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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의 인쇄술, 사회 변혁을 불러온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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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의 인쇄술, 사회 변혁을 불러온 이유
  • 최미리 기자
  • 승인 2021.03.16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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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의 인쇄술, 주조로 만든 활자를 종이에 압착으로 찍어내
구텐베르크 인쇄술이 사회에 끼친 막대한 영향, 발명은 천재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다
현대의 인쇄기 / 픽사베이
현대의 인쇄기 / 픽사베이

[핸드메이커 최미리 기자] 오늘날 우리는 인쇄기로 빠르게 글씨를 찍을 수 있어 책, 신문 등 인쇄물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옛날에는 이러한 대량 인쇄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평범한 서민들이 정보를 얻는 데에는 굉장히 제약이 많았다. 물론 글을 아예 읽지도 못하는 문맹도 많았지만 말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만들어진 인쇄물, 그러나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

예전에는 점토, 가죽, 나무에 글씨를 썼지만 종이의 발명으로 더 편리하게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일일이 글씨를 써야 한다는 것은 여전히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활자가 발명됐다. 글씨를 새긴 판에 잉크를 묻힌 다음에 찍어내는 것이다. 처음에는 목재로 이후에는 더 정교하고 단단한 금속 활자가 쓰이게 됐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금속 활자를 발명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세계에서 금속활자를 발명한 사람으로 더 많이 알려진 것은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398~1468)이다. 어째서 한국이 200년이나 앞섰는데도, 세계인들은 구텐베르크를 기억할까. 이를 위해서는 구텐베르크가 만든 금속활자가 어떤 것인지, 그 영향력이 어땠는지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활자가 발명되기 전에 책은 매우 귀한 물건이었다. 금속활자 이전에 동양에서는 주로 목판인쇄를 사용했는데, 유럽에서는 아예 베껴 쓰는 필사를 많이 했다. 하지만 필사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오탈자가 날 가능성도 컸다. 그래서 집중력과 손재주가 뛰어난 일부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유럽인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성경은 1400년 당시 네덜란드 돈으로 약 60굴덴에 달했다. 이 정도 돈은 어지간한 규모의 농장 하나를 차릴 수 있는 돈이었기에, 서민들은 성경을 갖는 것을 꿈도 꾸기 힘들었다. 결국 인쇄물이라는 것은 부유한 계층의 전유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5세기 르네상스 시대를 맞아 사람들의 의식도 변화했다. 부유한 상인 계층과 자유로운 시민 계층이 생겨나면서 이들은 기존 왕과 성직자, 귀족만이 누리던 지식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됐다. 그래서 서적 등 인쇄물에 대한 수요도 증가했다. 이윽고 사람들의 필요는 새로운 발명을 낳게 된다.
 

구텐베르크 인쇄기 / 플리커, Andrew Plumb
구텐베르크 인쇄기 / 플리커, Andrew Plumb

구텐베르크, 창의적인 발상으로 대량인쇄 기술을 발명하다

구텐베르크는 독일 마인츠 지방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조폐국에서 일하는 귀족 출신이었다. 덕분에 구텐베르크도 아버지에게 화폐 만드는 금속세공을 배웠다고 한다. 구텐베르크는 이 기술을 이용해 금속 활자를 발명했다. 금화, 은화는 금은 덩어리를 문양을 새긴 금속 펀치로 때려서 문양을 만들었는데, 이 방법을 활자에 이용한 것이다.

1440년 그렇게 구텐베르크 인쇄술이 탄생했다. 먼저 녹인 쇳물을 부어 굳히고 글자 모양을 새긴 금속활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활자를 나무틀에 하나하나 심은 다음에 찍어냈다. 기존 목판인쇄는 글씨가 하나라도 틀리면 판 자체를 갈아야 했으나 금속활자는 그 글씨만 교체하면 되므로 시간이 훨씬 절약됐다. 또한 글씨를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어 신속하고 다양한 인쇄가 가능해졌다.

금속활자뿐만 아니라 인쇄기도 새롭게 발명됐다. 구텐베르크는 포도주 제조업자들이 사용하는 압착기에 아이디어를 땄다. 포도 압착기는 포도 위에 넓은 판자를 얹어 나사로 돌리면서 조여, 강한 압력을 가해 즙을 짜는 것이다. 이 원리를 이용해 구텐베르크는 인쇄기에 종이를 넣고 그 위에 다시 활자를 넣어 압착해서 찍었다. 인쇄를 의미하는 'Press'라는 단어는 구텐베르크 덕분에 탄생했는데, 원래 Press는 포도를 짜는 압착을 의미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인쇄술이 그렇게 어렵지 않은 간단한 원리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을 처음 생각해낸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닌 듯하다. 발명을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발명과 실용화는 어느 한순간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닌 것이다.

