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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완벽한 검은색 '반타블랙', 예술에 대한 독점권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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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완벽한 검은색 '반타블랙', 예술에 대한 독점권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 윤미지 기자
  • 승인 2021.01.04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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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대한 독점권, 그에 관한 상반된 입장

[핸드메이커 윤미지 기자]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블랙인 반타블랙. 처음 이 문장을 접하면 대부분 검은색은 당연히 어두운색인 것인데 무슨 소리인가 싶은 사람이 많을 테다. 하지만 반타블랙(Vanta Black)을 설명하려면 이것이 가장 어두운 블랙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최고 어둡다는 반타블랙은 대체 어떤 색인 것일까.

반타블랙의 사전적인 정의는 이렇다. 빛을 99.96% 흡수해 세상에서 가장 진한 검은색을 내는 새로운 물질이다. 영국의 나노연구기업인 서리나노시스템이 2014년 개발하였으며 빛을 비췄을 때 그 흔적을 보이지 않고 진한 검은색만을 내는 물질이라 생각하면 된다. 반타블랙은 일반 검은색과 달라서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 외에도 적외선의 차원까지도 흡수한다. 이는 탄소 구조체가 빛을 빨아들이는 원리를 사용해서 만들어진 것인데 블랙홀이 시공간을 빨아들이는 듯 칠흑 같은 어둠을 선사해서 주목을 받은 물질이다.
 

Vantablack grown on tinfoil /Surrey NanoSystems
Vantablack grown on tinfoil /Surrey NanoSystems
검은색은 예술 작품에서 다양하게 활용된다 / 픽사베이
검은색은 예술 작품에서 다양하게 활용된다 / 픽사베이

하지만 반타블랙에 관한 이슈는 과학 외 분야에서 발생했다. 바로 인도 출신의 예술가이며 건축가인 아니쉬 카푸어가 거액의 돈을 지불하고 이 색을 독점해버린 것이다. 반타블랙 도료에 관해 ‘예술적 목적으로 사용할 권한’을 독점한 것인데 이에 대해서 예술계는 다양한 견해를 보였다. 특히 이에 저항하기 위한 예술가와 과학자들의 노력이 돋보였다. 그들은 완벽한 블랙의 새로운 버전을 선보이는 것으로 예술 독점권에 대한 저항 역시 또 하나의 예술로 승화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반타블랙 독점,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

반타블랙 도료가 칠해지면 그 표면은 꼭 구멍이 뚫려 있는 듯 칠흑 같은 어둠을 선보인다. 이 신물질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빛을 흡수하는 데에 있다. 미세한 튜브와 튜브 사이에 수없이 반사되는 과정을 거쳐 들어온 빛은 무한 흡수된다. 99.965%의 빛 흡수율을 가지고 있는데 빛의 반사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경지에 오른 검은색을 만나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다양한 활용성을 가지고 있다. 최초엔 인공위성의 위장용 도료로 개발되었으며 천체망원경의 내부 도색용 도료로도 연구되고 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것 같은 이 진한 검은색은 예술계에 큰 파장을 불러왔다.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한 검은색 사용에 기대감을 불러왔던 반타블랙은 아이러니하게도 한 사람의 도료가 되어 버렸다. 인도 출신의 예술가, 건축가인 아니쉬 카푸어가 비싼 값을 지불하고 이를 독점해 버린 것이다. 이는 예술계에 큰 논란을 불러왔다.
 

아니쉬 카푸어 작품 Sky Mirror, Nottingham Superhasn via Wikimedia Commons
아니쉬 카푸어 작품 Sky Mirror, Nottingham Superhasn via Wikimedia Commons

아니쉬 카푸어가 독점한 사항은 반타블랙 도료에 관해 <예술적 목적 사용 권한>이다. 완전무결한 검은색 도료의 사용을 기대했던 다른 예술가는 아니쉬 카푸어에 의해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제한받게 됐다. 아니쉬 카푸어는 개발 기업을 통해서 독점권을 취득했고 이에는 큰 금액 지불이 있었다고 한다. 반타블랙 도료는 예술적 사용에 한해 그의 작품 외에는 만나 볼 수 있는 방법이 없게 되어버렸다.

이에 예술계는 가만있지 않았다. 예술에 관한 표현의 자유를 방해한 아니쉬 카푸어의 오만에 반기를 들 듯 과학자들과 예술가가 모여 반타블랙에 유사한 Black2.0을 개발했다. 이에 참여한 대표적인 인물은 영국의 예술가인 스튜어트 셈플이다. 그는 아니쉬 카푸어를 비판하며 예술에 대한 독점에 대해 반대했다.

