 에드먼드 그림쇼가 그린 ‘The Strand(1899)’ / 위키미디어

청출어람이라는 말처럼, 그림쇼의 자녀들도 화가로 활약했다. 리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활동하며 작곡가이자 오르간 연주자였던 아서 에드먼드 그림쇼(Arthur Edmund Grimshaw)는 화가로서도 활동하며, 아버지 그림쇼의 화풍을 그대로 닮았다. 아서 외에도 루이스 그림쇼, 윌프레드 그림쇼, 일레인 그림쇼 모두 화가로서 아버지의 이름을 이어나갔다.

자식들까지 예술가의 꿈을 꾸게 만든 존 앳킨슨 그림쇼는 1893년 결핵으로 사망하며 32년간의 화가로서의 생을 마쳤다.


영국 문화의 전성기, 빅토리아 시대

그가 부모의 반대를 이겨내고 예술가로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영국의 부흥기이자 문화의 전성기가 만들어졌던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를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64년간 영국을 이끌었던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따와 붙인 빅토리아 시대는 정치나 산업 등 전반적인 분야가 발달했다.
 

제임스 폴라드 ‘The Epsom Derby’ (1840). 정치부터 문화, 산업의 발달로 여유로워진 사람들은 연극 등의 문화생활이나 승마 같은 스포츠를 즐겼다 / 위키미디어
제임스 폴라드 ‘The Epsom Derby’ (1840). 정치부터 문화, 산업의 발달로 여유로워진 사람들은 연극 등의 문화생활이나 승마 같은 스포츠를 즐겼다 / 위키미디어

산업혁명으로 부와 명예를 가지게 된 사람들은 극장 공연이나 서커스를 관람했으며, 크리켓, 승마, 럭비, 테니스 등의 스포츠를 즐기기도 했다. 특히나 문화에도 관심이 높아졌다. 빅토리아 시대 이전에도 문학이나 예술에 일가견이 있었지만, 여유가 생기면서 더욱 활발해진 것이다. ‘오만과 편견’ 등을 쓴 제인 오스틴 등의 여류 작가가 이름을 알리게 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루이스 레이너 ‘The Poultry Cross, Salisbury’ (1870). 빅토리아 시대에는 세밀한 표현이 미술의 중요한 요소였다 / 위키미디어
루이스 레이너 ‘The Poultry Cross, Salisbury’ (1870). 빅토리아 시대에는 세밀한 표현이 미술의 중요한 요소였다 / 위키미디어

특히나 이 시대에는 고전주의,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인상파, 포스트 인상파 등 다양한 스타일이 인기를 얻었다. 세밀한 표현을 담은 풍경이나 낭만적인 분위기의 인물화가 특징이다.


사진 같은 그림을 추구한 라파엘 전파

빅토리아 시대를 살았던 그림쇼가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화풍이라고 한다면,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s)다. 라파엘 전파는 1848년 윌리엄 홀먼 헌트,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존 에버렛 밀레이 등의 영국 화가들이 결성한 예술가 집단인 라파엘 전파 형제회를 중심으로 퍼진 유파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가 추구했던 웅장하고 고전적인 예술은 거부하고,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운 화풍을 되살리자는 것이다. 지금으로 보면 복고의 트렌디함과 현대의 사실적인 표현을 결합하는 셈이다.
 

윌리엄 홀먼 헌트의 작품 ‘The Hireling Shepherd’ (1851) / 위키미디어
라파엘 전파를 만든 윌리엄 홀먼 헌트의 작품 ‘The Hireling Shepherd’ (1851) / 위키미디어

이들은 4가지의 강령까지 정했지만, 예술가 개인의 묘사나 아이디어는 존중했다. 단테 로세티의 동생 윌리엄 마이클 로세티가 정한 라파엘 전파의 강령은 ▲표현을 위해 진지한 생각을 가질 것 ▲자연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자연에 대해 집중해서 배울 것 ▲이전의 예술에서 자기 과시적인 것을 제외하고 직접적이며 진지하고 진심 어린 것과 교감할 것 ▲좋은 그림과 조각상을 제작할 것 등이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작품 ‘Lady Lilith’ (1882) / 위키미디어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작품 ‘Lady Lilith’ (1882) / 위키미디어

강령에서도 보이듯, 라파엘 전파 화가들이 추구한 그림의 특징은 사진 못지않은 그림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나 대자연의 풍경을 주로 그렸는데, 중세 고딕이나 초기 르네상스처럼 자연을 관찰하고 세부적으로 묘사하는 데 집중했다. 이렇게 솔직하면서도 세밀하며, 고집스러운 화풍을 두고 스스로를 개혁 운동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새벽 감성이 느껴지는 그림쇼의 작품

존 앳킨슨 그림쇼는 라파엘 전파의 영향을 받아 사실주의에 초점을 맞췄다. 그런 그가 작품활동에 사용한 것이 ‘렌즈’다. 카메라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카메라 옵스큐라, 렌즈를 사용해 풍경을 보며, 그 풍경을 그대로 캔버스에 옮겨 담았다. 독학으로 사진에 관해 공부하며 그림을 그렸다는 이야기를 보면 그림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다.

기계로 보는 것보다 눈으로 보고 그리는 것을 더욱 뛰어나다고 생각했던 당시 사람들은 그림쇼의 아이디어를 두고 “다른 회화 작품처럼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붓질의 흔적이 없다”며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사용한 색채나 조명, 그림자 등의 표현은 감성적이라며 능력을 인정했다. 그림쇼와 함께 활동했던 화가 제임스 맥닐 휘슬러는 “그림쇼의 달빛 그림을 보기 전까지 나는 나 자신을 밤의 발명가(the inventor of nocturnes)로 생각했다”고 찬사를 전했다.
 

