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1-03-08 22:00 (월)
2021년의 시작, ‘필사’가 주는 위로
상태바
2021년의 시작, ‘필사’가 주는 위로
  • 윤미지 기자
  • 승인 2021.01.16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위로가 필요한 현대 사회 속 필사가 가진 의미

[핸드메이커 윤미지 기자] 최근 다양한 매체에서 우리 사회에서 위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 발생 이후로 한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전 세계는 팬데믹 현재진행형의 삶의 살고 있다.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은 전 세계 대다수 인구가 외부활동을 줄이고 실내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상황에 접어든 것이다. 국내에서도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고 있으며 외국에는 심각한 상황에 따라 국가적인 셧다운을 선포하는 곳도 생겨났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이 매끄럽게만 진행됐던 것은 아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무색하게 여전히 필요 이상의 외부활동을 하는 이들도 존재하며 이문제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게다가 코로나19가 세계적인 현상이다 보니 외부활동을 자제하지 못하는 이들이 국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미국의 한 유명 래퍼는 코로나19 시국 중 대형 파티를 열어 논란이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여전히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에 동참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외부활동에 집중됐던 현대인의 취미가 점점 더 주거공간에 한정된 활동으로 변화하고 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고 이를 더 알차게 혹은 즐겁게 보내기 위해 저마다의 극복 방법을 찾게 된 것이다.
 

픽사베이
장기화되는 팬데믹으로 인해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픽사베이

최근 코로나로 인해 우울감을 경험하는 현상이 생겨나고 이를 부르는 신조어로 ‘코로나 블루’가 등장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고 장기화되는 감염병 상황에서 사람들은 우울을 넘어 분노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 이를 두고 ‘코로나 레드’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실 우리 현대 사회에 위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있었다. 더 나은 학교, 더 나은 직장, 더 나은 환경을 살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치열한 경쟁과 노력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이미 많은 현대인은 삶 속에서, 사회 현상 속에서 피로를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를 해결하려는 방안으로 현대인의 시선을 끄는 새로운 취미 활동이 생겨나고 있다. 코로나19 속에 대부분 산업이 성장을 멈추고 정체되어 있지만 1인 취미 활동에 관련된 산업은 도리어 틈새시장에 들어서 빠른 속도로 자리 잡고 있다.
 

필사를 통해 휴식을 경험할 수 있다 /픽사베이
필사를 통해 휴식을 경험할 수 있다 /픽사베이


여러 가지 취미 활동이 존재하지만 최근엔 필사에 관심을 가지는 현대인이 많다. 그림 그리기나 독서 같은 대중적인 취미들도 다양한데 필사는 이름부터 뭔가 익숙하지는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필사를 직접 해보면 느낀다. 글을 온전히 베끼는 것에 정신이 집중되고 아무런 잡념이 없는 상태에 빠진다. 어느 정도 필사가 훈련되면 글이 가진 의미와 맥락에 대해 쉽게 이해하는 능력도 생긴다. 조금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지만 2021년, 나를 위로할 수 있는 새로운 취미 생활을 찾고 있다면 지금 당장 펜과 노트를 준비해보길 바란다.


가장 원초적인 핸드메이드, 필사

필사의 뜻을 처음 맞닥뜨리면 보통 의아한 감정을 가진다. 책이나 시를 읽는 것도 아니고 왜 써야 하는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소설이나 시를 쓰는 취미가 있다고 하면 조금은 이해할 텐데, 필사는 창작의 영역에 포함되기엔 어딘지 다른 점을 가지고 있다.

필사와 글쓰기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아무래도 창작성에 있다. 필사의 정의는 우선 글을 베껴 쓰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과연 필사는 무엇을 위해 그 역사가 유지되어 왔을지 궁금할 것이다. 소설은 창작활동에 목적을 두고 글을 쓰는데 필사는 누군가의 글을 베끼는 것이라 그 어떠한 창작성도 가지지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상에는 필사를 행하는 시도가 계속됐다.
 

