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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림 취향은?] ‘붉거나 푸르거나’ 필름으로 보는 듯한 익숙하지만 낯선 일상 - 민하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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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림 취향은?] ‘붉거나 푸르거나’ 필름으로 보는 듯한 익숙하지만 낯선 일상 - 민하림 작가
  • 전은지 기자
  • 승인 2021.01.1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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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전은지 기자]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예전에 평범했던 일상을 그리워하고 있다. 카페에 앉아 아메리카고 한 잔과 함께 친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웃던 때, 맛집에 찾아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여행지에서 자유롭게 산책하며 누리던 때를….

그때는 모두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소중한 줄 몰랐고, 그런 일상을 잃고 나서야 알았다.

민하림 작가의 그림은 바로 그런 때를 한 두 가지의 색채로 표현하고 있다. 총천연색으로 표현되던 풍경이 붉은색, 푸른색으로 보인다. 현재 대신 빛바랜 과거를 나타내듯, 그 지나간 시간을 안타까워하는 느낌이다.

옛날 필름 카메라를 아는 이들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으로 인화되기 전 까만 필름을 빛에 비추어 보면 볼 수 있었던 그 풍경이 작품 속에 녹아들어, 레트로 감성이 그대로 전해지기도 한다.

또는, 익숙했던 풍경이 단조로운 색채로 낯설게 보이기도 한다. 작가도 “우리가 평생을 살면서 가장 많이 속해있는 지점이 일상이다. 익숙하게 보았던 주변의 풍경과는 다른 회화적 색채 감성으로 그려내 우리가 특별함 없이 친숙하게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순간들이 삶을 견디도록 지탱해주는 매개체임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약속의 땅 (162.2×112.1cm, oil on canvas, 2020) / 민하림 작가 제공
약속의 땅 (162.2×112.1cm, oil on canvas, 2020) / 민하림 작가 제공
신림 (40.9×53.0cm, 캔버스에 유화, 2019) / 민하림 작가 제공
신림 (40.9×53.0cm, 캔버스에 유화, 2019) / 민하림 작가 제공

붉은 톤으로 표현된 그림들은 그 색채가 주는 느낌처럼 강렬하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치열한 삶의 흔적이 느껴지기도 한다.

‘약속의 땅’은 색채만 보면 석양으로 물든 한 도시의 풍경처럼 보인다.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올 사람들을 기다리는 집이 가득하다. 곧 밤이 찾아오고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눌 가족들의 따뜻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대조적인 모습도 분명히 보인다. 누군가는 높은 아파트에서, 누군가는 낮고 허름한 주택이나 좁은 고시원에서 살아가고 있다. 아파트는 저 멀리, 주택가는 가깝게 표현되어 있어 그 차이가 명확히 드러나는 듯하다. 건물 옥상에 늘어진 빨랫줄이 그 치열한 삶을 표현한다. 집이 사람들의 행복 수준을 판가름하는 잣대가 될 순 없지만, 이 동네 사람들도 언젠가는 약속의 땅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보여준다.

‘신림’은 ‘약속의 땅’보다 더 짙은 어둠이 찾아온 밤의 풍경이다. 직각으로 표현된 높은 빌딩이 많고, 네온사인처럼 표현된 빛이 실제 간판을 눈으로 보는 듯, 눈이 부시기까지 하다.

신림동은 서울대학교가 있어 대학생이나 여의도 등으로 출퇴근하는 젊은 직장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동네다. 그렇다고 마냥 젊음이 느껴지진 않는다.

창문마다 불이 켜져 있어야 하지만, 그런 집을 살펴보기 어렵다. 오히려 식당 등이 있을법한 건물의 빛이 더욱 밝다. 밤늦은 시간에도 야근이나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집에 들어오지 못한 이들의 삶을 표현한 듯하다. 오히려 빌딩 뒤편으로 보이는 주택가의 불빛이 더욱 아름답다. 서울의 야경은 누군가의 야근이라고 했던가. 그 말을 보여주는 작품이 아닐까 한다.
 