존 앳킨슨 그림쇼 ‘Reflections on the Thames’ (1880) / 위키미디어
존 앳킨슨 그림쇼 ‘Reflections on the Thames’ (1880) / 위키미디어
존 앳킨슨 그림쇼 ‘Nightfall on the Thames’ (1880) / 위키미디어
존 앳킨슨 그림쇼 ‘Nightfall on the Thames’ (1880) / 위키미디어
존 앳킨슨 그림쇼 ‘Southwark Bridge by Moonlight’ (1887)/ 위키미디어
존 앳킨슨 그림쇼 ‘Southwark Bridge by Moonlight’ (1887)/ 위키미디어
존 앳킨슨 그림쇼 ‘Spirit of Night’ (1879) / 위키미디어
존 앳킨슨 그림쇼 ‘Spirit of Night’ (1879) / 위키미디어

그림쇼는 정확한 색과 조명, 생생한 디테일과 사실주의, 계절이나 날씨를 특징짓는 풍경을 주로 그렸다. 도시와 교외 거리, 런던, 헐, 리버풀, 글래스고의 부두에 달빛이 비치는 풍경도 그의 예술에 영향을 주었다.

그가 그렸던 야경을 보면, 보통 항구에 달이 비치는 모습이다. 영국의 템스강 위에 비치는 달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따뜻하게도, 차갑게도 보인다. 꼭, 비 오기 전날 달무리가 끼어있는 밤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보면 볼수록 오묘한 색채가 눈길을 오래 이끌게 된다.

그림쇼가 카메라로 풍경을 보았던 것처럼, 사실적이다. 배 위에 높이 솟아있는 돛이 세세하게 표현되었으며, 가까이 있거나 멀리 있는 배도 놓치지 않고 세세히 그렸다.

세세한 묘사는 인물도 빠지지 않는데 ‘Spirit of Night’은 풍경보다 밤의 정령을 그리는 데 집중했다. 마치 정령이 달빛을 도심에 직접 뿌리는 듯한 신비로움이 느껴진다. 비늘처럼 투명하게 반짝이는 날개의 묘사가 가장 돋보인다.
 

존 앳킨슨 그림쇼 ‘Shipping on the Clyde’ (1881) / 위키미디어
존 앳킨슨 그림쇼 ‘Shipping on the Clyde’ (1881) / 위키미디어
존 앳킨슨 그림쇼 ‘Canny Glasgow’ (1887) / 위키미디어
존 앳킨슨 그림쇼 ‘Canny Glasgow’ (1887) / 위키미디어
존 앳킨슨 그림쇼 ‘Glasgow, Saturday Night’ / 위키미디어
존 앳킨슨 그림쇼 ‘Glasgow, Saturday Night’ / 위키미디어
존 앳킨슨 그림쇼 ‘The Ironbound Shore’ (1869) / 위키미디어
존 앳킨슨 그림쇼 ‘The Ironbound Shore’ (1869) / 위키미디어

그림쇼는 달빛 풍경 외에도 항구의 모습을 유독 많이 그렸다. 여기서도 배의 돛은 물론 거리의 가로등, 사람들, 건물의 창틀과 불빛까지 자세히 묘사했다. 특히나 바닥에는 마차가 지나간 바퀴 자국까지 살아있다. 뿌연 것은 아마도 이 그림을 그렸던 시간이 어스름한 새벽일 거라는 추측을 하게 한다.

어느 날은 비가 온 듯 우산을 쓴 사람들과 빗물 때문에 빛이 반사되는 거리의 느낌까지 살렸다. 그야말로 디테일의 왕이라고 할 수 있다. 해변을 그린 ‘The Ironbound Shore’에서도 역시 바위의 거친 질감이나 하늘의 구름, 바다의 파도까지 사진을 넘어 멈춘 영상을 보는 느낌이다.
 

존 앳킨슨 그림쇼 ‘Boar Lane, Leeds’ (1881) / 위키미디어
존 앳킨슨 그림쇼 ‘Boar Lane, Leeds’ (1881) / 위키미디어
존 앳킨슨 그림쇼 ‘Late October’ (1882) / 위키미디어
존 앳킨슨 그림쇼 ‘Late October’ (1882) / 위키미디어
존 앳킨슨 그림쇼 ‘Knostrop Hall, Knowsthorpe, Leeds’ (1893)/ 위키미디어
존 앳킨슨 그림쇼 ‘Knostrop Hall, Knowsthorpe, Leeds’ (1893)/ 위키미디어

그의 작품을 보면 거리의 외관과 분위기를 세밀하게 포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스에 젖은 가로수와 안개 낀 물가의 페인트칠은 도시의 소외감과 섬찟함 속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을 전달한다.

세밀하게 그리는 화가는 많다. 초상화를 그렸던 이들은 수염이나 주름 하나까지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 표현했으며, 풍경화에서는 나뭇가지 하나도 허투루 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림쇼의 작품이 남다르게 다가온 것은, 그 풍경이 담긴 시간의 분위기까지 묘사했다는 것이다.

해가 지고 노을이 찾아오기 전, 습기 가득한 안개가 지배하는 새벽, 달빛만이 가득한 밤의 풍경까지. 그 시간에 한 번이라도 밖에서 사색을 즐겼다면, 그 풍경 속의 냄새까지 기억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면, 그림쇼의 달빛 풍경을 보며 감성을 즐기며 잠을 청해봐도 좋겠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포근함과 감성을 모두 담고 있는 그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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