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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석과 명화] 12월 터키석(Turquoise), 성공과 승리를 나타내는 청록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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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석과 명화] 12월 터키석(Turquoise), 성공과 승리를 나타내는 청록색
  • 전은지 기자
  • 승인 2020.12.2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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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커 전은지 기자] 한 해를 마무리 지으면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될 무렵에는 이루지 못한 목표에 대한 아쉬움, 새로운 목표에 대한 기대감이 교차한다. 그래서 지인에게 크리스마스카드나 연하장을 보낼 때 ‘하시는 일 모두 이루시길 바란다’는 멘트가 단골로 들어가기도 한다.

무언가를 이루는 것, 성취감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 보석이 바로 12월의 탄생석이기도 하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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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석(Turquoise)은 이름처럼 터키에서 나오는 원석 같지만, 실제로는 이란, 이집트 등에서 많이 생산되었으며, 터키를 통해 알려졌기 때문에 ‘터키의 돌’이라는 의미로 터키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하늘, 바다를 닮은 푸른색이기 때문에 옛날 사람들은 신성한 보석으로 여겼다.


이름 자체가 ‘청록색’인 보석

‘터키의 돌’이라는 의미를 가진 터키석(Turquoise)은 사전적 의미로 보면 ‘청록색’이다. 보석이 가진 특징 자체가 이름이 되는 점이 독특하다. 터키를 통해 알려진 보석이다 보니 터키석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터키에서는 극소량만 생산되며, 주로 생산되는 곳은 이란과 이집트의 시나이반도다.
 

구리의 함량에 따라 다양한 색과 무늬를 이루고 있는 터키석 / 위키미디어
구리의 함량에 따라 다양한 색과 무늬를 이루고 있는 터키석 / 위키미디어

이란에서는 터키석을 두고 ‘승리’를 의미하는 ‘페로자(pērōzah)’, 현대 페르시아어로는 ‘피루체(fīrūzeh)’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터키석은 ‘성공’ 또는 ‘승리’의 의미가 있다. 또는 ‘행운’, ‘신성한 보석’이라는 의미도 있어서 이란에서는 궁전에서 돔을 덮는 소재로 사용했으며, 이집트나 유럽에서도 왕족들의 장신구에 많이 사용했다.


역사가 가장 오래된 보석 중 하나

터키석은 채굴을 통해 발견된 보석 중의 하나로, 역사에서 오래된 보석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란에서는 최소 2000년 동안 터키석이 중요한 생산 원천이었으며, 이집트는 기원전 3000년 제1왕조 때부터 시나이반도에서 채굴되면서 ‘터키석의 나라’라고 불렸다고 한다.
 

터키석은 대부분 수작업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사진은 1973년 이란 니샤푸르의 한 작업장 모습 / 위키미디어
터키석은 대부분 수작업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사진은 1973년 이란 니샤푸르의 한 작업장 모습 / 위키미디어

특히, 이집트 시나이반도에서 생산되는 터키석은 ‘이집트 터키석’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그 이유는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터키석보다 내구성이 강했으며, 반투명하고 짙은 청색으로 덮여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뉴멕시코 등에서 채굴되는데, 미국식 터키석은 ‘찰크 터키석’이라고도 불리며, 대부분 낮은 등급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주요 생산지 중 하나인 애리조나에는 여러 광산이 있는데, 이 중 2개의 광산에서 생산되는 터키석은 독특한 색상과 품질로 유명하다고도 한다.
 

미국 애리조나주 광산에서 생산된 킹맨 블루 터키석 / 위키미디어
미국 애리조나주 광산에서 생산된 킹맨 블루 터키석 / 위키미디어

보통 우리가 알고 있듯이 청록색이 많지만, 구리 함유량에 따라 하늘색, 녹색까지 다양한 푸른색 계열이다. 색깔 외에도 불순물 때문에 특유의 갈라진 무늬가 있는 것도 터키석만의 매력이다.

산성을 띠는 물질이나 땀이나 물, 화장품 등에 약하기 때문에 터키석을 보관할 때는 이물질이 묻었다면 닦아야 한다. 강한 햇빛에 탈수가 되면 색이 바래지거나 갈라질 수도 있으므로 햇빛이 강하거나 건조한 곳도 피해야 한다.


터키석과 닮은 ‘하울라이트’

오래된 보석이기도 하지만, 터키석은 가짜가 많은 보석이라는 오명도 가지고 있다. 인조 터키석은 비슷한 느낌의 돌을 염색하거나 특유의 갈라진 무늬를 그려 넣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진짜 터키석이 아닌 ‘하울라이트(Howlite)’라는 광물이다.
 

