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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한복이야기] 생활한복인 철릭 원피스, 원래는 남자의 옷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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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한복이야기] 생활한복인 철릭 원피스, 원래는 남자의 옷이었다
  • 윤미지 기자
  • 승인 2020.12.29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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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모습으로 변주가 가능한 철릭 디자인

[핸드메이커 윤미지 기자] 조선 시대에는 어떤 외투를 입고 다녔을까. 사극을 보면 쉽게 눈에 띄는 몇 가지를 떠올려봤을 때 남자 옷에는 두루마기가 있고, 여자 옷에는 장옷을 예로 들 수 있다. 과거 우리 조상은 겉옷을 통틀어 ‘포’라 일렀는데 이 포에는 굉장히 여러 가지 종류가 포함되어 있다. 앞에 언급한 두루마기, 장옷 모두 포의 한 종류다.

과거 조상은 방한, 의례 등의 목적으로 포를 걸쳤다. 저고리, 바지 위에 입는 겉옷이다 보니 크기가 컸고 방한의 목적으로는 두께 감이 있었으며 의례 시에는 신분에 따라 다른 색의 포를 착용했다. 또한 삼국시대와 고려 시대 그리고 조선 시대를 거치며 그 디자인이나 목적 등 다양한 변화를 겪게 된다.
 

남자 포 종류의 하나인 도포, 선비의 멋스러움이 느껴진다 /희복
남자 포 종류의 하나인 도포, 선비의 멋스러움이 느껴진다 /희복
전 박신용장군 의대 홍철릭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전 박신용장군 의대 홍철릭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특히 조선 시대 남자 포는 형태가 굉장히 다양하다. 깃의 모양에 따라서 단령포(둥근 깃), 직령포(곧은 깃), 방령포(네모난 깃)으로 나뉘며, 그 중 단령포는 관복으로 착용했다고 한다. 사실 포는 우리나라가 걸어온 역사에 따라서 어떤 종류는 소멸하기도, 어떤 것은 시대상을 담아 조금씩 변화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본 기사에서 다룰 철릭은 바로 시대상에 따라 유지되어 오던 포 종류의 하나로, 디자인의 우수성에 관해 중점적으로 이야기해보겠다.


시대에 따라 다른 철릭의 디자인

철릭은 디자인부터 굉장히 특별하다. 앞서 포에 대해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온 외투를 이르는 말이라 언급했지만 포의 한 종류인 철릭은 고려 시대부터 우리나라에서 입기 시작했다. 상의와 하상을 따로 마름질해 구성하고 허리 부분에서 연결한 이 옷은 현대로 치자면 원피스를 떠올리게 하는 디자인이다. 보통 포의 경우 길게 재단하여 일체형으로 완성한 것을 떠올리지만 철릭은 상의 아래에 마치 치마처럼 긴 하상이 따라붙는 것이다.

같은 디자인에도 의외로 이 철릭은 남자의 옷이었다. 조선 시대에 왕을 비롯해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착용한 옷으로,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무관의 옷으로 제도화되기도 했다. 그 이전에는 왕이나 관리들이 먼 길을 떠날 때 이 철릭을 착용했고, 세종 7년에는 시위 군사들에게 문밖으로 나갈 땐 모두 철릭을 입을 것을 명했다는 내용이 있다.

윤용구 유물 철릭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윤용구 유물 철릭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명주 솜누비철릭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명주 솜누비철릭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신윤복필 풍속도화첩 속 철릭은 입은 남자의 모습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신윤복필 풍속도화첩 속 철릭은 입은 남자의 모습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과거 남자의 한복으로 색다른 디자인성을 가진 철릭은 시대에 따라서 그 모양도 점차 달라졌다. 가장 대표적인 변화는 의(衣)와 상(裳)의 길이를 예로 들 수 있다. 여기에서 의는 상의를, 상은 하의를 뜻한다. 상은 보통 여자들의 하의를 일컫는데 상 아래에 주름진 치마가 달린 형태로 철릭의 하단도 상이라 부르는 경우가 있다. 과거 철릭은 의의 길이가 상보다 길었고 후기로 가면서 점차 상의 길이가 더 길어지는 형태로 변화했다. 시간이 갈수록 몸을 덮는 상의 길이가 길어진 것인데 19세기 철릭은 의와 비교하면 상의 비율이 3배 더 길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우리가 사극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긴 남자 외투의 형태를 띠게 된 것이다.


