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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방과 우리 전통 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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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방과 우리 전통 붓
  • 윤미지 기자
  • 승인 2021.02.0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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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붓의 종류와 좋은 붓의 의미

[핸드메이커 윤미지 기자] 새해를 시작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특별하다. 새해에는 기대와 설렘을 동시에 느끼고 한 해를 알차게 보낼 준비에 돌입한다. 한 해를 맞이하는 의식은 과거에도 존재했으며 현대에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저마다 새로운 해를 계획한다. 

과거엔 새해를 맞이하고 입춘이 다가오면 문 앞에 크게 입춘방을 붙였다. 현대에는 입춘방이라는 단어가 그리 익숙하지 않지만, 우리 조상님들은 가정마다 봄을 송축하고 한 해의 행복을 기원하며 이 입춘방을 써서 붙이곤 했다. 

이 입춘방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인 입춘이 오면 대문이나 기둥에 붙여놓는다. ‘입춘대길 立春大吉’, ‘건양다경 建陽多慶’ 같은 글자를 써서 붙이곤 했는데 이는 입춘을 맞이해 크게 길하고 경사로운 한 해가 되길 기원하는 글귀이다. 이외에도 과거 농경사회가 주를 이뤘을 때는 ‘시화세풍’, ‘우순풍조’ 등의 글귀도 사용되었다. 주로 풍년이 들고 농사에 알맞은 기후를 기원하는 말이다. 
 

입춘방 /crowdpic크라우드픽
입춘방 /crowdpic크라우드픽

그렇게 입춘이 오면 각 가정의 대문에는 세로로 긴 큰 종이가 ‘사람 인’자의 형태로 붙어있곤 했다. 과거엔 글을 못 쓰는 사람은 남에게 부탁해서라도 입춘방을 붙였다. 한 번 붙이면 보통 다음 입춘이 올 때까지 쭉 대문의 정면을 지키고 있는 이 입춘방은 보통 명필, 즉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 붓을 잡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선호되었다. 특히 각 가정에서 어르신이 직접 입춘방을 쓰기도 했지만 이를 따로 명필에게 받아오는 것 역시 흔히 있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한 해의 복을 기원하는 글귀이니 정성을 담아 바른 글씨체로 써지길 바라는 것은 어느 시대라도 이해가 가는 마음이다. 

입춘방을 쓰기 위해서는 종이와 벼루, 먹 그리고 붓이 있어야 한다. 과거 선비의 물건이었던 문방사우는 절도 있고 수려한 글귀를 써 내려가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재료였다. 붓은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요소다. 글을 써 내려가는 주체는 사람이지만 붓의 질이 얼마나 좋은지에 따라 글자의 결이 좌우된다.  

때론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도 존재한다. 어떤 일을 하든 도구나 환경을 탓하지 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는 당나라 때 명필 구양순이 글을 쓰는 가운데 붓을 가리지 않고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는 것에서 전해졌다. 물론 어떤 분야에서든 뛰어난 천재는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긴 하다. 하지만 붓이 만들어지는데 얼마나 많은 과정이 필요한지 알게 된다면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지만, 좋은 붓은 누구라도 명필로 만든다는 말 역시 동의하게 될 것이다. 
 

붓, 국립민속박물관
붓 /국립민속박물관
다양한 종류의 붓이 전시되어 있는 모습 ,붓이야기박물관
다양한 종류의 붓이 전시되어 있는 모습 /붓이야기박물관



좋은 붓은 무엇인가, 전통 붓 이야기

현대에는 붓을 의외로 쉽게 접한다. 화방에서도 어렵지 않게 붓을 접하며 또 여러 종류 중에 자신의 작업에 따라 적합한 것을 찾아 고를 수도 있다. 분야에 따라서는 코스메틱 산업에서도 메이크업 브러쉬를 쉽게 접한다. 메이크업 역시 의외로 다양한 브러쉬를 도구로 사용하는 덕분에 붓 선택의 폭이 넓다. 

우리 삶 속에서 유용하게 사용되는 이 붓은 사실 과거엔 선비의 물건이라 여겨졌다. 물론 현대의 붓과 전통 붓은 그 모양과 붓의 모질 등에 따라 여러모로 확연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특히 우리 전통 붓은 장인의 손에서 직접 만들어진다. 물론 현대에는 질 좋은 붓을 찾는 이들이 과거와 비교하면 현저하게 줄어들었기 때문에 공장에서 생산되는 붓을 찾는 사람의 비율이 높다. 하지만 여전히 붓을 만드는 장인, 필장은 존재하며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붓,국립민속박물관
붓 /국립민속박물관

양질의 전통 붓은 필장의 손을 거쳐 정성껏 제작된다. 어떤 물건이든 사람의 손이 닿아 만들어지면 그 손길과 정신이 투영되는 것은 당연하다. 전통 붓 역시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제작된다. 장인의 사상과 가치가 녹아들며 완성되는 것이다. 