구텐베르크는 인쇄를 위해 램프 그을음과 아마씨 기름을 혼합해 적합한 잉크를 개발하고, 인쇄기의 압력에 견딜 수 있는 좋은 종이도 새롭게 확보했다. 또한 활자의 배열과 조절, 잉크의 농도, 종이 두께 등 완전한 실용화를 위해 여러 가지 부분에 대해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겪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도 어떻게 보면 기존에 있던 다양한 기술과 발명을 접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아주 수많은 문제와 난관을 해결해나가야 했다. 어쨌든 구텐베르크는 완전한 인쇄술 기술을 확보하여 1450년에 '도나투스'라는 라틴어 표준 문법서를, 1454년에는 '구텐베르크 성서'를 인쇄했다.

인쇄기로 금속활자를 압착시켜 책을 찍는 인쇄공들 / publicdomainvectors.org
인쇄기로 금속활자를 압착시켜 책을 찍는 인쇄공들 / publicdomainvectors.org
1454년 찍은 구텐베르크 성서 / 위키피디아
1454년 찍은 구텐베르크 성서 / 위키피디아

구텐베르크 인쇄가 바꿔버린 거대한 변화의 물결

구텐베르크의 발명 이전에는 2개월에 책 하나가 필사됐다. 하지만 이제 일주일 만에 500권의 책을 인쇄할 수 있게 됐다. 또한 1450년부터 1500년까지 50년 동안 2000만 권이나 되는 책이 생산됐다. 이는 그동안 인류가 만든 책보다 훨씬 많은 것이다. 이 같은 책의 보급은 오늘날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발명 이상의 변화를 불러왔다.

사람들은 왕과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인쇄물을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지식의 전파가 빨라졌고, 학문과 기술 발전도 촉진됐다. 특히 성경의 보급은 16세기 종교개혁에도 영향을 주었다. 기존 성경을 독점하여 종교의 권위로 자신을 정당화했던 지배층에 민중들이 반발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교황청에서 돈을 벌기 위해 면죄부를 판매했고 마틴 루터가 1517년 이를 비판하는 '95개조 반박문'을 내걸었던 것은 유명한 사건이다. 대중들은 이제 성경을 소유하게 되어 교리를 멋대로 해석하던 지배층의 논리를 깰 수 있었다. 또한 루터의 반박문도 널리 인쇄 및 배포되어 수많은 민중을 일깨우게 됐다.

종교개혁으로 지배층의 권위가 무너졌으며, 르네상스 이후부터는 이성과 평등을 지향하는 계몽사상이 싹트게 되었다. 결국 프랑스대혁명 등 정치혁명이 일어나 기존 왕정과 종교 체제가 타파되었다. 또한 수많은 서적의 간행은 사람들의 호기심과 동기를 더욱 자극하여 신대륙 발견과 다양한 발명을 통해 산업혁명으로까지 나아가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구텐베르크의 발명 덕분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주장일까? 유럽 사회의 수많은 변화에는 물론 다양한 원인이 있었겠지만, 인쇄술이 상당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금속활자 / 픽사베이
금속활자 / 픽사베이

다른 나라의 인쇄술은 왜 유럽처럼 변혁이 일어나지 못했을까

그렇다면 구텐베르크보다 200년 먼저 금속활자를 만들었던 우리나라에서는 왜 유럽과 달리 사회 전반적인 거대한 변화를 겪지 못했던 것일까. 우리나라는 이미 삼국시대부터 다양한 목판활자와 목활자를 만들었으며, 고려 고종 때인 1230년 '상정예문'을 금속활자로 찍었고, 1377년 찍은 '직지심체요절'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유럽보다 우수한 인쇄 기술을 갖추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쇄 기술은 지배층만이 독점했다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수많은 나라들이 경쟁했던 유럽과 달리 중앙집권화가 이뤄진 고려와 조선 조정에서는 인쇄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릴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유출을 막고 최소한의 경전만을 간행하여 지배 권력을 공고히 하는 데에만 활용했다.

물론 이 같은 현상은 한국만 겪은 것은 아니다. 중국도 마찬가지였고, 중동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아랍인들은 코란을 들고 소리 내어 읽는 독송보다는 아예 외우는 암송을 선호했다. 또한 아랍어 자체가 활자를 만들기에 부적합하기도 했다. 다른 나라에 과연 구텐베르크만 한 천재가 없었을까. 유럽인이 두뇌가 더 우수했기에 이러한 발명이 생겼던 것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유럽인이 우수한 것이 아닌 환경이 더 유리했기 때문이다. 더 많은 사람이 경험을 쌓고 축적하고 경쟁하고, 다양한 실험을 해볼 수 있는 그런 환경 말이다. 천재들의 재능이 극대화되고 사회 전체를 바꿀 수 있는 것도 결국은 시대와 환경이다.

재밌는 점은 정작 구텐베르크는 사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구텐베르크는 동업자인 푸스트와 그의 사위인 페터 쉐퍼와의 소송에서 자신의 발명품을 모두 빼앗기고 사업을 접어야만 했다. 구텐베르크가 자신의 발명이 만든 엄청난 변화를 알게 되면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하다.

오늘날 우리는 '구텐베르크가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했다'라는 단편적 사실만 안다. 하지만 단순한 사실만 외우는 것보다 그 발명이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닌, 얼마나 수많은 기존 사례를 참고했고 난관을 겪었는지, 그 시대는 어땠는지, 이후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발명자 본인의 생애는 어땠는지 등을 알면 훨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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