길건너, 별 (53.0×40.9cm, 캔버스에 유화, 2020) / 민하림 작가 제공
길건너, 별 (53.0×40.9cm, 캔버스에 유화, 2020) / 민하림 작가 제공
한강 (53.0×40.9cm, 캔버스에 유화, 2019) / 민하림 작가 제공
한강 (53.0×40.9cm, 캔버스에 유화, 2019) / 민하림 작가 제공

앞서 작품들이 붉은 톤이었다면, 이 작품들은 그보다 조금 덜한 주황빛에 가까운 느낌이다.

‘길건너, 별’은 멀리서 바라본 도심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작품명을 놓고 보면, 하늘에 사선으로 길게 표현된 것이 별똥별이 아닐까 싶다. 별이 가득한 하늘을 보면, 반짝이는 아름다움 때문에 일상의 번잡함을 모두 내려놓고 한참 쳐다보게 된다. 철부지 아이처럼 신기해서 웃음을 짓게 만든다.

그런 별이 도심을 스쳐 지나간다. 도시의 화려한 불빛보다는 하늘의 별에 집중해 바쁜 일상에서 작은 여유를 찾아보라는 작가의 조언이 아닐까. 거친 붓 터치로 표현된 어두운 골목길에 반해, 수채화처럼 약간 번지듯 표현한 도심은 부드럽기까지 하다.

‘한강’도 ‘길건너, 별’과 비슷한 느낌이다.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사람들이 한 번쯤은 창문으로 고개를 돌리는 때가 있는데 바로 한강을 지나갈 때라고 한다. 지하철에 탄 사람들을 보면, 모두 스마트폰에 집중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

하지만, 한강이 보이면 고개를 돌려 창을 바라본다. 일상 속에서 잠깐의 일탈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 말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더 많은 말을 하면 안 될듯하다. 햇무리가 멋지게 퍼진 한강의 모습을 그저 바라보면서 위로받으면 된다.
 

출근 (53.0×40.9cm, 캔버스에 유화, 2020) / 민하림 작가 제공
출근 (53.0×40.9cm, 캔버스에 유화, 2020) / 민하림 작가 제공
놀이_터 (53.0×40.9cm, 캔버스에 유화, 2019) / 민하림 작가 제공
놀이_터 (53.0×40.9cm, 캔버스에 유화, 2019) / 민하림 작가 제공

이 작품들은 붉은빛보다는 보랏빛에 가깝다. 어두운 듯하면서도, 밝아 보이는 느낌을 준다. ‘출근’은 분주한 새벽 출근을 하는 한 직장인의 시각을 표현한 것 같다. 도로 위에는 출근하려고 분주한 자동차와 택시들이 가득하다.

그를 바라보는 이는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서 있다. 도로에 거친 붓 터치가 출근길의 다급함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얼마나 바쁘고 치열한 삶이면 해가 뜨기도 전에 출근을 해야 할까.

‘놀이_터’도 어스름한 새벽인 듯한데, 핑크톤이 두드러지어 대조적으로 보인다. 보통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의 모습은 아니다. 콘크리트 원통이나 굴착기 장치, 커다란 바위가 있는 걸로 봐서는 근처에 공사 현장이 있을 것 같다. 원통 안에는 플라스틱 의자가 놓여있다.

어린 시절, 이런 구조물이 아이들의 아지트가 되곤 했다. 원통을 타고 올라가거나, 그 안에 숨어 떠들거나. 위험하지만, 이만한 놀이터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이런 곳에는 아이들이 없다. 마치 주인을 잃은 듯, 텅 빈 의자와 주변의 갈대가 쓸쓸함을 더한다.
 

Blue day (65.1.9×90.9cm, oil on canvas, 2020) / 민하림 작가 제공
Blue day (65.1.9×90.9cm, oil on canvas, 2020) / 민하림 작가 제공
익숙한 풍경 (90.9×65.1cm, oil on canvas, 2020) / 민하림 작가 제공
익숙한 풍경 (90.9×65.1cm, oil on canvas, 2020) / 민하림 작가 제공

붉은 톤에 이어 푸른색 풍경도 민하림 작가의 화풍이다. ‘Blue day’는 롯데월드 타워가 가까운 잠실 골목길 어딘가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까마득한 높이를 자랑하는 타워가 그림 중간에 있고, 그 주변으로 상가가 줄지어있다.

