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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적 행사이자 민속놀이였던 연등회,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재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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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적 행사이자 민속놀이였던 연등회,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재되다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0.12.1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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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연등회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제 15차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우리나라의 '연등회'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하기로 최종 결정이 났다.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는 '연등회'가 시대를 지나며 바뀌어 온 포용성으로 국적, 인종, 종교, 장애의 경계를 넘어 문화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점, 사회적 경계를 일시적으로 허물고 기쁨을 나누고 위기를 극복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 등을 평가했다.

특히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는 '연등회' 등재신청서를 무형유산의 중요성에 대한 가시성과 인식을 제고하는 모범 사례로 높이 평가하였다. 이번 등재는 준비 과정에서부터 여러 정부 기관들이 협력하여 이루어낸 성과로서, 올해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국 당선에 이어 무형유산분야에서 우리나라의 영향력과 위상을 제고하는 데 기여하는 바도 크다. 

연등회 /flickr

우리나라의 연등회는 예로부터 오랜 세월 선조들이 지켜온 큰 행사로서 국교가 불교였던 신라, 고려 시대에는 국가적인 행사로 치루어져 그 규모나 위엄이 매우 장대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삼은 조선 시대에 와서는 불교를 억제하고 유교를 숭상하는 억불숭유정책에 따라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축제는 없었지만 오랫동안 민간의 사랑을 받던 연등회는 민간 차원에서도 계속 이어져 갔다. 


연등회의 시작과 변천사 
 

연등회 풍경 /flickr

연등회는 정월 혹은 2월 보름에 연등을 켜고 부처에게 복을 비는 불교 의례로, 고려에서는 팔관회와 함께 국가적으로 중시한 양대 의례 중 하나이다. 훈요 10조에서는 연등회가 부처를 섬기는 의례라 칭했고, 후세에 이 행사를 자의적으로 늘리거나 줄이지 말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정월 보름에 하거나 2월 보름에 여는 등 시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현재는 봄에 하는 대표적인 국가의례로 자리잡았다.

특히 연등회가 대대적으로 행해지던 음력 정월 보름과 2월 보름에 국왕과 온 백성이 풍년을 기원하며 궁궐부터 시골까지 화려한 연등을 밝혀 잔치를 열고 가무를 즐겼다. 왕이 행차했다가 돌아오는 가두행진의 길 양옆에는 이틀밤에 걸쳐 3만개의 등불을 밝혀 불빛이 마치 낮과 같이 밝았다고도 했다. 

연등회 /flickr

연등회의 시초는 붓다 석가모니에게 공양한 등불 가운데 지극한 서원과 정성으로 밝힌 가난한 여인의 등불만이 꺼지지 않았다는 일화에서 시작된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불교는 고려시대의 연등회, 조선시대의 호기 놀이와 사월 초파일에 석가의 탄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등에 불을 밝혀 달아매는 관등 놀이로 이어졌다.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는 관등 행사가 매년 정월 15일에 있었다고 되어 있는데, 아마 연례적으로 이 행사를 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동국세시기』에는 정월날 등을 밝히면서 밤을 세웠으며, 대보름에는 횃불을 들고 높은 곳에 올라 달맞이를 하면서 풍년과 흉년을 점치고 풍년을 빌었다고 한다. 이러한 풍속은 불교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고대로부터 전해 온 풍년 기원제의 성격을 띤 행사였다.

매달려 있는 등 /flickr

이 풍속은 연등 행사에 따르는 민속으로 변하여 조선 시대의 연등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연등의식과 행례는 총 1,500명이 넘는 대규모로 이루어졌고, 연등회의 모든 사무를 담당하기 위하여 국가에서는 연등도감을 설치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의 사월 초파일 연등놀이는 행사 며칠 전부터 분주한 준비를 시작하는데, 민가와 관청, 시장, 거리의 집집마다 대나무를 묶어 등불대를 세우고 오색 비단으로 깃발을 만들어 맨 위에 단다. 깃발 바로 아래 갈고리를 만들어서 줄을 꿴 후 등을 쭉 매달아 서서히 잡아올리면 가장 위의 등이 갈고리까지 올라가 멈추게 된다.

조선시대에는 억불정책이 계속되며 연산군 때는 한양 도성 내 절들이 모두 폐지되었고, 인종 때는 승려의 도성 출입이 금지되었다. 그러나 사월 초파일 밤에는 통행금지가 해제되어 장안의 사람들은 도성 밖 절에 가서 참배하고, 초저녁부터 주위 산으로 올라가 등불을 구경하거나 밤새도록 돌아다니면서 놀았다고 한다. 악기를 들고 거리를 쏘다니는 사람들, 남산의 잠두봉에 올라가 서울의 연등을 구경하는 시골 노파들도 있었다. 


