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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목숨을 위협했던 위험한 물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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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목숨을 위협했던 위험한 물건들
  • 윤미지 기자
  • 승인 2021.01.30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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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사랑을 받았던 녹색 안료부터 길버트 아저씨의 장난감 까지

[핸드메이커 윤미지 기자] 현대에는 목숨을 위협할 만큼 치명적인 물질은 사용이 거의 금기시되어 있다. 기술의 발달 덕에 인류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을 만큼 위험한 물질을 분리하는 능력이 생겼고 이를 피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때론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이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다는 사실도 터득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무지했던 과거의 모습은 어땠을까. 불행하게도 역사 속에서는 거듭되는 신물질의 개발로 인해 이를 보급하는 과정에서, 미확인 된 신물질이 사람에게 얼마나 위험하게 작용 될지 알 수 없었다. 또한 그로 인해 목숨까지 잃게 되는 상황을 직접 경험해보기까지는 알지 못했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불행이었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인류는 신물질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고 더욱이 그것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면 누구라도 그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웠을 테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무지에서만 발생한다고 여길 수 있지만, 당시 신물질을 직접 사용해보기 전까지 그 위험성에 대해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문명 발전의 의미는 이런 위험한 물질에 대해 경계하고 여러 시행착오를 익혀가는 것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듯하다.

그렇다면 역사 속에서 실제 목숨을 위협했을 정도로 위험한 물건들은 얼마나 쉽게 보급되고 널리 사용됐을까. 과거 신물질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여 목숨까지 위험해졌던 사례는 매우 다양하다.


나폴레옹도 사랑했던 녹색의 안료, ‘셸레 그린’

흔히 초록 계열의 색상을 봤을 때 어떠한 감상을 느끼게 되는가. 현대에는 ‘녹색’이라고 하면 우중충한 도시의 빛깔과는 상반된 이미지로, 그리너리한 자연의 풍경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초록 계열의 색상을 보면 흔히 조화롭고 평화롭게 느끼거나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는 색상으로 인식하곤 한다.

하지만 과거 초록 계열의 색상은 이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녔다. 오랜 과거부터 녹색은 독약, 약물 등 위험한 물질을 다루는 표현으로 사용되어왔는데 이에는 여러 가지 이유를 추측해볼 수 있다.
 

독약이나 독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녹색이 많이 사용되곤 한다 /픽사베이
독약이나 독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녹색이 많이 사용되곤 한다 /픽사베이

먼저 초록색을 부정적으로 여기게 된 요인을 종교적인 문제에서 찾는 견해도 존재한다. 이는 서구 사회를 기준으로 확산한 인식이라 할 수 있으며 역사 속에서 이슬람교와 기독교 사이가 종교적 문제로 인해 좋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초록색은 이슬람국가의 상징색이었다. 사막지대가 많은 국가의 특성상 이슬람은 자연을 동경할 수밖에 없었으며,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대립 관계에 서면서 서구 사회에서 초록색에 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초록색이 부정적인 표현으로 쓰이게 된 여러 가지 요인 속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기록은 색의 역사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회적으로 만연했던 순수한 물질에 대한 추구를 배경으로, 과거 서양에서는 여러 물질을 섞어서 사용하는 것은 금기시된 일이었다.
 

물질의 혼합이 허용되지 않았던 과거, 물질의 혼합은 마녀의 일로 여겨졌다 /픽사베이
물질의 혼합이 허용되지 않았던 과거, 물질의 혼합은 불경한 일로 여겨졌다 /픽사베이

현대에는 여러 색을 조색해서 색을 표현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지만, 당시 서양의 순수한 물질을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놀랍게도 물감을 섞어 쓰는 것에도 제한을 두었다. 그림 작업에 있어서 여러 색을 조합해서 만드는 혼색의 사용을 금기시했으며 이는 많은 중세 미술 작품이 원색을 중심으로 그려진 사회적 배경이기도 하다. 녹색 역시 노란색과 파란색의 안료를 섞어야 만들 수 있는 혼색으로 당연히 사용이 금기시되었으며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어서야 이런 풍조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대적인 금기 사항에서 벗어났다고 해도 초록색의 사용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 당시 녹색 염료가 불완전하였기 때문에 발색 면에서도 만족스럽지 못했으며 시간에 따라 착색이 되어 알아보기 어려운 색으로 변하기도 했다.

