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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은 소띠의 해, 가장 오래된 소 그림은 어디에서 나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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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은 소띠의 해, 가장 오래된 소 그림은 어디에서 나왔나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0.12.31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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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미라 동굴 천장에 있는 소떼의 그림 /Museo de Altamira. Photo P. Saura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2021년은 소의 해다. 소는 예로부터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로 알려져 왔고, 특히 농사를 지었던 조상들에게 소는 농사를 짓는 데 꼭 필요한 동료이자 친구였기에 거의 가족 같은 대접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 소띠의 해는 다복과 풍요의 상징으로 유명하며, 의로운 동물로써 여유와 평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내년이 소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코로나19로 인한 펜데믹을 이겨내는 해가 되길 바라고 있다. 

소의 해를 맞아 소를 이용한 이미지로 다양한 마케팅들이 벌써부터 쏟아져 나오고 있는 지금, 소가 등장한 가장 오래된 그림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스페인 북부에 있는 알타미라 동굴과,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에는 공통적으로 소를 그린 암각화를 볼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예전 암각화에 있던 소의 그림은 소의 조상인 '오록스'를 그린 그림이다. 오록소는 소보다 훨씬 덩치가 컸고, 왠만한 성인보다도 키가 훨씬 큰 동물이었다고 한다. 옛 사람들은 동굴 벽을 조각해 소와 말 등의 동물들을 그리곤 했고, 우리나라에도 소를 그린 그림은 없지만 대표적인 암각화로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들 수 있다. 


암각화의 유래와 특징 

3000여년 전 청동기 문명이 북방으로부터 들어오면서 사람들의 생활도 엄청나게 바뀌었다. 정착 생활과 함께 농경이 시작되며 인간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자연적인 현상과 이치를 사람들은 깨닫게 된다. 자연히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으로 접하는 자연물에 영적인 힘이 있다는 믿음에서 조금 더 진화한, 집단이 숭배할 수 있는 강한 신이 필요했다.

곧 사람들 사이에서는 바위에 그들이 원하는 것을 새기고 대상을 향해 제사를 드리는 풍습이 생겼다. 사람들은 식량으로 쓰는 사냥감을 벽에 그렸고, 사냥할 때 벌이는 의식과 관련된 그림들을 새겼다. 이처럼 신앙의 대상을 바위에 새기는 것을 암각화, 또는 바위 그림으로 사람들은 부르기 시작했다. 
 

원더워크 동굴 판화 /flickr

암각화는 아프리카, 남아프리카 공화국, 스칸디나비아 등의 지역들에서 볼 수 있으며, 석기 시대에 흥했던 예술 중 가장 흔한 형태로 발견된다. 남아프리카의 북부 케이프 주에서 발견된 원더워크 동굴 판화는 기하학적인 디자인, 동물들의 표현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그림은 기원전 약 8200년 전, 신석기 시대에 유래된 것으로 추정한다. 한반도에는 현재까지 15개소 이상의 유적이 발견되었다. 

암각화는 대부분 바위의 표면을 파내거나, 그어서 어떤 모습을 새기는 것을 말하지만 물감을 이용해 그림을 그린 것들도 있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나 라스코 동굴 벽화도 그림으로 그린 암각화에 해당한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두드려 쪼아 묘사하는 암각화(pecking), 갈아서 매끈하게 만드는 암각화(grinding), 바위면을 그어 가는 선으로 묘사하는 암각화(calving) 등 다른 명칭으로 구분해 부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암각화라는 말로 통칭해 부르고 있다. 
 

유타 주, 모압에 있는 암각화 /flickr

글이 만들어지기 이전 사람들은 일어난 사건, 떠오른 아이디어, 앞으로의 계획, 수많은 감정들을 바위에 표시해 기록으로 남겼다. 조각을 하고, 바위 표면을 긋고, 그림을 그렸다. 옛 사람들은 수천년 동안 '바위 그림'을 만들어 왔고, 수천년 전에 남겨진 그들의 메시지 중 일부는 오늘날의 사람들도 볼 수 있다.

캔버스로 쓰인 바위들은 지리적 위치와 바위의 유형에 따라 약 1만년에서 1만5천년까지 지속되어 왔다. 앞으로 소개할 알타미라 동굴과 라스코 동굴에서 볼 수 있는 소의 그림도 긴 시간 동안 뚜렷하게 남아 여전히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 Altamira cave

알타미라 동굴 벽화에 있는 들소 그림 /Dario Lorenzetti

알타미라 동굴은 스페인 북부의 산티야나 델 마르 마을에 위치한 구석기 시대의 동굴로,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동굴 자체는 1868년 모데스토 큐비야스라는 한 사냥꾼에게 발견되었으나, 11년이 지난 이후 1879년 딸 마리아와 함께 동굴을 찾았던 마르셀리노 데 사우투올라에 의해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된다.

아버지와 함께 동굴을 살피던 마리아가 벽과 천장에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을 시작으로 사우투올라는 부싯돌과 뼈, 뿔로 만들어진 물체나 벽화의 연대를 가늠하게 하는 조개껍질 등을 찾는다. 그 후로 그는 본격적으로 알타미라 동굴의 발굴 작업을 하게 된다.

