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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길을 걸으며 접하는 인상적인 공예, 아줄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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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길을 걸으며 접하는 인상적인 공예, 아줄레주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0.11.23 16: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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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줄레주 /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아줄레주'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유리 타일을 부르는 명칭으로, 주석 유약을 칠해 그림을 그린 도자기 타일의 일종이다. 스페인어인 '아줄(파란색)'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아랍어로 'al zulaycha 광택을 낸 돌멩이' 란 뜻에서 유래했다. 이 두 나라에서 아줄레주는 교회, 궁전, 학교, 평범한 집, 식당, 술집 외에도 철도나 지하철 역 벽면에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일찍이 13세기부터 분수, 천장, 목욕탕, 벽난로 주변 등을 덮고 장식하는 데 쓰였고, 라틴 아메리카와 필리핀 등 옛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식민지에도 아줄레주 생산의 전통은 이어졌다.

특히 아줄레주는 오늘날에도 포르투갈 건축의 중요한 상징이며, 많은 아줄레주는 포르투갈의 역사적, 문화적 측면도 보여준다. 포르투갈은 16세기 동안 스페인,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여러 나라에서 아줄레주 타일을 수입해 자신들만의 형태를 갖추었다. 이 타일은 기하학적 모양과 단순한 꽃 모양에 불과하던 것들이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예술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포르투갈에서 아줄레주를 보게 된다면,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들이 뒤섞여 이 아름다운 그림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아줄레주의 역사 

이슬람의 중요한 성지였던 돔 오브 더 락의 아줄레주 /BY-NC-SA

애초에 아줄레주는 아랍어로 '광택을 낸 돌'이라는 뜻에서 왔기 때문에 이슬람 문화의 영향이 컸다는 걸 보여준다. 유약을 바른 타일을 절단해 조립하는 '알리카타두' 방식은 아라비아식 타일 공사의 방식 중 하나로,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에서 볼 수 있는 '알리카타두' 방식의 아줄레주는 이슬람 문화의 기하학에 대한 동경을 반영한다. 포르투갈의 왕 마누엘 1세는 알함브라 궁전에 방문했다가 이 타일 장식에 매료되어, 포르투갈에 돌아온 후 자신의 신트라 왕궁에 있는 방과 벽을 아줄레주로 꾸몄다.
 

마누엘 1세가 아줄레주를 수입해 꾸민 신트라 궁전 /BY-NC-SA

1492년 마지막 이슬람 국가인 그라나다 왕국이 멸망하면서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르네상스 문화가 아줄레주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탈리아에서는 화려한 도자기 기술인 마욜리카 기법이 등장했고, 접시와 꽃병들은 정교하고 화려한 장식으로 만들어졌다. 1498년, 이탈리아의 한 마욜리카 전문 화가인 니쿨로소 피사노는 마욜리카 기술을 아줄레주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단색 타일을 잘라 조립하고 밝은 색으로만 균일하게 칠했다면 새로운 마욜리카 스타일을 적용한 아줄레주는 마치 캔버스에 수채화를 그리는 것처럼 다채로움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르게 파란색, 노란색, 녹색, 갈색, 흰색, 보라색 등 다양한 색이 쓰였다. 그중에서도 혁명이었던 건 색의 대비를 이용해 부피감을 느끼게 하는 '키아로스쿠로', 즉 명암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단순한 반복의 연속이었던 아줄레주 패턴은 점점 예술로 나아갔다. 세비야에서 피사노의 영향력은 엄청나게 퍼져갔고 발렌시아, 톨렌도, 포르투갈에서도 이 스타일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이 방식은 곧 포르투갈에서 가장 독특한 예술의 형태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된다. 
 

알마스 성당에 장식된 아줄레주 /samichheng 인스타그램

16세기의 미술 양식은 종교, 전쟁, 신화 등 다양한 주제로 표현되었다. 아줄레주를 그리는 화가들은 고대 로마의 그로테스크한 장식에서 자유롭게 영감을 받아 그렸다. 또한 이 시기는 극동 지역과도 교류가 활발했던 시기로, 화가들은 자연히 인도와 중국 같은 나라에서도 영감을 얻었다. 17세기 말 네덜란드의 아줄레주 화가들은 중국 도자기의 영향을 받아 파란색과 흰색의 타일에 그림을 그렸다. 이 타일들은 포르투갈에도 수입되었다가, 아줄레주의 수입이 금지되자 포르투갈인들은 곧 그들만의 독창적인 타일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아줄레주에서 보이는 반복 패턴 /flickr


