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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 서회랑 서편지역 발굴조사 중 금동봉황장식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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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 서회랑 서편지역 발굴조사 중 금동봉황장식 발견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0.11.25 16: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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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유적지에서 발견된 금동봉황장식들

 

황룡사 조사 지역 전경 /문화재청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최근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신라 사찰 학술조사연구사업으로 추진하는 '황룡사 서회랑 서편지역' 발굴조사 중 건물지, 담장 이외에도 금속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다. 경주 황룡사지는 1976년부터 중심 구역과 북편 지역에 대한 발굴을 진행했지만 서회랑 서쪽지역은 사역 내에서 유일하게 발굴하지 못해 미조사 구역으로 남았던 곳이다. 서회랑 서쪽지역은 금당이나 목탑 등이 있었던 예불 공간과는 달리 승려의 생활 공간이나 사찰 운영과 관련 시설이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사용되었던 금속 유물 중에서도 금동제, 철제, 자물쇠 3점이 주목받고 있다. 조사구역이 넓지 않아 통일신라와 고려 시대의 금동봉황장식자물쇠 3점이 출토된 것은 조사단 측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다. 동시에 서회랑 외곽 공간의 기능을 밝히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로 쓰일 것으로 예상된다. 


여러 유적지에서 발견된 금동봉황장식 

 

봉황모양꾸미개 /국립중앙박물관 

유적지에서 금동장식 유물이 발견된 건 이전에도 종종 있는 일이었다. 평안북도 운산군 동신면 용호동 1호무덤에서는 봉황모양꾸미개가 부뚜막, 토기 등과 같이 출토된 적이 있다. 얇은 금동판을 잘라 봉황의 옆모습을 만들었는데, 이 봉황은 머리를 뒤로 젖힌 채 큰 꼬리깃을 뽐내고 있는 모습이다. 날개는 따로 만들어 붙였지만 온전한 모습은 아니다. 벼슬은 갈기와 같은 형태로 뒤로 넘어가 있으며, 날개는 위로 치켜 올라가 있고, 다리는 일직선으로 뻗어 있다. 표면에는 아무 장식이 없지만 봉황의 가슴과 두 다리 끝에 각각 구멍이 두 개씩 있어 어딘가에 붙이는 장식으로 썼던 것임을 알 수 있다. 
 

금동용머리 /국립경주박물관 공식 블로그

경주시 월지는 예전 안압지라고도 불렸던 곳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월지는 신라가 삼국 통일을 이룬 직후인 문무왕 때 인공 연못으로 조성이 됐던 곳이다. 3개의 인공 섬이 배치되어 다양한 꽃과 나무가 자랐고, 각종 새와 동물들을 키우는 등 월지는 신라의 대표적인 정원으로 쓰였다.

최초 발굴 조사 당시 무려 1만 5000전이 넘는 신라시대의 유물이 나왔다. 불상, 숟가락, 청동거울, 심지어는 유람선 배까지 다양한 유물들이 나왔고 이후 지속적인 발굴로 2008년 기준 금속공예품 1,152점을 포함해 총 32.587점의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옛 사람들은 아름다운 정원에 사는 신비한 동물들을 상상했는지, 금동용머리나 금동봉황장식 등 상상의 동물을 묘사한 유물들을 볼 수 있다. 
 

금동봉황장식 /국립경주박물관 공식 블로그

금동봉황장식의 봉황은 닭의 머리, 뱀의 목, 물고기의 꼬리, 두루미의 발과 매의 발톱을 가졌다. 신라시대의 봉황은 '황제' 나 '왕'을 뜻했다. 어질고 현명한 왕이 나라를 잘 다스렸을 때 나타난다는 상상의 새로 인식해 궁 천장의 장식용으로 많이 쓰였다. 월지에서 발견된 금동봉황장식은 당시 신라인들이 몸체와 양쪽 날개를 만든 후 황금으로 도금했다고 전해진다. 봉황의 머리 위엔 뿔이 있고, 툭 내민 가슴엔 비늘이 있으며, 활짝 편 날개는 지금도 움직일 수 있다. 부리에 고리가 달려 있어 어떤 것에 부착했던 장식으로 추정하나 정확히 어디에 쓰였는지는 불명이다. 