원근법으로 표현해서 그 거리감이 더욱 돋보인다. 푸른 색채 때문에 그림 속 풍경의 시간이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자동차 헤드라이트와 간판의 불빛이 저녁임을 짐작게 한다. 매일 똑같던 도시의 풍경이 유독 차갑고 낯설게 보이던 어느 날을 표현하고 있다.

‘익숙한 풍경’은 한가로운 휴일의 낮 풍경을 보여주는 듯하다. 앞서 그림들이 치열한 일상을 표현하거나, 그 일상 속에서 찾고 싶은 여유로움을 표현했다면, 이 작품은 여유 그 자체다. 분주했던 평일의 시끄러움보다는, 조용한 풍경이다.

독특하면서도 인상 깊은 점은 주택가는 세밀하지만, 멀리 보이는 아파트는 마치 하얀 그림자라도 된 듯 희미하게 표현했다는 점이다. 원근법 때문이겠지만, 현실 속에서 풍경을 보면 아무리 멀리 있는 것이어도 그 형체는 분명히 보인다. 하지만 멀리 보이는 아파트는 어떻게 생긴 것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다. 아마도 그림 속 화자가 보기에는 아파트보다 작고 조용한 동네가 익숙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한여름 밤 (53.0×40.9cm, 캔버스에 유화, 2020) / 민하림 작가 제공
한여름 밤 (53.0×40.9cm, 캔버스에 유화, 2020) / 민하림 작가 제공

‘한여름 밤’은 도심 속에 있는 공원의 모습이다. 넓은 운동장 겸 축구장에서 여름밤의 여유를 즐기며 뛰고 있는 사람들이 점처럼 표현되어 있다. 푸른 색감 때문에 여름이 주는 계절적 느낌보다는 시원하다는 느낌이 든다.

제목을 보지 않고 처음 그림을 봤을 때는, 산속 깊숙이 위치한 스키장처럼 보이기도 했다. 가로등이 켜진 부분만 밝게 보이는데, 이 부분이 높은 산이고, 운동장은 원근감 때문인지 눈이 쌓인 슬로프 같았다. 단조롭게 표현된 한 색채가 원래 그림과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새롭게 다가왔다.
 

This time (90.9×72.7cm, 캔버스에 유화, 2019) / 민하림 작가 제공
This time (90.9×72.7cm, 캔버스에 유화, 2019) / 민하림 작가 제공
점심시간 (53.0×40.9cm, 캔버스에 유화, 2019) / 민하림 작가 제공
점심시간 (53.0×40.9cm, 캔버스에 유화, 2019) / 민하림 작가 제공

보통 민하림 작가의 작품은 한두 가지의 색채로 표현되지만, 이 세 작품은 사실적이면서도 다양한 색감으로 표현되었다.

‘This time’은 어느 집의 마당을 보여준다. 징검다리처럼 놓여있는 길과 물 위에 비친 집의 풍경이 마치 집 안에 커다란 연못이 자리한 느낌이다. 은퇴해 속세를 떠나 한가로운 시골에 자리한 노부부의 쉼터 같다. 여유롭고, 아늑하다. 색채 또한 차분해서 편안한 느낌을 준다.

‘점심시간’도 편안한 느낌이다. 학교 운동장인 듯한데, 점심시간이면 축구를 하거나 산책을 하는 학생들이 있을 텐데 텅 비어있다. 방학 중인 학교의 모습인 걸까.

어쩌면 요즘의 학교와도 닮아있다. 코로나 때문에 학교에 오지 못하고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들어야 하는 학생들의 안타까운 모습이 생각난다. 주인을 잃은 학교의 쓸쓸함 마저 느껴진다. 대신 뭉게뭉게 피어난 핑크빛 구름이 텅 빈 운동장을 위로하는 듯하다.
 