붓을 만드는 것은 ‘붓을 맨다’라고 표현한다. 현재는 직접 손으로 붓을 매는 장인이 많지 않다. 과거 기술에 한정되어 있던 필장의 활동은 현재는 예술적인 작업으로 인정받고 있기도 하다. 

붓의 종류 또한 매우 다양하다. 보통 붓의 모양과 털 굵기, 길이에 따라서 종류를 나눌 수 있으며 붓의 모에 쓰이는 재료 역시 이를 구분하는 요소가 된다. 우선 털이 긴 붓은 장봉필이라 하며 중봉필은 중간 길이의 붓털을 가지고 있고, 단봉필은 붓털과 붓대 모두 작은 붓을 말한다. 털의 길이에 따라서 선을 쓸 수 있는 방법이 다른 것은 물론 큰 글씨와 작은 글씨 작업에 따라 이를 선택하면 된다. 

예를 들면 장봉필은 붓털이 길다 보니 긴 선을 능숙하게 표현하기 좋다. 또한 큰 글씨를 쓰기에 편한 도구다. 중봉필이 가장 대중적으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붓이며, 단봉필은 붓털이 작아 그림에서 섬세한 부분이나 글씨 역시 작은 크기로 써 내려갈 때 필요하다. 또한 면상필이라 불리는 것도 있는데 굉장히 예리한 모양의 붓으로 사람의 얼굴 중에서도 섬세한 부분 묘사에 사용되는 붓을 일컫는다. 


전통 붓은 그 털의 재료에 따라서도 구분할 수 있다. 모필과 초필로 구분할 수 있는데 국내에서 이 모두를 만들 수 있는 필장이 많지 않다고 한다. 우선 모필은 동물의 털로 만드는 붓을 말한다. 보통 가장 선호하는 소재는 양모이며 이를 양모필, 그 외에도 토끼털로 만든 붓은 토모필, 말의 꼬리로 만든 붓을 가리켜 마모필, 돼지 털의 돈모필과 족제비 털의 황모필 등이 있다. 양모필은 글씨를 쓰는 것과 그림을 그리는데 모두 적합하며 토모필의 경우 예리한 작업에 용이했다. 말의 꼬리는 거칠고 강한 편이라 이에 맞는 작업에 쓰였으며 돈모필은 유연하지 않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황모필에 주재료가 되는 족제비털 붓이야기박물관
황모필에 주재료가 되는 족제비털 /붓이야기박물관
붓을 만들 때 사용하는 도구인 치게, 쇠로 만든 빗이다 /붓이야기박물관
붓을 만들 때 사용하는 도구인 치게, 쇠로 만든 빗이다 /붓이야기박물관

모필은 제작 과정에서부터 굉장한 수고가 든다. 먼저 모필을 매기 위해서는 원모를 선별해줘야 하는데, 빗을 사용해 반복하여 빗겨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원모를 계속해서 빗다 보면 이물질이 떨어져 나가고 털도 한층 부드러운 재질을 가지게 된다. 

이렇게 정모 된 털은 굵기와 길이 등의 규격에 따라서 잘라내고 다시 배합한다. 이 과정에서 장인의 예리한 눈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규격에 따라 굵기가 너무 튀어도 안 되며 길이를 맞춰주는 게 관건이다. 또한 일정한 양만큼 모를 나눠서 알촉을 배합해 만들어야 한다. 장인은 손의 촉감만으로도 일정한 양의 모를 잡아 알촉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양의 붓을 한 번에 만들 때는 저울을 사용해 원모를 나눈다고도 한다. 

정모의 과정이 끝나고 배합된 붓털은 종이로 감싸서 알촉으로 완전한 모습을 갖춘다. 털이 모여있는 뒷부분을 계속 두들겨가며 빗질을 하는데 이를 여러 번 반복할수록 더 정교한 모양의 알촉을 완성할 수 있다. 이다음은 붓촉이 가지런하게 잘 배합이 되었는가 확인해야 한다. 물을 묻혀서 확인하는데 이를 물끝보기라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사용 중에 붓이 갈라지는지 확인하고 그 원인을 미리 없앨 수 있다. 완성도가 높은 붓을 매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작업이다. 