 

금동봉황모양꾸미개 /국립부여박물관

백제는 금속공예문화가 유달리 발달한 나라였다. 백제는 뛰어난 청동기 문화를 발전시켰던 마한 지역의 전총을 바탕으로 중국과 고구려의 발달된 금속 공예 기술을 받아들이며 수준 높은 미의식과 찬란한 예술성이 돋보이는 독특한 금속 공예 문화를 이루어냈다. 백제의 금속공예는 그동안 웅진 및 사비시대에 걸쳐 출토된 다양한 국보급 유물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이 금동봉황모양꾸미개는 부여 부소산성 움집터 부근에서 수습된 유물이다. 일부 부식됐긴 했지만 도금이 남아 있다. 이 유물에 나타난 봉황은 시기적으로 백제금동대향로의 봉황과 비슷한 것으로 추정되며, 봉황의 날렵함과 위엄 있는 모습을 갖추고 있다. 금동봉황꾸미개의 봉황은 머리에 깃털이 올라와 있으며 입을 벌려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다. 봉황의 머리 반대쪽 끝 부분이 뚫려 있는 투겁 모양을 하고 있어 무엇인가에 이 장식을 끼워 꾸몄던 것으로 보인다. 금동봉황꾸미개는 봉황의 눈과 코, 수염 등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어 높은 수준의 백제 금속 공예기술을 보여준다.

 

백제금동대향로 /국립부여박물관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사지 부속건물 공방지에서 출토된 백제금동대향로는 용이 머리를 들어 입으로 몸체 하부를 물고 있는 받침과 연꽃잎으로 장식된 몸통, 산봉우리가 층층이 중첩된 형태의 뚜껑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향로는 불로장생하는 신선이 용과 봉황과 같은 상상의 동물들과 어우러져 살고 있는 신선 세계이자 별천지, 또는 이상향을 묘사한 향로로 추정된다. 
 

금동대향로 맨 꼭대기에 있는 봉황 /국립부여박물관

뚜껑 꼭대기에는 별도로 부착된 봉황이 목과 부리로 여의주를 품고 날개를 편 채 힘있게 서 있는데, 길게 약간 치켜 올라간 꼬리의 부드러움은 백제 특유의 우아하며 기개 있는 특징을 보여주는 듯 하다. 봉황 앞 가슴과 앞뒤에는 5개의 구멍이 뚫려 있어 봉황 몸체에서 향 연기를 자연스럽게 피어오를 수 있게 하였다. 깃털, 벼슬, 부리, 날개, 꼬리, 발가락까지 자세하게 표현된 봉황은 날개와 꼬리를 약 50도 가량 펼쳐 올리고 있어 마치 비상하는 느낌을 준다. 

봉황은 예로부터 음악과 춤을 동반한다고 한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바로 밑에서 5마리의 원앙이 봉황을 바라보고 있으며 선계의 악사들도 봉황을 맞아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산에 사는 신선들은 음악과 함께 명상에 잠기기도 하고, 낚시하며 머리를 감고, 말을 타고 수렵을 즐기는 모습도 보여준다. 


황룡사를 새로이 알 수 있는 금동봉황장식의 출토 


황룡사 서회랑 서쪽 지역에서 발견된 금속 유물 중에서도 특히, 통일신라 시대 건물지 기초층에서 출토된 길이 6cm의 금동봉황장식 자물쇠는 지금까지 확인된 적 없었던 매우 특별한 유물로 평가된다. 주조로 제작된 금동자물쇠는 봉황의 비늘이나 날개 깃털 등의 문양을 세밀하게 표현해 옛 사람들이 정성을 들여 만든 귀중품으로 추정된다.
 

황룡사에서 출토된 금동봉황장식자물쇠 /문화재청

이번 발굴조사의 핵심 유물인 금동봉황장식 자물쇠 몸체는 통일신라 건물터 1동의 적심 부분에서 나온 것으로, 섬세하게 주조한 봉황상으로 전면을 장식하고 뒷면에 잠금쇠가 들어가는 홈을 정교하게 만들었다. 자물쇠 몸체에 봉황상을 주조한 것은 국내 금속공예사에서 처음 발견된 사례다. 봉황의 비늘이나 날개 깃털 등의 문양을 세밀하게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며, 다른 2종의 자물쇠는 길이 10cm의 고려시대 철제 잠금쇠와 길이 8cm의 통일신라시대 청동제 잠금쇠다. 3종의 자물쇠는 모두 크기가 매우 작아 문이 아니라 귀중품을 담는 보관함이나 서랍장에 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앞으로도 발굴된 유물을 토대로 황룡사를 비롯한 신라 왕경 사찰에 대한 꾸준한 조사·연구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황룡사에서 이번 처음으로 출토된 금동봉황장식은 이전에도 다른 유적지에서 나왔던 금동봉황 유물들처럼 그 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문화와 생활 양식을 새로이 알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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