유니크한 디자인의 남자 한복

보통 전통 한복의 경우 대부분 디테일이 많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철릭은 옷이 가진 섬세함이 굉장히 특별하다. 우선 상의와 하의가 구분되어 연결됐다는 점도 일반 한복과는 다른 점이며 소매에도 색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바로 소매가 일체형과 분리형으로 나뉘어 있다는 것이다.

디자인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전통 의상이 이중으로 활용된다는 점은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두 개로 분리된 소매는 쌍밀이 단추를 달아서이었는데 이 단추에도 나름의 쓰임이 따로 있었다.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때에 사대부도 관복을 벗어 던지고 철릭을 입게 하였는데 이는 비상시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필요할 때는 분리 되는 소매 부분을 쌍밀이 단추를 사용해 구급용 붕대로 활용할 수 있었다.

얼핏 보면 철릭의 전체적 외형은 두루마기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데 마름질 단계에서부터 두 의복은 확연한 차이를 가진다. 두루마기는 일체형으로 원단의 재단 단계부터 기다란 세로형으로 만들어진다. 당연히 하나의 긴 옷으로 의복이 제작되며 옷이 만들어질 때부터 어느 정도 그 모양을 짐작할 수 있다. 철릭은 상의와 하상이 따로 만들어져 완성된 모습을 드러내서야 허리선을 잇는다.

철릭은 조선 시대 남자의 옷이지만 현대적인 관점으로 볼 때 어느 정도 페미닌한 요소를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허리선이 표시되는 것은 물론 하상이 따라붙는 것은 단지 포의 모양이 변형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언뜻 보면 상의에 치마가 달린 원피스를 떠올리게 한다.

제작 단계에서부터 앞길을 세로형으로 길게 마름질하여 만드는 일반 포와는 확연한 차이점을 가진다. 일부러 의도한 바는 없겠지만 철릭의 디자인성은 현대의 관점으로 볼 때 중성적인 느낌을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남자의 의복과 여자의 의복이 확연하게 나뉘었던 과거지만 현대적인 시선에서 볼 때 그 디자인은 남자의 것이기도 하며 여자의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남자 포 종류의 하나인 도포, 선비의 멋스러움이 느껴진다 희복
남자 포 종류의 하나인 도포, 선비의 멋스러움이 느껴진다 /희복

흔히 조선 시대 선비의 모습을 떠올리면 도포 자락 휘날리며 걷는 역동적 이미지를 생각할 수 있다. 도포 역시 포의 한 종류로 왕을 비롯한 사대부의 외출복이었다. 과거에 응시하는 선비, 유생들이 입었던 의례복으로 조선 시대 선비를 떠올리면 흔히 이 옷을 입은 남자가 머릿속에 그려지곤 한다.

조선 중기 이후 평상시 흔하게 입었던 외투로 많이 착용 된 도포는 선비의 멋을 대표적으로 표현한 의복이라 할 수 있다. 그 만듦새도 참 실용적이면서 선비의 고고한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일반적인 한복에 비해서 조금 패턴이 복잡한 편에 속하며, 이중의 무(품을 늘리기 위해 덧댄 천)가 달려 있다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무는 한복에 활동성을 더하고 움직임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다는 조각이다.

이 도포는 한복의 몸체인 길이 쭉 연결되어 일체형으로 제작된다는 점에서 역시 철릭과 다르다. 보통 과거 남자의 외투는 길이 상, 하로 구분되지 않고 하나로 연결되어 만들어졌으며 그러므로 철릭의 디자인이 더 색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철릭은 현대에 와서 어떤 리디자인을 통해 재탄생했을까.


여자의 옷으로 재탄생한 철릭 디자인

철릭이 우리 남자 조상의 외투들과 다른 모습을 하는 것은 고려 말에 원나라에서 전하여 건너 들어왔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계급별로 일상에서 두루 입는 옷이 되었으며 조선 후기에는 제도화되어 무관의 의복으로 입혀지기도 했다. 조선 남자의 옷이라 볼 수 있는 철릭은 현대에 와서 그 디자인의 쓰임새가 어떻게 변형되었을까.