이때 더이상 빠지는 털이 없다면 필관에 들어가는 쪽 부분을 명주실로 단단하게 묶어준다. 털이 빠지지 않도록 아주 강하게 묶어줘야 한다. 그리고 붓대에 꽂아주고 필관까지 조각을 하면 모필이 완성되는 것이다. 

초필은 모필과 반대로 식물성 재료를 통해 맨다. 향과 물 빠짐이 좋은 억새, 갈대, 볏짚 등을 장인이 직접 채취해서 제작한다. 초필을 만드는 것에는 섬유질의 강도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선별한 억새나 갈대를 삶고 말리기를 여러 번 반복해야 한다. 
 

짚풀로 만든 붓 /붓이야기박물관 편집
짚풀로 만든 붓 /붓이야기박물관

초필은 모필과 같이 붓대와 알촉을 따로 만들지 않고 하나의 형태로 제작한다. 초필의 재료를 잘 잡아 명주실로 묶어주는데 이때 긴 쪽은 붓대로 쓰이고 짧은 쪽은 붓촉으로 나누어진다. 특히 붓대와 붓촉을 나눠주는 부분을 명주실로 아주 강하게 묶어줘야 한다. 붓대 부분에 물이나 먹이 올라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최대한 꽁꽁 묶어 작업하는데 느슨하다고 판단이 되면 다시 풀고 묶기를 반복한다. 

초필 역시 빗질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식물성 재료기 때문에 어찌 보면 모필보다 더 빗질의 역할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털을 부드럽게 고르는 과정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 또 한 가지 과정을 거치는데 바로 망치로 두드리는 것이다. 무딘 끝이 붓답게 섬세한 모양과 질감을 가지게 하도록 섬유질을 연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장인은 수만 번의 망치질을 한다. 그 후에 붓촉에 물을 묻혀 질감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초필은 모필보다 오래 사용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붓을 매는 것에는 상당한 수고가 함께한다. 하지만 장인은 질 좋은 전통 붓의 맥을 이어가기 위해서 그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붓은 문방사우의 도구가 되어 문인의 서재에서, 선비의 손끝에서 좋은 글귀를 써 내려갈 수 있는 벗이 되어준다. 

그렇다면 좋은 붓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론적으로 좋은 붓의 기준은 모아져 있을 때 붓끝이 뾰족해야 한다. 그리고 붓을 살짝 눌러 펼쳐볼 때 갈라짐 없이 가지런한 모양을 한 것이 중요하다.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사용한 후에도 다시 원래 모습으로 잘 돌아오는 붓을 잘 만들어졌다고 칭할 수 있다.  

장인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붓은 수백 번이 넘는 손길을 거친다. 여러 번 빗질하고 때론 망치로 내려치는 과정은 셀 수 없이 반복된다. 물론 이론적으로 잘 만들어진 붓에 대한 정보는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붓을 매는 과정을 살펴보면 만드는 이의 혼과 정신이 스며들 듯 여러 과정을 거쳐 사람의 손을 통해 탄생한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모필, 원추형으로 모은 붓털이 속이 빈 대롱형 붓대 선단에 고정되어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모필, 원추형으로 모은 붓털이 속이 빈 대롱형 붓대 선단에 고정되어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손수 만든 전통 붓과 공산품 붓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기계를 통해 사람의 손에서 만들어진 붓을 거의 비슷하게 이론적으로는 따라 할 수는 있겠지만 그 물건에 깃든 정신은 다르다. 명필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정성껏 만들어진 좋은 물건을 가려내는 재주 역시 때로는 필요한 것이다.  

매서운 한파가 지나가고 나면 곧 다가올 입춘에도 좋은 붓으로 글귀를 써 내려간 입춘방을 찾는 이들이 나타날 것이다. 한 해의 풍년을 기도하고 복 있는 하루하루를 기원했던 과거 조상과 마찬가지로 현대에도 서예가가 직접 써 내려간 입춘방을 받기 위해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과거와 비교하면 현대에는 입춘방을 대문에 붙이는 가구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조상의 문화를 따르고 이를 이어가는 현대인이 존재한다. 

올해는 좋은 붓을 사용해 직접 입춘방을 써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서예가가 직접 써 내려간 글귀에는 못 미칠 것이 분명하지만 마음을 담아 만들어진 붓이 있듯, 입춘방 역시 잘 쓰려고 하기보다 한 해를 축복하는 마음으로, 부족하지만 한 획마다 천천히 써 내려가며 직접 입춘방을 준비하는 시도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참고자료 : 소상공인방송 <옛것이 좋다> 11회 전통 붓, 옛 삶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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