17세기 후반과 18세기 초는 이른바 '아줄레주의 황금시대' 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아줄레주의 대량 생산이 절정에 달했다. 단순히 내부 수요가 커진 것뿐만이 아니라 브라질과 포르투갈의 식민지 등에서도 대량으로 수주를 했기 때문이다. 아줄레주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덜 드는, 반복되는 패턴으로 바뀌었고 포르투갈의 교회나 수도원, 심지어 일반 가정집에서도 안과 밖이 온통 아줄레주로 도배가 되기도 했다. 18세기에 들어서며 아줄레주는 화려한 바로크 양식과 로코코 양식의 유행으로 입지가 줄어들었다가, 19세기 신고전주의의 등장으로 부흥을 꿈꾸게 된다. 아줄레주는 포르투갈에서 로버트 아담과 제임스 형제의 판화에 의해 다시한번 알려졌으며, 프레임이 단순해지고 색의 구분이 명확해지는 등의 변화를 겪는다. 

20세기 초 아줄레주 미술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예술이라 폄하당하고, 자칭 문화 엘리트들의 박대를 받으며 인기가 잠시 떨어지기도 했다. 아줄레주의 부활은 1950년대 리스본의 지하철 역 설계자들이 지하를 바깥 세상과 동일한 느낌을 주기 위해 손쉽게 보수할 수 있는 방법을 고르던 중 시작되었다. 아줄레주는 파크 역, 헤스타우라도레스 역을 포함한 7개 역에 먼저 설치되었고, 그 이후로도 다른 지하철 역에 속속들이 설치되었다. 지금도 카이스두소드레 역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대한 토끼가 터널을 덮고 있다.  


아줄레주의 진수가 담긴 작품들 

Nossa Senhora da Vida  /Museu Nacional do Azulejo

Nossa Senhora da Vida  노싸 세뇨라 다비다 

포르투갈 타일 미술의 가장 매혹적인 작품 중 하나인 노싸 세뇨라 다비다는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아줄레주이며, 16세기 포르투갈 타일 제작에 대해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영토가 무슬림의 지배에서 벗어났을 때, 포르투갈 인들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그린 아줄레주를 만들었다. 화가들은 더이상 인간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을 금지하는 이슬람 법에 구속되지 않아도 되었고, 동물과 인간, 역사와 문화, 종교, 과일, 꽃 새들을 자유롭게 그릴 수 있었다. 16세기 중반, 이탈리아와 네덜란드의 몇몇 화가들은 리스본에 정착해 마욜리카 방식을 적용해 아줄레주를 제작했다. 이것은 비유적인 주제와 역사적인 이야기 등 보다 복잡한 주제의 그림을 묘사할 수 있었다. 노싸 세뇨라 다비다는 마욜리카 기법과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은 우수한 아줄레주의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The Chicken’s Wedding /BY-NC-SA

The Chicken’s Wedding 닭의 결혼식

'닭의 결혼식'은 17세기 아줄레주로, 닭 한 마리가 악기를 연주하는 원숭이 떼의 호위를 받으며 마차에 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국립 아줄레주 미술관의 소장품 중 가장 수수께끼 같은 내용의 타일 작품 중 하나다. 미술관의 가이드는 이 그림을 설명할 때 옛날부터 원숭이는 풍자와 관련된 소재로 자주 쓰였고, 적 또는 패배한 사람들에 대한 비판의 상징이었다고 전한다. 우스꽝스러운 얼굴로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원숭이들은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 아래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이중 왕정이 60여년만에 끝나고, 포르투갈의 새로운 왕조인 브라간사 왕조가 세워졌을 때 패배했던 스페인 지지자들을 뜻하는 정치적 논평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가이드는 말한다.  

 

Porto-São Bento /anamelissa 인스타그램

Porto-São Bento 포르투 상 벤투 

포르투 상 벤투 역은 프랑스의 보자르 건축 양식의 우수한 사례 중 하나다. 그랜드 홀의 모든 공간은 포르투갈의 역사, 포르투갈 사람들의 일상 생활을 묘사한 아졸레주로 꾸며져 있다. 성 베네딕토 수도원이 화재로 소실된 자리에 새 시대를 상징하는 기차가 들어왔고, 카를로스 1세는 이곳에 커다란 기차역을 세웠다. 포르투갈 최고의 건축가인 마르케스 디 실바가 설계와 건축을 맡고, 아줄레주 화가인 호르헤 콜라소가 약 2만 개의 타일에 정교하게 아줄레주 그림을 그렸다. 12년이나 걸려 완성된 이 벽화엔 포르투갈의 역사가 그대로 담겨 있다. 에스파냐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독립 전쟁이 있었고, 십자군의 지원에 힘입어 리스본의 무어인들을 몰아내고 최초의 포르투갈 왕국을 성립하는 이야기가 있다. 전쟁뿐만 아니라 포르투갈 백성들의 일상 모습과 풍경까지 그려져 있어 포르투갈의 전반적인 시대상을 알 수 있다.  

