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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러윈에 먹는 츄파춥스 로고를 살바도르 달리가 그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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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러윈에 먹는 츄파춥스 로고를 살바도르 달리가 그렸다고?
  • 전은지 기자
  • 승인 2020.10.29 1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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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혹은 천재

[핸드메이커 전은지 기자] 10월 31일, 10월의 마지막 날은 핼러윈 데이다. 미국의 축제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낯설지 않은 축제가 되었다. 핼러윈을 상징하는 것들을 떠올리면, 호박에 눈, 코, 입을 파내 만드는 잭오 랜턴, 귀신 분장, 그리고 사탕이다. 이날 아이들은 귀신 분장을 하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트릭 오어 트릿(trick or treat)!’을 외치며 사탕과 초콜릿을 얻는다.
 

츄파춥스의 로고를 그린 화가 살바도르 달리 / pixabay, 위키미디어
츄파춥스의 로고를 그린 화가 살바도르 달리 / pixabay, 위키미디어

사탕 중에 가장 유명한 브랜드를 손꼽으라면 단연 ‘츄파춥스(Chupa Chups)’다. 다양한 맛의 막대사탕은 지금까지 60여 년이 넘게 사랑받는 브랜드다. 그 유명세에 종지부를 찍은 이가 있으니, 바로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다.


노란색 데이지꽃, 로고가 되다

츄파춥스는 ‘핥다’라는 뜻의 스페인어 추파르(chupar)에서 따온 이름이다. 츄파춥스를 창업한 엔리크 베르나트는 3대째 제과업을 이어오던 사업가였다. 그러던 중 1950년대 초 그랑 아스투리아스라는 사과잼 공장을 인수하고, 막대 사탕을 만들기 시작했다. 1958년 츄파춥스의 시작이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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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팝(Lolly pop)이라고도 부르는 막대사탕은 먹기 편하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엔리크 베르나트의 간단한 마케팅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다. 사탕은 어린이들이 많이 찾지만 카운터 뒤쪽에 배치해놓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키가 작은 어린이들이 사탕을 보지 못했다. 이에 엔리크 베르나트는 사탕을 아이들의 손이 잘 닿도록 카운터 근처에 두도록 했고, 이는 츄파춥스가 30만 개의 매장에서 팔리는 결과를 낳았다.
 

로고 변천사. 1969년 로고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이다 / 츄파춥스 공식 페이스북
로고 변천사. 1969년 로고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이다 / 츄파춥스 공식 페이스북

베르나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츄파춥스의 막대사탕이 소비자들에게 한 번에 눈에 띌 수 있는 로고를 원했다. 이에 친구였던 화가 살바도르 달리를 만나 커피를 마시며 하소연을 했고, 살바도르 달리는 그 자리에서 스케치해서 그려주었다고 한다.

1969년 당시 살바도르 달리가 그린 노란색 데이지꽃 모양 로고는 변화를 거쳐 누구나 떠올리는 유명한 로고가 되었다. 아주 잠깐의 아이디어가 츄파춥스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든 계기가 된 것이다. 초현실주의를 동경한 화가가 대중들을 사로잡은 로고를 그렸다는 사실 또한 매우 흥미롭다.


살바도르 달리의 수식어, 괴짜 혹은 천재

초현실주의는 무의식의 세계를 중요시하는 사조를 말한다. 하지만 그 뿌리는 현실에 있으며, 초현실주의를 지향한 화가들의 표현력, 묘사력은 굉장히 사실적이다.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시간의 고귀함’. 그가 그린 시계는 모두 흘러내리는 형태를 하고 있다 / pixabay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시간의 고귀함’. 그가 그린 시계는 모두 흘러내리는 형태를 하고 있다 / pixabay

우리가 어린 시절 미술 교과서를 통해 흔히 알고 있는 ‘기억의 지속’이 바로 그런 그림이다. 시계를 구성하는 숫자, 시침, 분침 등은 그대로지만, 녹아내린 듯 늘어진 시계의 형상은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현실과 비현실, 그 중간에서 살바도르 달리만의 공상의 세계가 탄생한 것은 아닐까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이 탄생한 계기는 ‘두통’이다. 아내 갈라와 친구들과 공연을 보러 가려던 달리는 갑자기 찾아온 두통에 혼자 집에 남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극심한 두통에 그림이 그려질 리 없었다. 작업을 쉬려고 불을 끄고 나가던 달리에게, 흐물거려 늘어진 시계가 보였다고 한다. 물론 실제 현실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니었겠지만, 그 순간 보였던 시계는 달리에게 영감을 주었고, 순식간에 완성한 그림이 ‘기억의 지속’이라고 한다. 현실 속 두통이 상상 속 시계를 만들어 낸 것이다.

