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1-11-30 05:45 (화)
집 안의 또다른 집? 선조들의 미니어처 '닫집'
상태바
집 안의 또다른 집? 선조들의 미니어처 '닫집'
  • 최미리 기자
  • 승인 2021.03.31 12: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찰 내부 중앙에는 부처님을 모시는 또 다른 작은 집이 있다. 궁궐에도 왕을 모시는 닫집 있어···
온갖 건축과 공예, 예술 기술이 집약된 화려함의 극치이자 소중한 문화유산

[핸드메이커 최미리 기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종교는 무엇이 있을까? 천주교, 기독교, 불교 등을 꼽을 것이다. 2015년 조사에 의하면 불교 신자는 전체 인구의 15.5%이다. 많지 않은 것 같지만 사실 많은 사람(56.1%)들이 종교가 아예 없을 뿐이다. 개신교가 19.7%, 천주교가 7.9%인 것을 보면 여전히 종교 중에서 불교의 위상이 크다.

그리고 무엇보다 불교는 우리나라에 오랫동안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쳐온 종교이다. 기독교와 천주교는 그 역사가 비교가 되지 않는다. 꼭 불교를 믿지 않더라도 한국인이라면 불교 문화재를 보는 것이 익숙한 일이다. 수많은 불상, 불탑, 불교 공예품 등은 물론 국내 어디를 가도 불교 건축물인 사찰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사찰은 승려와 신자들이 불도를 닦는 사원을 말한다. 사찰의 독특한 건축 양식과 내부의 다양한 불상, 불단, 공예품 등은 불교의 오랜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다. 그런데 다른 것은 익숙한데도 의외로 우리가 잘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 사찰에는 모두 있고 그것도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으면서 말이다. 바로 '닫집'이다.
 

법당의 닫집 / 픽사베이
법당의 닫집 / 픽사베이

부처님과 왕을 모시는 자리, 집안의 또다른 집

사찰 안으로 들어가면 중앙에 부처님이 모셔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부처님이 모셔진 자리는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마치 그 자리는 또 하나의 새로운 모형의 집처럼 되어 있다. 건물 안에 또 다른 건물이 있다고 생각하니 참 흥미롭다. 너무 자연스럽게 자리잡아 사람들이 의식을 못 했던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닫집은 사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닫집의 '닫'은 따로의 옛말이라고 전해진다. 따로 지어진 집이라는 뜻이다. 그 형태는 공중에 매달려있어 굉장히 화려하고 장엄하다는 느낌이 든다. 또한 그 표현도 아주 섬세하다. 실제 건물을 축소시켰으니 미니어처라고 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좀 더 크다. 아무튼 정교한 건축과 공예 기술이 필요했을 것 같다.

닫집은 부처님을 모시는 또 다른 건축물이다. 그런데 궁궐의 정전 중앙에 왕이 앉는 자리인 어좌(御座)에도 닫집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시대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의 어좌 역시 닫집의 형태를 띤다. 닫집은 불교만의 전유물이 아닌 유교 왕조였던 조선에도 활용된 것이다.

닫집은 당나라 집이라는 뜻인 당가(唐家)라고도 한다. 그래서 당나라 시대에 이 닫집을 들여온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또 닫집은 산개(傘蓋)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를 보면 주인공 위에 양산이 씌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인도의 사원에서도 우산 모양의 덮개인 보개(寶蓋)가 있다. 이것들이 점차 건축물의 형태로 발전한 것이다.

고대의 불교 경전인 '아미타경'에서는 극락세계를 묘사했는데, 극락에 일곱 겹의 난간과 타아라 나무 기둥이 있다고 하여, 극락의 전당 형태를 설명했다. 닫집은 이 극락의 전당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한편 조선시대에 국가가 주관한 건설 사업 보고서인 '영건도감의궤'에는 닫집의 도면이 그려져 있어 가치있는 연구 자료가 되고 있다.
 