호르헤 콜라소는 이밖에도 세인트 일 데폰 수스 교회를 덮은 약 11.000개의 타일도 작업했다. 타일은 일 데폰 수스 대주교의 생애와 복음서에 나오는 비유적인 이미지들을 묘사하고 있다. 
 

Church of Saint Ildefonso /flickr


포르투갈에서 한번쯤 가볼만한 아줄레주의 명소 

포르투갈은 대표적인 아줄레주의 나라인 만큼 수도인 리스본에 가면 한번쯤은 방문해도 좋을, 아줄레주로 유명한 명소들이 몇 있다. 

MUSEU DO AZULEJO /flickr

MUSEU DO AZULEJO 리스본 아줄레주 박물관 

이 리스본 아줄레주 박물관은 고대 이집트 이래로부터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아줄레주 예술의 흐름을 보여준다. 15세기 중엽부터 19세기까지의 타일 벽화와 도기 타일을 이용한 포르투갈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원래 이 건물은 수도원이었지만 박물관으로서의 기능은 1958년 레오노르 여왕 탄생 500주년을 기리는 아줄레주 전시를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곳은 1971년 박물관으로 공식 인정을 받았고, 세계에서도 유니크한 축에 속한다. 

 

PALACIO FRONTEIRA /flickr

PALACIO FRONTEIRA 프론테이라 궁

현재도 프론테이라 12대 후작의 가족들 소유로 되어 있는 팔라시오 프론테이아 궁전은 풍요로운 인테리어와 프랑스풍 정원을 자랑한다. 무엇보다도 포르투갈 왕들과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들에게 바치는 듯한 이미지들로 이루어진 아졸레주 소장품으로도 유명하다. 
 

CONVENTO DOS CARDAES 내부 /flickr

CONVENTO DOS CARDAES 콘벤투 두스 카르다이스 수녀원 

프린시페 레알의 한적한 거리에 숨어 있는 이 수녀원은 지금도 운영 중이다. 1600년대 후반 만들어진 유약으로 칠한 타일로 이루어져 있다. 흰색과 파란색만 사용한 이 타일들은 네덜란드의 타일 아티스트인 얀 반 우르트가 제작했다. 그림엔 아빌라의 테레사 성인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VIÚVA LAMEGO /flickr

VIÚVA LAMEGO 비우바 라메고 

비우바 라메고 공장은 1849년부터 운영한 포르투갈에서 가장 중요한 유약 타일 생산 시설로 꼽힌다. 1971년 문을 닫으면서 이젠 운영하지 않지만, 이전까지 쓰였던 공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전통적인 벽지는 섬세하고 예술적이며, 외관은 아름다운 색깔의 타일로 덮여 모습을 뽐내 그 자체로 아줄레주의 예술을 드러낸다.  
 

CASA DO FERREIRA DAS TABULETAS /flickr

CASA DO FERREIRA DAS TABULETAS 카이스 다 페레이라 다스 타불레타스

리스본의 시아두에 있는 이 상징적인 건물은 1864년에 지어졌으며, 비우바 라메고 공장에서 생산된 타일로 전면이 덮인 건물이다. 지구, 육지, 물, 무역, 산업, 과학, 농업을 상징하는 여섯 명의 인물들이 외관에 새겨져 있다.  

포르투갈 문화의 상징 중 하나가 된 아줄레주 

포르투갈의 문화가 된 아줄레주 /flickr

포르투갈은 어딜 가든 아줄레주가 보인다. 교회와 수도원의 벽부터 공원, 상점, 기차역까지 모든 곳을 장식하고 있다. 종종 그 나라의 역사들을 묘사한 장면도 있고, 황홀한 감상을 남기기도 하지만 단순히 표지판이나 번호판 역할을 하는 것도 있다. 포르투갈이 발명한 독자적인 발명품은 아니지만,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어떤 유럽 국가도 포르투갈만큼 다양한 목적과 디자인으로 많은 타일을 생산하진 못했다. 오늘날 아줄레주 양식은 여전히 포르투갈 문화와 건축의 매우 중요한 부분 중 하나로 존재한다. 

사람들은 아줄레주 박물관에서 전시된 아줄레주로 포르투갈의 역사를 관람하며 몇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리스본의 어느 곳을 거닐며 아줄레주를 구경할 수 있다. 종종 길을 걸어다니다 보면 누군가가 아줄레주를 청소하고 광택을 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타일 예술은 더이상 단순한 장식이 아닌, 포르투갈에서는 문화의 일부가 되었고 하나의 건축 자재가 되었다. 아줄레주는 한 나라가 수세기 동안 겪어왔던 역사적, 문화적 현장을 증명하며 오늘도 평범한 길거리에서, 커다란 지하철역에서 시민들과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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