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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성의 모티브가 된 궁전이 있다? 세고비아의 알카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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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성의 모티브가 된 궁전이 있다? 세고비아의 알카사르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1.01.06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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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사르 /wallpaperswiki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알카사르는 스페인의 옛 도시인 세고비아에 위치한 성이다. 과다라마 산 근처 두 개의 강이 합류하는 곳에 커다란 바위 위 우뚝 솟아 있는 이 커다란 궁전은 마치 활이 휘어 있는 듯한 모양이라 스페인에서 가장 독특한 모양의 궁전 중 하나로도 유명하다. 732년부터 8세기 동안 이슬람 지배 이후 스페인에서 무어인들을 몰아내기 위해 축조한 건축물로, 알카사르는 에스파냐어로 성(城)이라는 뜻이다. 

알카사르는 이슬람과 스페인 양식이 혼합된 전형적인 무데하르 양식의 건축물이다. 부르고뉴 왕가, 합스부르크 왕가 등 유럽의 여러 왕가들의 본거지이기도 했다. 이 성은 대규모의 테마 파크를 기획하고 있었던 월트 디즈니에게도 영감을 주었으며,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인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커다란 성은 절벽 위에 세워진 탑의 모습과 성 주변을 감싼 모습이 알카사르와 꼭 닮아 있다.
 

알카사르의 전경, 마치 동화 속의 성 같은 느낌이다 /kevmrctravel

원래 왕궁을 방어하기 위한 요새로 쓰인 장소였지만 이후로는 왕궁, 교도소, 왕립 포병대학, 사관 학교 등의 다양한 역할을 했다. 현재는 관광을 위한 박물관과 군사 기록 보관소로 쓰이고 있다. 1987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알카사르를 만든 무데하르 양식

 

알카사르는 전형적인 무데하르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flickr
세고비아 알카사르에서 즉위한 이사벨 여왕의 즉위식 장면이 그려져 있는 창문. 장식용 타일은 아줄레주 형식으로 도자기 타일 위에 복잡한 그림을 그려 완성했다 /flickr

8세기, 스페인은 이슬람 교도들에 의해 대부분의 영토를 정복당했다. 그 후 국토회복운동이 기독교도들을 중심으로 일어나며 15세기 이슬람 세력들을 몰아내게 된다. 이 과정에서 로마네스크 건축과 고딕 양식이 이슬람 양식과 섞여 다른 유럽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에스파냐 특유의 기독교 건축 양식이 만들어지게 된다. 

세고비아의 알카사르와 더불어 톨레도의 산티아고 데 알라바트 교회, 과달루페의 수도원이 대표적인 무데하르 양식의 건축물이다. 무데하르 양식은 후에 19세기 말 가우디 건축 양식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들의 양식은 로마네스크, 고딕 및 아랍의 요소가 융합되어 복잡한 내부 양식과 자연석의 건축 자채 및 천장에 나무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무데하르 양식이 적용된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flickr

무데하르 건축 양식은 벽에 봉합된 아치를 붙이고 양쪽으로 갈라진 아치나 모난 벽돌, 유리로 된 세라믹과 조각물을 사용해 장식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특히 벽돌을 많이 쓰고 석회, 세라믹, 목재 등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가 많았고 석고 세공과 타일로 장식을 마무리한 것이 특징이다. 무데하르 예술은 스페인 아라곤 지역에서 이슬람의 예술적 전통과 기독교의 예술적 전통을 융합되어 독특한 예술로 탄생한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무어인들이 회복된 영토에 남아 자신들의 문화와 전통을 지킬 수 있도록 했다. 그러는 사이 이슬람 예술은 기독교인들을 유혹했고, 이들은 오랫동안 이슬람 예술의 주제를 계속 사용했다. 무데하라 양식은 이슬람과 기독교, 유대교 문화가 서로의 지식과 경험을 주고받으며 평화롭게 공존했다는 것을 상징한다.


스페인의 명소 중 하나가 된 알카사르 

 

초기 요새의 역할을 했던 알카사르 /flickr

알카사르에 대한 첫 언급은 11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슬람 교도(무어인)들이 스페인을 정복하는 동안 세고비아까지 나아갔고, 기독교 세력이 스페인을 되찾은 이후에도 남아 있던 무어인들은 오늘날 알카사르의 시초인 나무 요새를 지었다.