완전한 초록색은 1775년 스웨덴 화학자 카를 셸레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는 비소를 연구하다가 우연히 이 녹색 안료를 발견하게 되는데 색이 선명하면서도 착색이 되지 않아 완전한 초록색 사용이 가능했다. 이 색은 ‘셸레 그린’이라는 이름으로 영국 전역에서 사랑받았다. 기록에 의하면 셸레 그린은 물감 안료로 그림에 사용된 것은 물론이고 패브릭, 벽지, 종이 등에 염료로 활용되기도 했다. 심지어는 음식의 색소로도 사용됐을 정도라고 하니 셸레 그린이 얼마나 많은 곳에 색을 내기 위해 들어갔는지 알 수 있다. 1830년대 당시 셸레 그린 색이 사용된 벽지가 무려 100만 롤이 만들어졌다고 하며, 영국에서 일주일 동안 생산된 셸레 그린이 무려 2톤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Scheele's Green
Scheele's Green.

하지만 이 셸레 그린은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원료 자체에 사람의 목숨을 위험하게 할 수 있는 양의 비소와 구리가 섞여 들어가 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안료 형식은 파우더 재질이기 때문에 공기 중에 위험 물질이 쉽게 노출 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었다.

당시에는 이 비소의 위험성을 바로 인식하지 못했고 그 이후로도 여러 가지의 초록색이 등장하게 됐다. 특히 1814년 독일의 염료 공장에서 제작한 에메랄드그린은 빅토리아 여왕의 초록색 드레스를 입은 초상화, 프랑스 외제니 황후가 오페라에 입고 등장해 선풍적인 반응을 일으켰던 초록색 드레스에 사용되며 인기를 끌었다.
 

Emerald green
Emerald green.

그렇게 초록색을 띠고 있는 에메랄드그린은 프랑스 귀족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귀부인들 사이에서도 초록색 드레스가 유행했으며 유럽 사회에서 초록색은 그 사용처가 실로 다양했다고 한다.
 

18세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녹색 안료, 드레스, 벽지 등 녹색 안료가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픽사베이
18세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녹색 안료, 드레스, 벽지 등 녹색 안료가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픽사베이

사람들이 초록색 사용에 대해 경계하기 시작한 것은 아이들의 죽음에 의해서다. 상대적으로 연약한 아이들은 초록색 염료에서 뿜어나오는 비소를 견딜 수 없었으며 이 안료가 사용된 벽지, 옷감에 의한 비소 중독으로 성인까지 사망에 이르는 사건이 지속해서 발생했다.
 

나폴레옹, 자크 루이스 데이비드,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나폴레옹, 자크 루이스 데이비드,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 역시 이 셸레 그린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는 의견도 있다. 세인트헬레나섬으로 추방되어 삶을 마감했던 그는 당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었던 초록색으로 꾸민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초록색 페인트와 벽지로 꾸며졌던 방은 셸레 그린 안료가 사용되었으며 실제 1821년 나폴레옹이 사망하고 그의 몸속에서 높은 수치의 비소가 검출되었다고 하니 이에 관련한 영향도 어느 정도 있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위험한 유혹, 아름다움을 위해 사용됐던 ‘수은’

희고 매끈한 피부를 얻기 위해서 피부에 수은을 발랐다고 한다면 현대의 많은 사람은 혼란에 빠질 것이다. 사실 대부분 사람이 수은에 대해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충분히 인체에 해로운 성분이라는 것은 어림짐작으로 모두 알고 있는 사항이다.

수은은 여러 물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방출되며 석탄을 태우는 화력발전소에서도 발생한다. 특히 아세트알데하이드 등의 유해 물질을 생산할 때도 이 수은이 발생하게 된다. 문제는 이 수은이 인체에 엄청 해롭다는 점인데 액체 상태이기 때문에 체내에서 흡수가 빠르며, 수은 중독으로 인해 미나마타병 등 다양한 질병에 걸리기도 한다.
 

