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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원천이 되다...유물로 만나는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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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원천이 되다...유물로 만나는 고양이 
  • 윤미지 기자
  • 승인 2021.01.19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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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에서 신성시 됐던 고양이

[핸드메이커 윤미지 기자] 고양이는 예로부터 영물이라 불려왔다. 앙증맞은 외모에 걷는 폼도 사뿐사뿐하니 하는 짓이 귀여워 무수한 역사 속에 인간의 사랑을 받아왔다. 강아지가 인간의 영원한 친구라고 한다면 고양이는 이상형쯤으로 봐도 좋겠다. 

현대에도 많은 사람이 고양이를 귀여워하고 반려동물로서 삶을 함께한다. 온라인에 각 가정 반려묘의 사진이 올라오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고양이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며 ‘왜 나만 고양이 없어’라는 반응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만큼 고양이를 반려동물로써 키우고 집사(고양이를 키우는 사람 : 고양이를 주인같이 모신다고 하여 집사라 칭한다)를 자처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이렇게 인간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고양이는 예술 작품의 주제로 등장하기도 한다. 현대 작품 중에도 고양이를 하나의 테마로 삼은 예를 무수히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작가의 작품 활동에서도 빈번하게 발견 가능하며 우리가 흔히 접하는 수공예 작품에도 고양이를 소재로 한 제품을 찾는 게 어렵지 않다. 
 

영물이라 불려왔던 고양이 /픽사베이

이는 과거에도 마찬가지다. 한국사 유물에서도 고양이를 소재로 그린 그림을 쉽게 발견할 수 있으며 이집트 고대 유물 중에서도 고양이 벽화, 조각상 등 여러 작품이 발굴되었다. 고양이를 소재로 하여 영감을 얻는 행위는 예로부터 쭉 이어져 온 문화적 발상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여러 동물 중 고양이는 왜 인간에게 이토록 이상향적인 존재가 되었을까. 현존하는 동물의 종만 분류하여도 수십 가지가 넘으며 그 상세한 개체 수는 미처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데 말이다. 왜 인간은 그중에서도 유독 고양이를 이토록 애정하게 되었을까. 여러 유물에 등장한 고양이의 모습을 통해서 그 이유를 유추해 볼 수 있다. 


귀여운 고양이, 한때는 이집트의 신이었다 

고양이를 모시고 있는 집사는 알 것이다. 고양이는 매일 같이 잠을 자고 놀고 싶을 때 뛰어다니며 먹고 싶을 때는 간식을 달라고 빤히 쳐다본다. 그야말로 온통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행동하는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가끔은 고양이 팔자는 한 나라의 왕도 따라가기 힘들지 않을까 싶은 감정이 든다. 그래도 왕은 국정이라도 살피는데 고양이는 참으로 아무 노력 없이 먹고 자고 인간과 교감하며 어우러져 산다. 인간 역시 고양이의 안하무인 격 태도에 익숙해져 그들을 돌보는 데 전혀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 

이런 모습은 고대 이집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기원전 2000년경 고대 이집트 묘비 상형문자에서 고양이의 모습이 등장했고 기원전 1900년경 나일강 부근의 묘지 벽화에서도 채색된 고양이 그림을 발견했다.
 

고양이는 고대 이집트에서 신성시 되는 동물이었다 /픽사베이
고양이는 고대 이집트에서 신성시 되는 동물이었다 /픽사베이

사실 그 외에도 고양이가 그려져 있는 고대 이집트 벽화를 발견하는 건 굉장히 쉬운 일이다. 고양이를 테마로 한 많은 유물은 그림 외에도 다양하게 속속 발견되고 있으며 실제로 1888년 이집트 베니하산에서는 약 8만 구의 고양이 미라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집트 사회에서 미라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미라는 죽은 자의 부활을 믿는 의식에서 기인한 것으로, 신체를 보존하기 위한 하나의 시신 매장법이다. 죽은 자가 부활할 때를 위해서 시신을 온전하게 보전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보통 인간이 숨을 거뒀을 때 인위적인 과정을 통해서 미라로 만드는 의식을 행해졌다. 특이한 것은 이런 미라 의식을 고양이에게도 행했다. 고대 역사 속 고양이의 삶이 그만큼 인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실로 고양이는 이집트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동물이었다. 고양이가 그려진 이집트 벽화를 보면 주로 신처럼 추앙받거나 인간과 함께 사냥 대상인 동물을 쫓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인간과 움직이며 인간을 경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냥을 즐기며 뛰어다니는 모습이다. 
 

고대 이집트 벽화에 등장했던 고양이 종으로 추측되는 아비시니안 /픽사베이
고대 이집트 벽화에 등장했던 고양이 종으로 추측되는 아비시니안 /픽사베이

또한 흥미로운 것은 고양이가 실내 의자 밑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 그려진 벽화도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고대 이집트 사회에서 고양이가 어느 정도 집 안의 동물로 받아들여졌음을 알게 한다. 

