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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피어리, 날것의 자연이 사람의 손이 닿는 순간 작품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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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피어리, 날것의 자연이 사람의 손이 닿는 순간 작품이 되다
  • 김서진 기자
  • 승인 2020.10.15 14: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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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피어리/flickr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토피어리의 라틴어 뿌리는 정원을 가꾼다는 뜻으로 그리스어인 토피어(Topiarius) 또는 장소(place)에서 유래했다. 고대 1세기 로마 황제 아우구수투스의 한 친구가 발명했다고 알려져 있는 토피어리는 어떤 특정한 모양을 개발하고 유지하기 위해 나무, 관목 및 식물의 잎과 나뭇가지를 잘라내고 다듬는 기술, 또는 작품을 말한다. 또한 이런 방식으로 형성된 식물을 가리키기도 한다. 예술 형태로서 살아 있는 조각의 한 종류라고도 할 수 있다.

전통적인 토피어리들은 보통 계절을 걸쳐 영구적인 특성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상록수가 쓰였다. 대부분 잎이 작고 가시가 있으며, 잎이 넓고 빽빽하며 조밀한 게 특성이다. 주로 회양목, 주목을 쓰고 그밖에도 로즈마리, 감탕나무를 쓰기도 했다. 

 

드러먼드 성.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인상적인 정원으로 꼽힌다/flickr

초기에 나타났던 토피어리들은 단순한 모양이나 정원 풍경에 악센트를 주기 위한 뿔, 기둥 및 탑으로 만들어졌다. 그 과정에서 나무와 식물에 필요한 다듬기, 가지치기 등의 기술이 점점 더 진화하게 된다. 전통적인 형태의 토피어리는 가지치기를 통한 원, 정육면체, 피라미드 같은 기하학적 모양으로 쓰였다. 이 건축적인 요소들은 정교한 구상주의로 바뀌며 나무들은 커다란 배, 사냥꾼, 사냥개 등의 모양으로 변하게 되고 프랑스에서 시작된 표현주의에 세심함을 더해주는 역할을 했다.


전세계로 퍼져간 토피어리가 겪은 수많은 변화 

시대가 바뀌면서 토피어리는 초반의 단순한 장식에서 점점 벗어나기 시작했다. 유럽의 토피어리가 로마 시대부터 시작되어 평이했던 로마의 집이나 별장의 정원 안을 꾸미기 위한 단순한 용도였다면, 시간이 지나 녹색의 나무와 식물은 나무동물, 암호, 탑 등의 정교한 형상으로 바뀌어 집과 정원에 조경미를 더했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토피어리는 이제 시골의 정원에서만이 아닌 엘리트들과 귀족 등의 정원과 테라스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게 됐고, 1578년 영국의 시인 바르나베 구게는 '여자들이 공작새가 부채질을 하는 것처럼 장미꽃을 깎고 있는 것' 을 봤다고도 했다. 

 

 르네상스 시대, 프랑스의 샤토 드 빌랑드리 성당/flickr
 영국의 레벤스 홀 /flickr

돌을 구할 수 없거나 상대적으로 토피어리 가격이 저렴한 지역에서 주로 쓰였다. 이탈리아나 프랑스 귀족의 화려한 정원이 아닌 영국, 네덜란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유다. 18세기 초까지 영국에서 이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으나 이후 이른바 자연의 고유 형태를 이용하는 자연식 정원이 등장하며 토피어리는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700년대 초반 영국 정원의 토피어리들은 서서히 사라져 갔지만, 오두막집의 작은 정원들엔 사라지지 않은 토피어리들이 꿋꿋이 남아 있었다.    

 

롱우드 가든, 미국 최고의 원예 전시 정원 중 하나이다 /flickr

명맥을 유지하던 토피어리의 부흥은 멀지 않은 때에 다시 찾아오게 된다. 19세기 유럽은 토피어리와 다른 모양의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고, 이때 미국에서 그들의 정원을 꾸미는 데에 토피어리를 도입하게 된다. 토피어리는 곧 집과 정원 스타일을 꾸미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되어 상류층 미국인들 사이에 정착되었다. 1900년대의 토피어리를 만드는 사람들은 뼈대 위에 다듬어진 담쟁이덩굴과 같은 식물로 만든 휴대용 조각들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들의 정원 유지에 대한 관심은 1930년대 주지사의 궁전, 박물관 등에 토피어리가 장식되는 걸로 이어진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레벤스홀, 스코틀랜드의 드러먼드 캐슬, 미국의 롱우드 가든 등의 현대에 들어 토피어리 정원들은 현대에 들어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며 지금도 매년 많은 인파가 몰리고 있다. 


