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1-10-21 11:10 (목)
한류의 시초이자 오랜 효자상품은 바로 인삼!
상태바
한류의 시초이자 오랜 효자상품은 바로 인삼!
  • 최미리 기자
  • 승인 2021.04.17 10: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려인삼, 오래전부터 중국과 일본에 비싼 가격에 수출되다
현대에도 가공 기술 발달로 인한 다양한 쓰임과 수출 증가로 잠재력 확인 중
인삼들 / 농촌진흥청
인삼들 / 농촌진흥청

[핸드메이커 최미리 기자] 인삼(人蔘)은 오늘날 우리에게 건강기능식품으로 잘 알려졌다. 그런데 인삼은 이미 오래전부터 동아시아에서 한약재로 애용됐다. 중국과 한국의 여러 옛 문헌에서는 기력을 회복하고, 나쁜 기운을 제거해 주며, 장수할 수 있다는 등 인삼의 다양한 효능을 소개하고 있다.

실제로 현대 과학의 연구에서도 인삼의 다양하고 뛰어난 기능이 밝혀졌다. 항산화 물질이 풍부하며 다양한 질병과 스트레스 개선에도 능하고 면역력, 두뇌활동, 정력 증진, 피부미용 등 인삼이 주는 효능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이다. 옛 선조들의 인삼 사랑은 결코 미신이 아닌 경험에서 나온 지혜였던 것이다.

특히 한국인에게 인삼은 특별하다.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이 인삼을 애용했는데, 그중에서도 한국산이 명성을 떨쳤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재배된 토종 인삼을 '고려인삼'이라고 하는데, 다른 인삼과는 구분되는 고유종이다. 고려인삼은 효능과 기능이 두 배 이상 많고 맛과 향기는 여느 인삼도 따라오지 못했다.

인삼은 최초의 한류이자 오랜 수출 효자상품이었다

고려인삼 덕분에 단숨에 우리나라는 인삼의 종주국이 되었고, 인삼은 주요 수출품이 되었다. 옛 진시황이 찾았던 불로초가 바로 이 고려인삼이었다는 말도 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천금을 줘도 구할 수 없는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졌고, 베트남에서도 고려인삼은 황제가 맛보는 음식이었고 공을 세운 몇몇 충신들에게만 하사했다고 한다.

고려인삼은 삼국시대부터 중국과 일본에 수출됐다. 그리고 고려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인삼을 재배했다. 원래 인삼은 산에 있는 야생 산삼을 캤는데, 이때부터 산에 직접 파종을 옮겨 심어 길렀다. 고려부터 전국에서 인삼을 키웠지만, 특히 개성의 인삼이 유명했다. 이곳 개성상인들은 전국 인삼의 유통과 수출을 주관했다.

고려인삼은 조선시대 이후로 서양에서도 관심을 가졌다. 1611년 동인도 회사에서 네덜란드 상인 피터 플로리스에게 고려 인삼을 찾아오라고 지시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1617년 영국 동인도회사 주재원인 리처드 콕스는 런던으로 보내는 통신문에 "한국에서 온 좋은 뿌리를 보낸다. 이것은 은과 가치가 맞먹는다"라고 썼다.

그런데 오랫동안 독보적 지위를 누렸던 고려인삼도 지위가 흔들리는 위기가 왔다. 당시 조선의 수출품은 기껏해야 인삼, 명주실, 비단 정도였고 교역국도 일본과 중국뿐이었다. 사실 다른 물품은 중국산을 일본에 중개무역하는 것에 불과했고, 결국 인삼 외에 별다른 조선 만의 수출품은 없었던 셈이다.