활판 인쇄술, 인쇄 기술이 발전하기 전에는 한 자, 한 자 수기로 베껴써야만 했다 /픽사베이
활판 인쇄술, 인쇄 기술이 발전하기 전에는 한 자, 한 자 수기로 베껴써야만 했다 /픽사베이
인쇄 기술의 발달로 대량 인쇄가 가능하게 됐다 /픽사베이
인쇄 기술의 발달로 대량 인쇄가 가능하게 됐다 /픽사베이

먼저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를 생각해보자. 책이 세상에 빛을 낸다고 해도 인쇄술이 상용화되기까지는 직접 필사를 하는 방법 외에는 책을 찍어내는 방법이 없었다. 대다수 책이 필사를 통해서 만들어졌다. 책값이 비싼 것도 이와 관련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필사는 오랜 시간을 소요했고 작업량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필사가 단순히 책의 출판을 통해서만 이뤄졌던 것은 아니다. 직접 필사를 해보면 알겠지만 그 과정은 고행에 가깝다. 수기로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가야 하는데 손이 아픈 것은 물론, 눈도 침침해지고 오랜 시간 노트와 펜을 잡고 있으면 어깨가 뻐근해져 온다. 가장 큰 어려움은 장시간 오래 앉아있는 것이다. 필사란 집중력을 향상하는 활동이란 관점도 존재하는데, 창작의 의도가 아니라 단순히 다른 글을 복사하듯 옮겨 나가는 일에 집중하고 오래 엉덩이를 붙여 앉아있는 일이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실제로 수도원의 고행 과정 중에 성서 필사가 존재했다고도 한다. 또한 그리스도교에서도 성경을 필사하는 시도가 있었으며 그것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기독교인들은 종종 말씀이 가진 의미를 깊게 파악하기 위해서 필사한다.
 

과거부터 성서를 필사하는 시도가 있어왔다 /픽사베이
과거부터 성서를 필사하는 시도가 있어왔다 /픽사베이
구약 성서 필사하기 /픽사베이
구약 성서 필사 /픽사베이

필사를 하나의 고행으로 보는 시각은 동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과거엔 불교의 불경을 필사하는 일도 많았다. 물론 그 시작은 역시 경전의 수요가 늘어남에 있었다. 그렇지만 불경의 필사는 단순히 책을 하나 더 만든다는 데에만 의미가 있지 않았다. 경전을 필사하는 것 역시 하나의 종교적인 행위로 분류됐다.

앞서 언급했듯 필사는 일반적인 취미로 여기기에 쉬운 일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에 고생스럽게 이뤄지던 일이며 종교계에서는 하나의 수행과도 같은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왜 현대엔 필사를 하나의 취미로 간주하는 시도가 있는 걸까.


필사가 주는 위로

서점에 가면 의외로 필사에 관련한 서적이 많다. 필사를 어떤 식으로 시작해야 하는지부터 작가의 작품이 필사형 서적으로 나오기도 한다. 교회를 다니고 있다면 어쩌면 이 필사가 조금은 더 익숙할 지로 모르겠다. 교인들은 종종 성경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성경 필사를 하기 때문이다.
 

서점에서도 필사형 도서를 만나볼 수 있다 /윤미지 기자
서점에서도 필사형 도서를 만나볼 수 있다 /윤미지 기자
필사형 도서 내부, 따로 필사 노트를 준비하지 않아도 바로 옆 페이지에 글을 옮겨 적을 수 있다 /윤미지 기자
필사형 도서 내부, 따로 필사 노트를 준비하지 않아도 바로 옆 페이지에 글을 옮겨 적을 수 있다 /윤미지 기자

사실 필사는 처음 시도하는 이에게는 꽤 고생스럽게 느껴지는 취미기도 하다. 오래 앉아서 책의 내용을 빠짐없이 기록해야 하는데, 이 한 자, 한 자 써나가는 노력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필사에는 오탈자가 있어서는 안 되며 절대 주관이 들어가서도 안 된다. 예로부터 문헌 자료를 인쇄하기 어려울 때 학자들이 직접 필사하기도 했는데 이때도 오탈자 검수와 필사자의 주관이 개입되었는지 확인하는 교차검증이 반드시 있었다. 글을 짓는 것이 아닌, 남의 시선과 생각을 오로지 담아내는 과정은 의외로 어려움을 가진다.

물론 그나마 취미로 필사를 할 때는 자율성이 있다는 장점은 존재할 수 있다. 취미 생활에 일부분일 뿐인데 꼭 필사의 의미를 살릴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필사를 조금 더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는 글을 베껴서 적는다는 기본적인 필사의 과정은 지키되, 글을 옮긴 후 남는 공간에 일정 부분 자기 생각을 적어보는 것 정도는 용인이 가능하다. 물론 취미형 필사에서 가능한 일이다.