Pouring liquid mercury
Pouring liquid mercury, Bionerd, CC BY 3.0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3.0>, via Wikimedia Commons
현대에는 체온계에 수은이 사용된다 /픽사베이
현대에는 체온계 제작에 수은이 사용된다 /픽사베이

이 물질은 특히 쉽게 체내로 배출도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경 세포에 큰 영향을 미친다. 몸이 마비되거나 언어장애가 발생하게 될 수 있어 현대 사회에서도 이 수은에 대한 경각심이 강조된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이 수은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수은은 상온에서 은빛을 띠는 액체 형태로 존재한다. 동양에서도 ‘물처럼 흐르는 은’이라고 일렀는데 상온에서 액체 상태로 존재하는 금속이었던 이 수은을 고대부터 신비한 물질로 인식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수은은 흡입하거나 직접 섭취하면 신체에 굉장한 악영향을 받게 된다. 하지만 과거에는 이 위험성을 알 수 없었으며 특유의 반짝거리는 성질로 인해 신비한 물질로 인식하곤 했다. 특히 중국에서는 ‘진사’라는 붉은색 광석을 불태워 수은을 얻곤 했다. 수은을 얻는 과정까지도 굉장히 특별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던 것이다.

중국의 역대 왕은 완벽한 피부를 만들기 위해 수은을 마시거나 얼굴에 바르기도 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그중에서도 진시황에 관련한 기록은 더욱더 놀랍다. 진나라의 시황제는 외형적으로 반짝거리면서 신비함을 가진 수은을 불로불사의 명약으로 여기고 이를 마셨다고 한다. 실제 그 화려한 외형과 변하지 않는 성질 때문에 수은을 불로불사의 명약으로 여긴 사례가 많았으며, 중국 당나라 시대의 황제들은 영원히 살고 싶은 욕망에 따라 이를 마시고 수은 중독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했다는 기록이 있다.
 

진나라 시황제의 무덤, 진시황릉 병마용갱, 기록에 따르면 내부에 수은으로 강과 바다를 만들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픽사베이
진나라 시황제의 무덤, 진시황릉 병마용갱, 기록에 따르면 내부에 수은으로 강과 바다를 만들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픽사베이

수은은 특히 미용의 목적으로 많이 사용됐다. 16세기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하얀 피부를 가지기 위해서 수은과 납으로 만든 화장품을 사용했다. 액체 상태의 특성상 수은은 굉장히 피부에 빠르게 흡수가 됐다. 수은이 체내에 축적되며 피부를 경직시켜 일시적으로 하얘지면서 주름 또한 펴지는 현상을 피부가 좋아진다고 인식한 것이다.

존 우드퍼드가 쓴 책 <허영의 역사>에도 이 수은이 등장한다. 빅토리아 시대 후기 남성들이 수은의 화합물인 염화 제이 수은을 잘게 부숴 세안하는 데에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수은을 정제해 만든 물질인 솔리만을 사용해 사마귀나 점을 없애기도 했으며 이 솔리만의 경우 피부의 표피를 탈락시키는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또 세안에 사용했던 염화 제이 수은이 강한 독성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지는데, 해당 물질 모두 인체에 매우 유해했음을 알 수 있다.

놀랍게도 조선 시대에도 수은과 같은 중금속인 납을 피부에 사용했던 기록이 있다. 과거 살갗이 희어 보이기 위해서 분과 같은 화장품을 얼굴에 바르곤 했는데 백분白粉의 부착력을 높이기 위해서 납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 납이 백분에 더해지면 부착력도 우수해지면서 피부 표면에 분이 잘 퍼진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납의 독성으로 인해 피부에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했다.
 