영천 은해사 백흥암 수미단(보물제486호) 5층의 단은 각종 길상무늬로 장식했고 뒤에는 불화를 놓았다 / 문화재청
영천 은해사 백흥암 수미단(보물제486호) 5층의 단은 각종 길상무늬로 장식했고 뒤에는 불화를 놓았다 / 문화재청

닫집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주변 구조들

닫집은 국왕 혹은 성스러운 부처님을 모시는 자리이기 때문에 당연히 평범하게 만들지 않았다. 온갖 기술을 동원하여 마치 궁전과 같이 화려하고 엄중한 공간으로 제작했을 것이다. 사찰로 들어가 중앙 위의 닫집을 보기에 앞서 밑에는 올라가는 대인 어탑(御榻)이 있다. 어탑은 궁궐 정전에서 임금이 닫집에 올라가는 상전의 역할도 한다.

어탑은 사람 키 높이의 크기에 앞쪽과 좌우에 계단이 있다. 나무나 돌 등을 조각해서 만든다. 불교의 어탑은 불단 혹은 수미좌, 수미단이라고 부른다. '수미'란 말은 석가모니가 그의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해 설법한 곳이 수미산 정상이라는 것에서 유래됐다.

어탑은 4각 혹은 8각형으로 만들며, 존엄한 존재를 모시는 만큼 단에는 다양한 신령과 동물, 길상 등 상징 무늬가 가득하다. 어탑은 또한 계단과 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불단 위에 난간과 지붕을 함께 설치하여 작은 건축물의 모습을 이룬다. 위에 설치하는 닫집은 기둥으로 하중을 지지하는 '지지주형'과 천장에 매다는 '현괘형',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또한 중앙에는 등받이 의자인 곡병(曲屛)을 만든다. 물론 상황에 따라 계단이나 곡병을 생략하기도 한다. 그리고 중앙에는 대부분 조각된 부처상을 올리며, 궁궐의 경우에는 왕이 앉는 어좌를 따로 마련한다. 뒤에도 불화 등을 그린 회화 그림과 병풍을 배치한다.
 

안동 봉정사 대웅전의 보개형 닫집 / 문화재청
안동 봉정사 대웅전의 보개형 닫집 / 문화재청

사찰에서 확인하는 다양하고 개성있는 닫집의 종류들

닫집의 형태는 세 가지가 있다. 먼저 보개형(寶蓋形, 보개천장)은 닫집 중에 가장 간결한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천장 안쪽에 지붕을 밀어 넣은 듯한 모양으로 만든 것인데, 공포를 조각하고 여러 상징물을 그렸다. 그렇게 흔한 형태는 아니다. '안동 봉정사 대웅전',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등에서 이러한 보개형 구조를 볼 수 있다.

국보 제311호인 안동 봉정사의 법당인 대웅전은 고려 시대에 지어진 것이다. 안쪽의 닫집은 가운데에 벽이 쳐져 있고, 중앙에 석가모니삼존상이 모셔져있다. 뒤에는 후불벽화가 그려져 있다. 천장을 보면 보개형 지붕이 밀어넣어져 있는데, 구름무늬와 용, 봉황 등이 그려져 있다.
 

서산 개심사 대웅전의 운궁형 닫집 / 문화재청
서산 개심사 대웅전의 운궁형 닫집 / 문화재청

운궁형(雲宮形)은 보개형과 달리 공포(栱包, 한옥 건축에서 하중을 지탱하도록 기둥머리에 만드는 독특한 요소)를 짜올리지 않고 판재로만 구획을 짓는다. 천장에는 다양한 문양과 상징을 조각하여 장식한다. '서산 개심사 대웅전', '경산 환성사 대웅전', '남양주 봉정사 금당' 등이 운궁형 형태를 띤다.

보궁형(寶宮形)은 실제 독립된 건축물처럼 만든, 닫집의 가장 절정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까지는 주로 보개형이나 운궁형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나, 조선시대에 들어 보궁형이 많이 쓰이게 됐고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화려하게 장식하면서 뛰어난 공예 기술을 보여준다. 현재 수많은 사찰에서 보궁형을 확인할 수 있다.
 