하울라이트의 원형 모습 / 위키미디어
하울라이트의 원형 모습 / 위키미디어
갈라진 무늬가 터키석과 매우 닮아있다 / 위키미디어
갈라진 무늬가 터키석과 매우 닮아있다 / 위키미디어
하울라이트 / pixabay
하울라이트 / pixabay

캐나다의 화학자, 지질학자, 광물학자인 헨리 하우(Henry How)가 발견해 그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인 하울라이트는 1868년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있는 도시 윈저에서 처음 발견됐다.

가공되기 전 생김새는 하얀색 콜리플라워를 닮기도 했지만, 가공한 뒤에 나타나는 하울라이트는 터키석과 매우 닮아있다. 그래서 화이트 터키석(White Turquoise)이라고 부르거나, ‘화이트 버팔로 터키석(White Buffalo Turquoise)’, ‘White Buffalo Stone’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기도 하다. 자연 그대로도 판매가 되기도 하지만, 터키석처럼 청록색으로 염색을 해서 ‘가짜 터키석’으로 판매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건강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신비한 돌

터키석은 성공과 승리라는 의미 외에도 ‘신성한 돌’이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터키석이 가장 많이 생산됐던 이란에서는 하늘의 푸른색을 닮은 돌이라고 해서 이슬람교의 신전인 모스크의 지붕이나 벽타일을 터키석으로 장식하기도 했다.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 있는 모스크 / pixabay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 있는 모스크 / pixabay

터키석을 부적처럼 신비한 돌로 여긴 이유는 색깔이 바뀐다는 점에서였다는 설도 있다.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죽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터키석을 목이나 손목에 장신구로 착용했는데, 색이 바뀌면 위험의 징조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터키석이 빛이나 산성도 등 화학반응에 의해 변화된다는 사실을 그 당시 사람들은 몰랐기 때문에 빚어진 문화였다.

이집트에서 터키석을 신성시했다. 오래된 유물로 전해지는 이집트 여왕의 미라에서 발견된 4개의 팔찌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여왕의 미라에 함께 끼워둔 4개의 팔찌는 금으로 만들어졌으며, 터키석이 장식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집트의 파라오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 / pixabay
이집트의 파라오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 / pixabay

이 미라는 1900년경 발굴됐는데, 약 5000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원형 그대로 유지되어 있었으며, 미라 역시 상태가 깨끗했다고 전해졌다. 터키석 팔찌가 미라를 보존하는 방부제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추측했다.

고대 이집트 제18왕조 제12대 왕으로 잘 알려진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에서도 터키석을 발견할 수 있다. 터키석이 가진 신성한 기운이 파라오의 미라에도 전달되길 바라는 이집트인들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한다.


왕족과 고위층 여인들이 사랑한 터키석

보석은 주로 장신구에 쓰이다 보니, 명화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보석은 대부분 초상화에 담겨있다. 그 당시 시대 상황이 그러했겠지만, 보석과 같은 귀한 물건은 대체로 세력을 가진 고위층이 많이 가지고 있었으며, 권위적인 왕족이나 부유한 고위층 여성들의 초상화에서 ‘신성한 돌’로 여겨진 터키석이 사용된 보석을 찾아볼 수 있었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작품 ‘나폴레옹 1세’(1806) / 위키미디어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작품 ‘나폴레옹 1세’(1806) / 위키미디어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초상화가인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가 그린 ‘나폴레옹 1세’의 초상화다. 이 초상화는 나폴레옹이 대관식을 위해 왕좌에 앉아있는 모습인데, 화려하면서도 권력 있는 황제를 표현하고 있다. 붉은색 모피와 망토, 금색의 월계관 외에도 주목할 것이 그의 왼손에 들려있는 ‘정의의 손’이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가 그린 ‘샤를 10세’ 초상화에도 정의의 손이 등장한다 / 위키미디어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가 그린 ‘샤를 10세’ 초상화에도 정의의 손이 등장한다 / 위키미디어

‘정의의 손(Hand of Justice)’은 전해지는 느낌 그대로 강한 왕권을 상징한다. 왼손을 형상화한 이 조형물은 상아로 조각되었으며, 손목 부분에 자수정, 사파이어, 수정 등으로 장식했다. 그러나 손의 정면 부분에는 터키석, 진주, 사파이어 등을 사용했다고 한다. 보통 ‘왼손’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식되는데, 이런 왼손에 귀한 보석을 사용해 권위를 상징했다는 것이 독특하게 다가온다. 이 초상화를 그린 앵그르는 혹독한 평가를 받기도 했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작품 ‘오송빌 백작 부인’(1845) / 위키미디어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작품 ‘오송빌 백작 부인’(1845) / 위키미디어

앵그르는 여성 누드화 외에도 많은 귀족이나 서민 여인들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오송빌 백작 부인’은 그중 하나의 작품이다. 젊은 백작 부인의 오른손에는 터키석이 사용된 팔찌와 반지가 있다. 새하얀 백작 부인의 피부와도 잘 어울리면서도 고귀한 느낌을 준다. 보통의 백작 부인들은 가만히 앉아서 근엄하거나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오송빌 백작 부인은 자신감 넘치는 눈빛과 표정이 매력적이다.
 