사실 현대인이 책상 앞에 앉아서 책을 보고 한 자 한 자 옮겨 적어가는 과정은 어렵게 느껴질 가능성이 크다. 그 이유는 현대인에게 연필보다 익숙한 게 PC 사용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타이핑을 해서 모니터에 출력되는 글자를 바라보는 게 더 익숙한 현대인이 책과 노트 그리고 연필과 지우개를 사용해서 필사한다는 게 영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보통 컴퓨터는 오탈자가 생기면 백스페이스키를 눌러 지워버리면 그만이다. 얼마든지 지우고 다시 쓰는 과정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필사를 할 때는 글씨에 오타가 생기면 지우개로 지워야 하고 다시 써 내려가야 한다. 그래서 더 집중력이 필요한 취미이기도 하다.
 

수기로 하는 필사는 지우고 다시 쓰는 일이 번거로워 집중해서 글을 써내려가게 한다 /픽사베이
수기로 하는 필사는 지우고 다시 쓰는 일이 번거로워 집중해서 글을 써내려가게 한다 /픽사베이

처음 필사할 땐 글을 그대로 옮겨 쓰기만 하면 되는 일이 이렇게 어려웠었나 느끼게 된다. 그러고선 이내 집중하게 되면 무아의 세계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지우고 쓰고의 과정이 일반 PC 사용만큼 쉽지 않다 보니 오탈자를 만들지 않도록 더 집중하게 되고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오로지 글씨를 제대로 베껴나가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람이 가진 잡념을 지워낼 수 있어 필사는 하나의 고행이면서도 동시에 마음을 치유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필사를 하다 보면 일정 단계를 지나게 된다. 보통 잡념을 지우고 글씨를 베껴가는 것에서 나중엔 작품이 가진 의도에 관해 집중적으로 알게 되는 시기에 도달한다. 사실 필사의 진정한 의미는 여기부터 시작한다.

흔히 작가 지망생을 훈련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필사를 권유하기도 한다. 필사를 취미로 하지 않고 하나의 훈련으로 받아들인다면 더 집중해서 강도 높은 독서를 경험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면 된다. 또한 이는 예비 작가에겐 글쓰기 경험을 해보도록 하는 과정이기도 한데 보통 지망생이 하나의 작품을 스스로 완성해보는 일이 많지 않다 보니 간접적으로나마 집필을 체험해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훈련을 시작한다. 남의 책을 통해서 창작의 시간을 경험해보는 것이다.

작가 지망생은 이를 통해 오래 앉아있는 힘을 기르고 창작에 드는 수고를 느낀다. 그리고 강도 높은 독서를 통해 문장을 공부하기도 한다. 문장을 하나하나 쓰는 연습을 하다 보니 더 많은 부분을 느끼고 깊게 사유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필사는 집중력을 기르면서 하나의 글공부를 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작가 지망생은 굉장히 고심해 책을 고르곤 한다. 필사를 하다 보면 베끼는 작품에 영향도 많이 받으며 문체를 따라 하게 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 있어서 필사를 취미로 접하는 이들은 크게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필사의 또 다른 장점으로 더욱 강도 높은 독서를 경험하게 된다는 점을 언급했는데 이 부분이 필사를 취미로 즐기는 이들에게 매력적인 요소가 되기도 한다. 책을 읽을 때 집중하지 않으면 미처 문맥을 따라가기 어렵다거나 작가의 의도가 와닿지 않을 때도 종종 있다. 그때 필사를 시도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문장을 하나하나 음미하게 되다 보니 책을 더 깊게 이해하는 시도를 하게 된다.

과거 수행의 한 과정이기도 했던 필사는 어쩌면 취미로 시도해보기엔 다소 부담스러운 부분을 가지고 있다. 필사를 하다 보면 손에 힘이 들어가고 굳은살이 생길 가능성도 있으며, 책을 베껴나가는 과정이 피곤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책 한 권을 필사로 독서 했을 때의 뿌듯함 또한 취미의 의미가 되기도 한다. 또한 필사해나가다 보면 집중력과 책에 대한 깊은 이해까지 부수적으로 얻게 된다. 집중력을 키우다 보면 사회적 잡념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줄 다양한 취미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 그중 대부분은 휴식과 마음 치유가 목적인 경우가 다수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 따라 1인으로 즐기는 취미가 늘어가고 있는 가운데 어찌 보면 필사는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취미이기도 하다. 평범한 독서가 조금씩 심심하다고 느껴진다면, 필사를 통해 강도 높은 독서를 경험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글씨를 쓰다 보면 어느새 그간 느꼈던 피로함은 모두 사라지고 작품의 세계에 온전히 집중하게 될지도 모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