우선 생활한복에서 그 디자인의 쓰임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여자 원피스형 생활한복에서 그 특징이 두드러진다. 아무래도 상의와 하의가 분류되어 만들어지며 허리선에서 이어지는 특성이 여자 원피스와 비슷한 구성을 보인다. 다른 남자 포의 종류들은 한복의 몸체인 길이 일체형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길이가 길다고 하여도 원피스보다는 외투, 코트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 이와는 확연히 다르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철릭은 상에 주름이 잡혀 있는 모습이 더 원피스형 치마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 철릭의 주름을 잡는 방법도 각양각색이었다. 그 넓이와 방법에 차이점이 다양하게 존재했는데 조선 중기 무신의 철릭은 1~1.2cm 되는 주름을 먼저 잡고 다시 그보다 작은 잔주름을 잡아줬다. 잔주름의 넓이가 0.1~0.25cm 정도였는데 매우 섬세하게 지어진 옷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상의 바닥까지 주름을 깊이 눌러 잡은 철릭의 형태도 존재했으며 어떤 것은 허리 부분에서만 주름을 잡은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이 주름의 표현 덕분에 한층 더 활동성 있는 의복이 완성됐다고 볼 수 있으며 디자인적으로는 풍성하고 유려한 아름다움을 느껴진다.

생활한복에서의 철릭 디자인 활용을 살펴보면 역시 이 주름이 잘 표현되어 있다. 주름을 통해서 한층 더 풍성한 치마를 만들 수 있으며 한복의 아름다움과 현대 원피스의 세련됨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철릭은 과거로부터 시대상에 따라 조금씩 변형되는 모습이 발자취를 짚어볼 수 있어 큰 의미가 있었는데 현대에 와서는 그 디자인이 활용되어 아름다운 생활한복으로써 재탄생한 것이다.

일상복으로도 착용이 가능한 철릭 원피스 다래원한복
일상복으로도 착용이 가능한 철릭 원피스 /다래원한복
깅엄체크 원단으로 제작된 철릭 원피스 다래원한복
깅엄체크 원단으로 제작된 철릭 원피스 /다래원한복

과거 철릭의 색상은 신분과 그 역할에 따라서 구분해 각기 다르게 정해졌다. 하지만 현대 생활한복에서 쓰이는 여자 철릭 디자인의 원피스는 다양한 원단을 사용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실제 한복용 옷감을 사용해 철릭 원피스를 제작하기도 하지만 최근엔 수입 원단이나 다양한 소재의 원단을 사용해 현대적인 감성을 불어넣어 제작된 것도 찾아볼 수 있다.

조선 시대 남자의 외투였던 철릭은 현대의 생활한복으로 변형되며 여자 원피스 디자인으로 재탄생했다. 철릭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성이 현대에 와서 재해석 되며 페미닌하면서도 실용적인 측면이 부각된 것이다. 선비의 포를 통해 조선 남자의 멋스러움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는데 철릭은 그것에 더하여 그만의 중성적인 디자인성을 갖추고 있다고 느껴진다. 물론 철릭 자체가 조선 시대 남자의 외투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복을 짓는 과정에서도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으며 두루마기나 도포, 창의 등이 오히려 남자의 포로서는 선비의 품격을 더 강조했고 더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하다.

하지만 과거 남자가 입었던 옷이 현대에는 여자 원피스 디자인으로도 변형될 수 있으며 성별에 한계를 가지지 않고 새로운 디자인으로 재탄생했다는 것은 괄목할만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전통의상이 현대적으로 재해석 될 때 어떠한 편견 없이 디자인성 만으로 적용된다는 것은 더없이 멋진 일이다.
 

현대 생활한복 디자인에는 주머니가 있어 실용성이 더해져있다 /다래원한복
현대 생활한복 디자인에는 주머니가 있어 실용성이 더해져있다 /다래원한복

생활한복 자체는 완전히 현대의 의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현대에서 쉽게 입고 생활할 수 있도록 개량되어 젊은 세대를 겨냥한 감성적인 디자인의 생활한복 브랜드가 다수 등장하고 있다. 한복의 여러 디자인이 현대적으로 재구성되어 색다른 생활한복을 완성하는데 특히 철릭 원피스는 10대, 20대 여성에게 인기를 끌고 있으며 결혼식이나 가족 행사 때 이를 착용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철릭의 디자인 모형은 생활한복 외에 실제 현대 원피스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양장 테일러링을 따른 것으로 보는 시선이 더 옳다. 서로 비슷한 면은 가지고 있지만 그 기원이 다른 것이다. 그렇지만 철릭 디자인이 현대 여자 원피스와 상당히 유사한 면이 있고, 현재는 생활한복에 국한되어 있지만 이를 참고해서 더 현대적 디자인으로 충분히 재구상해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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