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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신진도 섬마을에서 조선 수군의 한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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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신진도 섬마을에서 조선 수군의 한시 발견
  • 김강호 기자
  • 승인 2020.07.23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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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신진도 고가 / 문화재청
태안 신진도 고가 / 문화재청
태안 신진도 고가 평면도 / 문화재청
태안 신진도 고가 평면도 / 문화재청

[핸드메이커 김강호 기자]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지난 6월, 충청남도 태안군의 신진도에 있는 한 고가(古家)에서 조선 수군(水軍)의 명단이 적힌 수군 군적부(軍籍簿)와 한시(漢詩)를 발견했다. 또한 이후 수거된 벽지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수군진촌(水軍鎭村)의 역사와 서정을 느낄 수 있는 다수의 한시 등을 추가로 발견하여 주목받고 있다.

태안 신진도 고가는 상량문(집의 내력을 적어둔 문서)에 적힌 ‘도광(道光, 청나라 도광제의 연호) 23년’을 통해 1843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가에 거주했던 후손 최인복 씨의 증언에 의하면 가옥은 대청을 중심으로 ‘ㅁ’자형 건물 배치이며 260평의 대지에 방 5칸, 광 6칸, 부엌 3칸, 소 외양간 1칸, 말(馬) 우리 등을 갖추고 있다. 실측결과, 현재는 ‘ㄷ’자형 구조만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광 6칸이 존재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안흥진 수군을 관리했던 관가(官家)의 건물로 추정된다.
 

黃麥打麥羊 出家家(황맥타양출가가: 집집마다 찰보리를 타작하여 거두어 가다)
黃麥打麥羊出家家(황맥타양출가가) - 보리를 찧어서 집집을 나서다

수군진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는 한시들

이번에 새롭게 발견된 한시 내용은 聞新設開宴四方賢士多歸之(문신설개연사방현사다귀지)으로 '새로 짓고 잔치를 베푼다는 소식을 듣고 사방에서 선비들이 모였다'라는 뜻이 있다. 1843년 7월 16일 태안 신진도 안흥진 수군의 관가(官家)로 사용될 집을 짓고 다음 해 안흥진 첨사(安興鎭 僉使)였던 조진달(趙鎭達)의 재임 기간인 1844년에 잔치를 베풀어 사방의 손님을 맞이했음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한시의 제목은 黃麥打麥羊 出家家(황맥타양출가가: 집집마다 찰보리를 타작하여 거두어 가다)인데, 내용을 보면 ‘군포를 내라는 조칙이 있는데도, 갑자기 지난밤 보리를 보내어 왔구나’(布詔行令曾如此 忽然昨夜麥秋至)라는 문장도 있어 이 가옥이 안흥진 수군을 관리하기 위해 군포나 곡식을 거두어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안흥진 수군의 중요 임무 중 하나였던 조운선의 안흥량 통과를 위한 호송과정에서 발생한 인명의 희생과 이를 비유한 한시도 있다. 이 시는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 699-759)의 오언절구 한시 「조명간」(鳥鳴澗, 새가 시냇가에서 울다)의 형식을 빌려 능숙한 초서체(草書體)로 ‘사람이 계수나무꽃 떨어지듯 하여, 밤은 깊은데 춘산도 적막하다’(人間桂花落 夜靜春山空, 인간계화락 야정춘산공)라고 하여 수많은 인명이 안흥량 앞바다에 빠져 희생된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실제로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안흥량을 왕래하는 선박 중 뒤집혀 침몰하는 것이 10척 중 7~8척에 이르고, 1년에 침몰하는 것이 적어도 20척 이하로 내려가지 않고, 바람을 만나 사고가 많으면 40~50척에 이른다’(1667년인 현종 8년 윤 4월조)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사고가 많은 해역의 특성으로 인하여 수군과 조운선을 관리하는 이 고가(古家)에서는 ‘無量壽閣’(무량수각: 영원한 생명을 기원하는 건물)’이라는 문구도 발견되었다.
 

안흥량 관장목 / 문화재청
안흥량 관장목 / 문화재청
일제강점기(1915) 지형도 / 문화재청
일제강점기(1915) 지형도 / 문화재청

시객들이 찾는 곳이며 중요한 요충지였던 안흥량

안흥량(安興梁) 일대에 주둔했던 수군은 고려 후기부터 조선 시대까지 이어졌던 왜구의 침입을 막고, 유사시에는 한양을 지원하기 위한 후원군 역할을 하였다. 또한 이곳은 우리나라 최고의 험조처(물살이 빠르고 항해가 어려운 바다)였던 만큼, 안흥량 일대를 통행하는 조운선의 사고를 방지하고 통제하는 역할도 했다.

신진도 수군진촌에 자리한 능허대(凌虛臺) 백운정(白雲亭)은 예로부터 ‘능허추월(凌虛秋月)’이라 하여 안흥팔경(安興八景, 조선시대 윤용구가 시로 표현한 안흥량의 8가지 절경들) 중의 하나로 알려진 곳이다. 이곳은 중국의 능허대와 모습이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옛날 중국 사신들도 안흥 앞바다에 체류할 때 이곳을 소능허대(小凌虛臺)라고도 칭하였다. 또한 도처의 시객(詩客)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시를 지었다고 한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이번 태안 신진도 수군진 유물 발견을 계기로 민간에 전승되어 내려오는 안흥진 수군과 관련한 개인문집과 문학작품을 찾아 번역할 예정이다. 관련된 주요 문집으로는 김득신(金得臣, 1604-1684)의 『백곡집, 栢谷集』, 김규오(金奎五, 1729-1791)의 『최와집, 最窩集』, 이상적(李尙迪, 1804-1865)의 『은송당집, 恩誦堂集』등이 있으며, 수군진의 문학과 역사 연구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7월 24일 오후 1시에 태안해양유물전시관에서 개최하는 「제2회 태안 안흥진의 역사와 안흥진성」 학술대회에서 해당 유물들을 공개할 예정이다.

태안 신진도 고가 인근 초등학교 주변으로는 1970~80년대까지만 하여도 조선시대의 건물로 추정되는 전통 기와집이 다수 남아있었다고 한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해당 지역이 수군진과 관계되는 관리와 수군이 거주했던 지역으로 판단되어 종합적인 학술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하고 추가조사를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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