1880년 그는 이 벽화가 구석기 시대에 그린 것이라 주장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몇몇 프랑스의 고고학자들은 그 그림이 심지어 가짜라며 묵살했다. 벽화의 뛰어난 예술성과 보존 상태 때문에 사우투올라는 사기꾼이라고 기소되기도 했고, 그의 이론은 그가 죽은 후에야 벽화가 진짜라는 것을 인정받게 된다.

알티마라 동굴은 이때부터 선사시대 연구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 후에 동굴의 본격적인 발굴로 알타미라 동굴에서는 후기 구석기 시대에서 구석기 시대 최후기인 마들렌기까지의 구석기 유물들이 발견된다. 
 

붉은색의 들소 /Rameessos (public domain)

다양한 색의 들소 그림이 있는 벽화는 알타미라 동굴의 핵심이다. 25개의 대형 들소 그림에서는 들소의 뒷다리, 말들을 묘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갈색으로 칠했다가, 붉은 색으로 덧칠을 했다. 검은색은 그림의 음영을 위해 쓰였고 바위 표면에 자연스러운 윤곽을 이용해 3차원적인 모습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잡아야 할 동물을 벽화로 남겨 보관하면 그 동물을 잡을 수 있을 거라 믿었고, 동굴에 그려진 들소와 땅에 쓰러진 말들은 당시 사람들이 원하는 사냥감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했다.
 

알타마라 동굴에서 나온, 새뼈로 만든 에어브러쉬 / Museo de Altamira. Photo P. Saura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동굴에 있는 그림과 조각은 그 기간 동안 동굴에 직접 살았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벽화는 주로 동물들을 그렸고, 들소를 묘사한 그림이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받지만 2미터가 넘는 큰 사슴이나 말 등의 그림도 볼 수 있다. 큰 새의 다리나 날개에 있는 뼈로 만든 에어브러쉬는 색을 칠하는 데 사용되었던 도구라 학자들은 추정한다. 

벽화는 대부분 숯을 이용해 검은 선으로 그림을 그렸고 이후 빨간색과 노란색으로 선명하게 색을 입힌 다음에 세세한 부분은 숯으로 일일이 그려 추상적이면서도 한없이 예술적이다. 화가 피카소는 알타미라 동굴의 들소 그림을 보고 나서 "우리 중 누구도 이렇게 그릴 수 없다, 알타미라 이후 모든 것이 쇠퇴했다" 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라스코 동굴 벽화 Grotte de Lascaux

라스코 동굴 벽화 /flickr

라스코 동굴은 프랑스 남서부의 도르도뉴에 있는 몽티냐크 마을 근처에 있다. 이 마을에는 옛날부터 보물이 있는 곳으로 가는 비밀 통로가 어딘가에 있다는 전설이 있었다. 1940년 9월 12일, 마을에 살고 있던 18살의 소년 마르셀 하비다는 그 비밀 통로를 찾기 위해 세 명의 친구들과 마을 근처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같이 다니던 애완견 로봇이 한 구멍에 떨어지게 되고, 마르셀은 그 구멍에서 라스코 동물의 입구를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비밀 통로라 믿었던 15미터 가량의 길을 따라 동굴 안으로 들어갔고, 그들은 동굴의 벽과 천장이 온통 동물 그림으로 뒤덮여 있는 걸 본다. 

라스코 동굴은 발견되고 5년이 지난 1945년부터 발굴이 시작되어 3년의 발굴 작업 끝에 1948년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그러나 공개 후 하루 평균 1500여명의 사람들이 동굴을 구경하러 몰려드는 바람에 벽화들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라스코 동굴 II /flickr

다름아닌 사람들이 내뿜는 먼지와 밝은 빛 등으로 인해 동굴 안에 세균이나 곰팡이가 번식하기 시작했고, 벽화가 훼손되는 정도가 점점 심해지자 1963년 프랑스 정부는 급기야 동굴을 폐쇄한다. 동굴의 폐쇄에도 학자들의 연구는 계속되었지만 동굴을 보고 싶은 사람들의 열망으로 1983년 라스코 동굴에서 200미터 떨어진 곳에 복제 동굴인 '라스코 동굴 II이 지어진다. 벽화는 물론이고 지형까지 똑같이 만들어 일반 사람들도 구경할 수 있다. 

라스코 동굴 벽화는 주변 동굴에서도 구석시 시대의 유물과 벽화 등이 발견되는 것을 보아 기원전 1만 5천년 경에 그려진 것으로 추측한다. 벽화는 주로 동물, 사람, 추상적인 표시 등 대부분 세 가지의 종류로 그려져 있다. 주요 그림들은 유기물(토양 내 생체와 사체의 물질 및 탄소 화합물)을 사용하지 않고 천연 광물에서 추출한 빨간색과 노란색, 검은색으로 벽에 칠해졌다. 약 900여개 이상이 동물 그림이고, 이 중 300여개의 사슴 그림과 소, 들소, 코뿔소 등의 그림들이 있다. 