알폰소 8세가 통치하기 전까지 알카사르는 그저 이슬람 양식의 건축물이 고대 로마의 토지 위에 지어져 있는, 목조 요새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알폰소 8세는 이 알카사르를 주요 거주지로 삼았고, 오늘날의 돌로 쌓은 이 궁전을 세우기까지 꽤 많은 작업이 이뤄진 것으로 추정한다. 

스페인에 존재했던 많은 요새들처럼 알카사르도 처음엔 왕국을 방어하는 중요한 요새 중 하나였다. 이 시기 알카사르의 기초가 세워졌고, 현재 건물의 대부분은 트라스타마라 왕조에 의해 확장되어 건설되었다. 트라스타마라 왕조의 귀족들은 궁전 안을 호화로운 홀로 개조했고 이전의 스타일과 다른 양식으로 궁전 안을 꾸몄다. 아라베스크, 기하학적인 무늬와 같은 요소들을 포함해 알카사르는 새롭게 단장되었다. 
 

증축과 개축을 반복해 완성된 알카사르 /kevmrctravel
알카사르의 천장 양식 /flickr

13세기 들어 스페인의 천주교 왕들에 의해 알카사르는 완전히 다른 양식으로 바뀌게 된다. 알카사르는 고딕, 르네상스, 로마네스크 양식의 요소들이 혼합된 무데사르 양식이 결합되며 원래의 이슬람 양식에 서양 양식이 더해진 독특한 스페인의 건축 양식으로 바뀌었다. 이후 후안 2세와 필립 2세 등 여러 왕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증축과 개축이 이루어지고 1587년, 건축가인 프란시스코 드 모라가 중앙 정원을 만들며 알카사르는 기본 경관을 갖추게 된다.

1762년 국왕 찰스 3세가 왕립 포병 학교를 설립하기 전까지 알카사르는 2세기 동안 교도소로 쓰였고, 포병 학교의 기능을 수행하던 중 화재가 나 무기고와 침실, 궁전의 지붕 등이 불탔다. 알카사르는 1882년부터 1996년까지 알폰소 13세에 의해 복원되었고 지금은 박물관이 되어 많은 예술품들을 소장중인 아지메세스의 방, 왕좌의 방, 스페인의 모든 왕과 여왕을 대표하는 동상들이 있는 광장 등 다양한 장소가 관람객들에게 선을 보이고 있다. 

후안 2세의 탑 /flickr

후안 2세의 탑 Tower of John II 

궁전에서 가장 높은 후안 2세의 탑 주변 경관은 넓은 파노라마의 경관으로 장관을 이룬다. 성 꼭대기로 올라가는 계단은 총 156개로, 대부분은 좁고 기울어진 나선형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계단을 따라 정상에 오르면 주변으로 보이는 스페인의 시골 풍경과 함께 세고비아의 환상적인 경치가 펼쳐진다.

성 위엔 4개의 층이 있는데 일반적인 감옥으로 쓰였다. 참고로 수감자들은 이 감옥에서 탈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감옥에 있는 사람들은 많은 재산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죄수 치고는 맞지 않는 태피스트리나 카펫, 가구 등이 있는 특정 감옥에서 편안한 삶을 보냈다고 한다. 이 탑의 마지막 수감자는 1930년대 쿠바의 장군 다마소 베렌거였다. 
 

왕좌의 방 /flickr

왕좌의 방 throne Room 

알폰소 13세와 왕비 빅토리아 에우헤니아가 1908년 스페인 독립전쟁 100년을 기념해 알카사르에 방문했을 때, 대신들을 만나고 일을 처리했던 집무실이다. 이때 왕과 왕비가 앉은 의자를 본따 제작한 왕좌가 놓여 있어 '왕좌의 방' 이라 불린다. 

