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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아름다운 광택과 색채, 유럽의 '에나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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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아름다운 광택과 색채, 유럽의 '에나멜'
  • 최미리 기자
  • 승인 2021.02.15 15: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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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공예품을 유리질 물질로 장식하는 기법인 에나멜,
동서고금에서 활용됐으며, 현대에도 중요한 산업 재료
중국의 칠보 작품 / 위키피디아
중국의 칠보 작품 / 위키피디아

[핸드메이커 최미리 기자] 반짝반짝 광택과 매끄러운 촉감, 형형색색 다양한 색깔을 내는 '에나멜(enamel)', 에나멜을 애용하는 사람이 많다. 현대에도 널리 쓰이지만, 고대 시대부터 이미 에나멜은 널리 활용됐다. 동양에서는 에나멜을 법랑(琺瑯) 또는 칠보(七寶)라고 불렀다.

에나멜은 도자기에 바르는 유약과 비슷한 유리질 물질이다. 하지만 유약과 다른 점은 나무나 점토에 잘 붙지 않아 단단한 금속에 사용한다. 흥미로운 것은 사람의 치아와 동물의 상아 등에도 에나멜 성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치과 치료에서 치아를 씌우는 보철에 치아 성분과 유사한 인공 에나멜(세라믹)을 자주 이용한다.

다른 유약과 비교하면 단점도 있는데, 깨지기 쉽다. 그리고 흠집이 잘나서 관리가 어렵다. 하지만 제품을 고급스럽게 꾸밀 수 있으며, 표면을 부식과 열에 보호하는 능력이 좋아 오래전부터 귀한 안료와 도료로 애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에나멜을 이용하여 각종 칠보공예품을 만들었다. 중국에서도 경태람(법랑자기)이라는 그릇이 있는데, 다른 많은 도자기와 달리 금속 재질에 에나멜을 발라 장식한 그릇으로 아주 화려하다. 하지만 동양에서 에나멜은 주로 왕실과 귀족의 사치품 등에만 쓰인 것에 반해, 서양에서는 더 널리 활용됐고 오랫동안 유행했다.
 

이집트의 에나멜 램프 / 위키피디아
이집트의 에나멜 램프 / 위키피디아
12세기경 동로마제국에서 제작된 에나멜 메달 / 위키피디아
12세기경 동로마제국에서 제작된 에나멜 메달 / 위키피디아

서구에서 유행한 에나멜링 기법의 역사

에나멜은 기원전 2500년 전 이집트 문명에서부터 시작됐는데, 이 기술이 유럽과 아시아로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럽에서는 그리스부터 시작되었으며, 그리스에서는 금, 공작석, 청동 등 귀금속 등에 에나멜을 바른 예술품과 주얼리를 만들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서양에서 에나멜이 유행한 것은 중세 시대부터였다.

중세에는 에나멜링 기법이 영국, 독일, 동로마 지역으로 퍼져나갔고, 평민 계층에서도 사용했다. 물론 평민 계층의 기술 수준은 좀 더 조잡한 수준이었고 서유럽보다는 동로마 제국에서의 에나멜링이 특히 발전했다. 동로마의 에나멜링은 복잡한 기법으로 다양한 색과 복잡한 도안을 표현할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십자군 전쟁이 한창이던 13세기, 동로마의 수도인 비잔티움이 파괴되자 수많은 에나멜 장인이 유럽 내지로 이주하여 서유럽의 수준도 발전하게 된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 이후에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에나멜이 유행했는데, 화려한 그림을 그린 장신구와 그릇, 가구, 시계 등을 만들었으며, 바로크, 로코코 양식 등이 유행함에 따라 계속 새로운 도안들이 만들어졌다.
 

1170년 토머스 베케트 살해사건을 표현한 에나멜 상자 / 위키피디아
1170년 토머스 베케트 살해사건을 표현한 에나멜 상자 / 위키피디아
파베르제의 달걀 / 픽사베이
파베르제의 달걀 / 픽사베이

근대 이후에는 에나멜을 다루는 브랜드 업체와 디자이너가 속속 등장했는데, 파베르제(faberge)는 그중에서도 특히 잘 알려진 장인이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아름다운 이 부활절 달걀은 '파베르제의 달걀'인데, 러시아 황실의 보물이다. 러시아 차르, 알렉산드르 3세가 1885년 부활절에 황후에게 선물하기 위해 파베르제에게 주문한 것이다.

파베르제는 직접 차르에게 인증서를 수여받았고, 러시아 외에도 유럽 수많은 나라에 공방을 차리고, 에나멜 공예품을 만들었다. 한때는 700명 이상의 디자이너와 기술자가 파베르제 공방에서 일했으며, 10만 점의 제품을 만들었다. 파베르제의 달걀은 오늘날에도 경매에서 수백 억이 넘는 가격에 거래된다.