작품만 보면 그는 분명 ‘천재’라고 불려도 좋지만, 전해지는 일화를 보면 일반적이지는 않다. 그래서 ‘괴짜’라는 수식어도 따라붙는 것 같다. 그는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의 미술학교에서 공부했지만, 성격이 과격해 1926년 퇴학당했다고 한다. 그 뒤, 1928년 파리에서 초현실주의 화가, 시인들과 친분을 쌓았으며, 자연스럽게 초현실주의 운동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화법은 ‘환상적 사실주의’, ‘편집광적’, ‘비판적 방법’ 등으로 평가받는다.
 

살바도르 달리 동상 / pixabay
살바도르 달리 동상 / pixabay

그의 괴짜 같은 행보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미국으로 건너간 달리는 무대 의상을 만들기도 했으며, 디즈니와 협력해 영화 제작에도 참여했다. 그래서 그의 직업에는 화가, 조각가 외에도 작가, 배우, 영화감독, 무대 디자이너 등이 있다.

또한, 독재정권의 대표 격인 히틀러를 찬양해 초현실주의자들의 비난도 받았으며, 이탈리아를 여행한 후 초현실주의에서 르네상스 고전주의로 복귀하려 하자 화가 모임에서 제명을 당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는 스페인의 군사 독재자인 프란시스코 프랑코와 가까이 지내며 그의 손녀 초상화를 그려줬다는 일화도 있다. 지금이야 사상의 자유가 있지만, 그 당시 사람들이 사회 상황 속에서 바라보던 달리는 분명 ‘괴짜’가 틀림없어 보인다.


독특하면서도 현실적인 달리의 작품들

달리의 작품들은 뛰어난 상상력이 돋보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난해하기도 하고, 실험적이다. 그래서 더욱 대중들에게 초현실주의 대표 화가로 각인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의 작품 속에서도 드러난다.
 

달리가 그린 모리즈 산도즈의 ‘La Limite’ 표지 (1951) / 위키미디어
달리가 그린 모리즈 산도즈의 ‘La Limite’ 표지 (1951) / 위키미디어

이 그림은 달리가 그린 스위스 작가 모리즈 산도즈의 ‘La Limite’의 표지다. 책 표지로 그렸지만, 달리의 색이 확연히 드러나는 작품이다. 늙은 사람의 두상이 가운데에 있다. 눈을 지그시 감은 모습이 마치 임종을 맞이한 사람 같은 느낌이다. 길게 기른 백발의 머리가 쓸쓸함을 더한다.

그런데 그 옆에는 나비가 있지만, 날개에는 여인의 눈이 그려져 있고, 그 밑에는 파란색 입술을 양옆에서 나비가 들고 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노인의 눈과 입을 빼앗은 느낌이다. 노인의 두상 그림자에서 한 여인이 입술을 내밀고 있는 듯한 실루엣이 보이기 때문이다.

오른쪽 상단에 있는 노란 나비와 왼쪽 아래 놓여있는 메추리알은 무엇을 상징하는지 모르겠지만, 두 가지가 흔히 작품 속에서 표현되는 이미지를 떠올려보면 노인의 두상이 죽음이라면, 나비와 메추리알은 환생과 또 다른 탄생을 의미하지 않을까.
 

필립 할스만과 달리의 사진 작품 ‘레다 아토미카’ / 위키미디어
필립 할스만과 달리의 사진 작품 ‘레다 아토미카’ / 위키미디어

이 사진은 1948년 미국의 사진작가 필립 할스만이 살바도르 달리와 함께 만든 사진 ‘레다 아토미카’이다. 사진의 오른쪽 캔버스에 그려진 여인의 모습을 담은 그림의 제목과 같다. 이 그림은 달리가 맹목적으로 사랑한 아내 갈라를 모델로, 백조로 변한 그리스 신화 속 제우스와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사진 ‘레다 아토미카’는 28번의 시도 끝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지금과 같이 사진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포토샵도 할 수 없고, 사진도 연속으로 촬영할 수 없었던 당시 상황을 생각해보면 대단한 노력이 더해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레다 아토미카’의 원본. 고양이와 달리, 의자는 모두 줄에 걸어 고정시켰다 / 위키미디어
‘레다 아토미카’의 원본. 캔버스와 이젤은 모두 줄에 걸어 고정시켰다 / 위키미디어

이 작품은 하늘을 나는 세 마리의 고양이, 물통에서 던져진 물, 이젤, 살바도르 달리, 의자 모두 움직이다 정지한 상태를 표현했다. 분명 난장판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지만, 멈춰진 모든 것은 고요해 보인다. 실제 현실에서는 이런 상황이 동시에 나타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작품을 다시 보면 이 사진은 분명 ‘초현실’적이다.