조선 시대 효종의 첫째 공주인 숙신공주의 묘에서 출토, 발견 당시 항아리 안에 화장분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은제 과일 무늬 화장품 그릇 /국립중앙박물관
조선 시대 효종의 첫째 공주인 숙신공주의 묘에서 출토, 발견 당시 항아리 안에 화장분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은제 과일 무늬 화장품 그릇 /국립중앙박물관

이 외에도 국립고궁박물관에 따르면 화협옹주 무덤에서 출토된 화장품에서 인체에 해로운 납과 수은 성분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얼굴에 바르는 분에서는 탄산납 성분이 발견됐으며 연지에서 수은을 확인했다고 한다.


위험한 ‘길버트 아저씨’의 장난감

오랜 역사 속 이야기로 한정될 것 같은 ‘위험한 물건’은 비교적 근대인 1900년대에도 존재했다. ‘길버트 장난감’이 그 주인공인데 현대라면 그 안전성을 의심했을 물건이 당시에는 아무렇지 않게 판매되곤 했다.

길버트 아저씨의 장난감 시리즈는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제품임에도 상당히 위험한 물질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 1920~30년대 등장한 유리 제조 세트는 아이들이 직접 유리를 만들어 볼 수 있는 장난감이다. 하지만 유리는 높은 온도에서 가열하여 제작됨으로 일반적으로 이 장난감을 직접 만지는 아이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제품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길버트 아저씨의 납 주조 세트, 화학 실험 세트, 원자력 에너지 실험실 세트가 이어서 판매됐다. 이름만 들어도 어마어마한 이 장난감들은 당시 실제 꽤 고가였던 가격에도 불구하고 높은 판매율을 기록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직접 가지고 놀기엔 다소 어려운 내용이 포함된 원자력 에너지 실험실 세트의 부진 외에 대부분 시리즈가 호평 속에 판매됐다고 한다.
 

길버트 아저씨 장난감 Atomic Energy Lab
길버트 아저씨 장난감 Atomic Energy Lab/ 유튜브 'MBC 미스터리 : 심야괴담회 & 서프라이즈' 영상 캡처(https://youtu.be/d2Iku6VpLwg)
길버트 아저씨 장난감 Atomic Energy Lab/ 유튜브 'MBC 미스터리 : 심야괴담회 & 서프라이즈' 영상 캡처(https://youtu.be/d2Iku6VpLwg)
길버트 아저씨 장난감 Atomic Energy Lab/ 유튜브 'MBC 미스터리 : 심야괴담회 & 서프라이즈' 영상 캡처(https://youtu.be/d2Iku6VpLwg)

현대의 상식으로 납 같은 중금속을 일반인이 직접 다루게 한다는 점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존재하나, 당시에는 안전성 검증에 관한 규정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특히 납 주조 세트는 실제 납을 녹여서 거푸집을 사용해 군대나 군인 모형을 만드는 장난감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중금속의 인체 유해성이 제대로 인지되지 않았던 시대적 분위기를 고려하면 이 장난감이 시중에 유통될 수 있었던 이유로 어느 정도는 납득이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1950년부터 2년간 2배 이상 급증한 소아백혈병 환자의 수가 이와 관련된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으며 물론 당시에는 그 원인을 밝히지 못해 아이들과 부모는 이유도 모른 채 피해를 보아야 했다.

현대에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해 보이는 물질들이 당시에는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많은 사람의 애정을 받았다. 누구나 선망했던 초록색 안료는 집안을 장식했으며 많은 귀족 여성의 드레스 제작에 사용됐다. 또 인체에 해로운 수은과 납은 아름다워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또는 불로장생을 가져다주는 묘약으로 많은 사람에게 애용됐다.

길버트 아저씨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다. 실제 아이들에게 유해한 성분이 노출되도록 장난감을 제작했으나 아이들이 실험과 실습을 통해 과학을 익힐 수 있도록 노력했으며 해당 물질의 위험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뿐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당시에 납과 같은 중금속이 위험하다는 발상이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설득력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침대 밖은 위험하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듯 어찌 보면 세상에는 위험한 일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특히 과거 속에는 다양한 신물질을 발견하는 성과가 있다 보니 더욱 위험한 상황을 자주 맞닥뜨렸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어쩌면 인류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무모하고 혹은 용감한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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