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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 듯 다른 듯,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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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 듯 다른 듯,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취향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0.12.14 14: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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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정물화와 우리나라의 책거리
앙리 팡탱 라트르의 La Table Garnie /Wikimedia Commons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서양에 정물화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책거리(책가도)가 있다. 정물화야 많이 들어봐서 익숙하지만 책거리는 조금 생소할 수 있는데, 둘 다 어떤 물건들이 배열된 모습을 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정물화는 과일, 꽃, 그릇 등 정지해 있는 사물을 배치한 다음 구도를 잡아 그리는 그림이고 책거리는 높게 쌓아놓은 책더미와 서재에 여러가지 일상 용품을 적절히 배치해 그리는 정물화풍의 그림이다. 

둘 다 그림이 그려진 특정한 시간, 특정한 문화, 그리고 예술가 개인의 특정 스타일에 따라 현실적일 수도 있고 환상적일 수도 있다. 정물화 자체가 화가가 대상을 상징적으로, 또는 우회적으로 사용해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 시대의 사상, 문화, 유행을 그렸던 서양의 정물화와 우리나라의 책거리는 어떤 점이 달랐을까.


서양의 정물화 

 

얀 브뤼헐 Flowers in a Wooden Vessel /wikiart

서양의 정물화(Still Life)는 북부 르네상스 후기,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시기 화가들에게유행한 화풍이다. 수세기 동안 예술가들은 다양한 이유로 정물화를 그렸다. 그리는 사람의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숨겨져 있던 이야기나 누군가의 생각을 드러내기 위해, 어느 화가의 숙련된 솜씨를 보여주기 위해서 등의 여러 목적으로 정물화는 그려졌다. 

정물화는 예술 장르의 서열에서 낮은 위치에 속했다. 역사화가 제일 인기가 많았고 그 다음은 초상화가 인기였다. 움직이지 않는 무생물을 그리는 정물화는 낮은 자리에 머물러 있던 덕분에 오히려 유행을 타지 않은 그림이 되었다. 가장 잘 알려진 정물화의 대상으로는 과일, 야채, 꽃이 주로 속했다. 

정물화가 그려진 메나 무덤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정물화의 가장 초기 그림은 기원전 15세기 이집트 사람들이 그린 것으로 추정한다. 가장 유명한 고대 이집트 정물화는 메나 무덤의 벽을 장식한 그림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무덤과 신전에 있는 물건과 음식을 죽은 사람들이 사후에도 즐길 수 있는 제물의 대상으로 보고 그렸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정물화를 화병, 벽화, 모자이크에 그렸고 기원전 5세기, 그리스 화가 제우크시스는 실제로 새들이 날아와 부리로 쫄 정도로 사실적인 포도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프란스 스나이데어스 The Fruit Basket /flickr

정물화는 중세 시절 예술가들의 종교적인 목적에 맞게 각색되다가, 16세기 독자적인 예술 형태로 정착한다.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들은 꽃을 대상으로 정물화를 대중화시켰고, 정물화의 절정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이루어졌다. 프란스 스나이데어스, 얀 브뤼헐 등의 예술가들은 과일이 호화롭게 담긴 그릇과 꽃다발, 테이블의 사실적인 이미지를 그렸다. 특히 프란스 스나이데어스는 과일과 꽃의 고전 정물화를 주로 그렸으나 털과 깃털을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나 과일과 야채가 있는 그림에 동물을 포함하는 정물화도 자주 그렸다. 

조르주 드 라 투르 The Penitent Magdalen with NIght Light /flickr

정물화에서 많이 보이는 물건들은 종교적이거나, 상징직인 의미로 쓰이기도 했다. 잘려진 꽃이나 썩어가는 과일 조각은 죽음을 상징했고, 해골이나 모래시계, 촛불 등은 보는 사람들에게 인생은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전했다.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에서 유행했던 바니타스(허무주의)풍 정물화는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란 뜻의 라틴어 구절인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와도 관련이 있다.

'메멘토 모리'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살아있는 동안의 삶은 덧없다는 것이다. 바니타스 정물화의 경향은 두개골, 사그라지는 촛불 등을 그림에 등장시켜 살아 있는 동안 소유한 부와 쾌락은 모두 덧없다는 것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았다.

프란시스코 고야 A Dead Turkey /flickr

18세기 들어 자연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일부 화가들도 그리는 대상에 대한 섬세한 관찰을 하며 일종의 상징성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스페인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는 나폴레옹 침공 당시 '전쟁의 참상' 시리즈를 작업하면서, 전쟁을 기억하는 의미로 민첩하고 힘찬 붓놀림으로 죽어가는 새, 동물, 군인 등을 그렸다. 표현하는 주제의 영역은 조금 좁아졌지만 예술의 표현 방식은 더 넓어지면서 정물화는 한층 더 나아간다. 

폴 세잔 Pommes et Oranges /flickr

정물화풍은 반 고흐의 '해바라기', 폴 세잔의 '사과와 오렌지' 등 후기 인상파 시대 걸작들을 남겼다. 사진이라는 것이 등장하며 화가들은 비로소 사실적인 이미지를 그려야 하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오렌지가 등장하는 그림이라면 정확한 명암과 광택을 표현하는 순수한 기법 대신 그 대상의 분위기, 색상, 모양을 표현해 그림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이 발자국은 현대의 팝 아트와 팝 아티스트들에게도 영감을 준다. 팝 아티스트들은 이전 세대의 정물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일상 생활을 포함한 모든 것들을 대상으로 표현하고 싶어했다. 타자기, 수프 캔, 립스틱 등 새로운 물건들이 등장하며 팝 스타일의 정물화는 실제 사물을 그리는 방식으로 나아갔고, 대중매체와 대중 문화는 이전의 정물화가 표현했던 꽃이나 과일처럼 새로운 팝 정물화의 주제가 되었다.