달리와 할스만은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할스만의 아내, 조수들과 함께 고생했다고 한다. 할스만의 아내가 의자를 잡고, 조수들은 물을 뿌리고, 고양이 3마리를 던진다. 달리도 익살스런 표정을 하고 제자리에서 점프한다.

하지만 이 중에서 고정된 것이 2개가 있다. 달리가 그리고 있는 그림의 이젤과 그 옆에 있는 그림 ‘레다 아토미카’다. 다른 것은 모두 움직이지만, 이 두 그림만은 고정되어 있다. 현실에서도 캔버스는 움직이지 않다는 것을 표현한 것일까. 현실 속의 부단한 노력이 초현실을 만들어낸 것이다.
 

안달루시아의 개 포스터/ 네이버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 포스터/ 네이버 영화

그림 외에도 영화감독, 배우 등으로 활동한 달리가 루이스 부뉴엘과 공동으로 각본을 쓰고, 출연까지 한 영화는 ‘안달루시아의 개’로 1929년 제작된 프랑스 단편 영화다. 달리가 참여한 만큼 이 영화에도 초현실주의 기법이 사용됐다. 주인공을 맡은 여배우 시몬 마뢰유의 눈을 면도날로 잘라내는 장면, 당나귀 사체를 올려놓은 피아노, 구멍이 뚫린 남자 배우 피에르 바체프의 손바닥에서 개미 떼가 기어 나오는 장면 등은 관객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처음에는 충격적이었지만, 나중에 아방가르드 운동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예술사조로 인정받으면서 이 영화는 시카고 선 타임즈의 평론가 로저 이버트가 선정한 역대 위대한 영화 100선에도 선정됐다.

하지만, 출연했던 배우들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다고 한다. 시몬 마뢰유는 휘발유는 몸에 칠하고 불 속에 뛰어들었으며, 피에르 바체프는 진정제 과다 복용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스페인 피게레스에 있는 달리 극장 박물관 / pixabay
스페인 피게레스에 있는 달리 극장 박물관 / pixabay
달리 극장 박물관 외관 / pixabay
달리 극장 박물관 외관 / pixabay

이런 작품들은 달리의 고향 스페인 피게레스에 있는 ‘달리 극장 박물관’에서 더 많이 확인할 수 있다. 이곳은 외관부터 ‘달리’ 스럽다. 이곳을 방문한 여러 후기를 보면, 외관부터 그가 좋아했던 달걀 모형과 피게레스 전통 빵 모형이 부착되어 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달걀 박물관이라고 여길 수도 있을 것 같다.
 

배우 메이 웨스트를 형상화한 작품 / pixabay
배우 메이 웨스트를 형상화한 작품 / pixabay

박물관 내부에는 달리의 그림부터 여러 조형물이 전시되어 있다. 코와 입술 모형은 작품 뒤편 계단에서 올라가 보면 한 여인의 얼굴이 등장하는데, 배우 메이 웨스트를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한다.
 

달리 극장 박물관은 홈페이지를 통해 가상투어가 가능하다 / 달리 극장 박물관(www.salvador-dali.org)
달리 극장 박물관은 홈페이지를 통해 가상투어가 가능하다 / 달리 극장 박물관(www.salvador-dali.org)

달리가 남긴 작품들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가상 투어를 하며 둘러볼 수 있다. 코로나로 해외여행은 할 수 없지만, 달리의 작품을 집에서 감상할 수 있으니 한 번쯤 봐도 좋겠다.

흘러내리는 시계 그림으로만 알고 있었던 살바도르 달리. 그를 두고 천재 혹은 괴짜라고 하는 평가를 그도 알고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한 자신감은 넘쳐흘렀다. “세상은 나를 우러러볼 것이다. 어쩌면 나는 경멸당하고 오해받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위대한 천재가 될 것이고, 그것만은 확실하다(The world will admire me. Perhaps I'll be despised and misunderstood, but I'll be a great genius, I'm certain of it.)”라는 그의 발언처럼 말이다. 그를 자세히 파고든 계기는 작은 ‘츄파춥스’ 로고였지만, 알면 알수록 초현실을 담은 그의 작품은 매력이 가득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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