유독 과거 이집트인에게 고양이가 사랑받는 존재였던 것은 이유가 있다. 고대 이집트는 농경사회로서 기후에 따라 풍년이 결정되고, 흉년이 들 때를 대비하여 미리 곡식을 저장해두곤 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각종 설치류가 창고의 곡식을 그냥 두지 않는다는 것에 있었다. 이런 문제에서 발생하는 피해는 언제나 컸지만 유독 이집트인의 곡식을 탐내는 것은 바로 쥐였다. 

고양이는 이 쥐를 잡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대안이 되었다. 인간은 자신의 식량인 곡식을 지키기 위해서 고양이를 보호하고 고양이는 자신의 사냥감인 쥐가 많은 곳을 찾다 보니 서로의 공생 이유가 성립된 것이다. 

결국 고양이는 파라오에 의해 반신인 바스테트의 지위를 부여받는다. 암고양이는 인간으로부터 곡식을 수호하는 신으로서 추앙받게 되고, 수고양이는 인류에게 위협이 되는 뱀을 잡는 이미지가 부여되며 이들은 인간에게 특별한 친구이자 수호신 같은 역할을 하게 됐다. 
 

고대 이집트에서 고양이는 반신 바스테트 지위를 부여 받게 된다 /픽사베이
고대 이집트에서 고양이는 반신 바스테트 지위를 부여 받게 된다 /픽사베이

이집트인이 고양이를 미라로 만들어 매장한 것에도 이러한 이유가 존재한다. 미라를 통해 인간의 부활과 후세를 믿는 그들로서는 고양이 역시 영원히 살길 바라는 마음에서 미라로 만들었다는 것이 설득력이 갖춘다. 때로는 생사를 함께 하고 언제까지나 인간을 지켜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기인하는 주술적인 행위라고 설명이 가능하다. 실제로 대부분의 고양이 미라는 신에게 바쳐지는 제물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집트에서는 고양이를 수출하는 것이 불법으로 정해져 있었으며, 고양이를 죽게 하는 행위 또한 엄벌로 다스렸다고 한다. 고양이를 신으로 모셨으니 어찌 보면 이는 당연한 행위였을 지도 모른다. 고양이를 굉장히 신성시하면서도 친근한 존재로 여겼고 때론 고양이가 죽으면 이를 애도하기 위해 눈썹을 밀기도 했다고 하니 고양이에 대한 이집트인의 사랑이 엄청났다고 볼 수 있다. 
 

이집트 여행 기념품으로 판매되고 있는 고양이상 /픽사베이
이집트 여행 기념품으로 판매되고 있는 고양이상 /픽사베이

실제 이집트인이 가진 고양이에 대한 애정은 다소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표현됐다. 기원전 525년 페르시아 군대는 이집트와의 전쟁에서 이기게 되는데, 이때 고양이를 활용해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이다. 이집트인은 신의 후손이라 생각하는 고양이를 해칠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하여 페르시아 군대는 고양이를 전면에 두고 전투에 임했다. 결과적으로 인간을 수호하는 존재나 마찬가지였던 고양이를 해칠 수 없던 이집트인은 전쟁에 패하게 되었다. 이집트인에게 고양이의 목숨은 그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어느 시대의 어떤 지역이라도 고양이를 작고 소중한 존재로 여겼던 모습만큼은 어느 정도 비슷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 민화 속 고양이의 모습 

우리 역사 속에도 인간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고양이에 관한 기록이 여러 군데 존재한다. 지나간 역사를 돌이켜 봤을 때 가장 영향력 있는 집사는 아무래도 조선 시대 최고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임금이 아니까 싶다. 

실제로 조선 19대 왕이었던 숙종과 한 고양이에 대한 일화가 굉장히 유명하다. 조선 시대 문인의 기록을 통해 숙종이 애묘인이었단 사실을 알 수 있는데, 그가 후원을 산책하다가 발견한 금색 고양이를 특히 예뻐했다는 이야기 역시 많이 알려져 있다. 오래 굶어서 죽어가는 금색 고양이는 궁으로 데려와 길렀던 숙종은 고양이에게 ‘금덕’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고 한다. 

금덕이가 후에 새끼를 낳고 죽게 되는데 숙종은 그 새끼인 금손이를 식사 때고, 나랏일을 돌볼 때도 늘 곁에 두고 쓰다듬으며 사랑을 길렀다는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다. 1720년 숙종이 승하하고 금손이 역시 먹이를 거부하며 울다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 이야기는 김시민의 ‘금묘가’를 통해서도 널리 알려졌다. 임금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궁중 고양이가 임금이 승하하고 이를 따라 금방 죽음을 맞이하였는데 임금의 무덤 바로 옆에 묻혀 함께 한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금묘가를 통해서 충신의 의미와 말 못 하는 짐승일지라도 사람과 교류가 가능하다는 가치를 얻을 수 있다.