빈센트 반 고흐 아를의 침실 /로이 리히텐슈타인 Interior with Waterlilies
빈센트 반 고흐 아를의 침실 /로이 리히텐슈타인 Interior with Waterlilies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신문과 인쇄 광고에서 영감을 받아 평면적이고 윤곽잡힌 모양으로 그리며 마치 실제처럼 보이는 기법을 썼다. 아를에 있는 반 고흐의 침실을 흉내내 '아를의 침실'이란 작품을 남겼고, 반 고흐가 살아 있었다면 이 그림을 맘에 들어했을 거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동양의 정물화, 우리나라의 책거리 

장한종 '책가도' /경기도박물관

책가도는 우리말로 책거리(冊巨里)라고도 하는데, 책거리에는 책가가 있는 그림뿐만 아니라 책가 없이 책을 비롯한 사물들을 나열한 그림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책거리가 책가도보다는 상위의 개념으로 쓴다. 책거리에는 책가에 책만 가득 꽂혀 있는 그림도 있고, 책 없이 꽃병이나 과일과 동식물 등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책거리의 첫 근원은 16세기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귀족들의 저택에 있던 개인 서재인 스튜디올로(studiolo)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귀족들은 자신들의 서재에 진귀한 예술품을 수집해 전시하는 것이 취미였는데, 이 수집 열풍이 선교사들을 통해 17세기 청나라에 전해지며 가구의 일종으로 크게 유행하게 된다. 다보각 같은 장식장에 도자기, 청동기, 옥 등 귀한 물건을 진열해놓은 것을 묘사한 그림을 '다보각경'이라 하는데, 이것이 책거리의 근원이라 추정된다. 

이응록 '책거리' /경산시립박물관

18세기 후반 중국과의 문물 교류가 활발해지며 청나라에 갔던 조선 사신들인 부연사 일행을 통해 다보각경풍의 그림이 조선에도 유입되어, 우리나라의 상황에 맞게 변화되며 책거리가 등장한다. 중국의 다보각경은 진귀한 예술품이 그림의 중심인 데 비해 초기 우리나라의 책거리는 책이 중심이었는데 이것은 정조와 큰 관련이 있다. 책을 많이 읽었던 정조는 1791년 어좌 뒤에 일월오봉도 대신 책가도 병풍을 세우는데, 이것을 계기로 양반 집안에서도 저마다 책가도 병풍을 설치하여 책거리가 유행하게 된다.

문치(文治)를 추구하며 왕실에서도 규장각 등의 도서관을 만들어 책을 각별히 생각했던 정조는 화원 중에서 책가도를 그리지 않는 자는 귀양을 보낼 정도로 책가도를 중시했고 한다. 실제 신한평과 이종현이 책거리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귀양을 갔을 정도로 정조는 책가도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이처럼 정조가 책가도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이자 당시 김홍도, 이응록 등의 화가들도 앞다투어 책가도 병풍을 집에 두었다. 특히 송석 이택균이 책가도에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이택균 '책가도' /케이옥션
책거리 병풍 /국립중앙박물관 

19세기 궁중 화풍의 책거리가 민화풍으로 확산되며 병풍의 크기도 점점 작아지고, 책과 더불어 다산이나 장수를 추구하는 물건들이 그림에 등장한다. 서민들의 현실적인 욕망과 실생활이 책거리 속에 반영되면서 책거리에 등장하는 대상도 변화했다. 책장 대신 작은 탁자나 사랑방의 가구들이 활용되고, 작은 병풍에 많은 대상을 담기 위해 책을 비롯한 물건들을 군집해 표현했다. 책보다는 다양한 실생활의 물품과 꽃, 과일 등에 비중을 더 두는 그림들이 많아졌다.

19세기의 책거리 /선문대학교박물관

책거리의 표현 방식은 초기에는 화면에 있는 소재들이 좌우대칭을 이루며 정확히 균형을 이루다가 점차 서양의 정물화처럼 자유로운 배치 구도가 성행했다. 화가들은 그림을 보는 사람이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닌, 마치 그림이 사람을 보는 듯한 역원근법으로 그렸고 이것은 서양의 그림과는 많이 다른 화법이었다. 책거리의 배경엔 대체로 아무것도 그리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정성옥 작가 '책가도' /갤러리H

이렇듯 책을 너무나 사랑했던 한 왕으로부터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만민이 즐겼던 책거리는 오늘날에도 현대 작가들의 작품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정성옥 작가는 민화 가운데서도 책장과 서책, 각종 문방구 등을 그린 책가도를 통해 전통과 현대의 어우러짐을 드러내며 서가를 기본으로 책과 화병, 꽃, 기물 등을 충실하게 재현해 시각적인 즐거움을 제공한다.


현대에도 진화하는 정물화와 책거리 

19세기 책거리를 모사한 작품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서양의 정물화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던 화가들의 세상과 그 화가들이 보는 물체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탐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왕의 취향으로 시작된 책거리는 왕부터 민간에 이르기까지 널리 사랑받으며 조선 후기 시대상과 사회상, 문화와 유행을 담아냈다. 세상이 진화하면서 새로운 물건들이 등장하고, 계속해서 변하는 대중매체와 현대의 미디어는 정물화의 또다른 주체가 되어 끊임없이 재창조가 된다.

동서양에 각각 비슷하게 존재했던 정물화는 현실의 대상을 표현하는 것에서 시작해 화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한없이 자유로워진 형태로 나아가 지금도 현대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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