논산 쌍계사 대웅전의 보궁형 닫집 / 문화재청
논산 쌍계사 대웅전의 보궁형 닫집, 가운데가 적멸궁 / 문화재청

논산의 쌍계사 닫집(보물제408호)은 1738년 조성된 가장 빼어난 닫집이다. 안쪽 중앙에는 석가모니, 아미타불, 약사여래상이 모셔져있는데, 각 3개의 상 위에 각각 지지주형으로 닫집이 세워져 있다. 또한 닫집 가운데에는 각각 편액 현판이 걸려져 있다. 각 편액에 써져 있는 글자는 적멸궁, 칠보궁, 만월궁이다.

적멸궁(寂滅宮)은 열반에 든 석가모니가 계시는 궁전, 칠보궁(七寶宮)은 아미타불이 주재하는 서방극락정토의 궁전, 그리고 만월궁(滿月宮)은 약사여래가 주재하는 동방정유리국의 궁전을 가리킨다. 닫집이 극락 세계의 궁전임을 확인해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중층 형식의 건물이며, 첩첩이 처마와 공포가 짜져 있는데, 그 곡선미가 매우 아름답다.
 

완주 화암사 극락전 닫집 / 문화재청
완주 화암사 극락전 닫집 / 문화재청

국보 제316호인 완주 화암사 극락전의 닫집 지붕에는 역동적으로 하늘을 나는듯한 용과 선녀인 비천상이 조각됐다. 화려한 예술적 균형미를 잘 간직하여, 다른 닫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형태이다. 충북 괴산에 있는 각연사 비로전의 닫집은 특이하게도 보궁형과 보개형이 합쳐진 모습이다. 분명 천장에 붙어있지만, 완전히 들어간 것이 아니라 입체적인 조각 형태가 나와있으며, 용과 봉황이 장식되었다.
 

근정전 어좌와 닫집 / 위키피디아
근정전 어좌와 닫집 / 위키피디아

궁궐의 위엄이 가득한 닫집

경복궁 근정전(국보 제223호)의 닫집은 조선의 왕이 앉는 자리이다. 전체적인 바탕을 알록달록한 칠보와 단청으로 장식하였는데,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화려하고 섬세한 표현으로 조선 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어좌와 곡병의 뒤에는 일월오악도가 그려져 있는데, 해와 달, 산봉우리 등은 임금의 권위와 왕실의 무궁함을 상징한다.

임금의 등받이인 곡병은 나무를 조각해 만들었고,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문을 새겼다. 그리고 붉은 옻칠인 주칠(朱漆)을 하였다. 또한 사이사이에는 8마리의 용을 장식했고, 중앙에는 구름 속에서 솓아오르는 해를 조각해서 금칠을 했다. 곡병 가운데 놓인 어좌 역시 크기만 더 작을 뿐, 곡병과 똑같은 형태이다.

닫집 지붕도 사찰과 다르다. 마치 하늘에 물결치는 꽃구름 같은 형태로 만들었다. 편액에는 단청으로 연꽃, 녹화, 여의두문 등 다양한 무늬가 그려졌다. 또한 안쪽 덮개에는 공포를 세심히 꾸몄는데, 기둥상부와 기둥 사이에 모두 공포를 꾸민 다포식 구조를 가진다. 한편 덮개 안쪽 천장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황룡 한 쌍도 볼 수 있다.

다른 궁궐의 정전에서도 이러한 닫집은 쉽게 볼 수 있다.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국보 제225호)이나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서울특별시 시도유형문화재 제20호)에도 모두 이러한 닫집이 있는데, 근정전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닫집은 이처럼 정전으로서의 권위를 세우는 중요한 장식이었다. 사찰의 정전과의 차이를 비교해보며 재밌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닫집은 한국의 전통 건축과 공예의 기술 및 예술 양식을 모두 집약한 대표적인 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사찰과 궁궐의 정전 그 자체는 신경 쓰면서도 내부의 이러한 닫집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현재 닫집은 몇몇 무형문화재 소목장만이 만들 수 있어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며, 크기는 적당하면서 건축 예술의 정수를 담았기 때문에 문화콘텐츠로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이 있어 보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