연등회는 불교뿐만이 아닌, 민중들의 놀이 문화였다 
 

공작새와 코끼리의 모양을 한 등 /flickr

연등회는 오늘날 연꽃 모양의 등을 달고 행진하는 연등 축제와는 조금 다르다. 애초에 사월 초파일을 기념해 열리는 행사도 아니었다. 동지가 지나 정월 보름이 되면서 새해가 시작되는 것을 기념해 등을 다는 의미로 출발했던 행사다. 삼국 시대에 불교가 전래되며 전통적이고 민속적인 연등 행사가 불교와 합쳐지며 행사가 더욱 커지고 화려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불을 뿜는 것 같은 용 /flickr

애초에 연등회의 시작이 새해를 기념해 등을 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등의 모습도 현재와는 많이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동국세시기』에 묘사된 등의 모습은 수박등, 거북등, 오리등, 일월등, 항아리등이었고, 연꽃 모양의 등이 있긴 했지만 나머지는 십장생 같은 동물이나 부와 다산을 상징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또 한가지 주목할 점은 연등회는 불교가 전해지기 이전부터 열리던 행사였기 때문에 종교적인 색채뿐만이 아닌, 선조들의 놀이나 축제의 성격 또한 강했다는 것이다. 스님들이 만든 '성불도' 놀이란 것이 있었는데, 윷놀이처럼 도판과 주사위와 말을 사용하여 육도윤회(六道輪廻)에서 벗어나 성불에 도달하는 과정을 놀이로 만든 것이다.

현대의 만석중놀이 /만석중놀이보존회

또한 긴 장대에 달린 등을 보면서 즐기는 관등 외에도 형형색색의 등과 불빛의 그림자를 이용한 만석중놀이란 것도 있었는데, 영등 안에 틀을 만들어 놓고 종이에 개와 매를 데리고 말을 탄 사람이 호랑이, 노루 등을 사냥하는 모습을 그려 틀에 붙인 후에 바람으로 돌아가게 하여 거기에 비치는 그림자를 보며 즐기는 놀이였다.

연등회가 정월 보름, 즉 새해를 밝히는 것에서 시작한 민속놀이적 성격이 있다면 연등회의 시기가 사월초파일로 옮겨지면서부터는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미와 앞에서 언급했던 성불도 놀이, 만석중 놀이 등 여러 놀이를 통해 어린이들을 불교에 친근하게 다가오게 하는 의미도 있었다.

연등회가 열리는 날이면 어린이들에게 등 아래 느티나무 잎으로 만든 떡과 소금에 볶은 콩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초파일을 즈음해 절 앞에는 장이 섰는데 이곳에서는 대부분 어린이 용품을 팔았고, 어린이들은 절에 가서 예불을 드린 후에 장난감을 받고 집에 돌아가는 것이 풍습이었다. 연등회가 열렸던 날은 어린이들에게는 지금의 어린이날이나 다름 없었던 것이다. 

연등회를 즐기는 아이의 뒷모습 /flickr

현대엔 1955년 조계사 부근에서 제등 행렬을 한 것이 지금의 연등 행사 시작이 되었으며, 1975년 사월 초파일이 국가 공휴일로 제정되어 더욱 많은 인원이 연등행사에 참여하게 된다. 1996년부터는 전국적인 국민 축제로 전환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대표적인 봄의 축제가 되었다.


연등회는 현대에도 모두가 즐기는 축제 

 

숲을 꾸미고 있는 연등 /flickr

유네스코가 지난 2016년 발표한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란 뜻의 새 목표는, 무형유산의 보호뿐만 아니라 무형유산의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를 또 다른 목표로 삼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속가능한 발전의 목표란 인류무형유산으로서 현재까지 지속과 단절 및 변화를 거쳐 현대에 정착한 연등회의 가치와도 맞아떨어진다. 

2012년 ‘연등회는 통일신라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며 불교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의식’이라는 점이 인정되어 국가무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되었다. 제등행렬의 위주였던 연등 축제는 현대에 들어서 불교문화마당과 어울림마당, 연등법회 등 여러 행사와 더불어 시민들과 함께 어울리는 화합의 축제로 성장했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이번 '연등회'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두고 “연등회의 화합과 상호이해 정신이 여러 국가에 공유돼 국가 간 갈등 해결에 영감을 주기를 기대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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