동물들이 뛰어가는 모습, 너무나도 현실적이다 /flickr

라스코 동굴 입구에 있는 중앙 홀에는 황소와 말, 숫사슴이 그려져 있다. 네 마리의 검은 황소는 그림에서 발견된 소 그림 중 가장 뚜렷한 이미지를 자랑한다. 황소들 중 한 마리는 5.2미터의 길이로 지금까지 동굴 미술에서 발견된 동물의 크기 중 가장 크며, 마치 황소들이 뛰어다니고 있는 모습으로 현장감 또한 뚜렷하다. 뛰어다니는 들소, 쉬는 사슴, 죽어가는 말 등을 그린 그림들은 너무나 사실적이다. 

동굴 안에 있는 동물들은 당시 사람들의 사냥이 가능했던 대상들로 추정한다. 아마 벽화를 그린 사람들은 램프의 불빛에 의존해 파이프나 솔, 손가락이나 새의 뼈로 만든 도구로 벽에 가볍게 두드려 색소를 칠했을 것이다. 라스코 동굴 II에 가면 벽화에 있는 들소의 날카로운 뿔, 들소의 두 개로 갈라진 발굽, 사냥당해 사람 앞에 쓰러진 들소의 모습까지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 

 

울산 반구대 암각화 /울산시 

울산 반구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암각화 중 하나다.  울산 태화강 지류에 해당하는 대곡천변의 절벽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는 약 300여점으로 사람, 바다와 육지동물, 사냥과 어로 장면이 있다. 동물 그림의 종류는 북방긴수염흰고래, 혹등고래, 새, 물고기 같은 바다동물과 대륙사슴, 노루, 고라니, 산양, 호랑이, 너구리 등 육지동물이 있으며 배와 작살 등을 이용해 고래를 사냥하는 장면과 활을 들고 사슴을 사냥하는 장면 등 선사시대 사람들의 수렵과 어로, 생활상을 보여주는 그림도 남아 있다. 

제작 시대는 울산 황성동 패총 유적에서 출토된 작살이 박힌 고래뼈와 우리나라 동남해안 일대의 고고학적 자료를 근거로, 신석기 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한다. 반구대 암각화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잡이를 표현한 암각화로도 평가되어 현재 을주 천전리 각석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어 있다. 
 

바위에 새겨진 그림들 /문화재청

암각화에 새겨진 육지동물은 호랑이, 멧돼지, 사슴 등이 묘사되어 있는데, 호랑이는 함정에 빠진 모습과 새끼를 밴 호랑이의 모습 등으로 표현되어 있다. 멧돼지는 교미하는 모습을 묘사하였고, 사슴은 새끼를 거느리거나 밴 모습 등으로 표현하였다. 바다고기는 작살 맞은 고래, 새끼를 배거나 데리고 다니는 고래의 모습 등으로 표현하였다.

그밖에 사냥하는 장면은 탈을 쓴 무당, 짐승을 사냥하는 사냥꾼, 배를 타고 고래를 잡는 어부 등의 모습을 묘사하였으며, 그물이나 배의 모습도 표현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선사인들의 사냥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길 기원하며, 사냥감이 풍성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바위에 새긴 것이다.

반구대 암각화에 보이는 인물, 동물, 도구 등은 최소 4~5차례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보며, 집단의 생활 양식이나 사회 성격, 문화 계통에는 일정한 차이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선과 점을 이용하여 동물과 사냥 장면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사물의 특징을 실감나게 묘사한 미술 작품으로써 선사시대 사람의 생활과 풍습을 알 수 있으며, 신석기 시대에 이미 울산에서 상당한 규모의 육지 및 해양 수렵 활동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옛날에도 지금도,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었던 소 

알타미라 동굴, 검은 들소의 머리 /Museo de Altamira. Photo P. Saura

암각화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상징적인 의사소통 방법의 하나이면서 과거 살았던 조상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정보의 집합체이기도 하다. 벽에 그려져 있는 소와 말을 비롯한 수많은 동물들의 그림은 과거 사냥 성공에 대한 숭배의 의미일 수도 있고 미래의 사냥 성공을 위한 신비스러운 의식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풍부한 사냥감, 성공적인 사냥 등은 신성한 존재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은 그 존재와 소통하기 위해 특별한 의식을 치러야 했다. 선사 시대 사람들의 대표적인 사냥감이었던 말과 사슴을 비롯해 그중에서도 소는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 동굴 벽화와 천장에 끊임없이 다양한 형태로 그려졌다. 

선사 시대부터 우리나라의 옛 조상들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소는 동반자이자 가족의 하나였다. 사냥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농경 사회에서 소는 농사를 짓는데도 중요했고, 일종의 중요한 자산이 되기도 했다. 먼 옛날 구석기 시대부터 소는 사람과 함께 했으며 지금도 소는 사람에게 가장 가까운 동물 중 하나다.

2021년은 소띠의 해로, 소는 풍요와 행운을 가져다 주며 우직함, 충직, 근면, 성실함 등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새해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소의 해이니만큼 행운 가득한 한해가 되길 바란다는 덕담을 한번씩 나눠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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