왕좌 위에는 'Tanto monta'라는 글자가 씌어 있는 16세기 가톨릭 군주의 국장이 있다. 'Tanto Monta, Monta Tanto, Isabel como Fernando' 라는 글귀에서 나온 구절로 평등하다는 뜻을 가리킨다. 스페인 카스티야의 국왕 이사벨 1세가 아라곤의 국왕 페르난도 2세와 결혼해 집무를 보았으며, 공동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서로가 '대등하다' 란 의미로 쓰였다. 
 

왕의 방 /kevmrctravel

왕의 방 Hall of the Kings

스페인의 필립 2세는 마드리드 왕궁으로 이사한 후 에르난도 데 아빌라에게 아스투리아스, 카스티야, 레온 왕국에 이르기까지 총 52명의 왕들에 대한 동상 설계를 의뢰해 이 방을 만들었다. 시계 방향으로 연대 순에 따라 배열되었다.

왕의 방에 있는 그림들 중 하나는 필립 2세의 초상화이고 나머지는 그의 두 부인인 발루아의 엘리자베스, 오스트리아의 안나 초상화이다. 왕의 방 한쪽에는 창문을 만들어 알카사르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구경할 수 있다. 
 

예배당 /flickr

예배당 Chapel

왕과 여왕이 미사를 보는 예배당이다. 오스트리아의 필립 2세와 요안나가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린 장소이기도 하다. 한쪽 벽에는 세 사람의 현자가 아기 예수를 참배하는 주현절을 그린 그림이 장식되어 있다. 화가 바르톨로메 까르드쵸의 1600년대 작품이다. 

특이한 점은 예배를 드린 장소라 그런 것인지, 1862년 궁전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이 공간은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무기고 /kevmrctravel

무기고 Weapons or Armory Room

알카사르는 예전부터 트라스타마라 왕조에서 사용했던 무기들을 꾸준히 소장해 왔었다. 무기고에는 대포, 소총, 칼, 방패, 창, 철갑옷 등 중세 시대의 여러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으니 전쟁 때 쓰였던 무기들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꽤 흥미로운 공간일 것이다. 
 

디즈니의 신데렐라 성, 정말 알카사르에게 영감을 받은 걸까 /GETTYIMAGES
확실히 알카사르는 신데렐라의 성을 연상케 한다 /DeAgostini Getty Images

알카사르가 디즈니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유명한 전설이 있다. 소위 이 '썰'이 구체적으로 인정된 적은 없지만, 디즈니는 테마파크에 있는 신데렐라 성이 '유럽의 위대한 성에서 영감을 받았다' 고 인정한 적은 있다. 실제 알카사르는 '월트 디즈니가 사랑한 성'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디즈니월드 테마 파크의 신데렐라 성의 모티브라는 전설,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궁전의 모티브라는 전설 등 말 그대로 '설'로만 남아 있긴 하지만 어찌됐든 알카사르의 아름다움은 디즈니가 충분히 사랑했을 만큼 경이롭다. 


디즈니가 사랑했던 궁전, 알카사르 

 

밤에 볼 수 있는 알카사르의 풍경 /flickr

과거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받았던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역에는 아직도 건물들 곳곳에 이슬람 양식이 남아 있다. 후에 기독교 세력이 세고비아 지역을 탈환하며 스페인 양식과 이슬람 양식이 혼재되어 알카사르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지금도 알카사르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며 전체 성을 돌아보는 데만도 3시간 이상 걸릴 정도로 볼거리가 많다. 관광을 하게 된다면 한국어를 지원하는 오디오 가이드도 있으니 설명을 들으며 성 곳곳을 산책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알카사르는 한때 난공불락의 요새였으며, 거대한 방어벽 안에서 군사들이 끓는 기름을 성 아래에 있는 적들에게 쏟아부어 성을 지켰던 곳이었다. 1762년까지 200여년 동안 감옥의 역할도 했던 탑의 가파른 백여개의 계단을 지나 보는 세고비아의 전경은 꼭 한번은 직접 봐야 할 정도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관광객들을 위해 알카사르는 현재 가장 높은 탑인 후안 2세의 탑을 비롯해 11개의 방을 개방해 놓았으니 코로나19가 끝나는 그날 디즈니도 한눈에 반했다는 이 곳을 구경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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