현대의 토피어리는 때로는 예술이, 때로는 누군가의 취미가 된다

 

디즈니랜드에서 토피어리를 작업중인 엔지니어 /Disney Parks 유투브

20세기 들어 디즈니랜드에도 이 미국식 휴대용 토피어리가 도입된다. 월트 디즈니는 만화 캐릭터들이 토피어리 형태로 재현되는 걸 원했다. 이 형태의 토피어리는 철사 프레임을 바탕으로 식물을 다듬고, 관목숲 주위에 배치되고, 식물이 액자 프레임을 채우면서 영구적인 조각으로 남게 되었다. 이러한 스타일은 디즈니 리조트, 디즈니파크 전체에 걸쳐 풍부한 상상력을 부르는 비주얼을 자랑했고 지금도 여러 축제에 유용하게 쓰인다.

 

영화 '가위손' /네이버 영화 이미지 

토피어리는 미디어 안에서도 여러 형태로 등장한다. 팀 버튼의 영화 '가위손' 에서 주인공 에드워드는 가위가 달린 손으로 능숙하게 토피어리를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곳곳에도 토피어리는 다양한 형태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스티븐 킹의 소설 '샤이닝' 에서 스스로 움직이는 토피어리 동물들이 주인공 가족을 놀라게 하는 장면도 나온다. 

흔히 접하는 도심이나 대형 건물의 주변을 장식하는 조경의 토피어리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다. 야외에서 집이나 정원, 건물을 꾸미는 등의 외부 장식 용도로 역할이 고정되었던 토피어리는 2000년 이후 물이끼로 만든 작은 식물 장식품인 모스(moss)토피어리가 인기를 끌며 '테이블 토피어리' 로 발전했다. 모스 토피어리는 녹이 슬지 않는 철사로 각종 동물의 모형을 만든 뒤, 물이끼로 표면을 덮고 식물을 심어 만든 장식품이다. 

 

전통적인 방식인 전정형으로 만들어진 토피어리 /flickr

토피어리는 흔히 4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고대 로마 시대 때부터 전해지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수목을 가위나 손으로 자르고 다듬어 문자나 조형으로 만드는 전정형, 꽂꽂이 형태의 토피어리 방법으로 끼우는 꽂는형, 원하는 형태로 프레임을 제작한 후 프레임 전헤의 형태에 식물을 심거나 일부에 심어 유인해 자라게 하는 심는형, 다양한 재료로 형태를 만든 후 아래에 넝쿨성 식물 등을 심어 형태를 따라 감거나 자라게 하는 유인형으로 나뉜다. 

토피어리가 주는 효과 또한 다양하다. 쉽게 시들지 않아 영구적으로 생화를 볼 수 있고, 일반 화분보다 훨씬 간단한 관리도 가능하다. 습도조절기능과 심리치료효과도 있을 뿐더러 아이들에게도 자연학습효과와 정서순화효과에 도움이 된다.

개인이 토피어리를 즐길 수 있는 방법도 무궁무진하다.  혼자 처음부터 직접 식물을 기르는 방법도 있고 꽂꽂이, 꽃다발, 부케, 식물 액자, 플라워박스 등을 만들 수도 있고 단체로 모여 체험학습을 할 수도 있다. 토피어리를 이용한 여러 수업도 많다. 원예치료, 원예수업, 원예테라피 등 다양한 수업과 특강이 있어 관심이 있다면 참여할 수 있다.

 

토피어리 /flickr

토피어리는 사람과 식물 사이의 상호 관계에 의존하는 예술의 일종이라 말할 수 있다. 옛 사람들은 정원을 창조의 대상으로 여겼다. 토피어리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가지치기, 모양의 형상화, 자르고 다듬는 훈련을 거쳐 자연스레 전통이 되고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갔다. 자연히 계속 진화하고 발전해 지금까지 폭넓은 쓰임새를 자랑한다. 꽃과 나무로 정원을 아름답게 만들고, 축제가 조금 더 화려해지고, 개인적으로 자신만의 토피어리 정원을 만든다. 이렇게 보면 토피어리는 수세기를 걸쳐 자연과 사람이 만나 서로가 더 풍요로워지는 순간 순간이 모여 지금의 예술이라는 작품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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