일본에서는 많은 은을 주고 고려인삼을 사 왔으나, 은 유출이 심해지자 거래용 은의 함량을 낮추는가 하면 18세기에는 고려인삼을 몰래 밀수해서 재배했다. 또한 조선을 거치지 않고 중국과 직접 무역을 시작했다. 한편 중국과 일본의 짝퉁 인삼이 고려인삼으로 둔갑해 기승을 부려 고려인삼의 이미지에 악영향을 끼쳤고 무역 수지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홍삼 / 특허청
홍삼 / 특허청

미국과의 경쟁에서 개발된 '홍삼'

1750년대 이후부터는 미국산 인삼이 고려인삼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오랜 한국의 주력 수출상품이 처음으로 외국과 무역 경쟁을 벌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상대가 바로 미국이었다. 미국인들은 사실 인삼에 관심이 없었으나, 중국인들이 인삼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드넓은 동부 애팔래치아 산맥에 묻힌 인삼을 대량으로 채취했다. 그리고 싼 가격으로 팔기 시작한다.
 
미국 인삼으로 인해 정조와 조선 상인들은 큰 위기의식을 느꼈고, 대책을 고심하게 되었다. 그렇게 개발된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익숙한 '홍삼(紅蔘)'이다. 홍삼은 인삼을 찌고 말린 가공품이다. 홍삼은 기존 인삼보다 효능이 뛰어나고 맛이 달다. 또한 수분 함량이 적어서 장거리 유통에도 품질과 형태가 변질되지 않아 큰 인기를 얻었다.

홍삼 무역이 실시된 첫해인 1797년(정조 21년)의 홍삼 무역량은 120근이었다. 정조는 홍삼 수출을 위해 사무역을 허용하고 인삼 재배 방식도 산에 옮겨 심는 '삼양법'에서 밭에서 대량으로 기르는 '가삼재배'로 바꿨다. 그리고 1797년에는 홍삼 제조공장인 증포소(蒸包所)를 경강(한강 하류)에 설치했다.

이후 홍삼 무역량은 1823년 1000근, 1834년 8000근, 1841년 2만 근, 1846년 4만 근으로 폭발적으로 급증했다. 그렇게 고려인삼은 미국이라는 경쟁국을 물리쳤고 다시 한번 인삼 종주국으로서의 독보적 지위를 누리게 됐다.

정조 이후 순조 2년인 1802년에는 홍삼이 1근당 200냥, 총 세액은 2만 4000냥에 달했다. 그러나 1832년 총 세액이 10만 냥, 1847년 20만 냥에 달했다. 반면 1근 당 세액은 5냥으로 오히려 낮아졌다. 이 막대한 수입원은 대한제국의 근대화 추진에 큰 도움이 되었다.

1899년에는 대한제국의 왕실 업무를 관장하는 궁내부 내장원에 삼정과를 설치하여 인삼을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고자 했다. 그리고 1908년에는 직접 홍삼을 전매하여 국가가 관장하게 된다. 고종 황제는 홍삼을 판매한 돈으로 막대한 부채를 갚고 각종 신식 무기와 근대 문물을 도입할 수 있었다. 이처럼 정조의 혜안은 100년 후를 내다보았다고 할 수 있다.
 

인삼(수삼) / 위키피디아
인삼(수삼) / 위키피디아
인삼두부샐러드 / 농촌진흥청
인삼두부샐러드 / 농촌진흥청

인삼의 다양한 종류와 가공 및 사용법

인삼은 두릅나뭇과의 다년생 식물인 인삼의 뿌리이다. 인삼은 나라별, 환경별, 가공법 등에 따라 종류가 무궁무진하다. 일본에는 죽절삼, 중국은 전칠삼, 미국에는 미국삼이 있다. 보통 밭에서 재배해서 기르지만, 삼양법으로 기른 것은 장뇌삼, 야생 인삼은 산삼이라고 하며, 산삼의 품질이 제일이다.

인삼은 또한 나이에 따라서도 특징이 달라진다. 1년생의 어린 삼은 잎, 줄기, 뿌리를 모두 먹을 수 있어 가볍게 즐길 수 있고 여러 요리에 쓰인다. 4~6년 재배한 인삼은 한약재와 보양식 등에 쓰인다. 야생 산삼은 몇백 년을 사는 것도 있으나, 보통 재배 인삼은 6년 이상을 살기 힘들고 보통 우리가 맛보는 것은 4년근이다.