역사 속에는 수많은 애묘인이 존재했는데 조선 후기의 화가 변상벽 또한 그중 하나다. 특히 그의 작품 중 잘 알려진 ‘묘작도’라는 그림은 고양이 두 마리가 등장한다. 한 마리는 참새떼를 향해 나무를 올라타고 있고 나머지 한 마리는 고개를 들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자연의 모습을 실감 나게 묘사하여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참새와 고양이, 변상벽 화가의 '묘작도' /국립중앙박물관
참새와 고양이, 변상벽 화가의 '묘작도' /국립중앙박물관
참새와 고양이, 변상벽 화가의 묘작도 /국립중앙박물관
변상벽 화가의 묘작도 속 귀여운 고양이/국립중앙박물관

조선 시대에는 이러한 영모화가 많이 그려졌다. 새와 동물을 소재로 그린 그림을 영모화라고 하는데 변상벽은 그중에서도 고양이를 소재로 많은 작품 활동을 하였고 이를 탁월하게 그려내 ‘변고양’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 꽃과 나무 그리고 동물이 등장하는 화훼영모도가 다양하고 여기서 그림의 주제가 되는 여러 소재는 심미적인 역할도 해내지만 특별한 의미를 내포하기도 한다. 특히 닭이나 물고기, 호랑이는 대표적으로 역사 속 민화에 많이 등장하는 동물이다. 닭은 명성을 뜻하고 물고기는 부부 해로, 용맹한 호랑이가 그려진 그림은 벽사, 즉 마귀를 쫓는다는 의미가 있다. 또 거북이는 장수를 상징하며 까치는 기쁜 소식을 뜻하는 길조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 외에 꽃이나 자연 식물에도 뜻을 담아 그림을 그렸는데 모란은 부귀영화, 연꽃은 다산이나 연과를 의미했다고 한다. 
 

조선후기 화가 조지운 작품 /국립중앙박물관
조선후기 화가 조지운 작품 /국립중앙박물관
고양이는 민화 속 소재로 자주 등장했다, 군훈필묘도 /국립중앙박물관
고양이는 민화 속 소재로 자주 등장했다, 군훈필묘도 /국립중앙박물관

우리 민화 속의 소재로 등장했던 고양이 역시 내포하는 뜻이 존재했다. 고양이는 장수를 뜻하는 소재로 그림 속에 등장했으며 고양이와 나비가 함께 그려진 그림은 장수를 기원하는 그림으로 묘접도라 불렸다고 한다. 고양이는 70세라는 뜻이 있으며 나비는 80세를 의미한다.

가장 대표적인 묘접도는 단원 김홍도의 ‘황묘농접’이 있다. 그림 속 노란 고양이가 나비를 희롱하는 모습인데 환갑을 축하하기 위해 그려진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 속에는 귀여운 치즈색의 고양이와 나비가 어우러져 함께 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고 그 옆으로 청춘을 의미하는 패랭이꽃, 영원과 불멸을 뜻하는 바위가 함께 배치되어 있어 장수를 기원하는 그림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조선 시대 민화 속에서 등장하는 동물들이 전부 의미를 가진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자연과 동물의 모습은 우리 조상의 삶 속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일부분 중의 하나였으며 그 모습을 그대로 작품에 녹이기도 했다. 

귀여운 길고양이가 소재가 된 ‘야묘도추’는 평화로우면서 일상적인 조상의 모습을 담은 조선 후기의 풍속화다. 야묘도추란 들고양이가 병아리를 훔쳐 간다는 뜻으로 긍재 김득신 화가의 작품이다. 그림 속에는 현대로 치자면 마치 턱시도 고양이로 보이는 들고양이가 병아리 한 마리를 물고 달아나고 있다. 한가로운 가정의 마당을 배경으로 한 이 그림은 병아리를 채가는 고양이를 붙잡으려는 두 부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마당의 모습이 실제로 훤히 눈앞에 나타나는 기분이 든다. 역동적인 모습과는 또 다르게 평화로운 삶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해 우리나라 풍속화가 가진 매력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귀여운 고양이 /픽사베이
귀여운 고양이 /픽사베이

고양이는 이렇게 우리의 삶 속에서 때로는 신성한 모습으로, 때로는 친근한 모습으로 항상 곁에 존재했다. 집에 누워 평온하게 잠이 드는 고양이를 보면 수백 년 전 고양이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느껴진다. 평소에는 도도하기 짝이 없지만 가끔은 멍한 강아지 같기도 한 우리의 고양이는 앞으로도 영감의 원천이 되어줄 것이라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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