에나멜 재료는 장석 등 규산계의 광물을 바탕으로 한다. 여기에는 다양한 색을 내는 유약을 따로 입혀 색을 낼 수 있다. 그리고 철, 알루미늄, 구리, 금·은 등 각종 보석 등의 금속 표면에 원하는 문양대로 바른 다음, 구워내서 만들면 된다.

에나멜은 도자기 유약보다 낮은 온도인 550~800도에서 굽는다. 유약의 바탕이 되는 금속은 도자기의 점토와는 열팽창이 다르다. 때문에 너무 고온에서 구우면 유약이 붙지 못하고 쉽게 떨어져 나간다. 또한 낮은 온도에서 구워야만 산소에 의한 변질이 덜 일어나고, 표면에 광택을 내는 데에 유리하다. 물론 피복하는 금속에 따라 온도는 조금씩 다르다.

에나멜로 공예품을 만드는 기법은 아주 다양하다. 먼저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가 가장 잘 알려진 방법인데, 다양한 색판 유리조각을 접합하여 창문을 만들고 다시 에나멜을 칠해 세부적인 디자인을 표현한다. 중세 시대에 널리 쓰였고, 교회 등 다양한 건축물의 유리창을 장식했다.
 

12세기 리모주에서 상르베 에나멜로 만든 공예품 / 위키피디아
12세기 리모주에서 상르베 에나멜로 만든 공예품 / 위키피디아

상르베(champleve)는 금속을 음각(문양을 오목하게 파는 조각 방법)으로 조각한 다음에 에나멜을 입히고 문지르면서 평평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서로 다른 색이 섞이지 않게 해주며, 파내는 깊이에 따라 다양한 입체감을 표현할 수 있는 정교한 기법이다.
 

클로아조네 에나멜로 제작한 중국의 화병 / 픽사베이
클로아조네 에나멜로 제작한 중국의 화병 / 픽사베이

클로아조네(cloisonne)는 폴리카주르라고도 하는데, 상르베와 달리 은, 금 등의 선을 붙여 문양을 튀어나오게 만든다. 비어진 공간에는 여러 색의 에나멜을 입힌다. 빠이요네(paillonne)는 이미 만들어진 에나멜에 얇은 금박 또는 은박을 붙이고 투명한 유약을 입혀서 구워주는 방법이다. 금·은의 질감과 빛의 반사로 신비로운 느낌을 보여줄 수 있다.
 

에나멜 페인팅으로 그려진 그레고리 대왕 / 위키피디아
에나멜 페인팅으로 그려진 그레고리 대왕 / 위키피디아

마지막으로 에나멜 페인팅(enamel painting) 기법은 단일한 색깔의 에나멜을 판에 입히고 그 위에 다시 여러 색깔의 에나멜로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다. 직접 수작업으로 그림을 그리므로 아주 정교한 실력이 요구되지만, 그 아름다움은 기법 중 가장 최고이다. 이들 다양한 에나멜 기법은 각각 난이도도 다르고 화려함과 표현의 수준도 다르다.
 

19세기 런던에서 금과 에나멜로 제작된 시계 / 위키피디아
19세기 런던에서 금과 에나멜로 제작된 시계 / 위키피디아

현대에서도 활용되는 에나멜

에나멜의 그 찬란하고 미묘한 아름다움은 다른 기법이 따라올 수 없다. 산업혁명 이후에는 기계의 등장으로 에나멜도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 덕분에 대중들도 대량생산된 다양한 에나멜링 제품들을 향유할 수 있게 됐고 오늘날에는 일반 가정에도 에나멜 제품이 많이 쓰인다.

현대의 에나멜은 가구, 그릇, 신발, 가방, 쥬얼리, 시계 등 일상용품을 장식하는 데에 쓰이는데, 에나멜로 코팅된 그릇과 식기는 내식성, 내열성, 열전도율 등이 좋고 가벼워서 다루기에 좋다. 또한 에나멜은 다른 유약보다 얇게 만들 수 있어, 시계와 주얼리 등 고급 액세서리에도 정교하고 복잡한 표현이 가능해 인기가 높다.

그러나 공예품에만 쓰이지 않는다. 철판에 코팅해 만든 법랑철기, 그리고 내산법랑, 강판법랑, 알루미늄법랑 등 아주 다양한 종류가 생겼고, 이 여러 가지 에나멜들은 가스 기구, 화학 장치, 배기관, 연소관, 밸브, 용기 탱크 등 다방면의 분야에 활용되는 중요한 산업용 재료들이다.

고대부터 가장 아름다운 공예예술품을 만드는 데에 쓰인 에나멜, 하지만 현대에도 그 쓰임은 멈추지 않는다. 아직 에나멜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이번 기회에 에나멜의 다채로운 매력을 한번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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