‘오송빌 백작 부인’의 손에 끼워진 장신구 / 위키미디어
‘오송빌 백작 부인’의 손에 끼워진 장신구 / 위키미디어

그도 그럴 것이 백작 부인인 루이즈 드 브로이 오송빌은 수필가이자, 전기 작가였으며 역사 로맨스 소설까지 출판할 정도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지식인이었기 때문이다. 앵그르가 그런 백작 부인의 모습을 그림 속에 담으려 한 듯 보인다. 그 정도로 세심한 표현을 위해 앵그르는 1842년부터 스케치를 시작했으며, 3년 뒤인 1845년 그림을 완성했다고 한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작품 ‘마담 무아테시에’(1856) / 위키미디어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작품 ‘마담 무아테시에’(1856) / 위키미디어

위의 두 인물이 황제, 백작 부인 등 고위층인 것과 달리 평범한 여인들도 터키석을 착용했다. ‘마담 무아테시에’를 보면, 그림 속 여인은 여러 가지 장신구를 하고 있는데 왼손에 착용한 팔찌에 푸른 터키석이 보인다.

그림 속 여인은 프랑스 공무원의 딸인 마리 클로틸드 이네스 드 푸쿨드로, 자신보다 나이가 2배나 많은 부유한 은행가이자 상인인 시지스베르트 무아테시에와 결혼했다. 무아테시에 부인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남편이 부유하기 때문에 화려한 드레스와 여러 가지 장신구를 착용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서민의 사회적 지위가 올라갈 수 있었던 당시 프랑스의 사회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마담 무아테시에’의 팔찌에 터키석이 쓰였다 / 위키미디어
‘마담 무아테시에’의 팔찌와 반지에 푸른색 터키석이 쓰였다 / 위키미디어

이 그림에는 숨겨진 뒷이야기가 있다. 앵그르의 친한 친구였던 샤를 마르코트가 자신의 친구인 무아테시에의 부인의 초상화를 그려보라고 부탁했지만, 앵그르는 초상화를 역사화보다 저급한 예술로 생각해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앵그르가 직접 무아테시에 부인을 만나고 나서 그녀의 미모에 반해, 초상화로 그렸다고 한다. 무아테시에 부인의 초상화는 앉아있는 모습과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서 있는 초상화까지 2점이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작품 ‘마담 르블랑’(1823) / 위키미디어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작품 ‘마담 르블랑’(1823) / 위키미디어

‘마담 르블랑’ 역시 ‘마담 무아테시에’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계층의 여성이다. 르블랑 부인의 남편인 자크 루이 르블랑 역시 은행가로서 보통 서민보다는 부유한 층에 속했다. 그 때문인지 단아하면서도 고귀해 보이는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있으며, 목걸이 형태의 금시계와 반지 등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그림 상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시계에 터키석으로 장식되어 있다. 당시 시대상을 볼 때, 금시계는 흔하지 않은 장신구였다고 한다. 르블랑 부인이 얼마나 잘 살았는지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 위키미디어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 위키미디어

초상화들을 그린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는 ‘터키의 욕탕’과 같이 여성들을 누드화로 그린 작품이나 ‘제우스와 테티스’,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등 그리스·로마 신화를 배경으로 한 역사화를 주로 그렸다. 그의 그림은 세밀하고 세심하면서도, 인체의 비율을 왜곡되게 그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아름다움을 강조하기도 했다. 특히나 그림을 그리기 전, 스케치를 여러 번 하면서 인물의 표정과 행동 등을 자세히 묘사하려고 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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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보아왔던 터키석의 이미지는 이국적이면서도 독특한 원석이었다. 균열이 간 듯 투박한 모양 때문에 자유분방한 히피의 느낌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성공’과 ‘승리’라는 의미는 그 가치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깨닫게 했다. 왜 고대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면서 장신구에 터키석을 사용했는지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터키석의 기운처럼, 허무하게 지나간 2020년 대신, 예전의 즐거운 일상을 찾아 모두가 코로나로부터 ‘승리’할 수 있는 2021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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