막 캐낸 인삼은 수삼이라고 한다. 하지만 수삼의 껍질에는 수분이 많아 장기 보관이 어려워 껍질을 제거해서 건조하기도 하는데, 이것이 백삼이다. 다만 껍질에도 여러 유효성분이 많아 함께 먹는 것이 좋다. 그리고 껍질을 벗기지 않은 수삼을 찌고 익혀서 말리면 홍삼이 된다.

홍삼은 먼저 생인삼을 찌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를 '증숙'이라고 한다. 95도에서 약 3~4시간을 찐다. 그리고 55도에서 24시간 말리고 잔뿌리를 제거하는 '치미' 과정을 거친다. 그다음 햇볕에서 2~3개월 동안 말려 수분 함량을 15% 이하로 낮춘다. 제대로 숙성된 홍삼은 몸통은 금황색이고 다리 부분은 담홍색을 띠게 된다.

이외에도 수삼을 물로 익히면서 홍삼과 백삼의 중간 형태로 만드는 '태극삼',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려 홍삼보다도 더욱 색이 진해진 '흑삼'이 있다. 또한 모양에 따라 올곶은 직삼과 일부가 구부러진 곡삼, 반곡삼 등으로도 분류한다.

인삼은 달이거나 조려서 먹을 수 있고, 삼계탕 등 몇몇 요리에 보양식으로 넣어 삶아 먹기도 한다. 오늘날에는 가공법의 발전으로 활용 방법이 더 많아졌다. 요즘은 가루를 내거나, 잘게 잘라서 여러 요리에 넣어 먹을 수 있다. 특히 꿀이나 오미자와 함께 먹으면 맛이 인삼과 잘 어울리며, 효능도 더 크게 발휘되어 예로부터 이 둘을 많이 곁들였다.
 

홍삼칩 / 농촌진흥청
홍삼칩 / 농촌진흥청
인삼 분말, 오른쪽은 볶은(로스팅) 것으로 항산화 성분을 더욱 높였다 / 농촌진흥청
인삼 분말, 오른쪽은 볶은(로스팅) 것으로 항산화 성분을 더욱 높였다 / 농촌진흥청

홍삼에 대한 한국인의 자부심은 계속된다

인삼의 인기는 계속 이어졌다. 일제강점기인 1939년, 개성에 세워진 경성제대 직할 생약연구소에서 인심 비누, 인삼차 등 다양한 제품을 개발했다. 광복 후에도 정부 차원에서 인삼을 관리하기 위해 삼정과를 계승한 KGC 한국인삼공사를 설립하였다. 현재 인삼공사는 민영화되었고 정관장 브랜드를 설립해 건강기능식품은 물론 음료, 디저트 등 다양한 홍삼과 인삼 가공 상품을 내놓고 있다.

충청남도 금산의 전통 인삼 농법은 오랜 역사를 이어온 독특한 농법으로 품질 좋은 인삼을 생산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엔식량농업기구의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오늘날에도 국내 홍삼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며, 외국인들도 한국에서 가장 많이 찾는 물건들 중 하나가 홍삼이다.

인삼은 1,500년을 내려온 최초의 한류이자 가장 오랜 수출 효자상품이었다. 오늘날 반도체와 조선 등이 효자상품이라고 하지만 그 역사와 비중은 인삼에 비교가 될 수 없다. 유엔에서도 한국 인삼농법을 문화유산으로 등재했고, 농림축산식품부에서도 홍삼 제조 기능 보유자를 식품명인으로 지정했는데 문화재청에서도 이 유구한 홍삼 제조법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도 인삼과 홍삼에 대한 수많은 연구와 새로운 가공법, 상품 개발이 계속되고 있다. 수천 년을 이어온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인삼은 웰빙을 중시하는 오늘날의 트렌드와도 알맞고 많은 잠재력을 보여준다. 오랜 한류 상품이 앞으로도 국위선양을 해나갈 수 있을지 그리고 우리 삶 속에 얼마나 더 많이 스며들 수 있을지 궁금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