그들이 개발한 Black2.0은 가시광선 흡수율이 약 97.5%로 반타블랙보다는 품질면에서 다소 아쉬운 경향은 있으나 거의 흡사한 효과를 지니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연구용이나 공업용 사용은 어렵겠지만 접착력이 뛰어나고 향도 가지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격이다. 엄청난 금액의 주인공인 반타블랙과는 반대로 이 Black 2.0은 11.99파운드, 한화로는 18,000원 정도로 비싸지 않은 금액에 구매가 가능하다. 완전무결한 검은색과 거의 흡사한 이 도료를 한국 돈이라면 치킨 한 마리 값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덕분에 Black 2.0은 편의성 면에서 반타블랙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항은 이 안료 사용 제한에 관한 이야기다. Black 2.0을 개발한 예술가와 과학자들은 해당 안료에 대해 ‘아니쉬 카푸어 이용 불가’ 사항을 덧붙였다. 모두의 표현 자유를 위해서 제작된 Black 2.0은 예술권을 독점하려 한 아니쉬 카푸어에게만은 허락되지 않은 셈이다. 추가로 아니쉬 카푸어를 위해 이 제품을 구매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는 안내문도 찾아볼 수 있다.

이어서 스튜어트 셈플은 2019년, 최대 99%의 가시광선을 흡수할 수 있는 Black 3.0을 개발해냈다. 이 제품 역시 아니쉬 카푸어는 사용할 수 없도록 금지 사항이 걸려있다. 역시 아니쉬 카푸어 외에 누구나 사용할 수 있으며 한화로 3만 6천 원 정도의 저렴한 금액으로 이를 구매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구입할 수 있는 Black 3.0 양품생활
국내에서도 구입할 수 있는 Black 3.0 /양품생활
Black 3.0을 사용해 도색작업한(앞) 작품, 빛 반사 없이 완전한 검은색이 표현되어 있다 /양품생활
Black 3.0을 사용해 도색작업한(앞) 작품, 빛 반사 없이 완전한 검은색이 표현되어 있다 /양품생활

하지만 스튜어트 셈플을 필두로 만든 Black 2.0과 Black 3.0은 그 성능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한다. 소비자 리뷰에서는 ‘회색 중 가장 검은색이다’라는 평이 공감을 받고 있다는 점을 미뤄봤을 때 스튜어트 셈플의 의도와는 다르게 성능 자체가 완전한 검은색이라고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고 여기는 관점도 존재한다. 하지만 물론 결과적으로는 실용적이고 편의성을 갖춘 상황에서 가장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완전한 검은색이라는 평도 얻고 있다.

이 외에도 스튜어트 셈플은 반타블랙 사태에 관련해서 아니쉬 카푸어를 저격하듯 ‘가장 분홍스러운 분홍’ 안료를 추가 개발했으며 이 역시 원한다면 아니쉬 카푸어를 제외한 모든 대상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아니쉬 카푸어 역시 이에 가만있지 않고 ‘가장 분홍스러운 분홍’ 안료를 구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게재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안료를 구매하려는 목적보다는 스튜어트 셈플에 맞대응을 취하기 위한 것인 듯 가운데 손가락에 해당 안료를 푹 찍어 이를 사진으로 게재했다.


예술에 대한 독점권, 그리고 상반된 입장

반타블랙 사태에 관해 예술계와 여론은 다양한 입장을 보인다. 우선 가장 지배적인 것은 그 누구도 예술을 소유할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니쉬 카푸어는 자신에 대한 비난을 피해갈 수 없었다.

특정 도료에 대해서 금액을 지불하고 독점하는 아니쉬 카푸어의 행위 자체가 다른 예술가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여론이 팽배한 가운데 이에 대해 저항하기 위한 스튜어트 셈플의 노력마저도 SNS 계정에 특정 사진을 게재하는 것으로 기만한 것 아니냐는 논란까지 나와 이 사태는 예술계에서 뜨거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의 시선도 존재한다. 우선 반타블랙은 제조과정 및 도료를 사용하는 과정이 매우 복잡하며 가격 역시 상당한 고가에 속한다. 아니쉬 카푸어 역시 이런 점을 미뤄봤을 때 반타블랙 도료에 대한 실효성이 높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의 행동에 대한 해명을 내놓은 바 있다. 실제로 반타블랙을 도포하는데 사용법이 복잡한 것은 물론 앞서 언급했듯 가격적으로도 쉽게 구입하기엔 무리가 있는 측면이 존재한다.