Ramp way (53.0×40.9cm, 캔버스에 유화, 2019) / 민하림 작가 제공
Ramp way (53.0×40.9cm, 캔버스에 유화, 2019) / 민하림 작가 제공

‘Ramp way’는 위의 두 작품과는 다른 느낌이다. 다양한 색채를 사용했지만, 포커스가 집중된 한 장소에서 풍겨 나오는 색채가 강렬하다. 그림의 중앙에 위치한 정육점의 빨간 불빛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제목에도 ‘ramp’가 들어간 것일까. 정육점을 기준으로 양 갈래로 나뉜 도로는 모두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갈빗집 앞에는 앉거나 서서 대기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걸로 봐서는 맛집 같다. 하지만 정육점 앞이나 안에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붉은 불빛 때문인지 몰라도, 이곳에만 사람이 없으니 쓸쓸해 보인다. 재료를 사다가 만들어 먹기보다는, 식당에 가서 밥을 사 먹는 요즘 현대인들의 익숙한 풍경을 그리고 있다.

제목을 보고 해석해보면, 또 다른 느낌이 든다. 사전에서 ‘ramp way’는 고속도로의 진입로를 의미한다. 그림 속 도로도 큰 도로에서 골목길로 들어가기 전처럼 보인다. 붉은 램프와 진입로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담은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싶다.
 

Made in pink (130.3×130.3cm, 2019) / 민하림 작가 제공
Made in pink (130.3×130.3cm, 2019) / 민하림 작가 제공
See The Sea (90.9×72.7cm, 캔버스에 유화, 2019) / 민하림 작가 제공
See The Sea (90.9×72.7cm, 캔버스에 유화, 2019) / 민하림 작가 제공
On the pink (162.2×130.3cm, oil on canvas, 2019) / 민하림 작가 제공
On the pink (162.2×130.3cm, oil on canvas, 2019) / 민하림 작가 제공

누군가에게는 일상 속 풍경에 물속이나 바다가 등장할 수도 있다. 보통 물이라고 하면 푸른색으로 표현하지만, 민하림 작가는 핑크빛으로 표현했다.

‘Made in pink’는 바닷속 산호의 모습을 그렸다. 붉은빛이 화려함을 더한다. 모든 산호가 붉은빛이 아니지만, 물감이 물속에서 퍼지듯 대체로 핑크빛을 띠고 있다. 그래서 제목도 made in pink일까.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욕구를 돌려 말하고 있다. 작가 노트를 통해, 작가는 자연을 소유하고자 하는 도시인들의 욕구를 산호가 갇힌 유리수조로, 자연의 생명력과 존재의 가치를 산호를 통해 나타내고자 했다.

어떤 것이 나쁘다고 판단할 수는 없지만, 인간과 산호 모두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살아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살면서 이런 산호를 얼마나 볼 수 있을까.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인공의 수조 속에서도 생명력을 뽐내며 살아가는 산호를 통해 삶의 소중함도 배울 수 있다.

‘See The Sea’와 ‘On the pink’는 거친 파도가 치는 바다의 모습을 담고 있다. 흔히 이런 바다는 여행을 떠나 보게 된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일상을 떠나 파도가 치는 바다를 보며 스트레스를 날리기도 하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한다.

그런 바다를 푸른색이 아닌, 핑크빛으로 표현했다는 점이 독특하다. 아니, 오히려 푸른 바다였으면 그냥 한번 보고 지나쳤겠지만, 핑크빛 바다라서 오래도록 바라보게 된다. 수평선 저 멀리서부터 밀려오는 파도의 흐름이 생동감을 더한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바다처럼, 우리도 일상과 삶을 힘차게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바다는 언제나 우리를 위로하는 존재이며, 그 위로를 받고 싶다면 도심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물감이나 색연필을 보면, 항상 여러 가지 색이 있다. 그림을 그릴 땐 모든 색을 사용해야지 하는 강박 아닌 강박감이 있는데, 민하림 작가는 한 가지 색으로도 원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어쩌면, 여러 가지 색을 사용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며, 남들과는 다르게 한 가지색만 사용하는 작가의 작품이 일탈임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항상 우리에게는 일상 속 일탈이 필요하지만, 지금은 그 일탈을 위해 잠시 멈추어야 하는 때이다.
 

[나의 그림 취향은?] 시리즈는 독자들이 자신의 그림 취향을 알아가는 것을 돕기 위해 기획됐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의 색채가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어찌 보면 많이 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본 시리즈는 색채가 뚜렷한 작가들의 작품 위주로 소개가 될 예정이며 작가들의 개인적인 삶보다는 작품에 집중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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