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1-10-21 10:25 (목)
HandMaker의 가치 2부, “연필 깎기”
상태바
HandMaker의 가치 2부, “연필 깎기”
  • 최미리 기자
  • 승인 2020.11.20 15: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핸드메이커 최미리 기자] 최근 들어 연필을 깎아본 적이 있는가. 연필을 마지막으로 써본 기억은 언제인가. 화가가 그림을 그리거나 건축가가 스케치북에 건축물을 스케치하는 게 아니라면, 보통 연필을 쓰지 않는다. 연필보다 펜이나 샤프를 선호한다.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하는 작가조차도 연필을 쓰지 않고 컴퓨터로 작업을 한다. 연필을 깎으려야 깎을 일이 도통 없다.

그런데 이러한 시대에 연필 깎기의 장인이라 자처하는 이가 있다. 바로 『연필 깎기의 정석』의 저자, “데이비드 리스”다.

연필 깎기의 장인, 데이비드 리스

데이비드 리스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그는 연필을 깎는데 혼신을 다하는 연필 깎기의 장인이다. 그저 연필 하나 깎을 뿐인데 무슨 장인이 있느냐, 라는 반문이 예상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연필을 깎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와 세심함, 그리고 인내가 필요하며 아무리 하찮고 사소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어디든 그 작업에 완벽을 기하는 장인은 존재한다.

연필을 깎기 위해서는 우선 준비물을 챙겨야 한다. HB연필과 작업용 앞치마, 주머니칼, 족집게, 비닐봉투, 사포와 줄, 비닐튜브, 칫솔, 손수건, 이쑤시개, LED 조명이 달린 머리띠 확대경, 방진 마스크, 반창고, 라벨과 인증서와 빨간색연필, 외날 휴대용 연필깎이와 교체용 칼날, 다구형•다단식 휴대형 연필깎이, 외날식 연필깎이, 이중날 회전식 연필깎이, 5달러 지폐와 잔돈 그 밖 여러 물건들이 필요하다.

데이비드 리스는 준비물마다 그 목적과 기능을 설명한다. 예를 들자면, 족집게와 비닐봉투는 연필을 깎고 남은 연필밥을 수거하고 보관하는데 필요하며, 반창고는 연필을 깎다가 손을 베었을 때를 대비하여 준비하는 것이다. 또 이쑤시개는 외날 휴대용 연필깎이에 낀 찌꺼기를 청소하는데 쓰인다. 5달러 지폐와 잔돈은 연필을 깎다가 현기증이 날 때 샌드위치를 사먹기에 충분한 돈이어서 늘 가지고 다닌다고 하지만, 그냥 유머로 받아들이는 게 낫겠다.

준비물을 챙겼다면, 연필 깎기에 앞서 준비운동을 해야 한다. 연필을 깎는데 손가락을 많이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작업 전에 그 부위를 잘 풀어주어야 한다.

이제 드디어 연필을 깎을 차례다. 외날 회전식 연필 깎기나 다른 다양한 연필 깎기를 사용하는 등 연필을 깎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데이비드 리스는 주머니칼로 연필을 깎는 제일 고전적인 방법에 있어서도 편집증이라고 오해할 만큼 세심한 설명을 곁들인다.

주머니칼을 빼들고 무작정 깎기만 하면 그만인 게 아니다. 무딘 칼은 예리한 칼보다 손을 다칠 위험이 더 크다. 칼날이 무디면 칼질에 더 힘이 들어가기 때문에 손을 벨 위험이 높다. 따라서 칼질에 앞서 칼부터 숫돌에 갈아야 한다. 새 연필에 첫 칼자국을 낼 때는 뾰족한 연필을 원하는지, 뭉툭한 연필을 원하는지, 어떤 모양을 바라는지 자신의 취향에 따라 첫 칼자국을 내는 위치를 결정해야 하며 또 칼질의 각도를 계산해야 한다.

나무속살을 다 깎아내고 흑연심이 노출되면, 그 부분을 주머니칼로 예리하게 다듬을 수도 있지만 흑연 심에 패인 칼자국이 남을 위험이 있으니 되도록 사포나 줄로 흑연 심을 다듬는 게 더 좋다.
 

필자의 개성을 담아 공들여 직접 깎은 연필. 칼질이 서툴러 흑연가루가 많이 나왔는데, 방진마스크를 쓰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 핸드메이커 이황 기자
필자의 개성을 담아 공들여 직접 깎은 연필. 칼질이 서툴러 흑연가루가 많이 나왔는데, 방진마스크를 쓰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 핸드메이커 이황 기자

연필을 손으로 깎는 이유, 핸드메이커의 가치

도대체 연필 깎기에 있어서 저렇게까지 공을 들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샤프를 쓰면 되지 왜 연필을 쓸까? 전동식 연필 깎기도 있는데 구태여 손을 써서 연필을 힘들게 깎아야 하는 이유가 도대체 어디 있다는 말일까?

데이비드 리스는 『연필 깎기의 정석』 제11장 ‘샤프펜슬에 대한 짧은 소견’에서 “샤프펜슬은 순 엉터리다.”라는 정말로 짧은 소견을 밝혔으며, 전동 연필 깎기에 대해서는 기계가 인간을 소외시키는 방식이며 전동 연필 깎기의 비밀지령은 “우선은 인간의 연필이지만, 다음 차례는 손가락이다.”라는 말이 있다며 우스갯소리를 한다.

어쩌면 데이비드 리스의 연필 깎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는 그저 가벼운 코미디 정도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하지만 연필 깎기에 대한 데이비드 리스의 유머러스하다 철학(?)을 조금만 더 진지하게 생각해본다면, 그것은 코미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핸드메이커”의 가치와 연결된다.

최근 들어 인간은 기계에 길들어가는 경향이 있다. 기계에 일상생활의 너무 많은 부분을 의존한다. 그러나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인간의 손이다. 손으로 재료를 만지고, 그것을 이리저리 다듬고 공을 들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사람의 존재가치다. 무엇인가를 손으로 직접 만드는 작업을 하는 과정 속에서 인간은 살아있음을 느낀다.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해냈다는 완전함을 느낀다.

데이비드 리스는 같은 책 마지막 장에서 ‘마음으로 연필 깎기’를 소개했는데 여기서 이런 대목이 있다. “칼날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연필 깎기는 아무런 가치가 없고 따라서 도구 세트에서 빼야한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외피 속에 동요나 불안을 초래할 수 있는 충동, 기억, 공포, 편견, 나약성 따위가 잠재해 있다면 그 마음은 연필 깎는 도구로 쓸 수 없다.”

마음으로 연필을 깎는다는 터무니없는 유머 속에 인간의 가치가 담겨있다. 인간의 마음 또한 작업도구에 포함되며 작업과정이라는 것이다. 즉, 기계로 깎은 연필이 손으로 깎은 것보다 더 정확하고 예리할지는 모르겠으나, 손으로 깎은 연필엔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다. 그 작업을 하는 동안 작업자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것이 핸드메이커의 가치다. 그 가치는 결과물의 정확성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