아니쉬 카푸어의 독점 행위 자체도 하나의 예술로 인정하는 이들은 또 다른 표현의 예술적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어차피 높은 가격으로 인해 실효성이 애매한 도료에 관해서 이를 독점하는 하나의 퍼포먼스를 보였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이런 행위 자체를 하나의 예술적 퍼포먼스로 여기는 관대한 시선도 존재하지만 결과적으로 다수의 여론은 예술에 있어 독점은 있을 수 없으며, 자유로운 표현도 다른 예술 활동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데 무게가 실렸다. 대다수 여론이 스튜어트 셈플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검은색이라 불리던 반타블랙은 2019년 발표된 MIT 연구진이 개발한 새 물질에게 현재 그 자리를 내줬다. 새로 개발된 물질은 빛을 99.95% 흡수한다고 알려졌다.
 

'블랙 시리즈'는 실용적으로 사용이 가능한 완전한 검은색이라 평가 받는다 /양품생활
'블랙 시리즈'는 실용적으로 사용이 가능한 완전한 검은색이라 평가 받는다 /양품생활
음영의 선택은 블랙이 가진 다양한 얼굴이다 /픽사베이
음영의 선택은 블랙이 가진 다양한 얼굴이다 /픽사베이

눈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은 색이 가진 고유의 빛을 파악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더 검은, 최고 검은, 완전무결한 검은색에 집착하는 듯하다. 하지만 예술이란 완전한 색을 얻는 것보다 이를 대하는 작가의 세계관과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예술에 대한 독점권은 앞으로도 뜨거운 감자일 테지만 이에 맞선 저항의 노력을 항상 응원하고 싶은 마음 또한 예술을 사랑하는 평범한 감상자의 마음일 테다.
 


과거에도 이뤄졌던 색의 권력, 울트라마린

색에 대한 독점은 현대에만 있는 일이 아니다. 광채가 매우 아름다운 군청색의 일종인 울트라마린은 과거부터 아주 귀한 대접을 받았던 안료다. 청금석으로 만들어진 이 안료는 19세기에 인공적으로 제작한 인공 울트라마린이 개발되기 전까지 가장 비싼 안료로 쓰였다. 물론 실제 청금석으로 만들어진 안료는 지금도 가장 비싼 물감으로 통한다.

울트라마린은 과거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 금에 버금갈 만큼 값이 나갔다. 오죽하면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의 많은 화가들이 이 색을 사용하기 위해서 배고픔을 이겨내기도 했을까. 실제 우리에게 익숙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그린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도 울트라마린을 사용하기 위해 재산을 탕진했다고 한다.
 

청금석으로 만든 목걸이 /픽사베이
청금석으로 만든 목걸이 /픽사베이

울트라마린이 귀한 안료인 이유는 여러 요인이 있다. 우선 과거 자연에는 파란색을 얻을 방법이 별로 없었다. 유일하게 청금석을 통해서 파란색 안료를 손에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이다. 값도 비쌌고 구하기 어려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런 이유로 청금색을 사용할 수 있는 그림 주제에는 한계가 주어질 수밖에 없었다. 매우 값비싼 물감이기 때문에 중세시대와 르네상스시대 화가들은 주로 예수님이나 성모마리아가 그려진 성화, 신분이 높은 왕족, 귀족을 그릴 때만 이 색을 사용할 수 있었다. 오로지 일부 특권층만이 울트라마린을 통해서 표현될 수 있었던 것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성당 성화벽, 청금석(울트라 마린)을 사용한 성화 /픽사베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성당 성화벽, 청금석(울트라 마린)을 사용한 성화 /픽사베이

현대에도, 과거에도 자본과 신분의 굴레 속에 우리는 특별한 색에 대한 권리를 빼앗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과거 울트라마린이 얼마나 귀한 색으로 대접을 받았는지, 귀한 색에 대한 예술가의 집념이 어떠했는지 시대상의 모습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

예술의 도구가 되는 하나의 색이 누군가에 의해 독점될 수 있다는 것은 여전히 찬반이 뜨거운 문제다. 어떤 분야이든 인간의 독점하고 싶은 욕망이 색을 향한 집념을 통해서도 잘 드러나는 듯하다.

하지만 독점은 영원하지 않다. 현대 사회를 살고있는 우리는 반타블랙 대신 훨씬 저렴하며 실용성을 갖춘 Black 3.0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됐으며 과거 일부 특권층만 표현될 수 있었던 울트라마린을 인공으로 제작해 누구나 쉽게, 심지어는 대학 입시 미술에까지 사용할 수 있는 물감으로 누릴 수 있게 됐다.

시대가 변하고 예술도 변한다. 세상에 완벽한 검은색은 있어도 완벽한 독점은 없다. 과학의 발전으로 새로운 물질을 통한 색상 개발은 꾸준히 이뤄질 것으로 보이며 그로 인한 다채로운 예술적 표현의 자유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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